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上 제3칙 동인도 왕이 조사를 청함[東印請祖]
제3칙
동인도 왕이 조사를 청함[東印請祖]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겁(劫) 이전부터 나타나지 않은 소식[機]은 검은 거북이가 불을 쬐는 격이요, 교(敎) 밖에 따로이 전하는 도리는 맷손[碓觜]에서 꽃이 피는 격이다. 일러보라. 그래도 수지독송할 몫이 있다고 하겠는가?
본칙 |
드노라.
동인도의 어느 국왕이 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에게 재(齊)를 청했는데
-가끔 입으로 지은 빚을 갚아야 하지.
왕이 묻되 하니,
"어찌하여 경을 읽지 않으시오?"
-공이 없이 녹을 받으면 자나깨나 불안해서 그러겠지.
조사가 이르되 "빈도(貧道)는 숨을 들여쉴 때 음(陰 : 五陰) · 계(界 : 八界)에 머무르지 않고, 숨을 내쉴 때에도 뭇 인연에 빠지지 않습니다. 항상 이와 같은 경 백천만억 권을 읽습니다" 하였다.
-이제껏 독송하고 찬양한 것만으로도 무한히 수승한 인연입니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27조의 처음 이름은 영락동자(瓔珞童子)였다. 26조 불여밀다(不如蜜多)가 동인도의 견고왕(堅固王)과 함께 수레(輦)를 타고 가다가 동자에게 묻되 "지난 세상의 일을 기억하겠느냐?" 하니, 대답하되 "제가 기억하건대 지난 세상에 스님과 함께 산 적이 있는데 스님께서는 마하반야를 선양하시고 저는 매우 깊은 수다라(修多羅)의 법을 지녔었습니다. 이 때 서로 교대하면서 바른 법을 폈었기에 여기에서 스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였다. 조사가 왕에게 말하되 "이는 작은 성인이 아니라 대세지보살의 응신(應身)입니다" 하니, 왕이 수레에 오를 것을 명하여 궁전에 이르러 공양을 올렸다. 삭발하기에 이르러 조사께서는 반야의 수다라를 수지했던 사연에 의하여 반야다라라 이름지었다.
양나라에서는 달마를 관음이라 하고 인도에서는 조사를 대세지라 하는데 아미타불만이 아직도 하강하신 곳이 없구나!(양구했다가) 다시 이르노니 "풍간(豊干)의 말장난[饒舌]이라" 하노라.
나중에 황가(皇家)에서 모임을 여는 기회에 존자를 주빈으로 했는데 그 늙은 첨지[老漢]가 이상한 짓을 나투어 대중을 현혹시켰으니 그 당시에 혼을 내주어서 잔소리의 뿌리를 끊어 버렸어야 좋았을 것이어늘 "존자는 어찌하여 경을 읽지 않는가?" 하고 묻기에 이르니 과연 그냥 놓아보내지는 않았다 하노라.
그 늙은 첨지는 점잖은 체통이 없어서 호리병[葫蘆]과 표주박[馬杓]을 들고 춤을 한바탕 추는데 왕이 문득 절을 했지만 무슨 감각[痛痒]이 있었으리요? 만송은 이르노니 "국왕은 한 톨의 쌀을 탐내었고, 존자는 만 년의 양식을 잃었다" 하노라. 다만 무쇠로 된 척추로 하늘을 버틸 줄 만 알았고 골통이 땅에 처박힌 줄은 몰랐으니 만일 그들을 붙들어 일으키려면 오직 천동이라야 하리라.
송고 |
구름물소[雲犀]가 달 구경을 하니 찬연히 광채를 머금었고
-가만히 실 한 올을 짰는데 문채는 이미 겉에 나타났네.
나무말[木馬]이 봄 구경을 하니 늠름해서 굴레를 씌울 수 없다.
-백화난만한 틈을 지나는데 한 잎사귀도 몸을 적시지 않는다.
눈썹 밑의 한 쌍의 눈이 싸늘하게 푸르른데
-일찍이 뱀이나 하루살이 떼를 따른 적이 없었거니…….
경을 본들 어찌 쇠가죽을 꿰뚫으랴?
-꿰뚫었다.
명백한 마음은 여러 겁[曠劫]을 뛰어났건만
-위음왕불 이전의 한 대 화살이라.
영웅의 힘은 겹겹의 적진을 깨뜨리도다.
-한 번 쏘아 두 겹의 관문을 지나도다.
묘하고 원만한 고동[樞口]이여, 신령스런 기계를 움직이나니
-언제 움직였나?
한산(寒山)이 오던 길을 잊어버리면
-잠시라도 머물지 않으면 마치 죽은 사람 같거나…….
습득(拾得)이 마중가서 손잡고 데려온다.
-응당 한 고향사람일 것이지.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처음의 두 구는 음(陰) · 계(界)에도 머무르지 않고 뭇 인연에도 따르지 않는다는 부분을 송한 것이니, 삼장교(소승)의 법수(法數)에서 5음 · 12처 · 18계를 삼과(科)라 부르는데 존자께서는 첫 자와 끝 자만을 들어서 중간을 섭(攝)한 것이다.
범어(梵語)의 안나반나(安那般那)는 번역하면 출입식(出入息 : 드나드는 호흡)인데 거기에는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셈[數 : 호흡을 셈], 둘째는 따름[隨 : 드나드는 호흡을 따름], 셋째는 그침[止 : 멈춤], 넷째는 관[觀 : 지혜를 관함], 다섯째는 되돌아옴[還 : 지혜를 관하는 주체를 다시 관함], 여섯째는 깨끗함[淨 : 청정해짐]이다. 자세한 것은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에 있으니 보지 못한 이는 꼭 보아야 한다.
위산(潙山)의 경책(警策)에 이르되 "교리에 일찍이 뜻을 둔 적이 없으니 현현한 도를 깨칠 길이 없도다" 하였고, 「보장론(寶藏論)」에 이르되 "애석하도다. 값진 보배가 음(陰)과 입(入)의 구덩이에 숨었으니 언제나 신령스런 광채가 홀로 빛나서 근(根)과 진(塵)을 멀리 벗어나게 되리요?" 하였다.
천동의 송에 "구름물소가 달 구경을 하니 찬연히 광채를 머금었다"한 것은 옛사람의 시인 "물소가 달구경을 하노라니 뿔에서 문채가 나도다[犀因玩月紋生角]" 한 것에서 유래했는데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깝게도 글재주 있는 이의 정사(情思)에 의해 꿰어맞추어졌도다. "나무말이 봄 구경을 하니 늠름해서 굴레를 씌울 수 없구나!" 한 것은 "숨을 내쉴 때 뭇 인연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송한 것이니 이른바 진정코 착한 행은 자취가 없다는 격이라 하리라.
"눈썹 밑의 한 쌍의 눈이 싸늘하게 푸르른데" 한 것은 낙포(洛浦)가 이르되 "자기(自己)만을 밝히고 법안(法眼)을 밝히지 못하면 이 사람은 한쪽 눈만을 갖추었다 할 것이니, 만일 두 눈이 다 밝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음 · 계에 머무르지 말고 뭇 인연에 걸리지도 않고서 그림자 없는 숲 속에 일월을 높이 달고 싹트지 않는 나뭇가지에서 가만히 계절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된다" 한 것에서 나왔다.
"경을 본들 어찌 쇠가죽을 꿰뚫으랴?" 한 것은 장경(長慶)이 이르되 "눈에 무슨 허물이 있으리요?" 하였고, 「능엄경(楞嚴經)」에는 이르되 "너 이제 자세히 관찰하라. 이 모임의 성스러운 무리들이 모두가 눈으로 두루 살피나니 그 눈은 두루 보되 다만 거울 속과 같아서 별다른 분별이 없느니라" 하였는데 여기서 흔히 잘못 지나쳐버린다. 약산(藥山)이 이르되 "그 쇠가죽도 꿰뚫어 통과해야 한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도리어 금강 같은 눈을 갖추고 명백한 마음으로 무량겁을 초월하라" 하노라.
삼조가 이르되 "증애(憎愛) 하지만 않으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리니 한 생각이 만 년에 이르도록 받아지녀 다함이 없게 하라" 하였고, 녹문(鹿門)이 이르되 "온 땅덩이가 학인의 한권 경전이요 온 천지가 학인의 한쪽 눈이라. 이러한 눈으로 이러한 경을 읽어 천만억 겁에 잠시도 끊임이 없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경 읽기도 쉽지 않구나!" 하노라.
"영웅의 힘은 겹겹의 적진을 깨뜨린다" 한 것은, 후한(後漢)의 왕망(王莽)이 그의 동생 왕심(王尋)과 왕읍(王邑)을 곤양(昆陽)으로 보내 광무제(光武帝)를 수십 겹이나 에워싸자 광무제는 병졸이 약해서 왕심과 왕읍에게 항복코자 했으나 들어주지 않으므로 제장(諸將)들을 독려하여 나가 싸우게 하니 왕심과 왕읍이 크게 패했다는 고사에서 연유한다.
존자는 문과 무를 겸전하여 들면 재상이요, 나면 장수이니 음 · 계와 뭇 인연 등이 어찌 겹겹의 에워쌈이 아니겠는가?
"묘하고 원만한 고동이 신령스런 기계를 움직인다" 한 것은 「이아(爾雅)」에 이르되 "추(樞)는 문지도리[椳]라" 하였고, 곽박주(郭璞注)에 이르되 "사립문의 지도리니,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지도리 속에는 좀이 슬지 않는다" 하였으니 매끄러움을 말한 것이다. 존자는 튕기기 전에 먼저 떠나고 건드리기 전에 스스로 구르는 예지로써 이쪽과 저쪽에 가(可)도 불가(不可)도 없거늘 천동이 모래를 헤쳐 금을 고르는 솜씨와 푼(分)과 양(兩)을 나누는 재치로 가려내 마친[花判了] 것이다.
마지막의 두 구는 다시 남는 재주가 있어 이르기를 "한산이 오던 길을 잊어버리면, 습득이 마중가서 손 잡고 데려온다" 하였으니 이는 나라님의 독경 잔치에 바다같이 모인 대중이 문을 두드리고 창호지를 더듬는데 존자가 노파심으로 슬쩍 발을 걷어올려 둥우리[乳燕]로 돌아가게 해주고, 창호지에 구멍을 내어 어리석은 파리고 하여금 나가게 해준 것을 송한 것으로 한산의 시를 인용하니 대쪽 맞듯 하였다.
한산의 시에 이르기를 "몸 편히 쉴 곳을 찾는다면 / 한산이 오래 보존할 만하다 / 건들바람이 그윽한 솔가지에 불 때 / 가까이서 들으면 소리가 더욱 좋다 / 그 밑에 늙수그레한 사람 있어서 / 중얼중얼[嘮嘮] 황로(黃老)를 읽는구나 / 10년 동안을 돌아가지 않으니 / 올 때의 길을 잃어버렸다" 하였다.
여구윤(閭丘胤)이 나중에 찾아왔다가 습득을 이끌고는 솔문[松門]을 나간 뒤 다시는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였고, 어떤 책에는 "나불나불[喃喃] 황로를 읽는다" 했는데 이는 어리석어서 돌아올 길을 잃은 미혹한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송한 것이다.
나중에 당(唐)의 장종황제(莊宗皇帝)가 화엄사의 휴정(休靜)선사를 궁내의 재(齋)에 청했는데 여러 대덕들은 모두가 경을 읽었으나 선사의 일행만은 잠자코 있었다. 황제가 묻되 "어찌하여 경을 보지 않으시오" 하니, 유정이 대답하되 "나라가 태평하니 천자의 영이 전해지지 않고 시국이 조용하니 태평가를 부르지 않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다시 묻되 "대사 한 사람만 경을 보지 않는 것은 가하거니와 권속들은 어째서 보지 않는가?" 하니, 휴정이 대답하되 "사자의 굴에는 딴 짐승이 없고 코끼리 다니는 곳엔 여우의 발자취가 없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다시 묻되 "다른 대덕대사들은 어째서 모두 경을 보시는가?" 하니, 휴정선사가 대답하되 "수모(水母 : 해파리)는 원래 눈이 없어서 먹이를 얻기 위해서는 고래에 붙어야 합니다" 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였다.
하물며 조사인 존자는 오랜 겁 동안 대세지라 불렸고, 심히 깊은 수다라를 독송한 까닭에 스승에게 반야다라라는 이름까지 받았건만 원래부터의 습기(習氣)도 제하지 못하여 화엄선사에게 져서 그가 도리어 납승의 체통[巴鼻]을 갖게 하였으니 만송은 이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노라. 일러보라. 무엇 때문에 웃었을까? 운거산의 나한(羅漢)이 옷깃을 헤치는 곳이요, 공현(鞏縣)의 찻병[茶甁]이 주둥이를 맞는 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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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깃을 헤침은 시원스레 이야기한다는 뜻이요, 공현의 찻병은 주둥이가 두 개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맞닿는다 함은 역시 말이 많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