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上 제30칙 대수의 겁화[大隨劫火]

쪽빛마루 2016. 4. 11. 05:45

제30칙

대수의 겁화[大隨劫火]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모든 상대적 개념을 끊어 두 끝을 주저앉혔다. 의심덩이를 깨뜨리니 어찌 한 구절인들 필요하겠는가? 장안(長安)이 한 걸음도 여의지 않았고, 태산(泰山)도 단지 세 근의 흙을 겹친 것이다. 일러보라. 어떤 영에 의거하여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본칙

 드노라.

 어떤 승이 대수(大隨)에게 묻되 "겁화(劫火)가 활활 탈 때에 대천세계가 함께 무너진다는데 이것[這箇]도 무너집니까?" 하니,

 -근심있는 사람은 근심있는 사람에게 묻지 말아라.

 

 대수가 대답하되 "무너진다" 하였다.

 -벌써 참기가 어렵게 되었구나!

 

 승이 다시 묻되 "그렇다면 남[他]을 따라가버리는 것입니까?" 하니,

 -눈앞에 징험할 수 있는데…….

 

 대수가 이르되 "남을 따라가버린다" 하였다.

 -언덕을 내려가는데 달리지 못하니, 다시 한 번 밀어주도다.

 

 승이 용제(龍濟)에게 가서 다시 묻되 "겁화가 활활 탈 때에 대천세계가 함께 무너진다는데 이것도 무너집니까?" 하니,

 -같은 병을 앓으니 서로서로 위로한다.

 

 용제가 이르되 "무너지지 않는다" 하였다.

 -말뚝을 쳐부수고, 코끝을 비틀어 돌린다.

 

 승이 다시 묻되 "어찌하여 무너지지 않습니까?" 하니,

 -또 저러는구나!

 

 용제가 이르되 "다 같은 대천세계이기 때문이니라" 하였다.

 -생철로 부어서 만들었거든…….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익주(益州)의 대수산(大隨山) 법진(法眞) 선사는 복주(福州)의 서원(西院)이라고도 하고, 장경(長慶)이라고도 하니, 대안(大安)의 아들이며, 백장 대지(百丈大智)의 손자이다.

 그는 일찍이 60여 명의 존숙(尊宿)에게 참문(參問)한 적이 있는데 위산(潙山)의 소임을 보았다. 어느날, 위산이 묻되 "그대는 여기에 있은 지 몇 해가 되는데 아직도 청해 묻는 법을 모르는가?" 하니, 대수가 대답하되 "무엇을 물어야 되겠습니까?" 하고 응수했다. 위산이 이르되 "그대는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을 줄도 모르는가?" 하니, 대수가 손으로 위산의 입을 틀어막으니, 위산이 이르되 "그대가 뒷날 조각기와로 머리를 가리는 일이 있더라도 마당 쓸어주는 사람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나중에 붕구로(棚口路)라는 곳에서 차를 달여 오가는 사람들께 대접하기 3년 만에 대수산에 개원하여 주석하였다. 이때, 어떤 승이 와서 묻되 "겁화가 활활 탈 때에 대천세계가 함께 무너진다는데 이것도 무너집니까?"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은 본래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에서 나온 말이다.

 반족왕(班足王)이 "왕 천 명의 머리를 베어다가 무덤 사이에서 삿된 제사를 지내면 마하가라대흑천(摩訶迦羅大黑天)의 신통으로 국운이 번창한다"고 하는 라타(羅陀)라는 외도의 말을 믿게 되었다. 이때 보명왕(普明王)이 붙들려 왔다가 하루의 여가를 청해 7불의 법에 따라 백 명의 법사에게 공양을 올렸는데 그중 첫째 법사가 보명왕에게 게송을 설해주었으니, "겁화가 활활 탈 때에 대천세계까지도 무너진다……" 하는 등 32구절이었다. 보명왕은 게송을 들은 뒤,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면서 다시 다른 왕들에게 이 게송을 설해주니, 반족왕이 이상스럽게 여겨 그 뜻을 묻게 되었고, 그에게 다시 설명해주니, 반족왕이 이 계를 듣자 마음이 열려 나라를 동생에게 맡기고 출가하여 무생법인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교가의 말씀에 준하건대 삼천대천세계가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무너졌다 한다고 하였다. 한무제(漢武帝) 때, 곤명지(混明池)를 파다가 재[灰]를 얻었다.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었더니, 대답하되 "서역에서 도인이 오거든 물어보소서" 하였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때에 이르러 마등(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왔기에 물으니, "그것은 겁회(劫灰) 올시다" 하였다는 것이다.

 운암(雲岩)이 어떤 강사에게 묻되 "화재(火災)가 일어날 때엔 세상이 허공으로 변하는데 그 많은 재는 어디에 모이는가?" 하니, 대답하는 이가 드물었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는 이르되 "나한은 숯과 같고, 벽지불은 재와 같은데 보살은 적은 재 같고 부처는 겁화와 같아서 숯도 없고 재도 없다"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묻되 "이것은 무너지는가, 무너지지 않는가?" 하였다.

 불과(佛果)가 이르되 "그 승은 원래 화두의 속뜻[落處]을 알지 못했다. 일러보라. '이것이라' 했으니, 도대체 무엇을 이르는 것인가?" 하였다. 대수가 이르되 "무너진다" 한 것은 상례를 벗어났으되 도에 부합되는 말씀으로서 음미하기가 매우 어렵거늘, 승이 다시 묻되 "그렇다면 남을 따라가버리는 것입니까?" 하였으니, 그 승은 웃기는 사람이구나! 말고삐는 잡았으나 등자[鐙] 떨어진 줄은 모른 지가 얼마이던고? 대수가 이르되 "남을 따라가버린다" 하였으니, 만송은 이르노니, "승이 대수를 따라갔는가? 대수가 승을 따라갔는가?" 하노라.

 설두(雪竇)는 수산주(脩山主 : 용제)와 같은 시대 사람이건만 수산주가 대답한 뒷부분에서 "무너지지 않나니, 대천세계와 같기 때문이다" 한 것을 보기 전에 대수의 말씀만을 송하되 "겁화의 광명 속에서 질문을 던지니, 납승은 도리어 두 겹의 관문에 막히도다"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구절을 대부분 잘못 알고서 말하되 "대수가 이르기를 '무너진다' 한 것이 한 겹의 관문이요, 수산주가 이르기를 '무너지지 않는다' 한 것이 또 한 겹의 관문이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앞의 이야기가 단순히 대수의 말씀만을 송한 것임을 살피지 못했으니, 설두가 아직 수산주의 어록을 만나기 전에 단순히 물음에서 "이것은 무너지는가, 무너지지 않는가?" 한 것만으로써 이미 두 관문을 삼은 것이다.

 다음 연(聯)에 "가엾다! 남을 따랐다는 그 한 구절 때문에 / 구구 만 리를 홀로 방황했도다" 하였는데, 이는 그 승이 대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곧장 서주(舒州)로 가서 투자(投子)에게 물었는데, 투자가 이르되 "서천(西川)에 옛 부처님이 나타나셨으니, 그대는 빨리 돌아가보라" 하기에, 이내 돌아왔으나 대수가 이미 천화(遷化)했다는 사실을 송한 것이다.

 당(唐)나라 때의 승 경준(景遵)이 이에 대해 송하되 "분명하여 다른 법이 없거늘 / 오직 남쪽의 혜능만을 인가했다 하는가? / 남을 따라갔다는 한 구절에 / 천 산을 달리는 납승들이로다" 하였는데, 설두는 연의 뜻을 살려서 마지막의 한 연을 송하였으니 "싸늘한 귀뚜라미[蛩]는 섬돌 사이에서 울고 / 고요한 밤은 감실(龕室) 앞의 등불에 예배한다 / 읊조리기를 마치니 창 밖에 외로운 달이 돋았느냐? / 서성이노라니, 한(恨)을 이길 수 없도다!" 하였다.

 천동의 송고(頌古)에는 수산주의 말에 다시 "무너지지 않나니, 대천세계와 같기 때문이라" 한 것까지를 보태고 있다. 어떤 책에는 이르되 "그가 대천세계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이 말씀을 가장 자세히 살펴야 한다. 같다고 해도 되고 같지 않다고 해도 되나니, 잘못으로 잘못에 맞추는 격이라 옳음도 옳지 않음도 없다.

 수산주는 또 이르되 "무너진다 했어도 사람을 막아주고 무너지지 않는다 했어도 사람을 막아준다" 했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대수가 '무너진다' 했어도 몸 빠져나갈 곳이 있고, 수산주가 '무너지지 않는다' 했어도 몸 빠져나갈 곳이 있다" 하노니, 한결같이 무감각해서도 안 되고, 한결같이 정식(情識)으로 알려고 해도 안 된다.

 보지 못했는가? 강서(江西)의 지철(志徹)선사가 육조에게 열반경의 항상함과 무상함의 뜻을 물었는데 육조께서 이르시되 "무상한 것은 불성(佛性)이요, 항상한 것은 선 · 악 등 모든 법을 분별하는 마음이니라" 하였다. 지철이 다시 묻되 "경에서는 이르기를 '불성은 항상하다'고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하다' 하셨고, 선 · 악 등 모든 법과 나아가서는 보리심까지도 모두가 무상하다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항상하다' 하시니, 이는 서로 어기는지라 학인으로 하여금 더욱 의혹을 내게 합옵니다" 하였다. 육조께서 말씀하시되 "불성이 만일 항상한 것이라면 어찌 다시 선 · 악 등의 모든 법을 말할 수 있으랴? 내가 무상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되고 항상한 도이니라. 또 모든 법이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물건마다에 모두 제 성품이 있어서 생사를 받아들이니, 그렇다면 진상(眞常)의 성품이 두루하지 못하는 곳이 있게 된다. 내가 항상하다고 말한 것은 곧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 무상의 이치다" 하였다.

 요즘의 초심자들은 대수의 무너진다든가, 남을 따라가버린다는 말을 들으면 곤혹을 면치 못하나니, 곁으로 육조의 말씀을 참고한 이라면 의혹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대수는 백장의 친손자이고, 수산주는 지장의 맏아들이어서 정(情)과 사견을 초월하여 간곡히 지금 사람[今時]들을 위하는 처지가 아닌가.

 그때 설두는 겨우 반만 송했지만 오늘 천동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부를 송하였다.

 

송고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다 함이여,

 -부처님 손으로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남을 따라갔다거나 대천세계라 했다.

 -동떨어지게 큰 사람이 말의 갈피에 휘말려들었다!

 

 구절 속에는 전혀 갈구리도 자물쇠도 없거늘

 -앞니에 끼고 어금니에 붙은 것도 적다 할 수 없는데…….

 

 다리는 깊숙이 갈등(葛藤)에 걸려들었네.

 -누가 그에게 가지를 뻗고 덩굴이 뻗어나게 했던고.

 

 안다 모른다 함이여,

 -손은 바쁘고 마음은 급하다.

 

 분명한 일을 간곡하게 드러냈네.

 -이는 소경의 허물이요, 일월의 잘못은 아니다.

 

 마음 아는 이끼리 들추어보이면 시비가 없나니

 -거간꾼이 장사꾼을 보듯 하는도다.

 

 나의 이 가게에서 사고 파는 격식에는 미치지 못하네.

 -방안에서 양주 땅을 매매한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설두는 그 납승이 물은 "그것은 무너지는가, 무너지지 않는가?" 한 것을 송하되 "납승이 오히려 두 관문에 걸렸다" 하였는데, 천동은 송의 첫머리에 이르되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다 함이여!" 하였으니, 그 뜻은 같지 않아서 두 승이 물은 말을 동시에 들고 두 스승의 대답을 함께 거두어서 한꺼번에 우리 앞에다 드러낸 것이다. 오직 "남을 따라갔다거나 대천세계라 했다" 한 것만은 대수의 말에 의해 두 스승의 낚싯줄을 내어서 두 승의 허탕치는 모습을 점검해낸 것이다.

 운거(雲居)가 대중에게 보이되 "말이란 것은 마치 보습[鉆] 같고 집게[挾] 같고, 갈구리[鉤]나 자물쇠[鎖] 같아서 모름지기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게 해야 한다" 하였으니, 지금 두 스승의 대답을 송한 내용은 곧장, 먼지 하나 묻지 않게 빨리 주려 했건만 제방에서 이미 갈등의 밧줄에 얽혀 넘어졌으니 어찌하랴 한 것이다.

 진점흉(眞點胷)이 일찍이 남창(南昌)의 장강사(漳江寺)에서 정(政)선사의 식객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날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다리를 드러낸 채 천천히 걸어서 그의 앞을 지나갔다. 정선사가 이상히 여겨 물으니, 진이 대답하되 "앞의 행랑[廊], 뒤의 시렁[架] 모두가 칡덩굴, 등덩굴이니, 실로 얽혀 넘어질까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하니, 정선사가 크게 웃었다.

 천동의 말은, "내가 이렇게 분명하게 송했으니, 그대들 알아듣겠는가, 못 알아듣겠는가? 만일 오랫동안 참구한 상사(上士)라면 우리 가게에서 매매하는 대로 할지언정 흥정은 말라"는 내용이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오늘은 오직 집 떠난 이들만을 속이겠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