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中 제38칙 임제의 참사람[臨濟眞人]
제38칙
임제의 참사람[臨濟眞人]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도적을 아들로 여기고 종을 서방님으로 오인하도다. 깨진 나무표주박이 어찌 선조의 해골바가지일 리 없으며, 나귀의 안장 역시 아버진의 아래턱이 아니다. 국토가 쪼개지고 땅[茅土]이 나뉠 때 어떻게 주인을 가려야 될꼬?
본칙 |
드노라.
임제가 대중에게 보이되 "한분의 지위없는 참사람[無位眞人]이 있어
-터를 잡고, 다리를 안정시켰다.
항상 여러분의 얼굴에서 출입한다.
-등 뒤의 것, 척[聻].
초심자로서 증거를 잡지 못한 초심자는 살펴보라" 하니,
-안목은 갖추었는가?
이때 어떤 승이 나서서 묻되 "어떤 것이 지위없는 참사람입니까?" 하였다.
-말귀는 알아듣느냐?
임제가 선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잡으니,
-그대는 잠시 모른 체 하라.
다시 그 승이 머뭇머뭇 망설이거늘
-그 참사람을 둔하게 만드는군!
임제가 확 밀어놓으면서 이르되 "지위없는 참사람이라니, 무슨 똥 말리는 막대기[乾屎橛]냐?" 하였다.
-흡사 바리때도 만져보지 못한 자가 시장하지 않다고 하는 꼴이로군!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임제가 「광어(廣語)」에서 이르되 "5온의 몸밭[身田 : 몸] 안에 지위없는 참사람이 있어 당당하게 드러나 털끝만치의 간격도 없거늘 어찌하여 알아보지 못하는가?" 하였다. 마음이란 법은 형상이 없으되 시방에 꿰뚫어 통했나니, 이미 시방에 궤뚫어 통했다면 5온의 몸밭 안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얼굴에서 출입하니 증거를 잡지 못한 초심자들은 살펴보라" 하였으니, 만송은 이르되 "지위없는 참사람이 대중을 살펴보는가, 대중이 지위없는 참사람을 살펴보는가?" 하노라.
때에 어떤 승이 묻되 "어떤 것이 지위없는 참사람입니까?" 한 것에 대해서, 제방에서는 "그 말소리까지도 내쳐야 할 일이다" 하였는데 나귀를 탄 이가 자리 밑을 보지 못하는 꼴이 되었음에야 어찌하겠는가. 임제가 선상에서 내려와서 멱살을 움켜쥐고서 이르되 "일러보라. 참사람이 어디에 있는고? 뺨 한대 갈겨줌이 좋겠다" 하였다. 그 승이 머뭇거리면서 말하되 "참사람이 없어서 아깝습니다" 하니, 임제가 확 밀어 풀어주면서 이르되 "지위없는 참사람이라니, 무슨 똥 말리는 막대기[乾屎橛]냐?" 하였으니, 빤히 마주 보면서 숨기는 짓이로다.
설봉이 이르되 "임제는 마치 백주의 날도둑 같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잡혔다" 하노라. 설두가 이르되 "도대체 능숙한 도적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해야 되는데 그는 이미 설봉에게 들켰으니, 능숙한 솜씨는 아니다"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대중을 불러 이르되 "설두가 오늘 여러분들의 눈알을 바꾸어주리니, 그대들 만일 믿지 못하겠거든 제각기 방에 돌아가서 더듬어보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설두는 눈썹까지도 몽땅 잃어버렸다" 하노라. 도적의 손아귀에서 도둑질하는 법을 알려면 천동에게 물어보아야 될 것이다.
송고 |
미혹과 깨달음이 서로 거슬리나
-털끝 하나 막힌 것 없다.
묘하게 전하여 간결하다.
-이미 바람과 먼지에 그을렸다.
봄이 백 가지 꽃봉오리를 터트림이여, 한 번에 불고,
-놓아버리니 위태로워지겠고
힘이 아홉 소를 끌어 돌이킴이여, 한 번에 당기도다.
-거두어들이자니 너무 빠르다.
그러나 진흙과 모래는 뚫어도 열리지 않음을 어찌하랴.
-내 안목이 본래 밝았으되
감로의 샘눈[泉眼]을 분명히 막아버렸네.
-스승 때문에 삿되어졌다.
갑자기 샘줄기 터져 어지러이 넘치면
-선상을 흔들어 쓰러뜨린 일 조금도 이상하다 할 것 없어라.
위험하다 하리라.
-주장자를 던지면서 이르되 "한 수 놓쳤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원각경(圓覺經)」에 이르되 "마치 미혹한 사람이 4방을 바꾸어 처하되 그 실제의 방위는 본래 옮기지 않는 것같이 깨달았을 때에도 다만 예대로이다" 하였다. 「종경록(宗鏡錄)」에 이르되 "그 동안은 깨달음을 미혹했는지라 미혹한 듯하고, 오늘에 미혹을 깨달았음은 깨달음이 아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참으로 묘하게 전하여 간결하고,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리면 붉은 살덩이가 그대로 지위없는 참사람이요, 알아보지 못하면 참사람이 전과 같이 얼굴을 향해 드나들 것이다.
그 승에게고 있건만 단지 드러낼 줄 모르고 활용할 줄 몰라서 도리어 참사람의 종이 되어 말을 전하고 말씀을 보내고 안부를 묻고 소식을 묻다가 마침내는 임제로 하여금 높은 데서 내려와 낮은 데로 가서 본체를 드러내어 완전히 작용해야 하는 수고를 하게 하였다. 그 승도 이미 손 쓸 길이 없게 되고, 임제 또한 몸을 추슬러 뒤돌아볼 겨를도 없어 수저도 들어올리지 못하게 된 것을 보고는 문득 이르되 "지위없는 참사람이라니, 그 무슨 똥 말리는 막대기 같은 소리인가?" 하였다.
이는 능히 놓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며 불러서는 모으고 할해서는 흩어뜨리는 가풍이니, 마침내 말[句] 밑에 죽은 듯이 얽매여서 사람들의 가슴에 병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천태가 이르되 "한 번 불어 세계가 이루어지고, 한 번 할하여 세계가 무너진다" 하였고, 또 이르되 "불어야 할 때에 할을 하고, 할을 해야 할 때에 분다"고도 하였다.
「열자(列子)」에 말하기를, 공의자(公儀子)는 힘이 세기로 알려졌기에 주나라의 선왕(宣王)이 예를 갖추어 초빙했다. 그런데 이르고 보니, 나약한 사내였다. 왕이 묻되 "경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하니, 대답하되 "신은 능히 봄 벌레의 다리를 꺾을 수 있고, 가을 매미의 날개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였다. 왕이 얼굴을 붉히고 다시 묻되 "나의 힘은 능히 무소의 가죽을 찢을 수 있고, 아홉 마리 소의 꼬리를 뒤로 끌 수 있는데도 오히려 약해서 유감인데 그대은 이와 같으면서도 힘이 세다고 알려진 까닭은 무엇인가?" 하였더니, 대답하되 "신의 명성은 그 힘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그 힘을 활용하는 데 있습니다" 하였다. 이는 임제의 놓고 거두는 힘이 자재함을 송한 것이다.
법안이 우물을 파는데 모래 때문에 샘눈이 막히는 일이 생겼다. 이에 곁의 승에게 묻되 "샘눈이 막힌 것은 모래가 막았기 때문이거니와 도의 눈이 트이지 않는 것은 어떤 것에게 막힘을 당해서인가?" 하니, 승이 대답이 없거늘 스스로 대답하되 "눈에 막혀서이니라" 하였으니, 일러보라. 그 승이 샘눈을 막았는가, 임제가 샘눈을 막았는가?
갑자기 물줄기가 튀어나올 때엔 어떠하겠는가? (주장자를 들었다가 자리에서 내려오시니, 대중이 일시에 흩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