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下 제71칙 취암의 눈썹[翠岩眉毛]
제71칙
취암의 눈썹[翠岩眉毛]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피를 머금었다가 남에게 뿜자면 먼저 자신의 입을 더럽혀야 되고, 한평생 술잔을 탐하다 보면 남의 빚을 갚아야 되니 종이를 팔기 삼 년에 귀신께 제사할 종이마저 없어졌도다. 만송이 여러분을 위하여 청해 물으리니, 이익이 남을 계교[擔于計]가 있는가?
본칙 |
드노라.
취암(翠岩)이 하안거 끝에 대중에게 보이되
-아직도 좀 모자람이 흠이로다.
"한여름 동안 형제 여러분을 위해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스스로가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구나.
취암의 눈썹이 남아 있는가 보라" 하니,
-입 안의 돌이 크게 해롭지는 않거니,
보복(保福)은 이르되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하였고,
-역시 불이나 때는 사람이로다.
장경(長慶)은 이르되 "살았구나!" 하였고,
-눈 위에 서리를 더하는구나!
운문(雲門)은 이르되 "관문[關]이다" 하였다.
-거리를 막고 골목을 막는구나!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명주(明州)의 취암 영명(翠岩永明)대사의 휘는 영참(令參)으로 호주(湖州) 사람이다. 설봉(雪峰)의 인가를 받고 법석을 크게 벌이더니, 어느날 상당하여 이르되 "한여름 동안 여러분을 위해 이 얘기 저 얘기 했으니 취암의 눈썹이 남아 있는지 보라" 하였는데, 제방에서 이르기를 "본래 자신을 앞세우고자 했기에 이중의 공안이 되었음을 느끼지 못한다" 하였다. 그런데 또 보복에게 "도둑이 제 발 저린다" 는 소리를 들었으니, 한결같이 평하기를 "등에다 풀가지를 꽂고 스스로가 입의 허물을 숨긴다"고 한다. 불과(佛果)는 이르되 "사람들은 흔히 잘못 알고서 이르기를 '청천백일하에 마주 대할 이도 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일없는 자리에 일을 만들어낸다. 우선 자기의 허물부터 고백했어야 사람들의 점검(點檢)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는데, 전혀 빗나간 이야기다" 하였다.
장경이 이르되 "살았구나!"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여전히 눈 위에 있도다" 하노라. 운문의 관문[關]이란 것, 두루함[普]이란 것은 모두가 일자선(一字禪)이라 부르는 법문인데 세 사람이 모두 설봉의 법을 잇고 걸맞는 사람[當家人]을 만나면 격식없는 말씀[無外話]을 했던 터라, 취암이 대중에게 보인 법문이 특이한 것을 보았기에 모두가 뒤따라 외쳐댄 것이다.
옛사람에게는 입을 벌리면 수세(手勢)를 범하지 않는 법이 있었다. 어떤 좌주가 화엄의 강석에 갔다가 취암에게 공양[齋]을 청하니, 취암이 이르되 "산승에게 질문이 있는데 만일 제대로 대답을 한다면 공양케 하리라" 하였다. 그리고는 호떡[餬餅] 하나를 들어보이면서 이르되 "여기에도 법신이 갖추어져 있는가?" 하니, 좌주가 대답하되 "갖추어졌소" 하였다. 취암이 이르되 "그렇다면 법신을 먹는 격이로구나!" 하니, 좌주가 대답이 없거늘 당강법사(當講法師)가 대신 이르되 "있은들 무슨 허물이 있으리요?" 하였는데, 취암이 긍정치 않았다. 운문이 대신 이르되 "화상께서 빈자리[空筵]에 강림해주셨음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하였고, 이에 대해 각범이 이르되 "운문대사는 승 가운데 왕이로다" 하였는데, 천동은 과연 한 꾸러미에 꿰어서 송두리째 송했도다.
송고 |
도둑놈의 마음씨여,
-장물이 이미 드러났군!
담력이 사람들을 초월하니
-눈에 사람이 안 보이지.
또렷또렷하게 가로 세로에서 걸맞는 근기를 대하고
-날치기로 교묘하게 훔치도다.
보복이나 운문도 코는 아래로 숙이고 입술은 까불며
-탐색이 지나치군!
취암이나 장경도 눈썹은 길고 눈동자는 번득인다.
-거짓으로 때리는 줄도 모르도다.
두선화(杜禪和)에게 무슨 제한이 있으랴?
-천동의 엉터리 서술이 어찌 만송의 그것만이야 하겠는가?
힘주어 한마디 하니 일제히 깎이어지는구나!
-숨기고자 할수록 더욱 드러난다.
자기를 낮춤이여, 안간힘으로 신음을 삼키는가?
-자식 기르기를 아버지 같이 하지 못하면
선대의 종풍에 누를 끼침이여, 답답하고도 고집센 첨지[面牆擔板]일레라.
-가문이 하루아침에 몰락한다.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설두(雪竇)가 이르되 "능숙한 도적은 귀신도 모른다 했는데 이미 보복과 천동에게 들켰다. 취암은 그다지 능숙한 솜씨가 아니었던가?" 하였는데, 대운문과 장경이 취암의 한 가닥 눈썹에 한꺼번에 콧구멍을 꿰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하리라. 만일 머리를 숨기고 그림자를 드러내는 술수에 능숙한 강자였다면 능히 또렷또렷하게 가로와 세로에서 걸맞는 근기를 만나 감응했을 것이다.
보복이 "도둑이 제 발 저리다" 한 것과, 운문이 "관문이다" 한 것은 모두가 납승의 코가 특출해서 천 리 밖에서 이미 마른 똥 냄새를 맡고, 삼동에도 참외 익는 향기를 맡는 소식이다.
취암은 이르되 "눈썹이 남아 있는가 보라" 했고, 장경은 이르되 "살았구나!" 하였으니, 이는 벽에 걸린 고승의 초상을 보고 한 번 부르는 소리에 문득 깨달은 것 같고, 병 속에서 기른 거위가 외마디 소리에 바로 뛰어나온 경계와 같다. 그 어찌 식정(識情)으로 가히 헤아릴 바랴? 이것이 눈썹은 길고 눈동자는 번득인다 한 까닭이다. 냉정하게 사람들을 살펴보건대 한 점도 남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르되 "한여름 동안 덩굴 위에 가지가 돋고 덩굴이 뻗었는데 이제와서 풀은 깎고 뿌리는 파내어 일제히 깎아 버렸다" 하거니와, 30년 뒤에 이 이야기가 크게 성행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찌 굳이 주머니에 숨기고 덮개로 덮고서 숨을 죽이고 말소리를 삼켜야 할 필요야 있겠는가? 그렇게 한다면 담벽을 향한 듯 답답하고 잔솔밭에 널을 메고 가듯이 융통이 없어서 선대의 종풍을 더럽히리라.
제방에서 이르되 "서(徐)씨네 여섯째가 널을 메고 가는데 다만 한쪽만을 보고 가더라" 하고, 「상서(尙書)」에 이르되 "배우지 않으면 벽을 대한 듯이 답답하다" 하였는데, 그 소애서 이르되 "담을 대한다 함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뜻이니라" 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영산에서 백호상(白毫相)을 쏘아내니 동방으로 만 팔천 세계를 비추니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