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中 제58칙 금강경의 천대[剛經輕賤]

쪽빛마루 2016. 4. 28. 11:17

제58칙

금강경의 천대[剛經輕賤]

 

 

 대중에게 보이시다.

 경에 의지하여 뜻을 해석하더라도 삼세 부처님의 원수요, 그렇다고 경을 떠나서 한 글자를 설하더라도 도리어 마구니의 말과 같아진다. 원인에도 속하지 않고 결과에도 들지 않는 사람, 그도 업보를 받겠는가?

 

본칙

 드노라.

 「금강경」에 이르시되 "만일 남에게 천대[輕賤]를 받는다면

 -나는 똥통의 꽁지벌레가 되리라.

 

 이 사람은 전생의 죄업으로 응당 악도에 떨어져야 할 것이어늘

 -노승이 제일 먼저 들어가리라.

 

 지금 천대를 받은 까닭에

 -총림에서는 노새가 용과 상[龍象]을 걷어차는도다.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리라" 하였다.

 -어디로 가는고?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보거나 듣기만 해도 종자가 되는지라 8난(難)의 중생이 십지(十地)에 뛰어오르고, 해와 행[解行]이 자기에게 있는지라 한 생에 여러 겁의 과위를 완성하도다. 규봉(圭峰)은 이 경의 이 대목을 과목하되 '죄를 바꾸어 성불함[轉罪成佛]'이라 하였으니 이는 생사와 번뇌가 둘이 아니라는 뜻이요,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는 이 대목을 과목하되 '능히 업장을 맑히는 부분[能淨業障分]'이라 하였다. 부대사(傅大士)는 이 대목을 송하되 "전생의 업장이 있어서 / 오늘에 경을 받아 지니나 / 잠시 남의 천대를 받는다 / 그러나 무거운 죄가 바뀌어 가벼워지는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경에 따라 뜻을 풀이한 부분이요, 다음의 네 구절에는 제법 납자의 기풍이 있으니, 이르되 "의타(依他)의 분별에 의해 일어난 줄 알면 / 능히 변계(遍計)의 망정을 제하리니 / 항상 반야의 관법에 의지하면 / 원만히 이루지 못함을 걱정할 필요 있으랴" 하였으니, 앞의 네 구절은 공덕의 힘이요, 나중의 네 구절은 관과 행[觀行]의 힘이다.

 육조(六祖)께서 구결(口訣)로 말씀하시되 "부처님 말씀에, '경을 지니는 이는 의당 모든 사람의 공경과 공양을 받아야 하지만 여러 생에 무거운 업장이 있으므로 금생에 비록 이 경을 지니더라도 항상 남의 천대를 받을 뿐 공경과 공양을 받지 못한다' 하셨지만 스스로가 경을 지닌 때문에 아상 · 인상 등의 상을 일으키지 않으며, 원수와 친함을 묻지 않고 항상 공경을 행하며, 범하는 자가 있어도 벌하지 않고 항상 반야바라밀다를 닦으므로 여러 겁의 무거운 죄가 모두 소멸한다. 또 이치로 말한다면 전생이란 앞생각의 망념이요 금생이란 나중생각의 깨달은 마음이다. 나중생각의 깨달은 마음으로 앞생각의 망념을 천대하면 허망함이 더 머물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전생의 죄업이 곧 소멸한다' 하신 것이다. 허망한 생각이 이미 사라지면 죄업이 이루어질 수 없나니, 그것이 보리를 얻음이다" 하셨으니 이와 사[理事]의 두 가지 해석은 모두가 관과 행을 기준한 것이다.

 어떤 승이 운거(雲居)에게 묻되 "듣자오니, 경에 이르기를 '이 사람이 전생의 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질 것인데 금생에 사람들의 천대를 받은 까닭에 전생의 업장이 곧 소멸한다' 하였다는데,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니, 운거가 이르되 "움직이면 응당 나쁜 길에 떨어지고, 고요하면 남의 천대를 받느니라" 하였고, 숭수 조(崇壽稠)는 이르되 "마음 밖에 법이 있으면 응당 나쁜 길에 떨어지고 자기만을 지켜 머물면 남의 천대를 받는다"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두 노장이 속기도 빠지지 않았도다" 하노라. 일러보라, 천동의 분상에는 또 어떠하던가? 그는 이렇게 송했다.

 

송고

 공덕과 허물을 함께 꿰맸고

 -오직 활짝 깨달은 사람만은 제한다.

 

 원인과 결과도 꽁꽁 엉켰다.

 -그리고 법에 수순치 않는 이도 제한다.

 

 거울 밖으로 미쳐 달아난 연야달다요,

 -발밑에서 연기가 난다.

 

 지팡이 끝으로 두드린 파조타(破竈墮)로다.

 -산산이 부숴졌구나!

 

 조왕단을 부순 뒤에

 -신령함은 어디서 왔으며 성스러움은 어디서 왔는가?

 

 사례를 하러 오니

 -부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리어 이르기를 전부터 나를 저버렸다 하더라.

 -어찌 진작 말하지 않았던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공덕이란 경을 지니는 일이요 허물이란 전생의 업이니, 이미 허망한 인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허망한 결과를 부르기 마련이다. 「능엄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이르되 "네 어찌 듣지 못했는가? 신라벌성의 연야달다(演若達多)가 갑자기 어느날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다가 거울 속의 얼굴은 눈썹과 눈이 분명한데 자기의 눈썹과 눈은 보이지 않으므로 도깨비의 탓이라 하여 미친 듯이 꼴사납게 찾으러 달려갔다. 네 생각에 어떠하냐? 이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이유없이 미쳐 달려갔는가?" 하니, 부루나가 대답하되 "이 사람은 마음이 미쳤을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하였다. 이는 참됨을 미혹하고 허망함을 집착한 것이다. 반야로 관조하는 것은 참됨이요, 공덕이다, 허물이다, 원인이다, 결과다를 따지는 것은 허망함이니, 참 지혜가 앞에 나타나면 허망한 업이 소멸하여 아뇩보리가 환하게 본래부터 갖춰졌음을 안다는 뜻으로서, 이것이 교가의 견해이다.

 납자의 처지에는 어떠한가? 숭악(崇嶽)의 파조타(破竈墮)화상이 살던 산밑에 묘당(廟堂)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 조왕신 한 분을 모셨는데 각종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냄이 끊이지 않았다. 화상이 시자를 데리고 묘당으로 들어가서 지팡이 끝으로 조왕신의 머리를 세 번 두드리면서 이르되 "이 조왕신은 진흙과 질그릇으로 합해서 이루어졌는데 성스러움은 어디서 왔으며, 신령스러움은 어디서 일어났기에 이렇게도 산 짐승을 많이 죽이는고?" 하고는 다시 세 번 두드리니, 조왕신이 무너져버리매 안국사께서 '파조타(조왕신을 때려 깬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푸른 옷에 높은 관을 쓴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절을 하면서 이르되 "나는 본래 이 묘당의 조왕신인데 오랫동안 업보를 받다가 오늘 스님의 무생설법을 듣고야 이곳을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정 와서 감사의 뜻을 드리는 터입니다" 하니, 화상께서 이르되 "이는 그대의 본분이요 나의 억지소리에 인함이 아니다" 하매, 조왕신이 재배를 하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진흙과 질그릇으로 합해서 이루어졌는데 성스러움이 어디서 왔는가?" 하니 이는 나와 남을 가리지 않는 반야지이다. 참 지혜[眞智]로 망업을 삼아 이제껏 저버렸던 것을, 오늘에 와서 많은 생명을 죽인 것은 전혀 복됨이 없다고 꾸짖으면서 선로(禪老)가 지팡이로 세 번 두드려서 당장 하늘에 태어나게 한 것을 치하한 것이다. 애닯다! 귀신은 악한 사람을 두려워해서 손뼉을 펴기 어렵고 도적은 장물(贓物) 때문에 쉽게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