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35칙 낙포의 굴복[洛浦伏膺]

쪽빛마루 2016. 4. 14. 08:33

제35칙

낙포의 굴복[洛浦伏膺]



 대중에게 보이시다.

 날랜 기개, 빠른 변재로 외도와 천마의 기개를 꺾고, 일탈한 격식과 초연한 종지로 간곡히 상근기와 날카로운 지혜를 위한다. 갑자기 한 방망이로 때려도 고개도 돌리지 않는 자를 만날 때엔 어찌하겠는가?


본칙

  드노라.
 낙포가 협산(夾山)에게 참문했을 때, 절도 하지 않고 바짝 마주 서니,
 -마주치고도 말에서 내리지 않는 뜻은 제각기 갈 길이 바쁘기 때문이리라!

 협산이 이르되 "닭이 봉의 둥지에 깃들이니, 같은 종류가 아니다. 나가라!" 하였다.

 -한 손으로는 밀고 한 손으로는 끈다.


 낙포가 이르되 "먼 곳으로부터 도풍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한번 제접해주소서" 하니,

 -탐색하는 장대는 손에 있고


 협산이 이르되 "눈앞에는 그대가 없고 여기에는 노승이 없다" 하였다.

 -그림자 풀단이 몸을 따른다.


 낙포가 문득 할을 하니,

 -힘줄이 닳고 힘이 다하겠군!


 협산이 이르되 "가만히 있거라. 아직 경솔히 굴지 말라.

 -아는 이는 바쁘지 않고, 바쁜 이는 알지 못한다.


 구름과 달은 같으나 산과 개울은 각각 다르다.

 -석양의 거리, 어두운 골목에서 생소한 나그네는 머리가 아찔하다.


 천하 사람들의 혀를 끊어버리는 일은 없지 않겠지만

 -다만 송곳 끝 예리한 것만 보았지.


 어찌 혀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할 줄 알게 할 수야 있겠는가?" 하였다.

 -끝 대가리 모난 줄은 알지 못한다.


 낙포가 말이 없으니,

 -장사진(長蛇陣) 앞에 부러진 활대가 땅에 즐비하구나.


 협산이 문득 때리매,

 -뜻밖에도 협산이 임제로 바뀐 듯하다.


 낙포가 이로부터 굴복했다.

 -재주가 눌리면 마땅히 떠나야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조사의 전등을 밝힌 모든 기록에는 한결같이 협산이 강자(舡子)를 만나기 전에 이미 출세하여 윤주(潤州) 경구(京口) 죽림사(竹林寺)에 머무르면서 법을 전해준 스님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오직 불과(佛果)의 격절(擊節)에만 이르되 "전명(傳明)이 처음에는 석루(石樓)의 법을 이었다" 하였는데 석루는 분주(汾州)의 석루요, 전명은 협산의 시호이다.
 풍주(澧州)의 낙포산(洛浦山) 원안(元安)선사는 오랫동안 임제에게 참문하면서 시자 소임을 보았는데 임제가 어느날 이르되 "임제의 문하에서 쓰는 한 대의 화살을 누가 감히 당하겠는가?" 했다. 어느날 임제를 하직하니, 임제가 이르되 "어디로 가려는가?" 하고 물었다. 선사가 대답하되 "남쪽으로 가렵니다" 하니, 임제가 주장자로 한 획을 그으면서 이르되 "이것을 지날 수 있거든 가거라" 하기에 선사가 할을 하였다. 이에 임제가 때리니, 선사는 절을 하고 떠나서 제방으로 만행을 두루 한 뒤에 협산의 마루턱에 이르러 암자 하나를 세우고 한 해를 보냈다.
 협산(夾山)선사가 이 소식을 듣고는 시자승 편에 글을 보냈더니, 낙포선사가 받아들고는 털썩 앉으면서 다시 손을 내밀어 편지를 내놓으라는 시늉을 했다. 시자승이 말이 없으니, 낙포가 문득 때리면서 이르되 "돌아가서 화상께 이 사실을 전하라" 하였다. 시자승이 돌아와서 사뢰니, 협산이 이르되 "그 승이 편지를 보았으면 삼일 안에 올 것이요, 편지를 보지 않았으면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과연 삼일 뒤에 와서 절도 하지 않고 바짝 마주 서니, 협산이 이르되 "닭이 봉의 둥지에 끼어들었다. 같은 종류가 아니니, 나가라" 하였으니, 제각기 무명의 잡초를 헤치고 열반의 서늘한 바람을 쏘이면서 행각한 안목을 등진 것이다.
 낙포가 협산이 보낸 시자승을 보고 돌려보낸 것은 도리어 만류한 것이 되었지만, 이미 온 이는 어찌 빈 손으로 돌아갔겠는가? 또 문정(門庭)이 높고 준엄해서 제각기 손을 쓸 수 없음을 보고 문득 부드러운 계교로 그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멀리서 높으신 도풍을 듣고 달려왔으니 한 번 제접해주십시오" 한 것이다.
 협산에게는 따로이 별다른 노비(鑪韛)가 있었기에 이르되 "눈앞에 그대가 없고, 여기에 노승도 없다" 하였으니, 낙포가 임제에게 오랫동안 참문했었기에 반드시 임제의 바른 영을 행가소 그런 뒤에 종을 뛰어나고 격식을 초월한 방망이를 쓸 것으로 알았는데 낙포가 과연 할을 하였다. 협산은 '그대 일러보라. 이것뿐이냐, 아니면 또 다른 법이 있느냐?' 하는 뜻에서 이르되 "가만히 있거라. 아직은 경솔히 굴지 말라" 하였으니 바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요, "구름과 달은 같지만 개울과 산은 각각 다르다" 한 것은 밀가루는 같으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뜻이요, "천하 사람들의 혀를 끊어버리는 일은 없지 않다" 한 것은 천 길 되는 싸늘한 솔만이 있다는 뜻이요, "혀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할 줄 알게 할 수야 있겠는가?" 한 것은 다시 석순(石笋)이 빼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협산이 일찍이 문정의 시설[門庭施設]과 진리에 들어가는 깊은 이론[入理深談]에 관하여 말한 적이 있는데 낙포는 문정의 시설 쪽이요, 협산은 진리에 들어가는 깊은 이론 쪽이다. 낙포는 흰 물결 구경하기를 탐내다가 노를 잃고 급히 바로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한 격이요, 협산 역시 도리어 임제의 바른 영[正令]을 가지고 그를 위해 설고 껄끄러운 열쇠를 묵은 자물쇠에 던져준 격이라 하겠다. 낙포의 집에는 항상 떫떨한 식초가 있어, 일찍이 먹어서 신맛을 알고 있었으므로 여기에서 굴복한 것이다.
 흥화(興化)는 이르되 "다만 성불할 일만 생각할 일이지 중생에 대한 근심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하였지만, 만송은 이르노니 "그러나 한 그루의 나무만으로는 숲을 이루지 못하니 어찌하리요?" 하노라.
 설두는 이르되 "그 승이 불쌍하고 애통스럽게도 임제를 무색케 했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자식을 기르되 아비에게 미치지 못하면 가문이 당대에 쇠퇴한다" 하노라.
 "그가 이미 구름과 달은 같으니 나 또한 개울과 산은 각기 다르다" 하였으니, 만송은 이르노니 "남산의 가을빛은 기상이나 형세가 서로 높아간다" 하노라.
 "어찌 혀없는 사람이 말을 할 줄 모른다고 하리요?" 하였으니, 만송은 이르노니 "아직은 분부를 전달하는 사인(舍人) 같도다" 하노라.
 "앉을 방석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에게 붙들려서 늘씬하게 한바탕 두들겨맞은 일은 또 어찌하리요?" 하노라.
 "협산은 처방을 아는지라, 틀림없이 밝은 창 밑에서 약봉지를 늘어놓을 것이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남에게 빌려온 근본 처방[本分草料]은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 하노라.
 오조 계(五祖戒)가 "다시 도리를 말해보라" 하고는 문득 나가 버렸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독사의 성품이 영특하기는 하나 토해낼 것이 있다면 독기뿐이니라" 하노라.
 대양 연(大陽延)이 이르되 "그래도 화상께서 증명을 해주셔야지요!"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지란(芝蘭)의 기질은 시들어도 끝내 향기를 뿜는다" 하노라.
 약산의 한 종파는 실로 이어받거나 들기가 어렵고, 운암의 마당쓸기는 먼지가 하늘을 찌르고, 낙포의 굴복은 원한이 끊이지 않거니와 혀없이 말할 줄 알기와 손없이 주먹쓰기에 장점이 있다 하겠다. 설사 방망이와 할이 엇바뀌어 날리더라도 겨우 반쯤만을 곁으로 드는 꼴이니, 이 도를 온전히 붙들어 유지하는 일이라면 천동에게로 미루어야 한다.

송고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흔드는 붉고 화려한 고기여,
 -입으로 향기로운 먹이만을 탐하다가 몸이 그물에 걸리는도다.

 철저히 의지한 데 없이 몸을 돌릴 줄 알도다.
 -오늘은 그물 밑에 끌리는도다.

 혀를 끊는 데도 기술이 있다지만
 -그대는 이제사 눈을 쓸면서 솔씨[松子]를 찾지만…….

 코끝을 흔들어 젓는 데도 묘하고도 신통하다.
 -나는 이미 풀섶을 뒤져 복령(茯苓)을 얻었노라.

 밤이 창 밖에 밝음이여, 달빛이 낮과 같고,
 -세 가지 광명의 힘을 빌리지 않으나

 바위 앞의 마른 나무여, 꽃송이는 항상 봄이로다.
 -한 가락 봄빛의 공[一色(功)] 만은 가만히 누린다.

 혀없는 사람이여, 혀없는 사람이여,
 -코로 대화를 하겠군!

 바른 영을 오롯이 제창하는 한 구절이 친근하다.
 -어두운 데서 주먹을 불끈 쥐어 뽐낸다.

 혼자서 하늘 밑을 거닐으니, 분명하여 또렷하고,
 -참된 광명은 번쩍이지 않는다.

 마음대로 천하를 횡행하니, 즐거워서 흔쾌하다.
 -어지러운 것은 저쪽일 뿐, 나에게야 무슨 관계가 있으랴?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낙포가 임제에게 하직을 고하니, 임제가 이르되 "임제의 문하에 지느러미 붉은 잉어가 있더니,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휘두르면서 남쪽으로 가버렸다" 하였으니, "철저하게 의지한 데 없이 몸을 돌릴 줄 안다"한 것은 임제의 문하에서 이루어진 일로서 지위를 바꾸거나 공부만을 바꿈으로써 완전히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임제의 광록(廣錄)에 이르되 "법을 듣되 의지함이 없는 도인이라야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의지할데 없는 경지에서 생겼거니와 진정 의지할 데 없음을 깨달으면 부처도 얻을 수 없다. 이렇게 볼 줄 아는 자는 진정한 견해를 가진 자이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만일 낙포가 몸을 돌리지 못했다면 어찌 협산에게 할을 할 줄 알았으며 만일 몸을 돌렸다면 어찌하여 마지막에 말이 없었을까? 판정해 보라" 하노라.

 천동은 그(낙포)에게 안목을 갖추었고 기술이 있다고 허락했지만 협산에게도 천하 사람들의 혀를 끊는 기능이 없지 않아서 바른 영에 의거하여 혀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할 줄 알게 하는 일에만 서두르면서 하늘을 찌르는 콧구멍을 가뿐가뿐 흔들어 저었다고 한 것이다.

 불과(佛果)가 협산의 주문 외우는 소리가 이야기 소리 같은 것을 보고 착어(着語)하되 "어디에서 그러한 한 토막의 새끼줄[一落索]을 얻었을까?"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그것이 곧 협산이 혀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는 도리라" 하노라. 불과는 그러한 한 토막의 새끼줄은 없고 단지 천하 사람의 혀를 끊었을 뿐이니, 설사 따로이 몸을 돌리고 기개를 토해내는 경지가 있더라도 꼭 혀없는 사람의 말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러보라. 어떤 것이 이 사람의 경계일까? 송에 이르기를 "밤이 창 밖에 밝음이여, 달빛이 낮과 같고, 바위 앞의 마른 나무여, 꽃송이는 항상 봄이로다" 하였으니, 이것이 혀없는 사람이 누릴 바이다. 한(漢)의 명제(明帝)가 광명전(光明殿)을 지었는데 구슬[珠璣]로써 발[簾箔]을 만들고, 금문지방[金戺]과 옥섬돌[玉堦]로 밤낮으로 항상 밝게 했었다.

 동안 찰(同安察)이 이르되 "바위 앞의 마른 나무에서 길을 어긋나는 이가 많다" 하고, 동산이 이르되 "바로 마른 나무 위에서 꽃을 따야 한다" 하였으니, 이 송의 뜻은 방망이나 할에 높고 험준함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백 자 장대 위에서 다시 한걸음 내디뎌야 비로소 혀없는 사람이 말할 줄 아는 도리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보건대 혀없는 사람이 토해내는 말이라야 비로소 바른 영을 온전히 제창하는 친절한 한 구절임을 알 것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눈이 사해에 높은지라 혼자서 하늘 밑을 걸을 것이다.

 나중에 낙포가 이르되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서 흔연해하더라도 나만은 수긍치 않으리니, 설사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 혀 끊기는 일을 당하여 달게 여기더라도 협산이 이르기를 '위를 향하는 한 구멍이 다시 남았다' 하였으니, 어떤 것이 위를 향하는 한 구멍인가? 혀없는 사람이 말을 할 줄 아니 그대에게 말해주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