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下 제69칙 남전의 암소[南泉白牯]

쪽빛마루 2016. 5. 2. 05:05

제69칙

남전의 암소[南泉白牯]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된다 해도 혐오스럽게 누명을 쓰게 되고, 뿔을 이고 털을 쓴 무리가 윗자리에 추대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참 광명은 빛나지 않고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다. 그런데 거짓으로 귀먹은 체 함을 편안하게 여기면서 풍채(멋)를 부리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누구이겠는가?

 

본칙

 드노라.

 남전(南泉)이 대중에게 보이되 "3세의 부처님은 알지 못하는데

 -다만 알기 때문이지.

 

 살쾡이[狸奴]나 암소[白牯]는 알고 있느니라" 하였다.

 -다만 모르기 때문이지!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비산법사(飛山法師) 계주(戒珠)가 「별전심법의(別傳心法議)」라는 책을 지어 남전을 헐뜯되 "보원(普願 : 남전의 이름) 같은 무리는 학문을 좋아하지도 않고 근본도 알지 못하니 그와 더불어서는 여래의 가르침을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하였고, 무진등(無盡燈)의 부집(附集)에서는 통례에 준해 부담없이 남전의 행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남전은 처음에 율을 익혔고, 다음에는 화엄과 능가를 듣더니 나중에는 삼론(三論)의 관법에 들어갔고, 마조(馬祖)가 외도라고 꾸짖는다는 말을 전해듣고는 자주 그 문을 두드려 끝내는 통발을 버릴 줄 알게 되었다. 어느날 죽을 끓이는데 마조가 묻되 "통 속의 것이 무엇인고?" 하니, 남전이 대답하되 "이 노장이 합당히 입을 다물어야 할 터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하였다. 남전은 계기에 임해 마조에게 양보치 않음이 이와 같았건만 나중에는 조주의 손아귀에 들어 묵은 빚을 갚고야 말았다.

 남전이 어느 좌주에게 묻되 "열반경은 무엇으로 극칙(極則)을 삼는가?" 하니, 좌주가 대답하되 "여여(如如)로써 극칙을 삼습니다" 하였다. 이에 남전이 이르되 "여여라고 부른다면 벌써 달라진 것이다. 요즘의 사문들은 모름지기 다른 종류[異類] 속에서 행하여야 비로소 된다" 하였다. 조주가 승당 앞에서 묻되 "다르다 함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종류입니까?" 하니, 남전이 두 팔을 벌려 땅에 버티고 엎디었다. 조주가 발로 한 번 짓밟아 쓰러뜨리고는 얼른 연수당(延壽堂)으로 들어가서 외치되 "원통해라! 원통해라!" 하였다. 남전이 시자를 시켜 묻되 "무엇이 그리 원통한고?" 하니, 조주가 대답하되 "두 번 거듭 밟아주지 못한 것이 원통하오" 하였다.

 남전이 상당하여 이르되 "왕노사(王老師 : 남전)가 젊어서부터 암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개울 동쪽에다 놓아먹이면 남의 수초(水草)를 침범하지 않을 수 없고 동쪽에다 놓아먹이면 역시 남의 수초를 침범하지 않을 수 없어서 지금에는 이렇게 으슥한 곳에다 들여놓으니 아무도 보지 못하느니라" 하였다.

 남전이 어느날 욕주(浴主)가 목욕물을 데우는 것을 보고 이르되 "공양 끝에 암소를 목욕시켜주기 바라네" 하였다. 나중에 욕주가 남전에게 가서 청하되 "고삐가 있으신지요?" 하니, 조주가 손으로 남전의 코를 끌었다. 이에 남전이 이르되 "옳기는 옳으나 너무 거칠다" 하였다.

 조주가 묻되 "알고 있는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하니, 남전이 이르되 "산 밑의 단월 댁에 한 마리의 암소가 되었느니라" 하였다. 조주가 이르되 "화상께서 지시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니, 남전이 이르되 "지난밤 삼경에 달이 창 밖에 이르렀었느니라" 하였다.

 남전이 임종하기 직전 어떤 수좌(首座)가 묻되 "화상께서 열반에 드신 뒤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니, 남전이 이르되 "산 밑의 한 마리의 암소가 되리라" 하였다. 수좌가 다시 묻되 "제가 화상의 뒤를 따르려는데 되겠습니까?" 하니, 남전이 이르되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름지기 풀 한 줄기를 입에다 물고 와야 하리라" 하였다. 이러한 딴 종류[異類 : 동물]의 화두는 남전(南泉]이 처음으로 제창한 것을 위산(潙山)이 화답하였고, 도오(道吾)와 운암(雲巖)이 전수한 것인데, 이제 조산(曹山)에 이르러 '삼타(三墮'*의 관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오가 남전에 이르니 남전이 묻되 "사리(闍梨)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니, 도오가 대답하되 "종지(宗智)입니다" 하였다. 남전이 다시 묻되 "지혜[智]가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떻게 종(宗)을 삼겠는가?" 하니, 도오가 이르되 "결코 말해서 안 됩니다" 하였는데, 남전이 이르기를 "과연 그렇다. 말한다면 머리에 뿔이 날 것이다" 하였다.

 사흘 뒤에 운암과 함께 후원에서 누더기를 꿰매는데 남전이 지나다가 묻되 "어제 이르기를 '지혜가 이르지 못하는 곳을 절대로 말하지 말라. 말한다면 머리에 뿔이 날 것이다' 했는데 어떻게 처신[行李]해야 합당할꼬?" 하니, 도오는 문득 일어서서 승당으로 들어가버렸고 남전도 자리를 떠나버렸다. 운암이 도오에게 묻되 "사제(師弟)는 어찌하여 아까 화상께 대답을 안했는가?" 하니, 도오가 이르되 "사형은 그렇게도 영리하시군요" 하였으나, 운암은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남전에게로 가서 묻되 "아까 보여주신 공안에 대하여 종지두타는 어찌하여 화상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까?" 하였다. 이에 남전이 대답하되 "그는 도리어 딴 종류 가운데의 행을 하기 때문이니라" 하니, 운암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딴 종류 가운데의 행입니까?" 하매, 남전이 이르되 "듣지 못했는가? '지혜가 이르지 못하는 곳을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말을 한다면 머리에 뿔이 난다' 하였으니, 모름지기 딴 종류 가운데에서 행해야 하느니라" 하였다. 운암이 그래도 알지 못하니, 도오는 운암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되 "이 사람은 여기와는 인연이 맞지 않는구나!" 하고는 곧 그를 데리고 함께 약산(藥山)에게로 돌아갔다.

 운암이 앞의 일을 이야기하니 약산이 이르되 "그대는 그의 그런 경계[時節]를 어떻게 이해했기에 이렇에 문득 돌아왔는고?" 하니, 운암이 대답이 없거늘 약산이 크게 웃어버렸다. 이에 운암이 묻되 "어떤 것이 딴 종류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까?" 하니, 약산이 이르되 "오늘은 고단하니 다음에 오라" 하였다. 운암이 이르되 "저는 특별히 이 일을 위하여 돌아왔습니다" 하니, 약산이 이르되 "일단 가거라" 하매 운암이 나와버렸다. 이때 도오는 방장 밖에서 운암이 알아듣지 못하는 기미를 알고는 자기도 모르는 결에 피가 나도록 손가락을 깨물고 내려와서 묻되 "사형께서는 화상에게 그 인연을 물으셨는데 어찌 되셨소?" 하니, 운암이 대답하되 "화상께서는 내게는 말씀해주시지를 않았소" 하거늘, 도오는 문득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모시고 섰는데 약산이 묻되 "지혜가 이르지 못하는 곳을 절대로 말하지 말라. 말을 하면 머리에 뿔이 나리라" 하니, 도오는 문득 인사를 드리고 물러갔다. 운암은 이어 약산에게 묻되 "사제 종지는 어찌하여 화상의 말씀에 대꾸를 하지 않습니까?" 하니, 약산이 이르되 "내가 오늘은 등이 아프구나! 이 도리는 그(도오)가 알고 있으니 그대는 그에게 가서 물으라" 하였다. 운암이 마침내 도오에게 묻되 "사제는 아까 어찌하여 화상의 말씀에 대답을 하지 않았는가?" 하니, 도오가 대답하되 "나는 오늘 머리가 아프니 사형은 화상께 가서 물으시오" 하였다. 나중에 운암이 죽음에 임하여 사람을 시켜 하직하는 글을 도오에게 보냈는데, 도오가 보고 이르되 "운암은 그때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일을 뉘우칠 줄을 모르는도다. 그러나 약산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였다.

 현각(玄覺)이 이르되 "옛사람이 이렇게 말한 것을 알고 있기는 한가? 운암이 그때 알지 못했다 하는데 어디가 알지 못하는 곳인가?" 하였고, 취암 지(翠岩芝)는 이르되 "도오가 이르기를 '운암은 그때 그에게 일러주지 않은 것을 뉘우칠 줄 모른다' 하였는데, 그렇게 말한 도오는 알고 있었던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운암은 동산(洞山)의 스승이며 한 파[一派]의 근원이거늘 세번 네번 거듭해도 이 일을 알지 못했다. 만송이 이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는 뜻은 후인들이 두루 참구할 때에 반쯤의 힘을 덜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니, 어찌 운암만 알지 못했으리오" 하노라.

 취암 지가 이르되 "도오는 알고 있었던가?" 하였거니와, 만송은 이르노니 "도오뿐이 아니라 취암 지는 알고 있었던가?" 하노라. 보지 못했는가? 어떤 승이 장사(長沙)에게 묻되 "3세의 부처님은 어찌하여 알지 못하였습니까?" 하니, 장사가 대답하되 "녹야원에 들기 전에는 그럴 듯하였느니라" 하였다. 승이 다시 묻되 "살쾡이와 암소는 어찌하여 알았습니까?" 하니, 현사가 이르되 "너는 어찌 그를 이상하게 여기느냐?" 하였는데, 만송은 여기에 이르러 그저 신통한 천동만이 찬탄할 능력이 있다고 곁눈질을 할 뿐이다. 그는 이렇게 송했다.

 

송고

 절름발이[跛跛]에 곰배팔이[挈挈]요,

 -인정에 가깝지 않으니 바삐 서두르지 말라.

 

 남루한 차림[㲯㲯] 봉두난발[毿毿]이라.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백 가지에서 하나도 취택할 것이 없고 한 가지 일도 감당해 내는 것이 없다.

 -문을 열어놓고도 또 닫고 불씨를 심어놓고 또 물을 뿌린다.

 

 묵묵히 스스로가 고향 땅 편한 줄 알거니

 -신발 속에서 발가락을 움직인다.

 

 뉘라서 뱃가죽 바보스럽다고 거뜬히 말하랴?

 -강보에 싸였을 때 이미 살풀이를 해주었겠지.

 

 온 법계로 몽땅 밥을 삼으니

 -토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다.

 

 콧구멍에 콧물을 흘리면서 마음껏 참구한다.

 -던지는 게 반이요 뿌리는 게 반이라.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절름발이와 곰배팔이는 여위고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약산이 경을 보는데 백암(栢巖)이 말하되 "화상께서는 사람을 놀리시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하니, 약산이 경을 덮고 이르되 "지금 해가 어찌 되었느냐?" 하였다. 벽암이 이르되 "해가 바야흐로 한나절입니다" 하니, 약산이 이르되 "아직도 저런 티가 남았느냐?" 하였다. 백암이 이르되 "저는 없다는 것마저 없습니다" 하니, 약산이 이르되 "그대는 꽤나 총명하구나!" 하였다. 백암이 이르되 "저는 그렇다 치고 화상의 높으신 뜻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약산이 대답하되 "나는 절름발이, 곰배팔이에 백 가지 추태, 천 가지 옹졸함을 지니고 그저 이렇게 지낸다" 하였고, 관계 한(灌溪閑)화상이 송하되 "여러 해 동안 찢어진 누더기를 털어버리니 봉두난발 머리칼이 구름 따라 나부낀다. 잡아다가 머리와 어깨에 걸어놓으니 사람들의 비단옷 보다 훨씬 수승하여라" 하였다.

 백에서 하나도 취할 것이 없고 한 가지도 감당할 것이 없다한 것은 대중 가운데서는 백 가지로 옹졸한 듯하나 온 세상에서는 한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묵묵히 스스로가 고향 땅 편한 줄 알거니 뉘라서 뱃가죽 바보스럽다고 거뜬히 말하랴?" 한 것은 왕범지(王梵志)라는 사람이 버선을 뒤집어 신으니 사람들이 모두 이르되 "잘못되었다"고 했으나, "차라리 네 눈알을 찌를지언정 내 다리는 숨길 수 없으리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왕범지는 기묘한 사람이어서 이 말씀이 인간세계에 크게 퍼졌으니 가히 가죽등피[皮燈毬]가 속은 밝고 밖은 어두운 것과 같다 하리라.

 마지막 구절은 푸근히 참구해서 사그라진 골동품 같은 경지까지 이르러, 속눈썹과 겉눈썹이 온통 떡이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가려운 뱃가죽을 건드려 터뜨리니 심장, 간장, 오장이 몽땅 튀어나왔다는 소식을 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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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모재각(披毛載角)하는 유타(類墮), 부단성색(不斷聲色)하는 수타(隨墮), 불수식(不受食)하는 존귀타(尊貴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