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8칙 백장의 여우[百丈野狐]

쪽빛마루 2016. 3. 28. 05:55

제8칙

백장의 여우[百丈野狐]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일점일획[箇元字脚]만이라도 마음에 기억해두면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갈 것이요, 여우의 침 한 방울만이라도 목구멍에 넘기면 30년을 토해도 나오지 않나니, 서천의 영[西天令]이 엄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리석은 사나이의 업이 무겁기 때문이다. 일찍이 속이고 범했던 적이 있는 자는 없느냐?

 

본칙

 

 백장(百丈)이 상당(上堂)하면 언제나 한 노인이 법문을 듣다가 대중이 흩어지면 그도 따라 사라지곤 했었다.

 -시끄러운 가운데서 조용함을 구하려는가?

 

 어느날은 떠나지 않고 있으니

 -원래부터 그 노장을 수상히 여겼기 때문이겠지.

 

 백장이 묻되 "서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니,

 -교제하는 법을 모르거든 사람이 오면 모름지기 대접할 일이지.

 

 노인이 대답하되 "나는 과거 가섭부처님 때에 일찍이 이 산에 살았었는데

 -원래 같은 집 식구었구먼!

 

 어떤 학인이 묻기를 "크게 수행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하거늘,

 -그저 좋은 일만 할지언정 앞길을 묻지는 말 것인데.

 

 그에게 대답하기를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 구절의 합당한 말씀은 만겁에 나귀를 매는 말뚝이거니

 

 한 과보로 여우 몸을 받아 5백생에 이르렀습니다.

 -그대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려는가.

 

 이제 화상께 청하오니 한 말씀[一轉語] 대신 내려주소서" 하니,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백장이 말하되 "인과를 매(昧) 하지 않는다" 하니,

 -한 구덩이에 함께 묻어야 하겠군.

 

 노인의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여우의 침 기운이 아직도 남았는데.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 대지(大智) 선사가 매양 법좌에 오를 적마다 항상 어떤 노인 하나가 법문을 들었는데, 그는 가섭불(迦葉佛) 때 일찍이 이 산에 살면서 학인에게 한 말씀을 잘못 대답한 과보로 지금까지 여우 몸을 면치 못하고 있는 터였으니, 이는 자기 자신도 담에 부딪치고 벽에 막히는 주제에 남을 구덩이에 빠지게 한 탓이다.

 그는 대지에게 뒤통수에 박힌 못을 뽑고 가슴에 박힌 말뚝을 뽑아내는 수단이 있음을 보았는지 문득 자신을 버리고 남에게 굽히는 자세로 한 말씀 대신 내려주기를 청하였다. 대지는 무외변(無畏辯)을 베풀어 살짝살짝 건드리면서 이르되 "인과를 매하지 않는다" 하매 노인이 즉석에서 깨달았다.

 사실에 의거해서 논한다면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 것은 없음에 치우치는 단견[撥無斷見]이요 "인과를 매하지 말라" 한 것은 흐름을 따라 묘함을 얻은 것이니, 조그만치라도 교(敎)를 이해하는 이라면 얼른 알아볼 것이지만 그러나 역시 털가죽[毛衣 : 짐승]을 벗고 비늘조갑[鱗甲]을 입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지 못했는가. 도원(道圓)선사가 남(南)선사의 회중에 있을 때 두 승이 이 화두를 들어 이야기하매, 한 승은 말하기를 "설사 인과를 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우 몸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니, 또 한 승은 대꾸하되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들 어찌 여우가 꼭 되겠는가?" 하였다. 선사가 그들의 말을 송연(悚然)하고도 이상히 여기며 급히 황벽산 적취암(積翠庵)으로 올라가는데 개울을 건너다가 홀연히 크게 깨달았다. 남공(南公)을 보고 이 사실을 서술하는데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뺨을 뒤덮었다. 남공이 시자의 방으로 가서 푹 자게 하였는데 갑자기 일어나 게송을 읊되 "떨어지지 않고 매하지 않음이여! / 승도 속도 본래부터 꺼릴 것이 없도다 / 장부의 기개가 왕과 같으니 / 어찌 주머니 속에 감추거나 일산으로 가리울 수 있으랴! / 한 토막의 즐률장(櫛栗杖 : 밤나무 지팡이) 들고 마음대로 왕래하니 / 돌여우가 황금털 사자떼 속으로 뛰어들었네" 하니 남공이 활짝 웃었다.

 이렇게 볼 때 당초에 노인이 청하기를 "바라건대 화상께서 한 말씀 대신 내려주소서" 하였을 때 애초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만 말했더라면 초심자들로 하여금 알음알이의 구덩이에 빠지는 꼴을 면하게 하였을 것이다.

 어느날 밤 백장이 상당하여 앞의 인연을 들자, 황벽이 얼른 묻되 "옛사람은 한마디 대답을 잘못 내리고 5백생 동안 여우 몸을 받았으니 다음다음 잘못 대답치 않으려면 어찌하여야 합니까? 하니 백장이 이르되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일러주리라" 하였다. 황벽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백장에게 따귀를 한 대 갈기니 백장이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이르되 "여우의 수염이 붉다고 여겼더니 다시 수염 붉은 여우가 있도다" 하였는데, 앙산(仰山)이 이르되 "백장은 대기(大機 : 큰 바탕)를 얻었고 황벽은 대용(大用 : 큰 작용)을 얻었다고 하는데 과연 헛되이 얻어진 이름이 아니로다" 하였다.

 위산(潙山)이 이 화두를 들고는 앙산에게 묻되 "황벽은 항상 이런 대기를 활용했는데 이는 하늘에서 나면서 얻은 것인가? 사람에게서 얻은 것인가?" 하니, 앙산이 대답하되 "이는 스승에게 전해받은 것이기도 하고, 자기 성품에 갖추어진 종통(宗通)이기도 합니다" 하매, 위산이 말하되 "옳은 말이다. 그 백장의 부자(父子)를 보건대 가고옴에 두려움 없음이 마치 사자와 같거니, 어찌 여우의 굴 속에서 살아갈 계교를 하겠는가?" 하였다.

 만송은 이미 꼬리뼈[尾骨]를 몽땅 드러냈거니와 다시 천동이 손톱과 어금니 놀리는 솜씨를 내놓으리니 보라.

 

송고

 

 한 자[尺]의 물, 한 길[丈]의 파도여!

 -다행히 강은 맑고 바다는 평온하도다.

 

 5백생 전의 일은 어쩔 수가 없거니와

 -오늘의 일을 미리 알기는 했지만 애초부터 삼가지 못했음이 후회가 된다.

 

 떨어지지 않는다. 매하지 않는다를 따질 때엔

 -더러운 침방울이 끊이지 않는구나.

 

 전과 같이 갈등의 구덩이로 휩싸여 들어간다.

 -칡덩굴이 허리를 감고 다리까지 묶는구나!

 

 하하하!

 -웃음인가, 울음인가?

 

 알겠는가?

 -소를 당겨 풀을 뜯게 한다.

 

 그대 만일 쇄쇄낙락(灑灑落落)하다면

 -마치 벌레가 나뭇잎을 먹는데

 

 내가 치치화화(哆哆和和)해도 무방하리라.

 -우연히 글자가 되는 것 같다.

 

 신당(神堂)의 노래, 사당(社堂)의 춤이 제대로 곡조를 이루니

 -박자마다 바른 명령이라

 

 사이사이 손뼉을 치며 라라라(哩囉囉)를 부르리.

 -더 섬세하게 불러보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닦음과 증득함의 갈피를 세우고, 원인과 결과의 형태를 나눈 것이니 한 자의 물, 한 길의 파도는 5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다 한 것이다.

 적취암의 두 승이 비록 대중에서 뛰어나는 변재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점검해보건대 갈등(葛藤)의 구덩이로 빠져들기를 면하지 못했다. 천동의 이 구절에는 갈등(葛藤)이란 글자가 온당치 못하니 어째서 "전과 같이 여우의 구덩이로 휩싸여 들어감을 면하지 못하리" 하지 않았을까?

 "하하하"라 한 것은 백장의 깨달은 경지를 송해 밝힌 것이며, 자신의 흉금을 드러내는 뜻이요, "알겠는가?" 한 것은 단지 "이 천동을 알아보겠는가?" 한 뜻이다.

 "그대 만일 쇄쇄낙락하다면 내가 치치화화해도 무방하리라" 한 것은 다행히 한 조각 그늘진 땅이 있거늘 어찌 수고롭다 하여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리요? 함이니, 치치화화는 어린애가 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중얼거리는 소리이다. 또 「법화경석첨(法華經釋籤)」에 이르기를 "다다는 걸음마를 배우는 모습이요, 파화(嘙和)는 말을 배우는 소리라" 하였고, 「열반경(涅槃經)」에는 "병자의 걸음과 어린아기의 걸음[嬰兒行]"이란 것이 있는데 어떤 책에는 파파화화(婆婆和和)라고도 되어 있다.

 석실 선도(石室善道)선사가 이르되 "열반경 16행에서 어린아기의 행이 으뜸이 된다"고 하였는데 치치화화는 당시에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분별과 취사(取捨)의 마음을 여읜 것에 비유하였으니 다음의 "신당의 노래, 사당의 춤"이란 것과 모두 같은 뜻이다.

 일러보라. 이게 무슨 곡조인가? 만뢰(萬籟)는 마음이 있으면 들을 수 없고, 우뚝한 바위는 귀가 없으되 도리어 소리를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