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용록從容錄

종용록 下 제96칙 구봉의 긍정치 않음[九峰不肯]

쪽빛마루 2016. 6. 3. 19:27

제96칙

구봉의 긍정치 않음[九峰不肯]

 

 

시중

 대중에게 보이시다.

 운거(雲居)는 계주(戒珠)인 사리(舍利)를 신빙하지 않았고, 구봉(九峰)은 앉아서 죽고 서서 떠나는 기적을 사랑하지 않았고, 우두(牛頭)는 백 가지의 새들이 꽃을 물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황벽은 잔[柸]을 띄워 강을 건너는 신통을 부러워하지 않았으니, 일러보라, 이밖에 무슨 뛰어난 곳이 있던가?

 

본칙

 드노라.

 구봉이 석상(石霜)의 회상에서 시자(侍者) 소임을 보는데 석상이 입적[遷化]하니, 나중에 대중이 당중의 수좌(首座)를 천거해서 주지의 소임을 잇게 하고자 했다.

 -혜능의 재주없음을 배웠으면 좋을 것이요, 신수의 먼지 터는 짓과는 같지 말아야 할텐데…….

 

 이에 구봉이 긍정치 않으면서 이르되 "내가 물어보아서 스승[先師]의 뜻을 분명히 알았으면 스승에게 하던 대로 시봉을 하겠다" 하고는,

 -길에서 불평스러운 일을 만났구나!

 

 묻되 "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쉬어라, 쉬어라' 하셨고,

 -힘을 들여서 무엇하랴?

 

 '한 생각이 만 년 가게 하라' 하셨고,

 -앞의 것을 잊고 뒤의 것을 잊는 첨지인데…….

 

 '식은 재나 마른 나무 같게 하라' 하셨고,

 -무슨 기색이 있더냐?

 

 '한 가닥의 베를 희게 도련하라' 하셨는데,

 -절대로 티를 묻히지 말라.

 

 일러보라, 어떤 쪽의 일을 밝히신 것인가?" 하니,

 -다만 무사하기만을 요한다.

 

 수좌가 대답하되 "한 빛이 되는 쪽의 일[一色邊事]을 밝히신 것이오" 하였다.

 -두 쪽이 나버렸네.

 

 구봉이 이르되 "그러면 스승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오" 하니,

 -하루아침에 권력이 손아귀에 들어왔다.

 

 수좌가 이르되 "그대가 나를 긍정치 않는다지만 향을 싸가지고 와서 제자의 예를 드리려 한 것은 어찌하겠는가?" 하더니,

 -과연 모르는구나!

 

 이어 향을 사르고 이르되 "내가 만일 스승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솟을 때 앉은 채로 열반에 들지 못하리라" 하고는,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군.

 

 말을 끝내자 앉아서 입적[坐脫]했다.

 -거기가 어디이기에 그렇게 떠나는가?

 

 이에 구봉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르되 "앉아서 죽고 서서 벗어나는 길이 없지는 않으나

 -몸을 벗어버리기는 오히려 쉬운 일이나

 

 스승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하였다.

 -티[體]까지 몽땅 벗어나는 길은 썩 어려울걸.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균주(筠州)의 구봉(九峰) 도건(道虔)선사는 석상의 법을 직접 이어받아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주장자를 전해받고 납자의 면목을 갖추었으나 수좌는 외통수[擔板漢]여서 겨우 한 토막의 막대기를 얻었다. 그때에 "그렇다면 스승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하는 소리를 듣자, 그저 이르되 "내가 형에게 졌소" 했더라면 문득 구봉으로 하여금 몸을 용납할 곳이 없게 만들었을 뿐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귀의하게 했을 것이다. 듣지 못했는가. "다투면 부족하고 겸양하면 남음이 있다" 했는데, 요즘에 참학하는 사람들은 그저 옛사람들이 앉아서 입적하고 서서 죽은 것만 말하면서 자신들은 떠날 때 손발을 허우적거리는도다.

 또 보건대 구양(歐陽) 문충공(文忠公)이 숭산(崇山)의 노승을 찾아뵈었을 때 노승이 이르되 "요즘 사람들은 생각생각을 어지러운 데 두니 임종할 때에 어떻게 안정함을 얻으리요?" 하였건만, 요즘[這廻]은 한결같이 속히 태어나고 속히 죽는 법만을 구하는도다. 각범(覺範)이 송하되 "죽을 때에 응당 다해야 할 것은 문득 응당 다할 것이니 / 앉아서 입멸하고 서서 죽는 것은 아이들에게나 자랑할 거리다 / 수락(酥酪)이 우유에서 나오는 것 별다른 법이 없나니 / 죽을 때를 무엇하러 미리 알려 하는가?" 하였다.

 두 조사(朝士)가 보봉 조(寶峰照) 화상에게 묻되 "옛사람이 임종할 때 가고 옴이 자유자재하니, 무슨 도리로 그렇게 됩니까?" 하니, 보봉이 이르되 "노승은 장차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을 것이니라" 하였는데, 임종할 때 대중이 모여서 유훈(遺訓)을 구하니 보봉이 욕설 두어 마디를 퍼붓고는 끝냈다. 석상의 그 수좌가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면 구봉의 우격다짐에 몰려 죽는 꼴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과가 고(杲)상인에게 다음과 같은 법어를 내렸다. "애달프다. 요즘 명치[盲]를 두드리는 한 무리의 여우 종족들은 자신은 꿈에도 조사를 본 적이 없으면서 도리어 달마의 법을 전하노라 하면서 태식법(胎息法)을 전하고는 이르기를 '법을 전해서 미혹한 무리를 구제한다'고 한다. 나아가서는 예전에 최고로 장수하신 종사, 즉 안(安)국사나 조주(趙州)를 이끌어서 모두가 이 술법을 썼다 하고, 더 나아가서는 달마의 외짝 신과 보화(普化)의 빈 관까지도 모두가 이 수법에 영험이 있어 마침내는 온몸이 벗어나 떠났으니, 이것이 몸과 정신이 모두 묘하게 된 소식이라 하여, 사람들은 자기의 몸을 몹시 사랑하다가 납월 30일을 두려워하여 창황히 참[眞]으로 돌아가는 법을 앞다투어 구한다.

 제야(除夜)에 그림자[影]를 바라보면서 주인공(主人公)을 불러서 (죽을) 날과 달을 점치고, 누고(樓鼓 : 해골을 두드려 보는 의식) 소리를 들어서 옥지(玉池 : 정신)를 징험하고, 눈빛을 지켜보는 등의 법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법이라 여기니 실로 세상[閭閭]을 속여 거짓으로 거푸집[窠]을 만들어서 높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도다. 또 어떤 무리는 초조의 태식설(胎息說)이나 조주의 십이시별가(十二時別歌)나 방(龐)거사의 전하거송(轉河車頌)을 빌어다 번갈아 전수하면서 수행의 덕목으로 은밀히 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거나 온몸이 벗어나기를 바라거나 혹은 3백 · 5백 세 살기를 바라지만 이것이 그대로가 망상애견임은 전혀 알지 못한다."

 만송은 이르노니 "요즘 제방을 하시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떠나려 할 때 남들이 잘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종기[癭] 위에다 연지를 찍지만 무슨 기쁠 일이 있으랴?" 하노라.

 석상은 한평생 동안 고목당(枯木堂)을 마련하고 고목 같은 대중을 두니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이는 예사로 있고 앉아서 입멸하거나 서서 죽는 이도 매우 많았는데 오직 구봉만이 수좌를 긍정치 않았다. 요즘 앉아서 입멸하고 서서 죽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어찌하여 구봉의 긍정치 않는 곳을 터득하지 못할까? 일러보라. 구봉은 어떤 작용을 갖추었을까? 천동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송고

 석상의 한 종(宗)이

 -벌은 쏘고 개미는 모은다.

 

 구봉에게로 친히 전해지니

 -얼음 녹듯 기와 풀리듯

 

 향 연기 따라 벗어났으나

 -생사에 자재함은 없지 않으나

 

 바른 법맥은 통하지 못했다.

 -선사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달 비친 둥지 속의 학, 천 년의 꿈을 꾸는데

 -나무가 쓰러져도 날아가지 않는다.

 

 눈 덮인 초가 속의 사람, 한 빛의 경관에 홀린다.

 -해가 뜬 뒤엔 한바탕의 허무함이리.

 

 시방을 좌정시켰으되 여전히 이마를 부딪쳤는데

 -결코 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한 걸음을 은밀히 옮기다가 나는 용을 보았다.

 -별다른 조화로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천동은 "의리는 가난한 집부터 끊어지고 세상 인정은 돈 있는 집으로 치우쳐 향한다" 하였는데, 만송은 이르노니 "가풍의 시설은 구봉만 못하지만 진리에 들어가서 깊이 이야기하기로는 수좌보다 백 걸음이나 앞섰다" 하노라. 승묵(勝默)화상이 조정영사시(祖庭詠史詩)를 썼는데 이르되 "수좌는 공연히 향 한 개비만 낭비했고 / 구봉은 덕 높은 현인을 억누르기만 한 이는 아니다 / 만일에 한 빛 되는 것만으로 법을 잇는다고 여기면 / 스승께서 인연 빌리지 않은 것을 저버리리라" 하였으니, 석상이 대중에게 보이는 말씀에 이르되 "비추는 공부를 일찍이 잊지 않았더라도 역시 밖으로 이음[外紹]이며 신하의 종자[臣種]이며, 빌려옴[借]이라고도 하거니와, 만일 탄생할 때 왕자같이 실 한 올도 걸리지 않으면 태어나자마자 곧 왕위를 계승하리니 이는 안으로 이음[內紹]이며, 왕의 종자[王種]이며, 말을 빌리지 않음[句不借]이라 한다. 빌리면 한 빛깔에 치우친 일이니 부득이해서 근기에 응하여 중생을 이롭게 할 때에는 겨드랑이에 끼고 이끈다[挾帶]" 하였다.

 "이마를 부딪는다[點額]"는 것과 "나는 용[飛龍]"이라 함은 우문(禹門)에서 고기가 변화하는 일이요, 또 하나는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구오(九五)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지위를 얻을 상이라" 하였으니, 그 어찌 달빛 아래 둥지를 튼 학의 꿈이나 눈 쌓인 초가 속에서 미혹한 사람에게 견줄 수 있겠는가? 석상이 구봉에게 전한 소식을 아는가? 향 주머니를 따 터뜨려서 큰 나라에 쪼이고 하늘의 구멍[天竅]을 흔들어 열어 참된 바람을 울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