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中 제44칙 흥양의 묘시[興陽妙翅]
제44칙
흥양의 묘시[興陽妙翅]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사자가 코끼리를 치고, 묘시(妙翅 : 긴나라)가 용을 움켜잡는다. 날아다니거나 달리는 무리들도 오히려 군과 신을 분별하거늘 납승의 가문에는 의당 손과 주인의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늘의 위엄을 거역하는 사람은 어떻게 재단(裁斷)해야 할까?
본칙 |
드노라.
어떤 승이 흥양청부(興陽淸剖)에게 묻되 "사갈(娑竭) 용왕이 바다에서 나오니, 건곤이 고요한데 마주 보면서 다가설 때의 일이 어떠합니까?" 하니,
-비늘이 있는 곡선(曲鱔)이요, 뿔을 인 이추(泥鰌 : 미꾸리)로다.
흥양이 이르되 "묘시조(妙翅鳥) 왕이 우주에 나서니, 거기에 머리를 내밀 자 누구인가?" 하였다.
-날개를 편 붕새는 육합(六合)의 구름 위로 날아올랐다가 바람을 움키면서 사명(四溟)의 바다에서 물장구를 친다.
승이 다시 이르되 "홀연히 머리를 내미는 자를 만날 때엔 어떠합니까?" 하니,
-그대 쓸개가 터질 것을 장담하노라.
흥양이 이르되 "새매가 비둘기를 덮치듯 하리라. 그대 보지 못했는가? 어루(御樓)* 앞에서 증명시키고야 비로소 참됨을 아느니라" 하였다.
-좋은 권고를 듣지 않는구나!
승이 다시 이르되 "그렇다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세 걸음 물러서야 되겠습니다." 하니,
-다시 두번째 방망이를 기다리는군!
흥양이 이르되 "수미좌(須彌座) 밑의 검은 거북[烏龜子]에게 거듭 이마에 흔적이 나기를 기다리지 말라 하라" 하였다.
-두 번 죄를 범하면 용서치 않는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영주(郢州) 흥양산(興陽山) 청부(淸剖) 선사는 대양 명안(大陽明安)의 법을 이었는데 명안 회하의 15멷이 모두 스승보다 먼저 입적하였다. 나중에 부산 원감(浮山圓鑑)으로 인하여 투자 의청(投子義靑)화상을 얻으니 흥양은 15인 중의 한 사람이며, 투자의 사형이다.
그 승이 물은 경지는 마치 의도 뇌도차(牢度差)와 사리불이 급고독원(給孤獨園)을 창건할 때에 겨루던 것과 같으니, 뇌도차가 사나운 용으로 나타나서 사리불을 상하려 할 때, 사리불은 묘시조로 나타나서 훔켜잡고 뜯어먹어버렸다. 용은 비늘 가진 무리에서 으뜸이지만 묘시조가 용만을 밥으로 삼는데야 어찌하랴? 사갈(娑竭)은 범어이니, 번역하면 바다[海]가 된다.
조(趙)의 혜문왕(惠文王)과 효성왕(孝成王)의 재상이었던 평원군 조승(趙勝)이 집에다 이층 누각을 지었는데, 민가를 굽어보게 되었다. 민가에 앉은뱅이가 있었는데 미인이 내려다 보고 비웃었다. 앉은뱅기가 미인의 목을 베어달라고 청하니 평원군은 대답만 하고 시행치 않으매, 식객이 반쯤 떠나버렸다. 평원군이 죄인의 머리를 베어 대신하였으나 식객들은 굳이 사양하고 모이지 않았다. 마침내 미인의 목을 베어 어루 앞에다 달아서 진실임을 징험시키니, 돌 만에 식객이 모두 모였다.
이 동상(洞上)의 가풍은 봉과 할을 직접 행사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곁에서 온 이를 빌어 소식 통하기를 요하니, 그 승에게는 죄를 무겁게 매기지 않음으로써 바야흐로 돌아설[廻互]수가 있었던 것이다. 알겠는가? 너그러운 형벌[蒲鞭]로 부끄러움을 가르치니 더욱 범하기 어려워했고, 땅에 금을 그어 감옥을 삼으니 차마 속이지 못했다. 관법(官法)은 화로와 같은데 백성의 마음은 쇠와 같으니, 천동은 이로부터 망치를 들었다.
송고 |
실올이 내려오니
-왕명을 들으라.
호령이 나뉜다.
-어김이 있는 자는 벤다.
나라 안에는 천자요,
-일만 나라에 군림한다.
진중에서는 장군이라.
-혼자서 한 지방을 진압한다.
우레가 울리기 전에 개구리 깨어나니
-오경 첫새벽에 일어났건만,
어찌 풍류가 뜬구름 막는 줄을 알았으리오?
-벌써 밤부터 다니는 이가 있었도다.
베틀[機] 밑의 면면이 이어짐이여, 스스로 금바늘[金針]과 옥실[玉線]이 있고,
-눈 갖춘 이는 속이기 어렵다.
인장[印] 앞이 활짝 트임이여, 원래 조전(鳥篆)도 충전[蟲文]도 없다.
-글자 뜻이 환히 빛나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칙어[勅]가 천하에 퍼지지만 왕이 돌아 다니지는 않는다. 「예기(禮記)」 치의편(緇衣篇)에 이르되 "왕의 말이 실[絲] 같으면 그것이 퍼져나와서는 벼릿줄[綸] 같이 되고, 왕의 말이 벼릿줄 같으면 그것이 퍼져나와서는 동아줄[綍] 같이 된다. 그러므로 큰 사람은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갈이 바다에서 나오자 묘시가 권세를 시행하니, 호령이 이미 나뉘고 군과 신이 자리를 정한 것이다. 풍당(馮唐)이 이르되 "옛날엔 왕이 장군을 싸움터로 보낼 때엔 꿇어앉아 수레를 밀면서 이르기를 '문턱[閫] 안은 과인이 제어할 것이니 문턱 밖은 장군이 제어해주시오' 한다" 하였고, 위소(韋昭)가 이르되 "이는 성곽 문의 문턱이다" 하였다.
"우레가 울려 개구리 깨어난다" 함은 이 승이 너무 지나치게 탐색하는 태도를 송한 것이니, 경칩(驚蟄)이 든 2월을 기다리지 않고, 미리부터 일어난 용은 뜬구름이 용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묘시조의 위풍 때문에 길이 막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모르는 결에 머리를 부딪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르되 "승의 말이 실수를 범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흥양의 기봉(機鋒)을 드러낼 수 있었으리오? 하는 뜻이라" 하거니와 "울리기 전에"와 "어찌 알았으리오?" 한 부분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베틀[機] 밑의 면면이 이어짐이여"에서 기(機)는 기봉이란 뜻으로 쓴 기(機)가 아니라, 비단 베틀 밑에는 반드시 재주있는 아녀자의 바늘과 실이 있다는 뜻이다. 설암(雪岩)선사가 일찍이 이르되 "구멍 작은 금바늘이 코끝을 드러내자, 꼬리 긴 옥실[玉線]이 묘하게 관문을 통과한다" 하였으니, 이는 동산의 혈맥은 그 경지의 사람이 아니면 쉽게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을 찍을 때엔 바람결에다 찍지 말것이니, 도장을 허공에다 찍으면 문채가 나타나지 않는다. 창힐(蒼頡)이 별들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우러러 관찰하고, 거북의 문채와 새의 발자취의 형상을 구부려 관찰하고는 갖가지 아름다운 모습들을 널리 채집하여 글자를 만들었다. 나중에 과두문(蝌蚪文)으로부터 두 가지 전(篆)자가 생겼으니, 주선왕(周宣王)의 태사(太史)인 주(籀)가 대전(大篆)을 만들고, 진의 승상[秦相], 이사(李斯)가 소전(小篆)을 만들었다. 지금 쓰는 인전(印篆 : 도장에 쓰는 전자)은 방전(方塡)이라 한다.
일러 보라. 흥양이 획을 새겼느냐? 흰 옥은 본래 티가 없는데 문채를 새겨서 군왕의 덕을 손상시키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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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등회원(五燈會元) 14권에는 '촉루(髑髏)'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