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7칙 약산이 법좌에 오름[藥山陞座]

쪽빛마루 2016. 3. 26. 05:29

제7칙

약산이 법좌에 오름[藥山陞座]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눈 · 귀 · 코 · 혀는 제각기 한 가지씩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눈썹이 그 위에 있고, 사(士) · 농(農) · 공(工) · 상(商)은 제각기 한 가지 업무에 종사하는데 무재주[拙者]는 항상 한가하다. 본분종사(本分宗師)는 어떻게 시설(施設)할까?

 

본칙

 드노라.

 약산(약山)이 오랫동안 법좌에 오르지 않으니

 -움직임이 고요함만 못하거니…….

 

 원주(院主)가 사뢰되 "대중들이 오래전부터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사오니,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대중들에게 법을 설해 주소서" 하니,

 -무거운 쪽으로 기울지 가벼운 쪽으로 기울지 않느다.

 

 약산이 종을 치라고 하여 대중이 바야흐로 모이자

 -머리를 모으고 모습을 지으나 그 일은 여전히 아득하구나.

 

 약산이 법좌에 올라 잠시 양구했다가 이내 내려와서 방장으로 돌아갔다.

 -한바탕의 이야기거리가 되도다.

 

 원주가 뒤를 따라가면서 묻되 "화상께서는 조금 전에 대중에게 설법을 해 주시겠다 하셨는데 어찌하여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십니까?" 하니,

 -바다가 만족할 줄 안다면 모든 강은 거꾸로 흘러야 할 것이다.

 

 약산이 말하되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에는 논사(論師)가 있거니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기느냐?" 하였다.

 -아뿔사, 용두사미가 되었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주린 자가 먹기 쉽고 목마른 자가 마시기 쉽다. 그러므로 세 분[三家 : 解脫月, 大衆, 如來]이 다섯 가지로 청하매 보살이 법당에 올랐고, 반 게송에 온몸을 바치니 야차(夜叉)가 법좌에 오르는 등의 일이 그 어찌 법을 아껴서이겠는가?

 황룡 남(黃龍南) 선사가 이르되 "대체로 요즘 사람들은 법을 가벼이 여기는 자가 많다. 마치 농부가 가끔가끔 논바닥을 말려서 곡식들이 시들게 한 뒤에 물을 대 주어야 바야흐로 좋은 열매를 맺듯해야 한다" 하였으니, 약산이 오랫동안 법좌에 오르지 않았다는 말은 옳지 못하다. 각범(覺範)이 이르되  "한 암자[菴]에서 벼락 같은 혀를 깊이 갈무리하노니 삼라만상이여, 제멋대로 제몫을 지껄이라" 하였고, 영가(永嘉)는 이르되 "잠잠함이 말함이며, 말함이 잠잠함이라, 크게 베푸는 문이 활짝 열려 옹색함이 없도다" 하였다.

 그렇거늘 원주는 매사에 어긋져서 사뢰되 "대중들이 오랫동안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으니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대중에게 법을 설해 주소서" 하였으나 인의(仁義)의 편에서나 주객[主賓]의 도리로 본다면 그 또한 분수 밖의 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나 약산이 종을 치게 할 때, 다만 우레같이 불호령 내리는 것만을 보았으니 대중이 바야흐로 다 모인 뒤인들 어찌 별들[星斗]의 문채가 현란함을 알기나 했겠는가?

 약산이 법좌에 올라 잠시 양구했다가 내려와서 방장으로 돌아갔다 하니, 한바탕의 신통이 예사롭지 않거늘 원주가 뒤를 따라가면서 묻되 "화상께서는 조금 전에 대중에게 설법을 해 주시겠다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이에 대해 취암 지(翠岩芝)가 이르되 "약산이 법좌에서 내려오자 원주가 당초부터 내중에게 설법치 않은 것을 수상히 여긴 것은 가위 상대방의 삼군(三軍)의 위세를 잘못 봤다 하노라"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그 장수가 용맹치 못하기 때문이라" 하노라.

 약산이 이르되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으니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기리요?" 한 것에 대하여 낭야 각(瑯琊覺)이 이르되 "약산이 법좌에서 내려온 것에 대하여 의심한 것까지는 무방하나 원주가 구슬림[拶著]에 이르러서 한쪽 눈을 잃어버렸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다시 완전케 회복하는 자가 능히 몇이나 되던가? 그러면서도 두 눈알을 바꿀 줄 모르도다" 하노라.

 설두(雪竇)가 이르되 "아깝다! 약산이 평지에서 낙성을 당했는데 온 누리 사람들이 몽땅 붙들어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되 "화상(和尙 : 설두)께서도 한 팔을 내밀어 도우셔야지요" 하노라.

 무여(無餘)가 송하되 "장실(丈室)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한 판 졌는데 / 초연히 장실로 돌아갈 때는 도리어 당당해졌도다 / 경사와 논사에 번갈아 고했으나 / 한 건의 죄목이기에 분명 스스로 진술하도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조사(曹司 : 명부관원)는 감정(勘定)에 능숙하나 공안(公案 : 사건 법안)의 해석이 원만치 못하다" 하노니, 그 해석을 천동에게 맡기자! 그는 어떻게 판단하였을꼬?

 

송고

 어리석은 아가는 지제전(止啼錢)*을 마음에 새기고

 -무엇에 쓰려노…….

 

 좋은 준마[良駟]는 채찍 그림자에 바람을 쫓는다.

 -차고 일어서자마자 달린다.

 

 구름 걷힌 넓은 하늘 달빛에 둥지 튼 학이여!

 -나무 밑에서 보면 허탕들인 것을.

 

 싸늘한 공기가 뼈에 스며 잠을 이루지 못하네.

 -눈 뜨고 잠꼬대를 하는구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열반경(涅槃經)」에 말씀하시되 "어린아기가 울 때에 어머니가 단풍잎을 들고 이르기를 '네게 이 황금을 주노라' 하면 아기는 즉시 울음을 그친다" 하였는데, 이는 '오랫동안 가르침을 기다렸다'는 것과 '어찌하여 한 말씀도 내리시지 않으십니까?' 한 원주의 말을 송한 것이다.

 어떤 외도가 부처님께 와서 묻되 "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는다" 하니, 세존께서 양구하셨다. 이때 외도가 얼른 절을 하고서 여쭙되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셔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제거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도에 들게 하셨습니다" 하였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묻되 "외도가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도에 들어갔다 하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대답하시되 "마치 세상의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하셨다.

 그렇다면 약산과 세존이 동일하게 채찍을 들었으니 원주와 대중은 의당 찬탄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어늘 도리어 한 말씀도 하시지 않음을 괴이히 여겼으니 가히 동토(東土)의 납자가 서천(西天)의 외도만도 못하다 할 것이다.

 천동이 이렇게 송하고 만송이 이렇게 설명한 것은 모두가 울음을 달래기 위한 단풍잎[止啼葉]과 같거늘 다만 여러 사람들이 짙은 꿈을 깨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잠이 얕은 이는 한 번 부르면 얼른 깨고 잠이 깊은 이는 흔들어야 비로소 깨어나거니와 또 한 무리는 흔들어 일으켜놓아도 여전히 잠꼬대를 하는데, 개인 밤 달빛에 둥지를 튼 학이 싸늘하고 맑은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풍모와 견준다면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리라.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역시 잠꼬대가 적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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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음을 달래기 위한 가짜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