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下 제72칙 중읍의 원숭이[中邑瀰猴]

쪽빛마루 2016. 5. 4. 05:39

제72칙

중읍의 원숭이[中邑瀰猴]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강을 사이에 두고는 지혜로 겨루고 갑옷을 갖추고는 복병을 깔며, 얼굴을 마주하고는 진짜 창이나 검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납승의 분상에는 온전한 기개와 큰 활용을 귀하게 여기나니 수월한 쪽으로부터 긴박한 곳으로 들어가면서 진술해보라.

 

본칙

 드노라.

 앙산(仰山)이 중읍(中邑)에게 묻되 "어떤 것이 불성의 이치[佛性義]입니까?" 하니,

 -그 좌주가 제법 말동무가 될 만하구나.

 

 중읍이 대답하되 "내가 그대에게 비유 하나를 들어 말하리라.

 -거짓이라야 되고 진실이어서는 안 된다.

 

 마치 어떤 방에 여섯 개의 창이 있고, 그 안에 한 마리의 원숭이를 넣었는데

 -그 놈이 가만히 있으려 할는지.

 

 밖에서 어떤 사람이 부르기를 '성성(狌狌)아' 하면 원숭이는 곧 대꾸를 한다.

 -다시 오면 반 값도 안 되는 법인데,

 

 이와 같이 여섯 창구멍에서 각각 부르면 각각 대꾸한다" 하였다.

 -오직 서방님이 내 소리 알아들으시기만을 소망할 뿐이다.

 

 앙산이 다시 묻되 "만일 원숭이가 잠이 들었을 때엔 어찌합니까?" 하니,

 -잠꼬대를 말라.

 

 중읍이 선상에서 내려와 앙산을 꽉 잡으면서 이르되,

 -깨어났을까?

 

 "성성아, 나와 네가 만났느니라" 하였다.

 -어째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낭주(朗州 : 「統要」에는 鼎州라고 되어 있음)의 중읍 홍은(中邑洪恩)선사는 마조 문하의 80명 선지식 중 하나이며 앙산(仰山)의 숙조(叔祖)가 되는 분이다.

 앙산이 강릉(江陵)에서 계를 받고 돌아와서 수계인사를 갔을 때 중읍은 앙산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원숭이가 여섯 창문으로 응한다는 설화로써 불성의 이치를 설명해주었으니, 마치 손뼉을 크게 쳐서 어린애를 속이는 격이었다. 이에 앙산은 복병을 깔아두고 싸움을 걸었으나 참을성이 없어서 절을 하고 감사하면서 이르되 "이제 화상의 비유를 듣잡고 분명히 깨닫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마는 다시 한 가지가 있으니 만일 안의 원숭이가 잠이 들었을 때 밖의 원숭이가 만나고 싶다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였으니, 갸륵하도다. 참 사자새끼가 끝내 범의 굴에서 발톱을 드러냈구나! 중읍도 모르는 결에 선상에서 내려와서 앙산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이르되 "성성아, 너를 만났느니라" 하였는데, 어째서 비유를 더 말해주지 않았을까?

 운거 석(雲居錫)이 이르되 "그때에 앙산의 그 한마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찌 중읍이 있을 수 있었으랴?" 하였다. 선사(先師)께서 승묵(勝默) 사백(師伯)과 지낸 20여 년 동안 총림에서 정주 보(鄭州寶)화상의 명성이 하락(河洛) 지방까지 떨치는 것을 흠모하였는데, 선사께서 두루 참문을 다니다가 가서 뵈니, 정주가 이르되 "형제들은 나이 준수하니 두루 참문함이 좋겠다. 노승은 요즘 생각생각에 불법으로써 일을 삼는다" 하였다. 선사께서 자리를 고쳐앉아 묻되 "화상께서 지금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정주가 이르되 "마치 생명의 원수와 같이 여겨진다" 하였다. 선사가 말하되 "만일 이 말씀이 아니었다면 천 리 길을 헛걸었을 뻔하였습니다" 하니 정주가 선상에서 내려와서 선사의 손을 잡고 이르되 "작가로구나!" 하고는 드디어 며칠을 머물렀다. 협산(夾山)이 불일(佛日)을 일러, "식은 재 속에서 한 알의 콩이 튀는 것 같다" 한 것이 이런 경우다.

 현각(玄覺)이 이르되 "만일 앙산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중읍을 볼 수 있었으리요?" 하였으니, "일러보라, 어디가 앙산이 중읍을 본 곳인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보은당(報恩堂)의 위"라 하노라.

 숭수 조(崇壽稠)가 이르되 "어떤 사람이 이 도리를 판정할 수 있겠는가? 만일 판정해내지 못한다면 그저 혼령이나 희롱하는 솜씨다. 불성의 이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혼령이나 희롱하는 솜씨 위에서 알아차려야 한다" 하노라.

 불감(佛鑑)이 이르되 "앙산은 어리석음[憨]을 피우고 중읍은 교태[俏]를 팔더니, 교태[俏措]가 어리석음을 불러들였고 어리석음이 교태를 저지르게 했다. 비록 원숭이놈이 잠시 들었을지라도 뱃속만은 성성(惺惺)했음이야 어찌하겠는가? 설사 여섯 창구멍을 몽땅 막아버렸다 하더라도 성성이를 어디선들 볼 수 없었겠는가? 여러분은 두 늙은이들의 속임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는가? 모두가 낯가죽의 두께가 세 치나 되느니라"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창피한 줄을 아는 자를 찾노라니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다" 하노라. 오직 천동노인만이 엇비슷하니 이렇게 송했다.

 

송고

 눈 구덩이 집 속에서 꽁꽁 얼며 잠을 자니 세월가는 줄 모르고

 -문을 꼭 닫고 열지 않는다.

 

 그윽한 후원의 사립문 밤인 듯 열리지 않는다.

 -용이 용의 말을 하지 못한다.

 

 싸늘하게 마른 숲에 새로운 변화가 보이더니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봄바람이 불어오자 율통(律筒 : 계절의 비밀) 속의 재가 나부낀다.

 -거듭 소생해서 기쁘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여남(汝南)의 「선현전(先賢傳)」에 이런 말이 있다. 어느 때 큰눈이 내려서 길[丈]이 넘게 쌓였다. 낙양(洛陽)의 군수[令]가 몸소 나서서 살피고 다니다가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걸인을 구해내는 광경을 보고는 원안(袁安)의 문으로 가려 하니 길이 막혀 있었다. 생각하기를 "원안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하고는, 사람들을 시켜 눈을 치우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원안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묻되 "어째서 나오지 않고 있느냐?" 하니, 원안이 대답하되 "큰 눈이 와서 식구들 모두가 주리는데 남의 일에 간여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군수는 그를 어질다 여기고 그를 효렴(孝廉)하다고 천거했는데, 이는 중읍이 비유를 들어 잠꼬대를 한바탕했을 뿐이요, 결코 또렷또렷[惺惺]하지는 못하다고 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윽한 후원의 사립문 밤인 듯 열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갑자기 앙산의 점검[點破]을 받아 중읍은 온통 그대로[全體] 작용하게 되었으니 고목에 봄기운이 돌아서 봄바람이 율통 속의 재를 불어 날린다고니 송한 것이다.

 채옹(蔡邕)의 월령가에 말하기를 "대를 끊어서 대통[管]을 만든 것을 율통(律筒)이라 하는데 외진 방에다 두고 갈대청[葭莩]을 재[灰]처럼 만들어 한쪽 끝과 가지런하게 채워두면 그 음기[月氣]가 이를 때 재는 날아가서 대통은 비고 양기가 생겨 죽음에서 살아난다" 하였다. 이는 마치 중읍과 앙산, 두 작가가 만나는 경지와 같다 하겠거니와 만난 뒤에는 어찌 되었을까? 모두 물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