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上 제24칙 설봉의 뱀 조심[雪峰看蛇]
제24칙
설봉의 뱀 조심[雪峰看蛇]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동해의 잉어, 남산의 독사, 보화(普化)의 나귀 울음, 자호(子湖)의 개짖음 등은 예사 무리를 따르지도 않았고 특별한 종류에 속하지도 않는다. 일러보라. 어떤 사람들이 행하는 곳일까?
본칙 |
드노라.
설봉(雪峰)이 대중에게 보이되 "남산에 한 마리의 독사[鼈鼻蛇 :자라코뱀]가 있으니, 그대들 모두는 부디 잘 살펴야 한다" 하니,
-방석을 들어보이면서 "이것은 발 예쁜 것은 아닙니다" 했어야 할 것이다.
장경(長慶)이 이르되 "오늘 승당 안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였다.
-소문만 듣고 언성을 높이는구나!
어떤 승이 현사(玄沙)에게 이야기 하니
-부탁의 말은 세 번을 넘지 않는다.
현사가 이르되 "모름지기 우리 사형이라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우의 패거리요, 개의 무리로다.
비록 그러하나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하였다.
-달리 한 가닥이 있다면 당장 드러내주시오.
그 승이 묻되 "화상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니,
-독벌레 붙은 머리 위에 가려움을 긁는다.
현사가 대답하되 "남산까지 들먹여서 무엇하리요?" 하매,
-그저 그 독사란 게 분수 밖의 것이 아니니라.
운문이 주장자를 설봉의 얼굴 앞에다 던지면서 두려워하는 시늉을 지었다.
-어찌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해칠까.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남산의 독사는 비록 죽은 뱀이지만 상골암(象骨岩) 앞에서 놀릴 줄 알면 살아난다. 설봉이 들어서 대중에게 보인 것은 본래 독으로써 독을 제거하려던 것인데 장경은 다만 물살을 따라 배를 띄울 줄만 알고서 이르되 "오늘 승당 안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였다. 만일 그가 바람을 거슬러서 키를 잡을 줄 알았다면 설봉은 마땅히 열반당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현사가 이 소식을 전해듣고 이르되 "모름지기 우리 사형이라야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으니, 여기에는 눈에 띄지 않는 함정[誵訛]이 있다. 만일 현사가 장경을 인정했다면 어찌하여 또 이르기를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했을까? 물길을 따라 배를 띄울 줄 알 뿐 아니라 다시 바람을 거슬러 키를 잡을 줄도 안 것이다.
그 승은 위험을 무릅쓰고 선뜻 묻되 "화상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였는데, 현사는 그저 이르되 "남산까지 들먹여서 무엇하리요?" 하였으니, 여기에서 문득 산 독사를 놀리는 솜씨를 보리로다. 운문이 문득 주장자를 던지면서 두려워하는 시늉을 한 것은 가장 친절한 동작이다.
운암(雲岩)이 뜰을 쓰는 화두의 송에서 일찍이 이르기를 "상골산 앞에서 뱀을 놀리던 솜씨여, 어릴 때 하던 짓을 늙어서는 부끄러워한다" 하였고, 운문에게 이르기를 "남종이 여종을 보면 정성스러워진다" 하여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았으니 매서운 솜씨라 해도 무방하거니와 오늘 다시 뱀 놀리는 솜씨를 송하여 나는 용을 잡는 수단을 자랑하였으니 그가 큰 도끼로 내려 찍은 뒤에 손을 훌훌 터는 모습을 보라.
송고 |
현사는 너무 강하고
-기회를 만나면 아비에게도 양보치 않는다.
장경은 너무 용기가 없으니
-의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다.
남산의 독사는 죽어서 쓸모가 없다.
-맬대를 메자 짐끈이 끊어지다.
바람과 구름이 모이자 머리에 뿔이 돋으니
-때가 오면 지렁이가 교룡(蛟龍)이 된다.
과연 소양(韶陽)의 뱀 놀리는 솜씨를 보았다.
-고소를 금할 수 없다.
솜씨를 부림이여,
-재주가 나오지 않으면 그만둘 일인데 두번 세번 거듭하는구나!
번득이는 번갯빛 속에서 변동을 살핀다.
-한눈을 팔면 생명이 위험하다.
이쪽으로서는 능히 물리치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며
-자랑 좀 하지 말지!
저쪽으로서는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한다.
-급소[七寸]가 내 손아귀에 있거든!
이 도리를 지금에 누구에게 전할까?
-만송 늙은이가 있나니.
싸늘한 입으로 사람을 상해도 아픔을 모르는 자이리.
-아야, 아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현사가 사람을 시켜 설봉에게 글을 보냈는데 설봉이 뜯어보니, 백지 석 장뿐이었다. 이것을 들어 그 승에게 보이면서 묻되 "알겠는가?" 하니, 승이 대답하되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설봉이 이르되 "듣지 못했는가? 군자는 천 리를 격했으되 같은 호흡 사이니라" 했더니, 승이 돌아가서 현사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현사가 이르되 "산두(山頭) 노화상은 빗나간 줄도 모르는구나?" 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현사는 설봉의 법을 이었으되 평소에 아비의 염소 도둑질을 고발[證父攘羊]하고, 어진 일을 당하여 양보하지 않는[當仁不讓] 자세로 이르되 "남산까지 들먹여서 무엇하리요?" 하였다. 이는 또 과감함[果 : 적을 섬멸하는 일]과 의연함[毅 : 결과를 이루는 일]에 있어 남을 앞세우지 않으니, 너무 강함이 심한 것이요, 장경은 삿됨을 따라 문득 이르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였으니, 사자가 되돌려 던지는 줄[師子返擲]을 모르는 꼴이니, 이는 참으로 의리를 보고도 하지 않는 짓이라 용기가 없는 것이다.
"바람과 구름이 모이자 머리에 뿔이 돋으니 과연 소양의 뱀 놀리는 솜씨를 보았다" 한 것은 운문이 마주 보면서 한 마리의 산 뱀을 들어올려 보인 것이, 다른 스님들이 활 그림자가 술잔에 비치듯한 것[弓杯現影]과는 다르다는 것을 송한 것이다.
"능히 물리치기도 하고, 능히 부르기도 한다" 한 것은 속담에 뱀을 부르기는 쉽지만 뱀을 물리치기는 어렵다 한 것에 연유한 것이고,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한다" 한 것은 이미 얼굴 앞에다 불쑥 내던졌다가 다시 두려워하는 모습을 지었음을 송한 것이니, 이미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였다면 반드시 물리칠 줄도 알고 부를 줄도 알 것이다.
천동이 마지막에 이르기를 "이 도리를 지금에 누구에게 전할까? 싸늘한 입으로 사람을 상해도 아픔을 모르는 자이리" 하였는데 무릇 염하고 송하는 데는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려서 자기의 얼굴 앞에다 들이대어야 비로소 작가라 할 수 있다.
설두도 이르되 "지금에는 유봉(乳峰) 앞에 감추어졌으니, 오는 자 모두가 방편을 살피라" 하고는 높은 소리로 할을 하고, 다시 이르되 "발 뿌리를 살피라[看脚下]"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설두는 발 뿌리 보기를 탐내다가 해골바가지 꿰뚫리는 줄을 몰랐고, 천동은 싸늘한 입으로 사람을 해친다 하였으니 밝은 사람은 어두운 일을 하지 못함을 보였다" 하노라.
내가 그때 운문이었다면 주장자를 설봉의 가슴에다 콱 던져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거든, 잇달아 그로 하여금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법에 따라 직접 한입 물리게 하였을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할까? 오늘 아침이 2월 2일이니, 잠시 용(龍)을 풀어놓아 고개를 들게 하려는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