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上 제23칙 노조가 벽을 향하다[魯祖面壁]
제23칙
노조가 벽을 향하다[魯祖面壁]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달마의 아홉 해는 '벽을 관했다'고 부르고, 신광(神光)의 세 번의 절은 '천기(天機 : 천기의 비밀)를 누설했다' 하나니 어찌해야 자취를 쓸어버릴 수 있을까?
본칙 |
드노라.
노조(魯祖)는 무릇 승이 오는 것을 보면 문득 벽을 향했다.
-벌써 만났다.
남전이 전해듣고 이르되 "내가 평소에 그에게 이르기를 '공겁(空劫) 이전에 알아차려라' 하기도 했고,
-자신의 앙화를 부르는 줄 모르는구나.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기 전에 알아라'"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아셨습니까 할 것을…….
아직도 하나도 반 개도 얻지 못했으니
-다만 못구멍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가 그래가지고서야 당나귀띠 해[驢年]나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였다.
-바쁜 자는 알지 못한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지주(池州)의 노조산 보운(魯祖山寶雲)선사는 무릇 승이 오는 것을 보면 문득 벽을 향해 앉았으니, 이는 달마가 9년 동안 앉았던 뒤로는 아무도 이 영(令)을 다시 시행치 않았는데 이로써 제방에서 부처와 조사를 묻거나 향상(向上)과 향하(向下)를 묻는 대가들로 하여금 아픔과 가려움을 느낄 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남전은 노조와 동문으로서 사람들이 바늘과 송곳으로 찔러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문득 변죽을 쳐서 주를 내어 틔워주되 "내가 평소에 그에게 향해 이르기를 공겁(空劫) 이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기 전에 알아차려야 한다 하였는데 아직도 한 개도 반 개도 얻지 못했다" 하였으니, 얼핏 보기에는 한 가닥 숨통을 틔워준 것 같지만 사실은 시자를 대신해서 법을 전해 마친 도리이다.
또 이르기를 "그가 그래 가지고서야 당나귀띠 해나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 것은 보기에는 그가 너무 도도함을 꾸짖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를 칭찬하면서 마주 보고 몽땅 내어준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설사 말로 충분히 설명한다 해도 어찌 한 차례 직접 가보는 것만이야 하겠는가? 그러므로 영산(靈山)은 달을 그린 것 같다 하고, 조계(曹溪)는 달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 하였거니와 그 어찌 노조가 수정궁(水晶宮) 안의 광한전(廣寒殿)에서 옷깃을 헤치고 만나준 것만이야 하겠는가?
보복(保福)이 남전과 노조의 문답을 장경(長慶)에게 묻되 "노조의 절문(節文)이 어디에 있기에 남전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까요?"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보복은 어찌하여 절문이란 두 글자를 들먹이는가? 만일 싹트지 않는 나뭇가지에서 봄 · 가을을 가릴 줄 아는 이가 아니면 이렇게 묻기가 어려우리라" 하노라. 장경이 대답하되 "자기가 물러나서 남에게 양보하는 것은 만 사람 중에 하나도 없다" 하였으나, 만송은 이르노니 "옛사람은 이토록 눈이 밝았구나!" 하노라.
현각(玄覺)이 이르되 "남전의 말씀은 긍정한 것인가, 긍정치 않은 것인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반은 막았고, 반은 가리웠으나 그를 한 점도 속일 수는 없으리라" 하노라.
취암 지(翠岩芝)가 이르되 "어째서 이토록 수고로워하는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이미 본을 뜨고 화본을 그려 마쳤다" 하노라. 또 이르되 "만일 어떤 승이 온다면 무엇을 보겠는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아직도 적다고 혐오하는가?" 하노라. 다시 이르되 "때를 아는 것이 좋겠다" 하였으나, 만송은 이르노니 "만일 도연명(陶淵明)이라면 눈썹을 찡그리면서 얼른 떠나리라" 하노라. 또 이르되 "나는 그러지 않으리니, 포태(胞胎)를 갖추기 전의 일은 알지 못하니 알았다면 네 허리를 쳐서 꺾으리라"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화상의 방망이는 누가 맞겠습니까?" 하리라.
나산(羅山)이 이르되 "왕노사(王老師)를 그때 보았더라면 잔등이에다 뜸 다섯 장을 떠 주었으리니 그가 놓을 줄 만 알았고 거둘 줄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5경 첫새벽에 일어났는데 벌써 밤부터 다니는 사람이 있구나" 하리라.
현사가 이르되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역시 뜸 다섯 장을 떠 주었을 것이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봄바람에 흐느적거리기를 끝내 쉬지 않는다" 하리라.
운거 석(雲居錫)이 이르되 "나산과 현사가 모두 이렇게 말했으니, 같은 도리인가, 아니면 다른 도리가 있는가?" 하였은데, 만송은 이르노니 "합쳐서 계산하면 도합 뜸 열 장이 된다" 하리라. 또 이르되 "만일 가려낼 수 있다면 그대[尙座]의 불법은 전망[去處]이 있다고 허락하리라"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뜸 다섯 장을 떠 주는 것이 좋겠다" 하노라.
여러분들이여, 그대들은 생각해보라. 남전이 그토록 노조를 깎아내렸는데도 장경은 도리어 이르기를 "진짜로 자기는 물러서서 남에게 양보했다" 하였고, 노조가 관문[關津]을 꽉 막고 있는데 나산은 도리어 이르기를 "놓을 줄만 알고 거둘 줄은 모른다" 하였으니, 모두가 물고기 앞길에다 그물을 치는 격이요, 도적이 지난 뒤에 활을 드는 꼴이로다.
다시 보라. 천동은 따로이 어떤 주장을 했을까?
송고 |
담담한 가운데 맛이 있고
-누가 소금과 초를 쳤느냐?
묘하여 감정[情]과 말을 초월했도다.
-다음날 다시 의론하자.
면면(綿綿)히 있는 듯함이여, 상제(象帝)보다 먼저요,
-이미 둘째 것으로 떨어졌다.
멍하니 바보스러움이여, 도가 높도다.
-아무도 값을 매기지 못한다.
옥에다 문채를 새기다가 순수함을 잃고
-화상의 솜씨가 높으시군요!
구슬이 못 속에 있을 때 스스로 아름답다.
-자랑을 그만 하라.
십분 서늘한 공기여, 더위를 녹이는 초가을이요,
-온통 가을 바람이로다.
한 조각 한가한 구름이여, 아득히 하늘과 물을 가르도다.
-좋은 일레 마장이 많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날에 도단이(徒單二)라는 부마(駙馬)가 남경(南京)으로 부임하는 길에 자주(磁州) 대명사(大明寺)를 지나다가 승당(僧堂)에 들러 승들이 벽을 향해 앉은 것을 보자 기쁜 마음으로 말하되 "한 무리의 담담한 첨지들이로다" 하니, 전(詮)대사가 이르되 "담담한 가운데 맛이 있소" 하였다. 물의 성품은 본래 담담한 것이나 차나 꿀을 가하면 단맛이나 쓴 맛이 생기듯이, 성품 또한 담담한 것이나 미혹과 깨달음으로 갈라지면 범부와 성인으로 나뉜다. 비록 담담한 가운데 맛이 있다고 하나 이는 맛없는 맛이니, 그 맛은 항상하여 묘하게 감정과 말[情謂]을 초월한다. 정(情)자는 마음[心] 쪽에 속하고 위(謂)자는 말[言] 쪽에 속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마음을 놀릴 곳이 없다.
법안(法眼)이 이르되 '이치가 극진하면 감정과 말을 잊거니 어찌 그를 견줄 비유가 있으리요?' 하였고, 「도덕경(道德經)」 곡신불사장(谷神不死章)에 이르되 "현빈(玄牝)의 문이 천지의 뿌리이니, 면면하여 있는 듯하다" 하였고, 또 이르되 "나는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는 모르지만 상제(象帝)의 앞이라" 하였는데, 납승으로서는 면면히 있는 듯한 도리를 한결같이 없는 것으로 보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상제의 앞이란 공겁(空劫) 이전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기 전이요, 바보스러운데 도가 높다는 것은 설두(雪竇)의 도귀여우송(道貴如愚頌)을 인용한 것이니, 그 송에 이르되 "비 지나고 구름 걷히자 / 새벽 기운 반쯤 열리니 / 두어 봉우리 그림처럼 푸르게 우뚝하네 / 공생(空生)이 알지 못하고 굴 속에 앉아서 / 하늘꽃과 땅 진동이 생기게 하였네" 하였다. 이 송은 공생이 연좌(宴坐)하고 있는데 제석천왕이 감동하여 하늘꽃을 흩은 것을 읊은 것이다. 이제 노조가 일을 줄이지 못해서 남전 · 현사 등 한 패거리 노장들의 점검(點檢)을 불러일으켰으니, 이야말로 옥에다 문양을 새겨서 순수함을 잃는 격으로, 구슬이 못에 있으매 그대로 예쁘게 둠만 같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서(晋書) 육기(陸機)의 숭문부(崇文賦)에 이르되 "돌에 옥이 숨으니 산이 빛나고 물이 구슬을 품으니 개울이 예쁘다" 하였는데, 돌 속에 옥이 숨은 것을 남전 무리가 쪼아서 열려했고 물이 구슬을 품은 것을 현사무리가 걸러내려 했다. 다행히 '십분의 서늘한 기운이 있어 더위를 녹이는 초가을인데 바야흐로 한 조각의 한가한 구름이 있어 아득히 하늘과 물을 가르도다' 한 것이다.
만송은 일찍이 벽을 향해 앉은 적이 없으니, 저 한 무리가 온들 무슨 절문(節文)을 찾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대신 대답하노니, "천동의 송고(頌古)를 보라"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