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54칙 운암의 대비[雲岩大悲]

쪽빛마루 2016. 4. 26. 05:09

제54칙

운암의 대비[雲岩大悲]

 

 

 대중에게 보이시다.

 팔면이 영롱(欞櫳)하고 시방이 활짝 트였다. 어느 곳에서나 광명을 뿜어 대지를 흔들고 어느 때나 묘한 신통을 부린다. 일러보라. 어떻게 해야 드러내보이겠는가?

 

본칙

 드노라.

 운암(雲巖)이 도오(道吾)에게 묻되 "대비보살이 그렇게 많은 손과 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니,

 -그대가 그렇게 묻는 뜻이 무엇인가?

 

 도오가 이르되 "어떤 사람이 밤에 손을 뻗다가 무심히 베개를 만지는 것 같으니라" 하였다.

 -한바탕의 신통이라 예사로운 짓과는 같지 않다.

 

 운암이 이르되 "알았습니다" 하니,

 -아직은 밝음에 속지 말아야 한다.

 

 도오가 이르되 "그대는 어떻게 알았는가?" 하였다.

 -과연 놓치지 않는구나!

 

 운암이 이르되 "온몸에 두루한 손과 눈입니다" 하니,

 -빈틈이 없지.

 

 도오가 이르되 "이르기는 대단하게 일렀으나 겨우 팔분밖에 되지 않는다 하였다"

 -제가 혀가 짧았나 봅니다 할 것을.

 

 운암이 다시 이르되 "사형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니,

 -이치에 맞으면 곧 나간다.

 

 도오가 이르되 "온몸이 통째로 눈과 손이니라" 하였다.

 -막힌 곳이 없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이고(李翺)가 아호(鵝湖)에게 묻되 "대비보살은 천 개의 눈과 손을 무엇에 씁니까?" 하니, 아호가 이르되 "금상(今上)께서 공을 쓰는 뜻은 무엇이요?" 하였다. 옛날 화복(貨卜)이라고 부르는 눈먼 산인(山人)이 있었는데 비가 온 뒤에 길이 질건만 희고 고운 신을 신고 저자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산인에게 묻되 "눈이 멀었는데도 어찌하여 진흙에 신을 버리지 않았는가?" 하니, 산인이 지팡이를 들어 보이면서 이르기를 "지팡이에 눈이 있소" 하였다. 이 산인의 일로 증험하건대 밤에 목침을 더듬어 찾을 때엔 손에 눈이 있고, 밥을 먹을 때엔 혀끝에 눈이 있고, 말소리를 들어 사람을 알아볼 때엔 귓속에 눈이 있다.

 소자 첨(蘇子瞻)이 귀먹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엔 글씨만을 쓰고는 다시 웃으면서 이르되 "나와 저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나는 손으로 입을 삼고 저 사람은 눈으로 귀를 삼는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6근이 서로 작용한다 하신 말씀이 실로 속임이 없다 하겠다.

 무진거사(無盡居士)가 지은 노주(潞州) 자암사(紫岩寺) 대비전(大悲殿) 기문에 「대비경(大悲經)」과 「능엄경(楞嚴經)」을 들어서 가장 상세하다 하였다. 일찍이 어떤 책을 보니 대비보살이 옛날에는 묘선공주(妙善公主)였다는 사실을 하늘 사람이 도선(道宣)율사에게 일러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32응신과 백억 화신이란 것도 보는 이에 따라 같지 않으니 제각기 본 바에 따랐을 뿐이다. 천각(天覺 : 無盡의 字)이 또 이르기를 "천 개의 손이란 미혹한 이를 이끌고 중생을 제접함이 많다는 뜻이요, 천 개의 눈이라 함은 광명을 놓아 어둠을 비춤이 넓다는 뜻이다. 만일 중생이 없고 진로(塵勞)가 없다면 한 손가락도 쓸모가 없거니 하물며 천만 개의 팔이겠는가? 눈동자 하나도 필요치 않거니 하물며 천만 개의 눈이겠는가?" 하였다. 온 몸에 두루함[徧身]과 온몸이 통째[通身]로는 하필(何必)과 불필(不必)의 차이여서 깊고 얕음이 있는 듯하나 실은 손해도 이익도 없다.

 운거(雲居)가 대중에게 보이되 "노승이 20년 전에 삼봉암(三峰菴)에 있을 때 흥화(興化)가 와서 이르기를 '시험삼아 한가지 물어서 염탐거리[影草]로 삼으려 할 때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는데 노승이 그때에 기지[機]와 생각이 둔하여 대답을 못 했으니, 그의 물음이 너무나 기묘해서 그를 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가 이르기를 '생각컨대 암주는 그말에 대답을 못 할것 같으니 절을 하고 물러가는 것만 못하겠다'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때에 하필(何必)이라고 말할 줄을 몰랐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만일 용이하게 얻을 수만 있다면……" 하노라.

 나중에 어떤 화주가 흥화에게 이르니, 흥화가 묻되 "그 산중의 화상께서 삼봉암에 계실 때에 노승이 일찍이 그에게 화두를 물었더니, 대답치 못했는데 지금은 대답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였다. 화주가 앞의 이야기를 고하니 흥화가 이르되 "운거는 20년 동안에 겨우 하필이란 말 한마디밖에 못 했다. 흥화는 그렇지 않으니, 어찌 불필(不必 : 그럴 필요가 없다)이라고 말한 것만 하겠는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토끼뿔의 길고 짧음을 다투는도다" 하리라.

 삼성(三聖)은 이르되 "운거가 20년 만에 이른 한마디가 겨우 흥화의 반달 거리에 비슷하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허공꽃의 진함과 엷음을 다투는도다" 하노라.

 어떤 승이 각범(覺範)에게 묻되 "여러 노숙이 보이신 법에 차이가 있습니까?" 하니, 각범이 이르되 "부처님께서 바보비구에게 비와 쓸음[苕菷]을 외우게 하셨는데 하루는 크게 깨달아 큰 변재를 얻었느니라" 하였으니, 이것으로 납자를 위하던 선덕(先德)들의 마음씨를 알 수 있을 것이나 천동의 처지에서는 또 어떻게 보았을까? 이렇게 송했다.

 

송고

 한 구멍이 텅 비어 뚫렸고

 -세로로는 삼제를 다했고

 

 여덟 모가 영롱하게 빛난다.

 -가로로는 시방에 두루했다.

 

 형상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이 봄이 풍류로 들어가니

 -때에 맞추어 복을 받아들인다.

 

 머뭄도 걸림도 없이 달이 허공을 지난다.

 -하염없이 앞 개울에 떨어진다.

 

 청정한 보배눈과 공덕의 팔이여,

 -앞과 뒤를 두리번거리고 동쪽을 들었다 서쪽을 들춘다.

 

 온몸에 두루함이 어찌 온몸이 통째로 눈인 것만 하랴?

 -설명을 더 할 수 없구나.

 

 현재의 손과 눈으로도 완전한 기능을 드러내니

 -도적질한 장물이 이미 드러났다.

 

 큰 작용 가로 세로에 무엇을 숨길소냐.

 -가함도 불가함도 아니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이 이르되 "한 구멍이 텅 비어 뚫렸고 여덟 면이 영롱하다" 하였으니, 마치 버들가지 핀 못가나 꽃핀 언덕에 따뜻한 햇빛, 따사로운 바람이 가득하지만 봄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몰골인가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능히 사물에 응하고 때에 맞추어 머뭄도 없고 걸림도 없이 마치 중천에 뜬 달이 자유로이 흘러가는 것 같으니 온몸 통째로이며, 온몸 두루했음을 족히 알겠다.

 잠결에 손을 뒤로 뻗어 목침을 잡는 사람은 누구인가? 꼭두각시 무대 위에는 반드시 줄을 당기는 사람이 있다. 「능엄경」에 이르되 "8만 4천 청정한 보배눈과 8만 4천 모다라(姥陁羅) 팔과 8만 4천 청정한 머리가 있다" 하였는데 흥화의 타마절비송(墮馬折臂頌)에 이르되 "대비보살이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지만 대장부 뉘라서 가지지 않았으랴?" 하였으니, 일러보라, 어느 것이 온몸 통째로인 눈인가? (스승께서 손으로 눈을 치면서 이르되) "묘[猫]!"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