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中 제36칙 마조의 불편함[馬師不安]
제36칙
마조의 불편함[馬師不安]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마음도 뜻도 의식도 여의었으나 참구에는 아직도 그런 것[這箇]이 있고, 범부와 성인의 길을 벗어났으나 배움은 이미 지나치게 도도함[太高生]이 되었다. 이글거리는 도가니에서 무쇠맹아주[蒺䔧]가 솟아나고, 검과 창 같은 입과 입술 앞에서는 말을 꺼내기 어렵다. 칼날을 범하지 않고 일러보라.
본칙 |
드노라.
마대사(馬大師)가 편치 않으니,
-꼭 유마거사를 흉내낸 것은 아니겠지?
원주가 문안하되 "요즘 법체 어떠하십니까?" 하였다.
-소임이 바빠서 자주 문안을 못 했지.
마조께서 이르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하였다.
-혹시 힘줄이 떨리는 곽란이 아니었는지…….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사람은 병을 앓으면서도 불사를 하였다. 남악 사(南嶽思) 대사에게 큰 병마[病障]가 생기니, 문득 그 병에 준하여 하나의 화두를 이루어 참구하되 "병은 업에서 생기고, 업은 허망함에서 생기고, 허망함은 마음에서 생기는데 마음은 본래 남이 없으니, 병이 어디에서 생기리요?"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홀연히 회복되었다.
이에 대해 만송은 이르노니, "여래선(如來禪)에서 편안함을 얻었다" 하노라. 서경(西京)의 봉성 심(奉聖深)선사에게 총지(總持)라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작략(作略)으로 병이 나서 게송을 짓고, 이르되 "기운이 끊어지니, 정서(情緖)도 끊어지고 / 뜻[意]을 일으키려니 뜻의 길이 없도다 / 눈을 껌벅일 힘도 없으니 / 여러 해를 문 밖에 나가지 못한다 / 이것이 비록 조사선이기는 하나 / 마차 포대 속의 늙은 까마귀 신세로세" 하였다. 부용 해(芙蓉楷) 화상은 이르되 "이 게송 하나만으로도 자연히 우리 종을 계승한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이미 대단하기는 하나, 다시 다른 일이 있다 해도 무방하리라" 하노라.
마대사는 과연 그러지 않았고, 원주도 감히 병의 더함과 덜함을 직접 묻지 않고, 조심스럽게 묻되 "화상께서 요즘 법체가 어떠하십니까?" 하였는데, 그는 여래선이니 조사선이니 떠들지 않고 다만 "일면불 월면불이니라" 고만 말했으니 일러보라. 그의 뜻이 무엇이던가?
불과가 이르되 "지금 허다한 사람들이 마대사께서 원주를 제접한 일을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눈을 부라리고 이르기를 '여기에 있는 양쪽눈이 바로 일면불 월면불이다' 하고, 어떤 이는 이르기를 '평위산(平胃散)이나 달여오라. 무슨 고집[巴鼻]이 있는가?' 하고, 수(壽)선사는 이르기를 '한 이름도 여래의 명호를 전파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한 물건도 노사나의 몸을 밝히지 않은 것이 없다' 하니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불명경(佛名經)」에 이 두 부처님의 명호가 있는데 대사의 속뜻은 필경 무엇일까?" 하노라.
듣지 못했던가? "망아지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인다" 했는데, 천각(天覺)이 송하되 "습방(什防 : 마조가 태어난 고을)의 망아지가 성질이 사나워서 / 비로의 정수리로 뛰어올라 밟고 다니도다 / 바야흐로 지라[脾]를 앓더니 다시 머리까지 앓건만 / 병들었어도 아직은 살뜰한 정이 있도다" 하였다. 만송은 이르노니, "본 성품을 옮기기는 어려우나 강산은 고치기 쉽다" 하노라.
이는 마조가 병으로 쉬면서도 본분의 일로써 학인들을 제접했음을 송한 것이다. 우리들은 몸이 건강하니, 결코 마조의 뜻을 저버리거나 천동에 대하여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될 것이다.
송고 |
일면불 월면불이여,
-마주 보면 눈이 먼다.
별똥이 튀고 번개가 번뜩인다.
-이미 신라를 지나갔다.
거울은 형상을 대하여 사사로움이 없고,
-한 점도 속이기 어렵다.
구슬은 소반 위에서 스스로 구른다.
-움켜쥐려 해도 머물지 않는다.
그대 보지 못했는가? 망치 앞에 백 번 단련한 금이요,
-병 · 동이 · 팔찌 · 비녀 · 권(券) · 발우 · 소반이라.
재단사의 잣대[刀尺] 밑엔 한 베틀의 비단이라.
-이불 · 요 · 옷 · 관 · 옷깃 · 소매라.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이 일면과 월면, 두 부처님은 마치 별똥이 튀고 번개가 번뜩이는 것 같아서 생각이나 말을 용납하지 않는다. 옛날 진왕의 궁에서 옥으로 거울을 만들어 모든 신하들을 비추면 간 · 담 · 장부(臟腑)가 모두 나타났었다. 또 여우와 너구리가 사람이 되었어도 거울에는 오직 본래의 모습만이 나타나니, 이는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물류상감지(物類相感志)」에 이르되 "낭풍포(閬風浦)에서 구슬이 나는데 그릇에 두면 스스로 구른다. 그래서 그것을 '달리는 구슬[走珠]'이라 한다" 하였다.
이는 마조의 마음이 묵은 거울과도 같고, 기개가 달리는 구슬과 같아서 그림자나 자취를 남기지 않음을 송한 것이다. 백번 단련한 금은 작가(作家)의 망치에 달려 있고, 한 베틀의 비단은 솜씨좋은 재단사의 잣대에 달렸다는 것이다.
어떤 승이 운암(雲岩)에게 묻되 "크게 보임(保任)하는 사람은 그것과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하니, 운암이 이르되 "한 베틀의 비단이 한 조각인가, 두 조각인가?" 하였는데, 동산이 대신 이르되 "마치 사람에게 나무를 접한 것 같으니라" 하였으니. 이는 경계와 정신이 만나고, 지혜와 이치가 명합하고, 하늘색과 물색이 함께 가을이고, 인군과 신하의 도리가 합하는 도리이다.
비단이 재단 칼을 만나면 베어지고 끊어짐이 사람을 말미암고, 금이 망치를 만나면 단련함이 자기에 달려 있다. 일러보라. 납승의 분수에는 어떤 일을 성취하겠는가? 일면불 월면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