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선림보전禪林寶典

제2권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10~13.

쪽빛마루 2016. 6. 23. 11:55

10. 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읍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 줄 알지 못한 것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善)과 악(惡)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有]과 없음[無]의 성품, 사랑함[愛]과 미워함[憎]의 성품, 공[空]과 공 아님[不空]의 성품, 정(定)과 정 아님[不定]의 성품과 깨끗함[淨]과 깨끗하지 아니함[不淨]의 성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 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 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여섯 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 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問 此門은 從何而入고  

答 從檀波羅密入이니라.  

問 佛說六波羅密이 是菩薩行이어늘 何故로 獨說檀波羅密이며 云何 具足而得入也오  

答 迷人은 不解五度皆因檀度生이니 但修檀度하면 卽六度悉皆具足이니라  

問 何因緣故로 名爲檀度오  

答 檀者는 名爲布施니라.  

問 布施何物고  

答 布施却二性이니라.  

問 云何是二性고  

答 布施却善惡性하며 布施却有無性과 愛憎性과 空不空性과 定不定性과 淨不淨性하야 一切를 悉皆施却하면 卽得二性空이니라. 若得二性空時에 亦不得作二性空想이며 亦不得作念有施想이 卽是眞行檀波羅密이니 名萬緣이 俱絶이니라. 萬緣이 俱絶者는 卽一切法性空이 是也니 法性空者는 卽一切處無心이 是니라. 若得一切處無心時에 卽無有一相可得이니 何以故오 爲自性이 空故로 無一相可得이니라 無一相可得者는 卽是實相이니 實相者는 卽是如來妙色身相也라 金剛經云 離一切諸相이 則名諸佛이라 하니라.  

問 佛說六波羅密이어늘 今云何說一하야 卽能具足고. 願說一具六法之因하라.  

答 思益經에 云 網明尊이 謂梵天言하되 若菩薩이 捨一切煩惱하면 名檀波羅密이니 卽是布施요 於諸法에 無所起가 名尸羅波羅密이니 卽是持戒요 於諸法에 無所傷이 名羼提波羅密이니 卽是忍辱이요 於諸法離相이 名毘離耶波羅密이니 卽是精進이요 於諸法無所住가 名禪波羅密이니 卽是禪定이요 於諸法無戱論이 名般若波羅密이니 卽是智慧라 是名六法이니라 今更名六法하면 不異一捨 二無起 三無傷 四離相 五無住 六無戱論이니라 如是六法은 隨事方便으로 仮立名字요 至於妙理하야는 無二無別이니 但知一捨하면 卽一切捨요 無起卽一切無起어늘 迷途不契하야 悉謂有差니라 愚者는 滯其法數之中하야 卽長輪生死로다 告汝學人하노니 但修檀之法하면 卽萬法이 周圓이온 况於五法豈不具耶아    

 

11. 삼학(三學)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 · 정 · 혜니라."

 "어떤 것을 계 · 정 · 혜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 · 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 · 정 · 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問 三學等用이라하니 何者是三學이며 云何是等用고  

答 三學者는 戒定慧是也니라.  

問 云何是戒定慧오  

答 淸淨無染이 是戒요 知心不動하야 對境寂然이 是定이요 知心不動時에 不生不動想하며 知心淸淨時에 不生淸淨想하야 乃至善惡을 皆能分別하되 於中에 無染하야 得自在者是名爲慧也니라 若知戒定慧体俱不可得時에 卽無分別者하야 卽同一体니 是名三學等用이니라.  

 

12. 무생심(無生心)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약 머문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원하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 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이 없음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본래 마음[本心]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佛心]이며, 또한 해탈심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란 자연해탈이니라."

  

問 若心住淨時에 不是着淨否아  

答 得住淨時에 不作住淨想이 是不着淨이니라.  

問 心住空時에 不是着空否아  

答 若作空想하면 卽名着空이니라.  

問 若心得住無住處時에 不是着無住處否아  

答 但作空想하면 卽無有着處니 汝若欲了了識無所住心時인댄 正坐之時에 但知心하고 莫思量一切物하며 一切善惡을 都莫思量하라. 過去事는 已過去而莫思量하면 過去心이 自絶이니 卽名無過去事요. 未來事未至니 莫願莫求하면 未來心이 自絶이니 卽名無未來事요 現在事는 已現在라 於一切事에 但知無著이니 無著者는 不起憎愛心이 卽是無著이라 現在心이 自絶하야 卽名無現在事니 三世不攝이 亦名無三世也니라 心若起去時에 卽莫隨去하면 去心이 自絶이요 若住時에 亦莫隨住하면 住心이 自絶하야 卽無住心이니 卽是住無住處也니라. 若了了自知하야 住在住時에 只物住요 亦無住處하면 亦無無住處也니라. 若自了了知하야 心不住一切處하면 卽名了了見本心也며 亦名了了見性也라 只箇不住一切處心者는 卽是佛心이며 亦名解脫心이며 亦名菩提心이며 亦名無生心이며 亦名色性空이니 經云證無生法忍是也니라. 汝若未得如是之時에 努力努力하야 勤加用功하야 功成自會니 所以會者는 一切處無心이 卽是會니라. 言無心者는 無仮不眞也니 仮者는 愛憎心이 是也오 眞者는 無愛憎心이 是也니라 但無愛憎心하면 卽是二性空이니 二性空者는 自然解脫也니라.  

 

13. 상주(常住)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공(功)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問 只坐爲用가 行時도 亦得爲用否아  

答 今言用功者는 不獨言坐니 乃至 行住坐臥所造運爲 一切時中에 常用無間이 卽名常住也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