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上 제18칙 조주의 개[趙州狗子]
제18칙
조주의 개[趙州狗子]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물 위의 호로박[葫蘆]은 건드리면 문득 돌고, 햇빛 아래 보석돌은 정해진 빛깔이 없다. 없는 마음[無心]으로도 얻을 수 없고 있는 마음[有心]으로도 알 수 없거늘, 한량을 초월한 큰 사람[沒量大人]이 말씀 속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 다시 벗어날 자가 있을까?
본칙 |
드노라.
어떤 승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개[狗子]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거리가 그득하게 흙덩이를 쫓는다!
조주가 대답하되 "있다" 하였다.
-일찍이 보탠 적이 없다.
승이 다시 묻되 "이미 있다면 어찌하여 도리어 저러한 가죽 주머니에 들어가 있습니까?" 하니,
-한 장의 소환장으로 부르니, 스스로가 스스로의 허물을 인정하고 나왔군!
조주가 이르되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느니라" 하였다.
-아직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그대에게 한 말이 아니니라.
또 어떤 승이 묻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한 어미에서 난 자식이군.
조주가 이르되 "없느니라" 하였다.
-역시 다름이 없는 대답이군.
승이 다시 묻되 "일체 중생이 모두가 불성이 있는데 어찌하여 개에는 없습니까?" 하니,
-멍청한 개가 새매를 쫓는다.
조주가 이르되 "그가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니라" 하였다.
-위와 같이 죄상을 갖추었으니, 법조항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려주소서.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만일 개에게 분명히 불성이 있다고 할 양이면 나중에는 없다 하였고, 분명히 없다고 할 양이면 전에는 또 있다고 하였다. 만일 있다거나 없다거나 한 것이 일시적으로 근기에 응해서 마지못해 말해진 것이라 한다면 각각 도리가 있다. 그러기에 전하는 말에, 눈밝은 납자에게는 고정된 격식[窠臼]이 없다고 한다.
그 승이 물은 곳에서 견문(見聞)을 넓혀야 되리니, 본분(本分)에 구애되지 않는 조주가 있다고 말한 것은 독으로써 독을 제거하고 병으로써 병을 고치려는 것인데, 그 승이 또 이르되 "이미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그런 가죽 주머니에 들어갔습니까?" 하였으나 자기의 생명이 이미 개 뱃속에 들어가버린 줄을 알지 못했다.
조주가 이르되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기 때문이다" 하였으니, 한 몽둥이로 두 적을 감당한 격이다. 쾌속한 인편(人便)을 만나기 어렵거늘 그 승은 제법 원인에 의거하여 결과를 따지려 했지만 그렇게 이해해서야 좌주(座主 : 강사의 우두머리, 문자승)의 하인 노릇도 못할 것이다.
나중에 어떤 승이 다시 물었을 때 문득 "없다"고 하였는데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있다고 해도 몸을 솟을 길이 있고, 없다고 해도 몸을 솟을 길이 있다. 그러나 그 승은 문장에 의거하고 격식에 근거해서 이르되 '모든 중생은 모두가 불성이 있거늘 어찌하여 개에게는 없습니까?' 하였으니, 그러한 한 바탕의 도전에 관하여 감히 이르노니 하늘[天關]을 뒤엎는 솜씨인지라 그로 하여금 몸을 돌릴 길이 없게 되어 간곡하게 이르되 "고놈이 업식이 있기 때문이니라" 하게 되었다 할 수 있거니와, 그대들 다시 일러보라. 그 승의 피부 밑에도 피가 흐른다고 여기는가? 천동이 어쩔 수 없어, 시뻘겋게 성난 종기 위에다 다시 쑥뜸을 한 방 놓은 것이다.
송고 |
개에게 불성이 있다고도 하고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도 하니,
-두드리니 한 덩어리[團]요, 주무르면 한 뭉치[塊]로다.
곧은 낚시는 원래 죽으려는 고기만을 찾는가?
-그 승이 오늘은 꼭 죽게 되었군.
바람을 좇고, 향기를 찾는 운수(雲水)의 나그네여,
-콧구멍을 꿰었어도 모르는 축들이겠지.
와글와글 시끌시끌 해석[分疎]을 붙이도다.
-마른 뼈를 앞다퉈 핥고, 젖은 뼈의 냄새에 홀려 짖는다.
평지에다 활짝 펴놓았고
-속일 길이 없으니 따져 묻지 말 것이오.
크게 가게를 열었으니
-재질이 높으면 말투가 당당하다.
촌로가 처음을 삼가지 못했다고 탓하지 말라.
-한마디가 입에거 나오면 날랜 말로도 뒤쫓지 못한다.
옥에 티 있다고 속여서 도로 빼앗아가니
-백주에 날강도.
진왕(秦王)이 인상여(藺相如)를 알지 못했다.
-마주 보면서 지나쳐버렸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 개에게 불성이 없는가? 두 토막은 같지 않거늘 한꺼번에 드러내 보였으니, 마치 설두(雪竇)가 이르되 "하나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둘에는 두 가닥이 없다" 한 것과 꼭 같은데 천동이 조주와 만나려고 이렇게 송한 것이다.
응천 진(應天眞)이 이르되 "곧은 낚시는 사나운 용[獰龍]을 낚고 굽은 낚시는 청개구리[蝦䗫]를 낚는다" 하였는데 나중에 바람을 쫓고 향기를 따르는 무리가 마치 사냥개같이 와글와글 설명을 붙이니, 마른 뼈다귀에서 무슨 국물[汁]이 나겠는가?
조주가 비록 크게 가게를 펼쳤으나 겨우 평지에 펴놓고 따지자는 것뿐이었기에 천동이 조주를 좀 거들어 주려는 뜻에서 "촌로[儂家]가 첫마디를 살피지 못했다고 탓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귀종(歸宗)이 어떤 수재(秀才 : 선비)에게 묻되 "어떤 경사(經史)를 전공하였는가?" 하니, 수재가 대답하되 "24가(家)의 서체(書體 : 필법)를 이해합니다" 하였다. 이때, 귀종이 허공에다 한 점을 찍고서 묻되 "알겠는가?" 하니, 수재가 대답하되 "모르겠습니다" 하매, 귀종이 말하되 "24가의 서체를 안다면서 영(永)자 8법의 첫 점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자사(刺史) 이발(李渤)이 묻되 "3승(乘) 12분교는 묻지 않겠습니다마는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귀종이 주먹을 세워 보이면서 이르되 "알겠는가?" 하매, 자사가 이르되 "모르겠습니다" 하니, 귀종이 이르되 "이 멍텅구리 선비가 주먹도 모르는구나!" 한 것과 같다.
만송은 이르노니 "곤두박질하는 사자를 여러분은 보았을 것이나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했을 뿐 아니라 그저 알면서도 짐짓 범했다 하고, 또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몹시도 앞과 뒤를 두리번거렸고 처음과 나중을 철저히 지켰다" 하노라.
「사기(史記)」에 의하면 조혜왕(趙惠王)이 초(楚)의 변화(卞和)에게서 구슬[璧]을 얻었는데 진소왕(秦昭王)이 15성(城)과 바꾸자고 하였다. 이때, 조의 재상 인상여(藺相如)가 구슬을 받들고 들어가니 진왕이 기뻐하면서 미인들과 좌우에게 보여주니 좌우가 보고 모두 만세(萬歲)를 불렀다. 인상여가 이 광경을 보자 진왕이 성을 떼어줄 의향이 없음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 사뢰되 "구슬에 티가 있으니, 보여주소서" 하니, 진왕은 상여에게 구슬을 건네주었다.
상여는 구슬을 받자 기둥에 기대서서 머리칼이 솟아 관을 치솟듯 분한 모습으로 말하되 "신의 제왕께서 닷새를 재계하시고 신으로 하여금 구슬을 받들고 칙서를 뜰 아래 바치게 한 것은 큰 나라의 위엄을 장엄해서 공경을 닦기 위한 것이옵니다. 그런데 지금 왕의 예절을 보건대 심히 거만하시니, 구슬을 받으시고는 미인들에게 전해 보이심으로써 신을 희롱하셨고, 성을 떼어줄 성의마저 없으시므로 신은 다시 구슬을 가졌습니다. 만일 신을 다그치시려 한다면 신은 머리와 구슬은 모두 기둥에 부딪쳐 부서뜨리겠습니다" 하니, 왕이 사과하고 또 도면으로 성을 나누어놓고 또 닷새 동안의 재계를 시작했다.
이때 상여는 종자(從者)로 하여금 옷자락 속에다 구슬을 숨겨가지고 지름길로 빠져나가 조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고 하는데, 조주가 먼저는 풀어주고 나중엔 빼앗는 것이 마치 인상여의 수단과 같다는 것이다.
천동이 일찍이 다르게 송하되 "조주는 있다고도 말하고 없다고도 말하니 / 개의 불성에 대하여 천하 사람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 얼굴 붉은 것이 말씀 곧은 것만 같지 못하니 / 마음이 참되면 반드시 말이 거칠다 / 7백 갑자를 산 늙은 선백(禪伯)이 / 나귀 똥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대로 눈알과 바꾸도다" 하였는데, 이것은 조주의 마음이 참되고 말이 곧다는 뜻으로, "곧은 낚시는 원래 죽으려는 고기[負命魚]만을 찾는다"는 것을 송한 것이다.
주문왕(周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강자아(姜子牙)를 반계(磻溪)의 골짜기에서 만났는데 그는 물에서 석 자[三尺] 떨어진 허공에다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묻되 "곧은 낚시로 어떻게 고기를 얻으리요?" 하니, 자아가 대답하되 "다만 죽으려는 고기만을 찾다가 나귀 똥으로 사람을 만나면 눈알과 바꿉니다" 하였으니, 이는 인상여가 구슬을 되돌려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불감(佛鑑)이 목환자(木槵子)로 된 염주를 들과 이르되 "여러분! 보았는가?" 하고는 양구했다가 이르되 "이는 노승이 서울[京師]에 와서 바꿔얻은 것이니, 여러분은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서 만져보라" 하였으니, 불감은 목환자를 썼고, 조주는 나귀 똥을 썼으나 만송은 쓴 것도 없고 아무것도 바꿔준 것도 없다.
여러분이 만일 이 말이 믿어진다면 여전히 두 눈은 눈썹 밑에 있음을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