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17칙 법안의 털끝[法眼毫釐]

쪽빛마루 2016. 4. 5. 05:15

제17칙

법안의 털끝[法眼毫釐]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한 쌍의 외로운 기러기가 슬픈 듯이 높이 날고, 한 쌍의 원앙새가 못가에 외로이 섰다. 화살대와 촉이 마주 물리는 일*[箭鋒相拄]은 그만두더라도 톱으로 저울추를 끊을 때는 어떨꼬?

 

본칙

 드노라.

 법안(法眼)이 수산주(脩山主)에게 묻되 "털끝만치 어긋나면 천지보다 아득히 멀어진다 하였는데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니,

 -누가 감히 움쭉이나 할까.

 

 수산주가 대답하되 "털끝만치 어긋나면 천지보다 아득히 멉니다" 하였다.

 -덩더쿵 춤[鬪百草]을 추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법안이 다시 이르되 "그렇게 한들 또 어찌 되겠는가?" 하니,

 -무쇠 산이 앞에 놓였구나!

 

 수산주가 이르되 "저는 이것뿐이거니와 화상께서는 또 어찌하시겠습니까?" 하였다.

 -코를 비틀어 주지!

 

 법안이 대답하되 "털끝만치 어긋나면 천지보다 멀리 어긋나느니라" 하매,

 -딴 것이 있으리라 여겼는데

 

 수산주가 문득 절을 하였다.

 -잘못을 잘못에 보태는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수산주는 법안과 함께 지장(地藏)에게 참문하고 아울러 곁으로도 참문하여 깎고 다듬는 힘을 깊이 얻었으니 이 공안은 현칙(玄則) 감원을 구박을 주어서 깨닫게 한 다음의 예와 같다.

 금릉(金陵) 보은사(報恩寺) 현칙(玄則) 선사에게 법안이 묻되 "그대는 일찍이 어떤 사람을 만나고 왔더냐?" 하니, 보은(현칙)이 대답하되 "청봉(靑峰) 화상을 뵈었습니다" 하였다. 법안이 다시 묻되 "어떤 말씀이 계셨더냐?" 하니, 보은이 대답하되 "제가 일찍이 '어떤 것이 학인(學人)의 자기(自己)입니까?' 하였더니, 청봉이 이르기를 '병정(丙丁)동자가 불을 구하러 왔구나!' 하셨습니다" 하였다.

 법안이 다시 묻되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하니, 보은이 대답하되 "병정은 불에 속하는 방위인데 거기서 불을 구하러 왔다니, 마치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구하는 꼴이란 뜻입니다" 하였다. 이에 법안이 이르되 "그렇게 알아서야 어찌 될 수 있겠느냐?" 하니, 보은이 다시 묻되 "저는 이것뿐이거니와 화상의 높으신 뜻은 어떠십니까?" 하였다. 법안이 이르되 "그대가 나에게 물으라.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하니, 보은이 묻되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이옵니까?" 하였다. 법안이 이르되 "병정동자가 불을 구하러 왔구나!" 하니 보은이 그 말씀에 활짝 깨달았다.

 법안은 갈고리와 송곳을 손에 들고서 '버리면 도장 문채가 머물고[去則印住], 놔두면 도장 문채가 깨진다[住則印破]'는 수단으로 현칙 감원의 망정의 관문을 쳐부수고, 수산주의 망식의 자물쇠를 활짝 열어주었다. 3조의 신심명(信心銘)에 이르되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오직 고르고 가리는 일만을 꺼릴 뿐이니, 미움과 사랑을 여의기만 하면 환하게 명백해지리라. 털끝만치의 천지보다 멀리 어긋난다" 하였는데 법안이 이 도리를 가지고 수산주에게 물을 때 문을 두드리는 기와쪽을 삼았던 것이다.

 요즘 이 도리를 천 명에게 물으면 천 명 모두가 한결같이 이치를 따져 알려고 하거나 아니면 한결같이 일없는 세계[無事界] 속으로 빠져드는데, 그는 분별에 떨어지지 않고 그저 이르기를 "털끝만치 어긋나면 천지보다 멀리 어긋난다" 하였으니 대단히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법안은 허락치 않고 이르기를 "그렇게 한들 또 어찌 되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이 법안 가풍의 근원이다. 만송은 여기에 이르러 항상 학인들에게 "두 토막으로 나누어보라" 하였노니 앞 토막에서는 수산주가 그렇게 말했을 때, 어째서 허락치 않다가 끝 토막에서는 법안이 무엇 때문에 또 그렇게 말했을까?

 그 중간에서 수산주가 이르되 "저는 이것뿐이거니와 화상께서는 또 어떠하십니까?" 하였으니 참신(斬新)한 세월을 희망하면서도 별다른 거취를 취한 격이다. 이때 그(법안)는 한 올만치도 어기지 않고 전과 같이, 그저 이르기를 "털끝만치 어긋나면 천지보다 멀리 어긋난다" 하였다. 동선 제(東禪齊)가 이르되 "수산주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엔 어째서 긍정치 않다가 다시 물음에 이르러서 법안도 역시 그렇게만 이르고 말았으니, 일러보라, 수수께끼가 어디에 있는고? 만일 꿰뚫어볼 줄 안다면 그 상좌(上座)는 근거[來由]가 있다고 이르노라"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그렇게 한들 또 어찌 되겠는가?" 하노라. 그러기에 이르되 "그저 전부터 다니던 길인데 만나는 사람마다 아리송한 말만 하더라" 하였다.

 마지막에 수산주가 문득 절을 했으니, 되기는 되었으나 무례함[情理]이야 용납키 어렵다. 오조 계(五祖戒)가 법안을 대신하여 이르되 "등줄기를 후려갈길 것이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과연(果然)이로구나!" 하노라.

 어떤 책에는 법안이 말하되 "수산주는 끝냈도다!" 하였다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소꿉장난을 하는 첨지들아! 둘 다 틀렸다" 하노라. 만송은 법안이 "그렇게 한들 어찌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보았을 때 곧 그에게 "화상에게는 그런 솜씨[機要]가 있으시다고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거나 아니면 손을 털고 얼른 떠나서 한꺼번에 시비를 멈추고 제자리를 잡도록 해주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법안)가 믿어주기 않는 것이 있다면 천동에게 물어보라 하노라.

 

송고

 저울대에 파리가 앉으면 곧 기우나니

 -별똥만치도 속이지 못한다.

 

 만세(萬世)의 저울은 불평(不平)을 비춘다.

 -말[斗 : 물건 싣는 바가지]이 차면 저울추가 멈춘다.

 

 근(斤) · 양(兩) · 치(錙) · 수(銖)로 분명함을 보나

 -잘못 알지 말라.

 

 마침내 나로 하여금 정반성(定盤星 : 저울의 기준 눈금)으로 돌아가게 하도다.

 -저울추[鉤頭]의 뜻을 알아차려야 한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은 첫 연의 한 구절에서 벌써 "털끝만치 나면 천지보다 아득히 멀어진다"는 뜻을 송했다.

 여산(廬山)의 원공(遠公)이 이르되 "근본 단서[本端 : 무명]가 끝내 어디로부터 왔는가? 있음과 없음의 살피에서 일어났다 멸했다 하도다. 하나의 미세함이 움직이는 경계에 젖어든 뒤로는 이를 형용하면 민둥산[穨山] 모양이로다" 하였거니와, 3조께서 꺼림 하신 것은 벌써 스스로가 미워하고 사랑한 뒤에 도리어 말씀하시기를 "다만 미워하거나 사랑하지만 않으면 환하게 밝아지리라" 하였으니, 여러분은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향해 자세히 점검해보라.

 범어에 삼마지(三摩地)는 등지(等持 : 균등하게 지님)이니, 혼침하지도 않고 들뜨지도 않아서 평등하게 지탱한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만 대의 저울대로 불평스러운 구석을 비추는 도구이다. 「상서(尙書)」의 치요도설(治要圖說)에는 "저울에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준(準)이란 것은 매다는 것이요, 저울대[衡]라는 것은 평평한 것이요, 저울질[權]이라는 것은 저울추[錘]라" 하였다. 「능엄경(楞嚴經)」에 이르시되 "스스로가 머무는 삼마지에는 견(見)과 견의 반연[見緣]과 그리고 생각하는 바의 모습이 허공의 꽃과 같아서 원래 있는 바가 없나니, 이 견과 견의 반연은 원래가 보리의 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본체이거늘 어찌 그 가운데에 견이라[是] 견이 아니라[非] 함이 있을 수 있으랴?" 하였으니, 바야흐로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굳이 가리는 일을 싫어하거나 미움과 사랑을 여의지 않더라도 털끝만한 차이도 애당초 없거늘 어찌 천지만치 먼 차이가 있겠는가?

 '근 · 양 · 치 · 수'라 함은 여덟 수가 한 치요, 세 치가 한 양이요, 열여섯 양이 한 근이니, 저울과 저울대를 손에 든 사람인지라 그대가 한 근을 가지고 와도 나는 단번에 옮겨서 평평하게 하고, 한 양을 가지고 와도 단번에 옮겨서 평평하게 하나니, 조금만치 한 치, 한 수만 늘거나 주는 듯하면 벌써 기울어진다. 제방에서 이르기를 "저울추의 뜻을 바로 알아서 정반성(定盤星)을 잘못 알지 말라" 하거니와 정반성에는 본래 근과 양이 없다. 이는 마치 북진(北辰)이 제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서 저울추를 더하거나 덜하는 것은 그때의 형편에 따를 뿐이다. 만송은 이르노니 "마음이 있어 평평하게 하는것은 마음없이 평평치 못한 것만 못하다" 하노라. 그러므로 눈금 없는 저울대 위에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사고 팔아야 하고, 골패상[雙陸盤] 위에서 골패쪽의 색깔에 따라 이익을 보아야 한다 하노라.

 알겠는가? 법안이 이르되 "수산주가 끝냈도다" 하였으니, 저울추를 움직여서 저울대 끝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밀어 떨어뜨려 곤두박질을 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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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창(紀昌)과 비위(飛衛)라는 두 궁사가 마주보고 활을 쏘았는데, 실력이 막상막하라 중간에서 활촉이 정통으로 부딪쳤다. 전하여 스승과 제자간에 기연이 맞음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