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47칙 조주의 잣나무[趙州栢樹]

쪽빛마루 2016. 4. 20. 05:59

제47칙

조주의 잣나무[趙州栢樹]

 

 대중에게 보이시다.

 뜰 앞의 잣나무, 장대 끝의 깃발과 바람이라. 한 송이의 꽃으로 끝없는 봄을 이야기하고, 한 방울의 물로 큰 바닷물을 설명한다. 오랫만에 태어난[間生] 옛 부처[古佛 :조주]가 예삿 무리를 훨씬 뛰어넘어서 말과 생각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으니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꼬?

 

본칙

 드노라.

 어떤 승이 조주에게 묻되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달마[多羅 : 달마의 본명]를 부질없이 들먹이는구나!

 

 조주가 이르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하였다.

 -구운 벽돌이 밑바닥까지 얼어붙었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어느날 조주가 상당하여 이르되 "이 일은 분명해서 동떨어지게 큰 사람도 그 속을 벗어날 수 없다. 노승이 위산에 이르렀을 때, 어떤 승이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위산이 이르기를 '나에게 그 평상을 건네다오' 하였다"고 한다. 만일 본분종사일진대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사람을 제접해야 한다.

 어떤 승이 묻되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조주가 이르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하였다. 승이 이르되 "화상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마소서" 하니, 조주가 이르되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그렇다면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 조주가 이르되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하였다.

 양주(楊州) 성동(城東)의 광효사(光孝寺) 혜각(慧覺)선사가 법안(法眼)에게 갔더니 법안이 묻되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였다. 혜각이 대답하되 "조주에게서 옵니다" 하였다. 법안이 다시 묻되 "들으니, 조주에게 잣나무 화두가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하니, 혜각이 대답하되 "그런 일 없습니다" 하였다. 법안이 다시 묻되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어떤 승이,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냐고 물으니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니라' 했다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없다고 하는가?" 하니, 혜각이 이르되 "스승(先師)께서는 실로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화상께서는 우리 스승을 비방치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제방에서는 그를 두고 각철취(覺鐵觜 : 쇠부리 혜각)라 부르게 되었다.

 승묵(勝默) 화상은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이 말씀을 거쳐서 잘못된 소견을 씻어주었으니 일찍이 이르되 "삼현(三玄)과 오위(五位)가 모두 그 가운데 있느니라" 하였다. 진여 방(眞如方)선사가 이 화두를 깨닫고 곧장 방장에 들어가서 낭야 광조 혜각(瑯琊廣照慧覺)선사를 뵈니, 광조가 묻되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였다. 진여가 이르되 "밤새도록 잠자리가 따뜻했는데, 한 번 깨고 보니 먼동이 텄습니다" 하매, 광조가 옳다고 여겼다. 진여가 이 화두를 깨친 과정이 가장 좋았으며 천동이 이 화두를 송한 것 또한 밉지 않다. 천동의 송은 이렇다.

 

송고

 언덕 같은 눈썹에는 흰 눈이 걸쳤고

 -소금을 밥만치나 많이 먹었군!

 

 강 같은 눈동자에는 가을 기운이 서렸다.

 -한 점도 속이기 어렵다.

 

 입 같은 바다 어귀에는 격랑이 일고

 -말이 있으면 종지는 아니요.

 

 혀 같은 당도리는 물 위를 가로지른다.

 -말이 없으면 범부도 성인도 끊어진다.

 

 난리를 평정시키는 솜씨요,

 -그래봐야 잣나무요.

 

 태평을 이룩하는 계교로다.

 -그래봤자 잣나무다.

 

 늙은 조주, 늙은 조주여!

 -어찌하여 대꾸가 없는가?

 

 총림을 교란시키기를 끝내 쉬지 않는구나.

 -천동은 둘째가 되리라.

 

 공연히 헛수고를 함이여, 수레를 만들어 바퀴를 맞추는 일이요,

 -장차 사용하면 좋을 둣한데…….

 

 본래 재주가 없음이여, 골짜기를 막고 구렁텅이를 메꾸도다.

 -풍류를 사는 데 돈이 필요치 않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7백 갑자*를 지내노라니, 경험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언덕 같은 눈썹에 눈발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기에 옛사람이 눈썹과 눈을 일러 바위와 번개[岩電]라 했는데, 천동은 강 같은 눈동자[海眸]와 입 같은 바다 어귀[海口]라는 고사를 써서 네 구절의 게송을 만들었다. 마치 산 조주가 잣나무를 가리키는 모습을 보는 것 같으니 눈썹은 갈대꽃 핀 언덕과 같고 눈은 가을물의 푸르름 같다는 것이다. 옛 시구에 "들의 물은 승의 푸르른 눈동자보다 맑고, 먼 산은 부처의 검푸른 머리보다 진하다" 하였다.

 입 같은 바다 어귀에 파도가 일고, 혀 같은 당도리가 물결 위를 가로지른다 한 것은 물결은 배를 뒤집을 수도 있지만 배는 물결을 타고 지난다는 뜻이다. 한 말씀이 족히 나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한 말씀이 능히 나라를 패망시키기도 하니, 그러기에 잇달아서 난리를 평정시키는 솜씨요, 태평을 이룩하는 계교라 하였다.

 조주가 일찍이 이르기를 "때로는 한 포기의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의 기능을 삼고, 때로는 장육금신으로 한 포기의 풀의 기능을 삼는다" 하였는데, 이 말씀이 사람들의 의혹을 끊어주기 위한 것이건만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리어 의혹을 내던가? 조주가 어찌 총림을 교란시키려 했겠는가?

 사람들은 조주가 남의 물음에 답하되 말이 떨어지자 척척 대꾸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마치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는 것 같다' 하거니와 천동만은 그가 80세에도 행각을 했다는 사실과 '세살 먹은 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점이 있으면 나는 그에게 배우리라' 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는 곧 한가한 때에 준비를 해두었다가 급할 때에 쓰는 가풍이다. 일찍이 고생을 겪은 이가 아니면, 와륜(臥輪)선사가 이르기를 "와륜에게 재주 하나가 있어 / 능히 백 가지 생각을 끊는다 / 경계를 대하여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 보리가 나날이 자라난다" 한 것에 대하여 육조가 이르기를 "혜능은 재주가 없어서 / 백 가지 생각을 끊지 않는다 / 경계를 대하면 마음을 자주 일으키거니 / 보리가 어떻게 자라나리요!" 한 도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골짜기를 막고 구렁텅이를 메꾸는 일은 또 어찌 하겠는가? 지금 모두를 서호(西湖)에다 던지면 짐을 덜은 맑은 바람을 누구에게 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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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주는 120세를 누렸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