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선림보전禪林寶典

제2편 완릉록(宛陵錄) 7~10.

쪽빛마루 2016. 7. 1. 19:30

7. 모든 견해를 여읨이 무변신보살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은 왜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합니까?"

 "실로 볼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무변신보살이란 곧 여래이기 때문에 응당 보지 못한다. 다만 너희에게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부처라는 변견(邊見)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중생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중생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있다[有]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있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없다[無]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없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범부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범부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나아가 성인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성인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견해만 없으면 그대로가 곧 가이 없는 몸[無邊身]이니라. 그러나 무엇인가 보는 곳이 있으면 곧 외도라고 부른다. 외도란 모든 견해를 즐기고 보살은 모든 견해에 있어서도 흔들

리지 않으며, 여래란 곧 모든 법에 여여(如如)한 뜻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미륵도 또한 그러하고 모든 성현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다. 여여하기 때문에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다. 여래의 정수리는 두렷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두렷이 보는 것도 없으므로, 두렷하다는 변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처님 몸은 하염 없으신 것이다. 숫자로써 헤아리는 범주에 속하지도 않지만, 다만 방편으로 허공에 비유할 뿐이니라. '원만하기가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으며' 한가로이 일삼을 것이 없다. 다른 경계를 억지로 끌어들여 설명하려 하지 말 것이니, 설명하려 들면 벌써 식[識]이 이뤄지고 만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의식의 바다에 잠겨서 나부끼는 쑥대처럼 흘러 도네'라고 하였다. 그저 말하기를 '나는 알았으며 배워서 얻었으며, 깨달았으며, 해탈하였으며, 도의 이치를 얻었노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가 강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지만 약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질 않는다면 이런 견해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내 너에게 말하노니, 한가하여 스스로 일 없도록 하여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 말라. '참됨을 구할 필요가 없나니, 오직 모든 견해를 쉴지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봄[內見]과 밖으로 봄[外見]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나쁜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문수보살이 잠깐 두 견해를 일으켰다가 그만 두 철위산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문수보살은 참된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방편적인 지혜의 상징이다. 방편과 참됨이 서로서로 작용을 하여 끝내는 방편과 참됨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오로지 한 마음뿐인 것이다. 마음은 결코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닌데, 부처의 견해를 갖기만 하면 바로 중생의 견해를 내게 되느니라. 있다는 견해[有見] · 없다는 견해[無見] · 영원불변하다는 견해[常見] · 단멸한다는 견해[斷見]가 바로 두 철위산 지옥을 이룬다. 이처럼 견해와 장애를 받기 때문에 역대의 조사들께서 일체 중생의 본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이것은 닦아서 되는것도 아니고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밝음이나 어두움에 속하지도 않아서, 밝음이 아니기 때문에 밝음도 없으며 어둠이 아니기 때문에 어두움도 없다. 그러므로 밝음 없음[無明]도 없으며 또한 밝음 없음이 다함[無明盡]도 없다. 우리이 선가의 종문에 들어와서는 누구든지 뜻을 간절하게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법이라 하고 법을 보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며, 부처와 법이 모두 함께 없는 것을 승(僧)이라 부르며, 하릴없는 중이라 부르며, 또한 한몸의 삼보[一体三宝]라 하느니라. 대저 법을 구하

는 이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아서 마땅히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랄 것도 없으며,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랄 것도 없으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승(僧)이랄 것도 없느니라."

 

問 無邊身菩薩이 爲什麽不見如來頂相이닛고

師云 實無可見이니 何以故오 無邊身菩薩이 便是如來라 不應更見이니 祇敎你로 不作佛見하야 不落佛邊하며 不作衆生見하야 不落衆生邊하며 不作有見하야 不落有邊하며 不作無見하야 不落無邊하며 不作凡見하야 不落凡邊하며 不作聖見하야 不落聖邊이라 但無諸見하면 卽是無邊身이니라 若有見處하면 卽名外道니 外道者는 樂於諸見하고 菩薩은 於諸見而不動하고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 所以云하되 <彌勒도 亦如也며 衆聖賢도 亦如也라>하니 如卽無生이요 如卽無滅이며 如卽無見이며 如卽無聞이니라 如來頂이 卽是圓見이나 亦無圓見故로 不落圓邊이니라 所以로 佛身은 無爲라 不墮諸數니 權以虛空으로 爲喩니라 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하며 等閑無事라 莫强辯他境이니 辯着하면 便成識하리라 所以云하되 <圓成沈識海하야 流轉若飄蓬이라>하니라 祇道하되 <我知也며 學得也며 契悟也며 解脫也며 有道理也라>하며 强處는 卽如意하고 弱處는 卽不如意하면 似者箇見解는 有什麽用處리오 我向汝道하노니 等閑無事하야 莫謾用心하며 不用求眞이요 唯須息見이니 所以로 內見外見이 俱錯이며 佛道魔道俱惡이라 所以로 文殊가 暫起二見하고 貶向二鐵圍山하니라 文殊는 卽實智요 普賢은 卽權智니 權實이 相對治하야 究竟에 亦無權實이요 唯是一心이니라 心且不佛不衆生이라 無有異見이니 纔有佛見하면 便作衆生見이니라 有見無見常見斷見이 便成二鐵圍山이니 被見障故로 祖師가 直指一切衆生 本心本體가 本來是佛이니 不假修成이며 不屬漸次며 不是明暗이니 不是明故로 無明하며 不是暗故로 無暗이니 所以로 無無明하며 亦無無明盡이라 入我此宗門하야 切須在意어다 如此見得을 名之爲法이요 見法故로 名之爲佛이며 佛法俱無를 名之爲僧이며 喚作無爲僧이며 亦名一體三寶니라 夫求法者는 不着佛求하며 不着法求하며 不着衆求하여 應無所求니 不着佛求故로 無佛하며 不着法求故로 無法하며 不着衆求故로 無僧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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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변신보살 : 「열반경」 제1서품의 모임에 참여한 보살.

 

8. 한 법도 얻을 수 없다

 

 "스님께서는 지금 법을 말씀하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승(僧)이랄 것도 없고 법(法)이랄 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네 만약 가히 설명할 만한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음성으로써 부처님을 찾는 것'이 된다. 나[我]란 것이 있다고 견해를 내면 곧 처소(處所)인 것이다. 법 또한 법이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법이란 바로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이 마음의 법을 부촉할 때에

법이라 하는 법이 일찌기 무슨 법이던가.

법도 없고 본래 마음도 없으면

마음, 마음하는 법을 비로소 알리라.

 

 실로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이름하여 도량에 앉음이라고 한다. 도량이란 오직 일체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법이 본래 공(空)한 줄을 깨닫는 것을 공여래장(空如來藏)이라 하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엔들 티끌과 먼지가 있겠느냐. 만약 이 소식을 안다면 유유자적하게 소요함인들 논할 바 있겠느냐.

 

問 和尙이 見今說法이어늘 何得言無僧亦無法이닛고

師云 汝若見有法可說이면 卽是以音聲求我라 若見有我하면 卽是處所니라 法亦無法하며 法卽是心이니 所以로 祖師云하되 <付此心法時에 法法이 何曾法고 無法無本心하면 始解心心法이라>하시니라 實無一法可得이 名坐道場이니 道場者는 祇是不起諸見이니라 悟法本空을 喚作空如來藏이니 本來無一物이어늘 何處에 有塵埃리오 若得此中意하면 逍遙를 何所論이리오

 

9. 한 물건도 없음[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신다면 한 물건도 없음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없다고 해도 맞지 않다. 깨달음이란 옳은 곳도 없으며 그렇다고 앎이 없는 것도 없다."

 

問 本來無一物이라하니 無物이 便是否닛가

師云 無亦不是니 菩提는 無是處하며 亦無無知解니라

 

10.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너의 마음이 부처이니라.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만약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시어 어떻게 그것을 전수하셨읍니까?"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전한 것은 오직 마음의 부처이니라. 즉 너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쳐 주신 것이며,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사라 부르느니라. 만약 곧바로 이 뜻을 깨닫는다면, 곧 3승의 모든 지위를 단박에 뛰어넘어서 본래의 부처인 것이니, 결코 점차로 닦음에 의지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그러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법을 말씀하십니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사 오로지 한 마음의 법만을 말씀하시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대가섭에게 그것을 은밀히 부촉하셨느니라. 이 마음법[心法]의 본체는 허공계를 다하여 온 법계를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이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을 논하건대 너는 어찌 언어 ·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한 기틀, 한 경계* 위에서 결코 심법(心法)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니라. 이 하나의 문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하염없는 법의 문[無爲法門]이라 한다. 만약 깨쳐 알고자 한다면 다만 무심을 알아야 한다. 홀연히 깨치면 곧 되는 것이요, 만약 마음을 써서 배워 깨달으려 하면 그럴수록 더욱더 멀어지느니라. 갈라진 마음과 모든 취사(取捨)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무와 돌 같은 마음이 되어야만 비로소 도를 배울 분(分)이 있느니라."

 "지금 갖가지 망념이 있는데, 스님께서 어찌하여 없다고 하십니까?"

 "망념은 본시 본체가 없는 것인데, 너의 마음이 허망하게 일으킨 것이다. 만약 네가 마음이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은 본래 허망함이 없는 것이어늘, 어찌 마음을 일으켜 다시 망념을 알려 하느냐? 네 만약 마음을 내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자연히 망념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바로 망념이 일어날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읍니까?"

 "네 지금 망념이 일어난 것을 깨달았을 때에, 그 깨달음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런 가운데 망념이 없다면, 부처 또한 없느니라.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네가 마음을 일으켜 부처의 견해를 지어서 문득 이룰 만한 부처가 있다고 하며, 중생의 견해를 지어서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하는데,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모조리 너의 견해가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일체의 견해가 없다면 부처는 어느 곳에 있겠느냐? 마치 문수가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키자마자 바로 두 철위산 지옥에 떨어진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제 바로 깨달았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읍니까?"

 "물음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깨달음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났느냐? 일상의 어묵동정간에 모든 소리와 빛깔이 모두 불사(佛事) 아님이 없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느냐? 머리 위에 머리를 얹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으면 산은 산, 물은 물이요, 승(僧)은 승, 속(俗)은 속일 뿐이니라.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모

두 너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 허다한 일들이 있겠느냐?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눈 가득히 푸른 산이니라. 허공세계가 밝고 깨끗하여 한 터럭만큼도 너에게 견해를 짓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와 빛깔들이 그대로 부처님 지혜의 눈이니라.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경계를 의지해야만 비로소 생긴 것이니, 경계 때문에 그 많은 지혜가 있는 것이다. 종일 말하나 일찌기 무슨 말을 하였으며, 종일 들으나 일찌기 무엇을 들었느냐? 그러므로 석가세존께서 49년 설법하셨어도 일찌기 한 글자도 결코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니라."

 

問 何諸是佛이닛고

師云 汝心이 是佛이라 佛卽是心이니 心佛不異故로 云 <卽心卽佛이라>하나니 若離於心하면 別更無佛이니라

云하되 若自心是佛인댄 祖師西來하사 如何傳授닛고

師云 祖師西來하사 唯傳心佛이니 直指汝等心이 本來是佛이니 心心不異故로 名爲祖니라 若直下에 見此意하면 卽頓超三乘一切諸位하야 本來是佛이라 不假修成이니라

云하되 若如此인댄 十方諸佛이 出世하사 說於何法이닛고

師云 十方諸佛이 出世하사 祇共說一心法이니 所以로 佛이 密付與摩詞大迦葉이니라 此一心法體는 盡虛空徧法界라 名爲諸佛理니 論這箇法인댄 豈是汝於言句上에 解得他리오 亦不是於一機一境上見得他니 此意는 唯是默契라 得這一門을 名爲無爲法門이니 若欲會得인댄 但知無心이니 忽悟卽得이요 若用心擬學取하면 卽轉遠去니라 若無岐路心과 一切取捨心을 心如木石하야사 始有學道分이니라

云하되 如今에 現有種種妄念이어늘 何以言無닛고

師云 妄本無體라 卽是汝心所起니 汝若識心是佛하면 心本無妄이어늘 那得起心하야 更認於妄이리오 汝가 若不生心動念하면 自然無妄이니 所以云하되 <心生則種種法이 生하고 心滅則種種法이 滅이라>하나니라

云하되 今正妄念起時에 佛在何處닛고

師云 汝今覺妄起時에 覺이 正是佛이니 可中에 若無妄念하면 佛亦無니라 何故로 如此오 爲汝起心作佛見하야 便謂有佛可成하되 作衆生見하야 便謂有衆生可度라하나니 起心動念이 摠是汝見處라 若無一切見하면 佛이 有何處所리오 如文殊가 纔起佛見하고 便貶向二鐵圍山이니라

云하되 今正悟時에 佛在何處닛고

師云 問從何來며 覺從何起오 語默動靜一切聲色이 盡是佛事어늘 何處覓佛고 不可更頭上安頭하고 觜上加觜니 但莫生異見하면 山是山水是水요 僧是僧俗是俗이라 山河大地日月星辰이 摠不出汝心이며 三千世界 都來是箇汝自己니 何處에 有許多般이리오 心外無法하니 滿目靑山이니라 虛空世界晈晈地하야 無絲髮許도 與汝로 作見解니 所以로 一切聲色이 是佛之慧目이니라 法不孤起라 仗境方生이니 爲物之故로 有其多智하니라 終日說하나 何曾說이며 終日聞하나 何曾聞이리오 所以로 釋迦四十九年說이 未曾說着一字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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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기틀, 한 경계[一機一境] : 기(機)란 납자를 지도하는 한 수단 또는 한 관문을 뜻하며, 경(境)이란 외부의 사물을 빌어서 진리를 표현하는 형태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