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37칙 위산의 업식[潙山業識]

쪽빛마루 2016. 4. 15. 16:18

제37칙

위산의 업식[潙山業識]

 

 

 대중에게 보이시다.

 밭가는 농부의 소를 몰아서 콧구멍을 끌어돌리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아서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이보다 독한 손을 쓸 자가 있느냐?

 

본칙

 드노라.

 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묻되 "어떤 사람이 와서 묻기를 '모든 중생은 다만 업식이 끝없이 망망해서 가히 의거할 근본이 없습니다' 하거든 그대는 어떻게 징험하겠는가?" 하니,

 -그 말이 바로 관가의 말이니 낙인을 찍을 필요는 없어라.

 

 앙산이 대답하되 "만일 어떤 승이 오거든 '아무개야!' 하고 불러서

 -뒤통수의 한 망치, 온 곳을 모르겠네.

 

 승이 고개를 돌리거든

 -정수리 위에서 삼혼(三魂)을 떼내어버렸다.

 

 이르기를 '이것이 무엇인고?' 해서,

 -화로와 냄비가 식기 전에 한 번 더 넣지.

 

 그가 머뭇머뭇 망설이거든

 -발바닥 밑에다 일곱 혼 구멍을 뚫었다.

 

 그에게 이르기를 '업식이 끝없이 망망할 뿐 아니라 또한 가히 의거할 근본조차 없도다' 하겠습니다" 하니,

 -산 채고 잡고 산 채로 붙들었다.

 

 위산이 이르되 "좋은 말이다" 하였다.

 -충고하는 입에서 친근한 말이 나온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어떤 승이 운암(雲岩)에게 묻되 "「화엄론(華嚴論)」에 이르기를 '무명주지번뇌(無明住地煩惱)로써 모든 부처님의 부동지(不動智)를 삼는다' 하였는데, 이치가 지극히 깊고 현묘하여 깨달아 통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니, 운암이 이르되 "이것은 가장 분명한 도리여서 쉽게 알 수 있느니라" 하였다. 때마침 동자가 마당을 쓸고 있었는데 부르니, 동자가 고개를 돌렸다. 운암이 가리키면서 이르되 "이것이 부동지가 아니겠느냐?" 하였으니, 앙산이 승을 불러 고개를 돌린다 한 것이 바로 이 경지이다. 운암이 다시 동자에게 묻되 "어떤 것이 너의 불성인가?" 하니, 동자가 좌우로 두리번거리면서 망연히 떠났다. 운암이 이르되 "이것이 무명주지번뇌가 아니겠는가?" 하였으니, 만일 이것을 안다면 당장에 성불하리라.

 동자가 어리둥절해 한 것이나 앙산의 승이 머뭇머뭇 망설인 것이 다르지 않고 무명주지번뇌와 업식이 망망한 것이 또한 같으니, 운암과 앙산이 승을 감별하고 사람을 징험함에 분명함이 이와 같거니와 만송이 보는 견해는 그렇지 않노니 "동자와 그 승은 모두가 철저히 부동지인데 운암과 앙산은 끝까지 업식이 망망하다" 하노라.

 누군가가 그 도리를 판단해내면 바로 천동을 보리니, 그는 이렇게 송했달.

 

송고

 한 번 불러 고개를 돌리니, 나를 알겠는가?

 -진짜 날도둑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희미한 담쟁이덩굴 밑의 달이 또 갈구리를 이루었네.

 -몸은 숨겼는데 그림자가 드러났다.

 

 천금 같은 아들이건만 몰락의 길에 나서니,

 -병풍이 다 찢어졌어도 뼈대는 여전히 남았겠지.

 

 끝없는 궁상길[窮途]에 허다한 근심 많아라.

 -작은 그릇인지라 큰 분량을 담지 못한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백장이 상당하자 대중이 바야흐로 모이니 주장자로 일시에 내쫓았다가 다시 불렀다. 대중이 고개를 돌리니, 백장이 이르되 "이것이 무엇인고?" 하였는데, 제방에서는 이것을 백장의 하당법문[下堂句]이라 한다. 잘 참구하는 게 좋겠다. 왕형공(王荊公 : 安石]이 이르되 "나는 설봉에게 한 말씀을 얻어 재상이 되었노라" 하니, 사람들이 굳이 청하매, 공이 이르되 "그 노인이 항상 사람들을 보면 '이것이 무엇인고?' 하더라" 하였다.

 이 한 구절은 '승을 불러 고개를 돌린 일'과 '이것이 무엇인고?' 한 일을 송한 것이니, 나를 알겠는가[識我不] 할 때의 불(不)자는 보(甫)와 구(鳩)의 반절, 즉 '부'라 읽어야 하며, 뜻은 불(弗)과 같으니 나를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하는 뜻이다.

 앙산은 의리없는 손으로 방비 없는 집을 쳤는데 그 승이 만일 돌불[石火] 밑에서도 깜박 알아본다면 가히 시끄러운 장터에서 천자를 알아볼 줄 안다 하겠거니와 만일 머뭇머뭇 망설이다가 나서지 못하면 희미한 담쟁이덩굴 밑의 달이 또 갈구리를 이루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황벽이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마자 주장자로 쫓아버렸다가 다시 부르니, 대중이 고개를 돌리자 황벽이 이르되 "달은 당긴 활[彎弓] 같은데 비는 적고 바람은 많다" 하였는데, 이 송의 뜻은 이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석실 선도(石室善道)가 앙산과 더불어 달구경을 하는데 앙산이 묻되 "달이 뾰족할 때엔 둥근 모습이 어디로 가며 둥글 때엔 뾰족한 모습이 어디로 가는가?" 하니, 석실이 이르되 "뾰족할 때엔 둥근 모습이 숨고, 둥글 때엔 뾰족한 모습이 그대로 있다" 하였고, 운암은 이르되 "뾰족할 때엔 둥근 모습이 있고, 둥글 때엔 뾰족한 모습이 없다" 하였고, 도오(道吾)는 이르되 "뾰족할 때에도 뾰족하지 않고, 둥글 때에도 둥글지 않다" 하였는데, 뾰족한 모습이 곧 갈구리 모습이다.

 낙빈왕(駱賓王)의 시에 이르되 "이미 둥글기가 거울 같거니, 어찌 다시 갈구리같이 굽어질 필요 있으랴?" 한 것이 있고, 화엄종에서는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 비밀하여 숨으나 드러나나 모두 성립된다)'이라고 이름하였고, 또 경전에 이르되 "10지보살이 법성을 보되 마치 얇은 비단을 통해 달을 보는 것 같다" 하였으니, 비단 밑의 달[羅月]이라고 썼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백의 시에 "담쟁이 덩굴 밑의 달[羅月]은 아침 거울에 걸렸고, 솔바람은 밤의 거문고 줄에서 운다" 하였으니, 역시 담쟁이덩굴 쪽이 멋이 있다.

 천동은, 몽롱한 새 달이 연기 같은 담쟁이 덩굴에 숨어서 비추니 또렷하지는 못하나 이미 그 윤곽[圭角]은 드러났다는 점에서 그 승이 반쯤은 밝고 반쯤은 어두우며, 살아 있는 듯도 죽은 듯도 하다는 점을 송해낸 것이다. 만송은 마치 염철판관(鹽鐵判官 : 계산에 능숙한 관리)과 같노니 진실로 천동은 깊고 세밀한 바늘과 실을 가지고 있지만 만일 실이 끊어진다면 비단에 새기는 문제는 끝내 이루기 어려웠으리라 하노라.

 밀사백(密師伯)이 동산과 길을 가다가 흰 토끼가 지나가는 것을 보자 이르되 "준수하도다" 하니, 동산이 묻되 "왜 그런가?" 하고 다그쳐 물었다. 밀사백이 대답하되 "마치 백의(白衣)의 몸으로 재상의 직위를 받은 것 같소이다" 하니, 동산이 이르되 "건방지게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하였다. 밀사백이 도리어 묻되 "그대는 어떻게 여기는가?" 하니, 동산이 이르되 "여러 대의 영화가 잠시에 몰락하도다" 하였다.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상림부(上林賦)에 이르되 "천금 같은 아들은 마루 끝[垂堂]에 않지 않는다" 하였고, 완적(阮籍)은 항상 시거(柴車 : 허술한 수레)에 앉아 길을 가다가 험궁한 곳을 만나면 문득 통곡을 하고 돌아왔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길을 찾아 집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대로가 몸을 돌이켜 아버지께 돌아가는 도리라" 하노라. 듣지 못했는가? "한 생각 광채를 되돌리면 문득 본래 얻었던 것과 같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부동지가 중생들의 처지에서는 업식이 망망하다고 불리우는가? 등(燈)이 곧 불인 줄 벌써 알았으면 밥이 익은 지는 벌써 오래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