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1칙 세존이 법좌에 오르심[世尊陞座]

쪽빛마루 2016. 3. 21. 05:38

종용록

 

 

제 1칙

세존이 법좌에 오르심[世尊陞座]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문을 걸어닫고 잠만 자는 것은 상상기(上上機)를 제접(提接 : 인도)하는 길이요, 이리저리 둘러보거나 하품이나 할을 하는 것은 중하(中下) 근기를 제접하는 길이다. 그 어찌 구부렁나무토막[曲䚄木 : 법상]에 올라가서 도깨비 눈망울을 번뜩거리랴? 누군가 내말을 긍정치 못하겠거든 나오라. 그렇다고 내 그를 나무라지는 않으리라.

 

본칙


 드노라.

 세존께서 어느날 법좌에 오르시니

 -오늘은 내 편치가 못하구나.

 

 문수가 백추(白槌)*하고서 말하되 "법왕의 법을 자세히 관찰하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으시옵니다[如是]"하니

 -그의 속셈을 나는 알겠다.

 

 세존께서 얼른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다른 날 다시 따지시려는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10호(號)를 두루 갖추사 세상 밖에 홀로 존귀하시고 눈썹은 다 닳아졌으나 코끝[鼻孔]은 당당[昻藏]하시다.

 교가[講肆]에서는 법좌에 오른다[陞座] 하고, 선가[禪林]에서는 법당에 오른다[上堂]라 하지만 여러분이 아직 법당에 이르기 전에, 만송(萬松)이 방장(方丈)에서 아직 나오기 전에 이미 알아버렸다[薦得] 하여도 벌써 셋째, 넷째 또래에 떨어진다. 보지 못했는가? 설두(雪竇)가 이르기를, "대중 가운데 만일 선타객(仙陀客)*이 있었더라면 문수가 백추 한 방망이를 칠 필요가 어디 있었으리요?" 하였으니 점검해보건대, 설두가 소금을 찾을 리 없는데 만송인들 어찌 말[馬]을 대령할 수 있겠는가? 설사 칠불(七佛)의 조사(문수)가 이르기를 "법왕의 법을 자세히 관찰하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으십니다" 하였더라도 역시 눈에서 못[釘]을 뽑고, 뒤통수[腦後]에서 말뚝을 뽑아내야 하리라.

 방금 개당했는데 그 끝에 백추하고 이르기를 "법왕의 법을 자세히 관찰하니 법왕의 법이 이와 같으십니다" 하였으니 이것을 예로 들어 말하자면 세존이 얼른 자리에서 내려옴으로써 일단 반쯤은 구제되었거니와 나머지 반몫은 천동(天童)에게 맡겨야 하겠다.

 

송고


 한 무더기[一叚] 참 풍모를 보았느냐?

 -회오리 바람이 눈에 들지 않게 하라. 특히 꺼낼 때가 더욱 어렵다.

 

 끝없는[綿綿] 조화옹[化母]이 베틀을 다루도다.

 -들쑥날쑥 어슷비슷 올을 엮어나간다.

 

 옛 비단에 봄 풍경을 숨겨서 짜냈건만

 -크게 재주스러운 이는 못난이 같이 보인다.

 

 어찌하랴? 동군(東君 : 봄의 신)이 먼저 누설하였네.

 -음양은 사사로이 따름이 없고 계절은 기다리는 법이 없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이 이르기를 "한 무더기 참 풍모를 보았느냐?" 하니, 세존께서 자리에 오르신 것이 한 무더기 풍모인가, 천동이 들어 송한 것이 한 무더기 참 풍모인가, 만송이 따지는 것[請益 : 질문]이 한무더기 참 풍모인가? 그렇다면 도리어 세 무더기가 되어 버렸으니 어느 것이 한 무더기의 참 풍모인가? 바로 여러분 모두에게 각각 몫이 있으니 자세히 참구해봄이 좋을 것이다.

 또 이르기를 "끝없는 조화옹이 베틀을 다루도다" 하였으니, 조화옹이란 공교하게 조화하여 만물을 만드는 이의 별호인데 유교와 도교에서는 일기(一氣)를 숭상하고 불가 계통에서는 일심(一心)에 근본한다고 한다. 규봉(圭峰)은 이르되 "원기(元氣)라는 것 또한 마음을 말미암아 지어진 바요, 모두가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상분(相分)에 속하는 것이다" 했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이는 조동종의 정통[正宗]이며 불조의 명맥(命脉)이다. 고동[機紐]을 추도리[樞口]에 끼워 얹으니 움직일 적마다 그윽하고 미묘하며 실올[綿絲]을 북 구멍[梭腹]에서 토해내니 사용할 때마다 면밀(綿密)하거늘 어찌 사인론자(邪因論者)나 무인론자(無因論者)와 더불어 같은 날에 이야기 할수 있으랴?" 하노라.

그 다음에는 세존께서 깊숙이 간직해오신 덕망[蘊藉]을 송한 것인데 이르기를 "옛 비단에 봄 풍경을 숨겨서 짜냈건만" 하였으니 비록 벌레가 나뭇잎을 먹으매 우연히 글자가 이루어진 격이 되고, 마치 문을 닫고 수레를 깎았으나 문 열고 나가보니 수레자국에 맞는 격이 되었음에야 어찌하랴?

 마지막에 문수가 몰아부친[折倒] 대목에 대하여 이르기를 "어찌하랴? 동군이 먼저 누설하였네" 하였으니 문수가 백추하매 세존께서 얼른 자리에서 내려오신 일과 나아가서는 가섭이 백추하니 문득 백천만 개의 문수가 나타난 일 등은 모두가 같은 상황[時節]인데 그럴 때 어찌하여 거두고 놓음이 같지 않은가?

 그대는 어느 것이 동군이 누설한 곳이라 여기는가? 조심스레[慇懃] 정향 봉우리[丁香結]를 터뜨리니 가지 끝마다에 풍요로운 봄빛이 쏟아져 나오더라.

-------------------------------------------------

* 종을 치고서 대중에게 의견을 발표하는 의식.

* 어떤 왕이 "선타바" 하고 신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는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장 알아차리고 말 등을 대령했다. 이 고사로부터 선타객은 마음을 알아주는 이라는 뜻으로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