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용록 下 제86칙 임제의 큰 깨달음[臨濟大悟]
제86칙
임제의 큰 깨달음[臨濟大悟]
시중 |
대중에게 보이시다.
구리 머리에 무쇠 이마요, 하늘 눈에 용의 눈동자라. 까마귀의 부리[觜]에 물고기의 뺨이요, 곰의 심장에 이리의 쓸개라. 금강검 밑에서는 이 계교가 용납되지 않고, 한 수[一籌]도 얻을 수 없다. 어찌하여 그러한고?
본칙 |
드노라.
임제(臨濟)가 황벽(黃蘗)에게 묻되 "어떤 것이 불법의 적적(的的 : 확실함) 한 대의입니까?" 하니,
-살인죄는 용납할 수 있어도 인정은 용납할 수 없다.
황벽이 때렸다.
-방망이마다에 피가 묻었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하고는 황벽을 하직하고 대우(大愚)에게로 가니
-무거운 쪽을 따르고 가벼운 쪽은 따르지 않는구나.
대우가 묻되 "어디서 왔는가?" 하였다.
-아! 위험하다. 조심해라.
임제가 대답하되 "황벽에서 왔습니다" 하니,
-매맞은 흔적이 아직 남았군!
대우가 묻되 "황벽이 무슨 말[言句]을 하던가?" 하였다.
-여기에서 원수를 갚았으면 좋았을 것을…….
임제가 대답하되 "내가 불법의 적적한 대의를 세 차례 물었는데 세 차례나 방망이를 맞았으니,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아직 60방망이가 모자라는군!
대우가 이르되 "황벽이 그토록 그대를 위하여 노파심으로 애를 썼는데 다시 와서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느냐?" 하매,
-다시 범하면 용납치 않으리라.
임제가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비로소 신경[痛痒]이 깨어났군.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진주(鎭州) 임제원(臨濟院) 혜조(慧照)선사의 휘는 의현(義玄)이니 조주(曹州) 남화(南華) 사람으로서 성은 형(邢)씨이다. 처음에 경론을 두루 익히다가 바른 길이 아님을 알고 황벽으로 가서 대중을 따르기 3년 동안 전혀 참문하지 않고 다만 절도를 지키어 침묵을 지키도 있으니 수좌가 그의 특수함을 이상히 여겨 참문해 배우기를 권했다. 무진등(無盡燈)이 변오(辨悞)하여 이르되 "가만히 생각하건대 임제가 황벽에 살았던 3년 동안 어찌 사람들을 묻도록 놓아주지 않았겠는가? 이미 놓아준 뒤에는 임제의 재질로 질문 한 번 벌이지 못하고 모름지기 수좌가 깨우쳐준 뒤에야 능히 질문을 했겠는가?" 하였고, 일찍이 양무위(楊無爲)가 임제의 찬(贊)을 지은 것을 보았는데, 이르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눈먼 당나귀 때문에 사라진다. 황벽은 노파선(老婆禪)이요, 대우는 잔소리쟁이[饒舌]다" 하였고, 또 불과(佛果)가 지은 목주(睦州)의 찬을 보니 이르되 "신신(辛辛)하고 날랄(辣辣)하고 애애(啀啀)하고 시시(口+枈口+枈)하여 임제[濟北]를 앞질러 큰 나무가 되었고 운문을 밀어서 험한 벼랑으로 떨어뜨렸다. 말씀은 마른 장작 같고 이치는 계급을 지을 수 없으니, 이 분이 바로 진포혜(陳蒲鞋 : 목주스님의 별명, 미투리를 삼아서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다" 하였다.
임제의 본록(本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깨달은 뒤 문득 이르되 "원래 불법이 몇 푼 어치 되지 않는군!" 하니, 대우가 이르되 "이 오줌싸개[尿牀鬼子]야, 조금 전에는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더니, 이제는 또 불법이 몇 푼 어치 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너의 불법은 얼마나 되느냐?" 하고는, 멱살을 잡아세우고 다그치되 "일러봐라, 일러봐라" 하였다. 임제가 대우의 겨드랑이를 세 번 쥐어지르니, 대우가 풀어주면서 이르되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하였다. 임제가 황벽으로 돌아오니, 황벽이 이르되 "갔다왔다 해서야 어찌 끝날 날이 있겠는가?" 하매, 임제가 이르되 "그저 노파심이 간절할 뿐입니다" 하고는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황벽이 이르되 "그 잔소리쟁이 대우 영감을 만나기만 하면 한 주먹 갈겨주어야겠구나!" 하였다. 이에 임제가 말하되 "무얼 기다립니까? 지금 때리리다" 하고는 문득 황벽에게 한대 쥐어지르니, 황벽이 신음 섞인 웃음으로 이르되 "이 미친놈이 여기게 와서 범의 수염을 끄집는구나!" 하였다. 임제가 문득 할을 하니, 황벽이 이르되 "시자야, 이 미친놈을 데려다가 승당에 들게 하라" 하였다고 한다.
위산이 앙산에게 묻되 "임제는 대우의 힘을 얻은 것인가, 황벽의 힘을 얻은 것인가?" 하니, 앙산이 대답하되 "범의 수염을 잡아당겼을 뿐 아니라 범을 주저앉힐 줄도 알았습니다" 하였다. 나중에 임제가 대중에게 보이되 "내가 스승[先師]에게 불법의 대의를 세 번 물었는데 세 번 맞았으나 마치 쑥대로 터는 것 같았다. 지금 다시 한 대 맞고 싶은데 누가 손을 대주겠는가?" 하니, 어떤 승이 나서서 "제가 손을 대겠습니다" 하였다. 임제가 방망이를 들어 건네주려 하니, 승이 받으려는 순간 임제가 때렸다. 설두가 이르되 "임제는 놓아주는 데는 위태로운 듯하나 거두어들이는 데는 지나치게 날쌔다" 하였는데, 천동은 그 부자(父子)가 예사롭지 않아서 황벽의 활용을 임제가 전해다가 긴요하고 절실한 경지만을 추려낸 것을 보고 게송을 읊었다.
송고 |
아홉 가지로 싼 봉의 새끼요,
-깃과 날개가 이미 생겼구나!
천 리를 달리는 준마로다.
-신비한 준재도 갖추어졌구나.
참 가풍을 일으키는 불매요,
-한 구멍이 허하게 통했다.
신령한 기계에 고동을 걸었다.
-한 번 튕기면 바로 움직인다.
얼굴을 마주 보며 다가올 때 날아오는 번개처럼 급하고
-망설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미혹의 구름이 걷히는 곳에 태양이 오롯하다.
-지난날의 광채 그대로다.
범의 수염 끄집는 모습이여,
-만송의 문하에서야 누가 감히…….
그대 보았는가?
-발리 눈길을 돌려라.
개개가 당당한 대장부 아니던가?
-그러나 노파심이 간절함이야 어찌하랴?
평창 |
스승께서 이르시다.
이것은 임제를 찬탄한 것이니, 마치 사초종(謝超宗)에게 봉의 깃[鳳毛]이 있다고 한 것과 같다. 황벽이 지난날 일찍이 백장을 쥐어질렀는데 오늘은 다시 임제의 독한 손길에 맞았으니 참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은 봉의 새끼를 기른다 하리라. 서응도(瑞應圖)에 이르되 "봉에게는 아홉 가지로 싼 것이 있으니, 첫째 귀명(歸命)이요, 둘째 마음이 법도에 합함[心合度]이니 이른바 하늘의 법도요, 셋째 귀로 들음이 활달함이요, 넷째 혀가 굽혔다 폈다 함이요, 다섯째 채색이 빛남이요, 여섯째 벼슬이 짧고 붉음이 주색(朱色)이요, 일곱째 부리가 날카로움이요, 여덟째 울음소리가 거세고 유창함이요, 아홉째 복호(腹戶)라" 했다.
구방인(九方堙)이 진목공(秦穆公)을 위해 말을 골랐는데 과연 천 리를 달리는 망아지였다 하니, 이는 임제의 신기롭고 준걸함이 하루에 천 리를 가듯 깨닫자마자 참 기개와 큰 작용을 문득 이해하였음을 비유한 것이다. 제방에 떠도는 게송이 있는데 이르기를 "황벽의 뺨 곁에서 따귀 한 대 벼락치고 / 대우의 옆구리에 세 주먹 질렀다" 하였으니, 이는 참 가풍의 불매[度籥]이기 때문에 신령한 바탕에 고동이 걸린 것이니, 윗 구절은 스승께 이어받는 경지요 아랫 구절은 자성을 활짝 깨쳤다[宗通] 함이다.
노자(老子)가 이르되, "천지 사이는 마치 탁약(槖籥 : 불매)과 같다" 하였는데, 탁이란 밑없는 주머니 또는 가죽 주머니요, 약이란 세 구멍의 피리를 뜻한다.
파초 철(芭蕉徹)이 이르되 "비유하건대 금(琴) · 슬(瑟) · 공(箜) · 후(篌)가 비록 묘한 음성이 있으나 묘한 손가락이 없으면 끝내 소리를 낼 수 없다" 하였으니, 원래 「능엄경」에서 나온 말이다. "얼굴을 마주 보며 다가올 때 날아오는 번개같이 급하고" 한 것은 그 준수한 기개에 재빠른 변재를 이른 것이요, "미혹의 구름이 걷히는 곳에 태양이 오롯하다" 함은 그 깨달음이 밝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범의 수염을 끄집는다" 함은 「장자」에 이르되 "공자가 도척(盜跖)을 보고는 물러서면서 이르되 "나[丘]는 이른바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뜨는 사람이다. 빨리 달려가서 범의 머리를 쥐어지르고 범의 수염을 끄집으니 어찌 범의 입을 면하겠는가?" 하였다. "그대 보았는가?" 한 것은 천동이 남에게 보여주고서 참구하는 학인들로 하여금 완전한 기개와 큰 작용을 체득하고 어진 일을 당하여 양보치 않음으로써 납승의 코끝으로 불리게 하려는 구절이다.
무진거사가 속청량전(續淸涼傳)을 지었는데 이르되 "청하는 바에 곧 응하더니 나중에 해탈(解脫)선사가 문수를 만났으되,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을 듣고 이르기를 '참 대장부로다' 하니라" 하였는데, 임제의 깨달은 경지를 보았는가? 하양(河陽)의 신부를 부끄럽게 만들고 목탑(木塔)의 노파를 놀라 깨어나게 하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