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上 제21칙 운암이 마당을 쓸다[雲巖掃地]
제21칙
운암이 마당을 쓸다[雲巖掃地]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미혹과 깨달음을 벗어나고 범부와 성현을 초월함이 별것은 아니지만 손과 주인을 나누고 귀와 천을 가르니, 또 하나의 가풍이로다. 능력에 따라 직위를 주는 일은 없지 않으나 탯줄을 같이한 동기간이야 어떻게 이해할꼬?
본칙 |
드로라.
운암(雲巖)이 마당을 쓰는데
-사미들이 힘을 쓰지 못했던가?
도오(道吾)가 이르되 "매우 부지런하군!" 하니,
-병사를 매복시켜놓고 싸움을 거는구나!
운암이 대꾸하되 "부지런하지 않은 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였다.
-아뿔싸! 두 토막을 만들었구나.
도오가 이르되 "그러면 둘째의 달[第二月]이 있군" 하니,
-어찌 둘째에만 그치랴? 백 · 천 · 만 번째로다.
운암이 비를 들어 세우면서 이르되 "이건 몇째 달이 되는가요?" 하매,
-수정궁(水晶宮)에서 나온 것이지.
도오가 그만두었다.
-모든 것이 말하지 않은 가운데 있다.
현사(玄沙)가 이르되 "바로 그것이 둘째의 달이다" 하였고,
-한 사람이 거짓을 전하매 천 사람이 진실이라 전한다.
운문(雲門)이 이르되 "남종[奴]이 여종[婢]을 보면 정성스러워진다[殷勤]" 하였다.
-사귀[邪]를 따라서 키[簸箕]를 흔드는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도오가 운암을 꺾은 것은 마치 불과(佛果)가 불감(佛鑑)을 격려한 것과 같으니, 이른바 몰라서 답답해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말이 잘 안 나와서 답답해하지 않으면 틔워주지 않는 것이다.
운암이 마당을 쓰는데 도오가 넌지시 점검하려 했으나 운암이 이르되 "부지런하지 않은 이가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였으니, 현명한 여러분이여, 밥 먹고 차 달이고, 바느질하고 마당 쓸 때에 그 부지런하지 않은 자를 알아내면 세상법과 불법을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동상(洞上)화상이 이르되 "겸해서 갈무리해 가노라면 12시 가운데 자연히 허송세월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는데, 도오가 문득 낭패를 당하여 이르되 "그러면 두번째의 달이 있는 것이요" 하니, 설두(雪竇)가 다르게 이르되 "하마터면 두 노인을 놓칠 뻔하였다. 사람들이 색신(色身)을 떠나서 따로이 법신(法身)을 세울까 걱정이다" 하였다.
충국사(忠國師)가 남방에서 온 선객에게 묻되 "나는 여기서 불성은 전혀 생멸치 않는다 하는데 그대들의 남방에서는 불성이 반은 생멸하고 반은 불생멸한다고 한다지?" 하니, 객이 되묻되 "어떻게 구별하십니까?" 하였다. 국사께서 이르되 "여기서는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서 마음 밖에는 다른 것이 없다 하니, 그러기에 전혀 생멸치 않는다 하고, 그대들 남방에서는 몸은 무상하고 성품은 항상하다 하니, 그러기에 반은 생멸하고 반은 불생멸한다 한다" 하였으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아버지께로 몸을 돌리는 시절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운암이 마침내 비를 들어서 세우고 이르되 "이것은 몇째의 달인가?" 하였으니, 이 말씀은 본래 「능엄경(楞嚴經)」에서 나왔다. 경에 말씀하시되 "마치 둘째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본래의 달이며, 어느 것이 둘째의 달인가? 문수야, 오직 하나의 달만이 진실하고, 중간에 으레 옳은 달도 그른 달도 없느니라" 하셨다.
'도오가 그만두었다' 하였는데 어떤 책에는 '도오가 소매를 떨치고 떠나버렸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만송은 이르노니 "감정[勘破]을 마쳤다" 하노니, 일러보라. 운암이 도오를 감정했는가, 도오가 운암을 감정했는가? 눈 밝은 자가 있거든 점검해보라.
현사가 이르되 "바로 그것이 둘째의 달이라" 하였으니, 이 노장은 입 안에 자황(雌黃)이 있고 혀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있기 때문이거니와, 장경(長慶)이 이르되 "빗자루를 거꾸로 들어 얼굴에다 바짝 대고 쓰는 시늉을 하는 꼴을 당한 것이야 어쩌랴?" 하였다.
현사가 그만둔 일에 대하여 나산(羅山)이 이르되 "딱하구나! 두 노장이 좋고 나쁨도 가릴 줄 모르는구나! 운암 노장은 손발을 묶인 채 죽어지낸 것이 얼마나 되던고?"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덕산(德山)의 문하에서는 얻은 바가 없다고 할 수 없겠으나 동산(洞山)의 문하에서는 아직 멀었다" 하노라.
설봉이 행각할 때에 투자(投子)에게 세 번 갔고, 동산에는 아홉 번 올라갔다. 어느날 쌀을 일고 있으니, 동산이 묻되 "모래를 일고 쌀을 버리는가, 쌀을 일고 모래를 버리는가?" 하니, 설봉이 대답하되 "쌀과 모래를 동시에 버립니다" 하였다. 동산이 다시 묻되 "대중은 무엇을 먹느냐?" 하니, 설봉이 동이를 엎어버리매, 동산이 이르되 "되기는 되었으나 다른 사람을 만나야 되겠다" 하였는데 나중에 과연 덕산의 법을 이었다.
현사와 장경은 모두 설봉의 법을 이었고, 나산은 암두의 법을 이었으니, 모두가 덕산의 문하에서 나온 셈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은 억누르고, 한 사람은 추켜세우니, 말로는 거역하되 뜻으로는 순응한 것이다.
지금 운문과 동산의 두 파가 나란히 퍼지고 있으니, 어찌 우열이 있으리요마는 운문이 이르되 "남종이 여종을 보면 정성스러워진다" 한 일에 대하여, 보복(保福)이 이르되 "운암은 마치 진흙 구덩이에 수레를 미는 것 같아서 걸음마다 바쁘다" 하였다. 두 노숙(老宿)은 다 같이 설봉의 법을 이은지라 자연히 말과 의기가 서로 통해서 생각하기를 "운암은 빗자루로 쓸어버리듯 시비를 끊어버리지 못할 것이라" 여겼으니 묽은 진흙탕 속에 가시가 들었을 줄이야 전혀 모른 것이다ㅑ.
만송은 그들의 주장[拈提]을 훑어보다가 채 끝나기도 전에 모르는 결에 코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르기를 "운암과 도오가 동산의 기연(機緣)을 밝혀냈고 저 한 떨거지의 노장들이 여러 입으로 무쇠를 녹여댔건만 아무도 그들을 위해 설욕해주는 이가 없구나!" 하는데 다행히 천동이 있어 칼을 뽑아 그를 도와주는구나!
송고 |
쓰레질을 통해서 겨우 대화의 문턱을 알았지만
-제자리에서 생긴 일.
작용하기를 적당히 하고는 문득 쉬었네.
-제자리에서 멸해 다한다.
상골산(象骨山) 앞에서 뱀을 놀리던 솜씨여,
-남에게 곧은 말을 하려면
어릴 때 하던 짓이 늙어서는 쑥스럽다.
-먼저 자기를 다듬으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이 일을 이야기한다면 마치 돌불[石火] · 번갯빛 같다. 운암은 비를 들어 사람에게 보였고, 장경은 얼굴에다 바짝 대고 쓰는 시늉을 하였으니 동작은 비록 다르나 다 같이 변해 사라지는 것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조동종[洞上]에서는 기틀을 돌리고 지위를 바꾸는 법을 귀히 여긴다.
설봉산에 상골암(象骨岩)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설봉이 어느날 대중에게 보이되 "남산에 한 마리의 자라코뱀[鼈鼻蛇]이 있으니, 여러분은 모름지기 잘 살펴야 한다" 하니, 운문이 주장자를 설봉의 얼굴 앞에다 던지면서 무서워하는 시늉을 하였다. 이 어찌 남종이 여종을 보고 고분고분해지는 꼴이 아니겠는가?
운암이 마당을 쓸다가 비를 들어올리고 이르되 "이것은 몇째의 달인가?" 하여 모두를 속량(贖良) 시켜 힘이 있는 자손이 되게 하여주었는데 운문은 아직껏 울타리 밑의 하인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기에 천동이 그를 놓치지 않고 이르되 "상골산 바위 앞에서 뱀을 놀리던 솜씨여! 어릴 때 하던 짓이 늙어서는 쑥스럽다" 하였다.
승묵(勝默)화상이 이르되 "이 송은 사람의 단점을 캐내기도 하고, 사람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였으니, 이는 천동과 승묵이 운문에게 벌점을 내린 것이지만 만송은 오늘 그 판정을 뒤집노라.
보지 못했는가? 천동이 '뱀을 놀리는 솜씨'라고 송한 뜻은 운문의 완전한 근기[全機]와 큰 활용[大用]이 운암의 문중[雲中]에 못지 않는다고 칭찬[褒奬]한 것이라 여기노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억누르고 부추김이 모두 나에게 있거니 죽이고 살림이 다시 누구를 말미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