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上 제29칙 풍혈의 무쇠소[風穴鐵牛]
제29칙
풍혈의 무쇠소[風穴鐵牛]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더딘 바둑, 둔한 행마에 도끼자루 썩고 눈알을 굴리고, 머리가 아찔할 때 요점[杓柄]을 빼앗긴다. 만일 귀신굴 속에 처박혀서 죽은 바둑알[死蛇頭 : 사석]이나 붙들고 있다면 그에게 되살아날[變豹] 길이 있겠는가?
본칙 |
드노라.
풍혈(風穴)이 영주(郢州) 관아에서 상당하여 이르되 "조사의 심인(心印)은 모양이 무쇠소의 바탕 같아서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떼면[去] 도장 자국이 머무르고,
-콧구멍을 끌어서 돌리라.
그렇다면 버리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을 때엔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도장을 찍지 않아야 옳은가?" 하였다.
-흙탕물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
이때 노파(盧陂) 장로가 나서서 묻되 "저에게 무쇠소의 바탕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도장을 본뜨지 마소서" 하니,
-완연히 물을 거슬리는 파도가 있구나!
풍혈이 이르되 "평소에 고래를 낚아서 바다를 맑히려 했는데 도리어 개구리가 갯벌을 저어 물을 흐리니 딱하구나!" 하였다.
-영혼을 인도하는 깃발이요, 공기를 담아두는 주머니로다.
이에 노파가 우두커니 생각하고 있으니,
-이미 죽을 고비는 지났는데…….
풍혈이 할을 하면서 이르되 "장로여, 어찌하여 입을 열지 못하는가?" 하였다.
-이미 벼랑에 선 몸을 다시 한 번 떠미는구나.
노파가 궁리 끝에 한마디 하려는데
-그 숱한 세월은 어디로 갔는고?
풍혈이 불자로 한 번 때리면서 이르되 "오늘의 화두를 기억하는가? 말해보라" 하였다.
-사람을 도우려면 철저히 돕고, 사람을 죽이려면 피를 보아야 한다.
노파가 입을 열려고 하니,
-태워도 묻어도 여전히 굴복치 않는구나!
풍혈이 또 한번 불자로 때렸다.
-그래서 30대는 줄었지.
목주(牧主)가 이르되 "불법과 왕법(王法)이 일반이로구나" 하니,
-관원 노릇하는 법을 모르면 옆 고을의 사례를 살펴본다던데…….
풍혈이 이르되 "무엇을 보았는가?" 하였다.
-불자로 한 대 갈기는 편이 더 좋았겠는데…….
목주가 이르되 "끊을 자리에서 끊지 않으면 도리어 환란을 부릅니다" 하니'
-스스로가 꾸짖고 스스로가 재앙을 부르도다.
풍혈이 그만 자리에서 내려왔다.
-기분이 가장 좋을 때, 멈추는 것이 가장 좋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무진거사(無盡居士)가 들었다[擧].
"임제가 위산(潙山)을 하직할 때 앙산(仰山)이 곁에서 모시고 서 있었다. 위산이 묻기를 '이 사람의 뒷날의 도법이 어떠할꾜?' 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뒷날 그의 도법이 오월(吳越) 지방에서 크게 시행되다가 바람[風 : 풍혈]을 만나면 그칠 것입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그 법을 이을 이가 누구일까?' 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연대가 깊고 멀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위산이 짐짓 묻기를 '나도 알고자 한다' 하니, 앙산이 이르기를 '경에도 이르지 않았습니까? 이 깊은 마음을 가지고 티끌같이 많은 세계에 바치는 것, 이를 일러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다' 하였다. 그리고는 거사가 이르되 '나는 이것으로써 풍혈이 앙산의 후신임을 알 수 있노라'" 하였다.
풍혈이 처음 설봉(雪峰)에게 참문한 지 5년이 지나 어느날 법을 청하되 "임제(臨濟) 회상의 양당(兩堂)의 수좌가 고개를 들고 마주 보면서 제각기 한바탕의 할을 했는데, 어떤 승이 이 일을 들어 임제에게 묻기를 '빈주(賓主)의 안목을 갖추었습니까?' 하니, 임제가 대답하기를 '비록 그렇더라도 빈주의 도리가 분명하니라 한 뜻이 무었입니까?'" 하였다. 설봉이 말하되 "암두(巖頭)와 흠산(欽山)과 함께 임제를 뵈러 가는 도중에 임제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참문치 못한 적이 있느니라" 하고는, 다시 말하되 "그대가 만일 알고자 한다면 그의 자손을 찾아가서 물으라" 하였다. 풍혈이 이 일을 남원 옹(南院顒)에게 사뢰니, 남원이 이르되 "설봉은 옛부처시니라" 하였다. 선사(풍혈)는 나중에 여주(汝州)의 풍혈산 광혜선원(廣慧禪院)에 머물렀는데, 5대(五代)의 난도 끝날 무렵에 영주의 목주(牧主)가 선사를 관아로 청해서 한 해 여름을 지내게 했었다. 어느날, 목주가 법좌에 오르기를 청하매 대중 법문을 하였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모양이 무쇠소의 바탕 같아서 돌사람[石人]이나 나무말[木馬] 같지 않으니, 현묘하게 제창하고 현묘하게 제시함이 분명 무쇠소와 같아서 그대들이 그 곁으로 가까이 갈 길이 없다. 그대가 심인을 버린다면[去] 버리자마자 갈고리[鉤]처럼 돌아오고 머무르게 한다면 머무르게 하자마자 백 조각으로 부숴질 것이다. 그렇다면 버리지도 않고 머무르게 하지도 않을 때엔 도장을 찍어야 옳은가, 도장을 찍지 않아야 옳은가?" 하였으니, 이야말로 낚시 끝에 미끼를 걸었다 하리로다.
노파장로 역시 임제문하의 자손인지라 문득 그의 화두를 되짚고 물었으니, 기특하게도 "저에게 무쇠소의 바탕이 있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본뜨지 마소서" 한 것은 무방하다 하겠으나 그러나 풍혈이 바른 영[正令]에 의거하여 시행하면서 문득 이르되 "평소에 고래를 낚아서 바다를 맑히려 하였는데 도리어 개구리가 갯벌을 저어 물을 흐리니 딱하구나!" 하였으니 어찌하리요?
고래[鯨鯢]란 바다를 가로지르는 큰고기니, 「장자(莊子)」에 이르기를 '임공자(任公子)가 50마리의 소[犗]로 먹이를 삼아서 일찍이 이 고기를 얻었다' 하였다.
'개구리가 갯벌을 저어 물을 흐린다' 한 것은,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무제(漢武帝) 때에 폭리장(暴利長)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악와수(渥洼水)라는 강가에 한 떼의 들말[野馬]이 와서 물을 먹는 중에 굉장한 놈이 있음을 보았다. 그는 그 길로 흙사람이 손에 밧줄을 들고 서 있는 형상을 만들어 그 곁에다 세웠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예사롭게 된 뒤엔 사람으로 대신하여 그 말을 잡게 했는데, 그 말을 신기하게 보이려고 "물에서 나온 말이라"고 퍼뜨리니 마침내 사람들은 그 말을 용종(龍種)이라 하였다. 풍혈은 생각하기를 '말이 맑은 물에서 나왔건만 도리어 갯벌에서 허우적거렸다' 했으니, 이 말은 풍혈의 대중이 영각(사자후)하듯 모였으나 분명 개구리 걸음을 한 것임을 밝힌 것에 빗대어 한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 설두(雪竇)가 무소뿔 부채[犀牛扇]의 화두를 송한 뒤에 다시 이르되 "만일 맑은 바람이 다시 떨치고 머리의 뿔이 거듭 돋기를 바란다면 선객들이여, 한 말씀[一轉語] 해보시오" 하고는 다시 이르되 "부채가 이미 부서졌거든 나의 무소나 돌려달라" 하였다. 이때 어떤 승이 나서서 이르되 "대중이여, 그만 당(堂)으로 가시오" 하니, 설두가 할을 하면서 이르되 "낚시를 던진 뜻은 고래를 낚으려던 것인데 겨우 새우를 낚았도다" 하였으니, 이 두 구절로써 풍혈의 위 · 아래의 구절에다 짝을 짓건대 와(蛙)자가 틀림이 없도다.
노파가 가만히 생각한 끝에 화두를 묻고 기개를 드러낸 것은 풍혈과 만나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점검을 당하고는 다시 길게 던지는 기교를 찾아가지고 가서 창쓰는 법을 보여주되 엄나무 목도 채 하나로 쳐서 거꾸러뜨리기를 바랐으니, 이는 기개를 빼앗아 바른 영을 시행하는 법과 손님과 주인이 엇바꿈하는 도리를 알지 못했던 탓이다.
목주는 오랫동안 풍혈에게 참문하였으므로 본 것[見處]이 없지 않기에, 이르기를 "불법과 왕법이 똑같소이다" 하니, 풍혈로서는 안남(安南)은 평정시켰으나 다시 북방을 근심해야 되는 꼴이 되어서 문득 묻되 "무엇을 보았는가?" 한 것이다. 이쯤에서 노파의 굴욕까지도 벗겨주는 것이 좋았건만 겨우 이르되 "끊을 데서 끊지 않아 도리어 환란을 불렀다" 하였다. 다 털어놔도 무방할 것을, 풍혈은 속관(俗官)이기에 냉가슴을 앓으면서 문득 자리에서 내려왔으니, 두 존숙이 하나는 용이요 하나는 뱀이어서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면서 임제의 종풍을 드날렸음이 천동의 화답송에서 더욱 드러났다.
송고 |
무쇠소의 바탕이여,
-영각을 하던가?
도장이 머무르면 도장 자국이 뭉그러진다.
-갈구리는 비록 손에 들었지만
비로자나의 정수리로 치솟아서 다니다가
-장수가 되기에는 부족하고
돌아와서는 화불(化佛)의 혀끝에 앉았다.
-필부로서는 남음이 있다.
풍혈이 저울대를 잡았는데
-세정(世情)은 차고 더움을 살피는데
노파가 함정에 빠졌다.
-인간의 얼굴은 높고 낮음을 따른다.
방망이질과 할이여'
-어찌 설명을 용납하리요.
번갯빛과 돌불이라.
-머뭇거리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또렷또렷 분명하기로는 구슬이 소반 위에 있음이요,
-건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구른다.
눈썹을 곤두세워도 도리어 어긋나도다.
-소리나자마자 문득 때리리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무쇠소의 바탕은 도장이 머무르면 도장 자국이 뭉그러진다" 한 것은 민왕(閩王)이 사자 편에 주기(朱記 : 도장)를 보내니, 보복(保福)이 상당하여 이르되 "떼면 도장 자국이 머무르고, 머무르면 도장 자국이 뭉그러진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때 어떤 승이 말하되 "버리지도 않고 머무르게 하지도 않는다면 도장은 무엇에 쓰리이까?" 하니, 보복이 때렸다. 승이 다시 이르되 "그렇다면 산귀신[山鬼]의 굴 속은 완전히 오늘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하자니, 보복은 잠자코 있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아깝다! 용두사미가 되었구나!" 하노라.
풍혈이 만일 머무름 없고 증득함 없는 큰 해탈문을 초월한 듯 증득하지 못했다면 비로자나의 정수리로 치솟아나와서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당의 숙종이 충국사에서 묻되 "어떤 것이 다툼 없는 삼매입니까?" 하니, 국사가 대답하되 "단월께서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하였으니, 이는 법신의 향상(向上)을 밝힌 것이요, 마른 나무 쪽의 일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풍혈이 먼저 이러한 바른 영에 의거했다가 도리어 불사문(佛事門) 중으로 돌아와서 큰 권세를 손에 쥐고 깨닫지 못했던 공안들을 판단하여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정량(情量)을 쓸어버리고, 보신불이다 화신불이다 하는 분별을 가라앉혔다. 임제의 「광어(廣語)」에 이르되 "산승의 본 것[見處]은 보신과 화신의 정수리에 눌러앉았다" 하였다. 이렇게 저울대를 잡고 있으면 설사 노파가 작가라 하더라도 때로는 굴복해야 할 것이니, 서천(西天)의 외도들이 주장을 세우다가 성립되지 못한 것을 지다[負], 떨어졌다[墮] 하는데 목을 베거나 팔을 끊어 똑똑치 못했음을 사죄하는 것이다.
이 방망이와 할로써 망치질하는 것이 번갯불과 돌불 같은 기지의 변화라 하겠거니와, 이는 모두가 잠시의 광경(光境)이니, 행여라도 얻음과 잃음을 판정하거나 이기고 짐을 결단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구슬이 소반 위에 구르는 것 같거니 눈을 부릅뜨고 보려 하면 벌써 어긋나버렸다.
불자로 선상을 치시고는 이르시되 "끝났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