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4칙 세존이 땅을 가리키심[世尊指地]

쪽빛마루 2016. 3. 21. 05:52

제4칙

세존이 땅을 가리키심[世尊指地]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티끌 하나를 들자마자 온 땅덩이를 완전히 거두고, 필마(疋馬)와 단창(單槍)으로 국토를 넓힌다면 간 곳마다에서 주인노릇을 할 것이요, 만나는 반연마다에서 종지를 밝힐 수 있으리니 그게 누구던가?

 

본칙

 드노라.

 세존께서 대중과 더불어 길을 가시다가

 -남의 발꿈치를 따라다녔겠지.

 

 손으로 땅을 가리키시면서 이르시되 "여기에다 절[梵刹]을 세우라" 하시니,

 -태세신(太歲神)의 정수리에 동토(動土)를 하면 안 될텐데…….

 

 제석(帝釋)이 한 줄기 풀을 들어 땅에 꽂으면서 이르되 "절을 다 지었습니다" 하매,

 -집 짓는 일이 쉽지 않은데…….

 

 세존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상과 벌이 분명하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세존께서 (전생에) 머리칼을 풀어 진 땅을 덮으시고, 영등부처님께 꽃을 바치시니, 연등부처님께서 그가 머리칼을 폈던 자리를 가리키시면서 이르시되 "이 자리에 절을 지으면 좋겠다" 하셨다. 그때 현수(賢首) 장자가 팻말[標]을 그 자리에 꽂고 이르되 "절을 다 세웠습니다" 하니, 하늘 무리들이 꽃을 뿌리면서 찬탄하되 "서자(庶子)가 제법 지혜롭구나!" 하였는데 천동이 든 이 화두와 대동소이하다.

 만송은 이르노니 세존의 조업(祖業)은 대를 이으면서 등을 밝혔으니 현수장자가  뒤를 이어 전해받았고, 이제 다시 천동에게 전해주었으니 천동은 반드시 그 부합되는 문건[文契]을 내놓아야 한다.

 

송고

 백 가지 풀 위의 끝없는 봄이여

 -협산(夾山)이 아직도 있거니…….

 

 손 닿는 대로 집어드니 친숙하게 수용해지도다.

 -거친 밭에 들어서선 잡초를 가리지 않는다.

 

 열여섯 자 황금 몸, 공덕의 무더기여,

 -안녕하십니까.

 

 스스럼없이 손을 끌고 홍진(紅塵)으로 들어간다.

 -빈 터를 만나면 광대놀이를 한다.

 

 티끌 세계에서 능히 주인노릇을 하니

 -하루아침에 권력을 손에 넣었군!

 

 변방[化外]에서도 스스로 와서 복종한다.

 -법령이 시행되는 줄 눈치챘군!

 

 닿는 곳마다 생활이 분에 따라 족하니

 -남에게 얻는 것은 아니었지!

 

재간이 남만 못함을 서운해하지 않는다.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으렷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은 먼저 네 구로써 공안(公案)을 송해 마치고, 그 뒤에 개요를 서술하여 교화하는 풍토를 찬양하였다. 조주(趙州)는 한 줄기의 풀을 들어 장육금신(丈六金身)의 작용을 삼았는데 세존은 바람결에 따르듯 지적해냈고, 제석은 손 닿는 대로 집어올렸는데 천동은 사람과 경계를 엇바꾸면서 송했으니, 옛 성인뿐 아니라 그대도 지금 티끌 세계에서 주인노릇을 할 수 있다면 역시 변방에서도 와서 복종할 것이다.

 일러보라. 멋진 유부마(劉駙馬)가 이 보은원(報恩院)을 세운 것이 제석이 풀을 꽂은 것과 같은가, 다른가? (불자를 세우고) 천 년의 절[常住] 하루아침 중(僧)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