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선림보전禪林寶典

제2편 완릉록(宛陵錄) 21.

쪽빛마루 2016. 7. 4. 09:23

21. 여래의 청정선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잡된 학문과 모든 반연을 물리쳐야 한다. 그리하여 결정코 구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아주 깊고 깊은 법을 듣더라도 맑은 바람이 귓가에 잠깐 스쳐지나간 듯이 여기어, 그것을 쫓아가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여래선(如來禪)*에 매우 깊숙히 들어가 참선을 한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 것이다. 위로부터 역대의 조사들께서 오로지 한마음[一心]만을 전하셨다. 결코 두 법이 있을 수 없으니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르게 가르치신 것이다.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지위와 차례를 단박에 뛰어 넘어서 절대로 또 다른 생각으로 흘러들어가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 선종의 가문에 비슷하게나마 들어오는 것이다. 너희 경망한[取次]* 사람들이야 이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

로 말하기를 '마음으로 헤아릴 때에는 그 헤아리는 마음의 마구니에 묶여 버리고, 한편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을 때에는 또 헤아리지 않는 마음의 마구니에 묶인다. 그렇다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닐 때에는 또 역시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닌 마음의 마구니에 묶인다. 그러므로 마구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마음에서 저절로 나온다'고 한 것이니라. 이것은 오직 신통없는 보살은 그 발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니라.

 만약 언제든지 마음에 항상하다는 견해[常見]*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상견외도(常見外道)이며, 만약 일체의 법은 공(空)하다고 관(觀)하고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견해에 빠지면 그것이 바로 단견외도(斷見外道)이다. 그러므로 '3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식(識)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고 하는 것은 외도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만약 최고의 법신자리에서 본다면 그것은 3현(三賢) · 10성(十聖)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의 어리석음을 끊으셨는데, 하나는 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며 또 하나는 극히 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으셨거늘, 다시 무슨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차례를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밝음만을 추종하고 어둠을 싫어하며, 그저 깨우침만을 얻으려 하고 번뇌와 무명은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고 중생들은 망념이 남아 있는 존재이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생각하면 백천 겁이 지나도록 다만 6도에 계속 윤회하여 쉴 날이 없으리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본래 근원의 자성을 비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너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부처 또한 밝음도 아니요 중생 또한 어둠도 아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밝음도 어둠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라고 해서 또한 강하지도 않고 중생이라고 해서 약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법에는 강함도 약함도 없기 때문이다. 또 부처라고 해서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중생이라 해서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지혜로움도 어리석음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나타나서는 모두들 선을 안다고 말들 하지만 입을 벌리기만 하면 그대로 병통이 생기고 만다. 그리하여 근본은 말하지 않고 지말만을 말하며, 미혹함은 말하지 않고 그저 깨달음만 말하며, 본체는 말하지 않고 작용만을 말하는데 제대로 말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다.

 저 일체 법은 본래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금 또한 없는 것도 아니어서 반연이 생겼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며 반연이 사라졌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 근본이라 할 만한 것이 있지 않으니, 근본은 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니니, 마음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양 또한 모양이 아니니, 모양은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도 없고 본래 마음도 없어야만 비로소 마음이라 하는 마음법을 알게 된다'고 했다. 법은 곧 법이 아니요 법 아님이 곧 법이며,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 하는 마음법이니라.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허깨비인 줄 분명히 알면 곧 과거의 부처님에게로 흘러들어 간다. 과거의 부처님은 또한 있지도 않고 미래의 부처님 또한 없지도 않다. 그렇다고 또한 미래의 부처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반면에 현재의 생각 생각이 일정하게 머물지 않으니 현재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르지 못한다.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만약 일어날 때에, 그것을 두고 깨달은 것이라거나 혹은 미혹한 것이라든가, 또 이것은 좋은 것이거나 혹은 나쁜 것이라고 사량분별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문득 그것에 집착하여 끊어 버리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 생각 갑자기 일어나면 수천 겹으로 자물쇠를 채우더라도 가둘 수가 없고, 수만발의 오랏줄로도 그것을 묶어 두지 못한다. 이미 이와 같은데 어찌 그것을 없애려고 하고 그치게 하겠는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의 이 아지랑이같은 의식이 어떻게 저 생각을 끊어 버려서, 아지랑이 같은 데다 비유하겠느냐. 너희가 가깝다고 말하면 시방세계를 두루 찾아도 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멀다고 말하면, 볼 때에 단지 눈 앞에 있어서 쫓아가면 더더욱 멀리 가 버리며, 피하려 하면 또 쫓아와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알라.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여 그것을 근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앞 생각이 범부이여, 뒷 생각이 성인이라는 말처럼 손을 뒤집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3승교(三乘敎)의 종극(終極)이다. 그러나 우리 선종의 가르침에 의거하면 앞 생각 또한 범부가 아니고 뒷 생각 또한 성인이 아니며, 앞 생각이 부처가 아니고 뒷 생각이 중생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모든 빛깔이 부처님의 빛깔이며 모든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소리이다. 한 이치[理]를 들면 모든 이치가 다 그러하므로, 한 현상[事]을 보아 모든 현상을 보며, 한 마음을 보아 모든 마음을 보며, 한 도를 보아 모든 도를 보아서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다. 또 한 티끌을 보아 시방세계의 산하대지를 보며, 한 방울의 물을 보아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성품의 물을 보며,

또한 일체의 법을 보아 일체의 마음을 본다. 모든 법이 본래 공(空)해서 마음은 없지도 않다. 없지 않음이 바로 묘하게 있는 것[妙有]이고, 있음[有] 또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있지 않음이 바로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참으로 공하면서 오묘하게 있음[眞空妙有]이니라.

 그렇다면 시방세계가 나의 '한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티끌처럼 많은 모든 국토들이 나의 '한 생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안과 밖을 구별하여 말하겠는가? 마치 벌꿀의 성질이 달콤해서 모든 꿀은 다 그러하므로, 이 꿀은 달고 저 꿀은 쓰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일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허공이 안팎이 없으니 법의 성품도 또한 그러하며, 허공이 중간이 없으니 법의 성품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그대로 중생이니라. 중생과 부처가 원래로 한 본체이며, 생사열반과 유위(有爲) · 무위(無爲)가 원래 동일한 본체이며, 세간 · 출세간과 나아가 6도 · 4생과 산하대지와 유정 · 무정이 또한 같은 한 본체이다. 이렇게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이름과 모양이 역시 공(空)하여 있음도 공하고 없음도 공하여, 간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온 세계가 원래 똑같이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중생을 제도할 부처가 어디 있으며, 부처의 제도를 받을 중생이 어디에 있겠느냐?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만법의 자성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저절로 그렇다는 견해를 내면 곧 자연외도(自然外道)에 떨어지고, 만약 나도 없고 나의 것[我所)도 없다는 견해를 내면 3현 · 10성의 지위에 떨어진다. 너희들이 지금 어찌 한 자, 한 치를 가지고 끝없는 허공을 재려 하겠는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기를 '법과 법이 서로 다닫지 못하나니, 법은 스스로 공적함으로써 그 자리에 본래부터 머물러 있으며, 그 자리에서 스스로 참되다'고 하였느니라.

 몸이 공하므로 법이 공하다고 하며, 마음이 공하므로 성품이 공하다고 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공하므로 법의 성품이 공하다고 하며, 나아가 천 갈래로 다른 갖가지의 말들이 모두 다 너희의 본래 마음을 여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이승과 보살 등을 말하는 것은 모두 누런 나뭇잎을 가리켜 돈이라 하는 주먹과 손바닥의 비유에 불과하다. 주먹을 펴면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모든 대중들이 모두 그 속에 아무 것도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3세(三世) 역시 있는 바 없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단도직입으로 이러한 뜻을 알아야만 된다. 그러므로 달마스님께서 인도로부터 이 땅에 오시어 여러 나라를 거

치셨지만, 오직 찾아 얻으신 것은 혜가스님 한 분뿐이었다. 혜가스님에게 마음의 도장[心印]을 은밀히 전하였으니, 이는 너희의 본래 마음에 새기신 것이다. 마음으로써 법에 새기며 법으로써 마음에 새겨서, 마음이 이미 이 같으며 법 또한 이 같아서 진제(眞際)와 같고 법의 성품과 평등하다. 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 누가 수기(授記)하는 사람이며, 누가 부처가 되는 사람이여, 누가 법을 얻는 사람이겠는가?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보리란 몸으로 얻을 수 없으니, 몸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또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는데, 마음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품으로도 얻을 수 없으니, 성품은 곧 바로 근본원류의 자성이 청정한 부처[本源自性淸淨佛]이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부처로써 다시 부처를 얻을 수 없으며, 모양이 없는 것으로 다시 모양이 없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또한 공함으로써 공함을 얻을 수 없고, 도로써 도를 얻을 수 없다. 본래 얻은 것이 없어서 얻은 것이 없음도 얻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얻을 만한 한 법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본 마음을 분명히 찾게 하고자 한 것이다.

 당장 요달했을 때라도 요달한 모양을 얻을 수 없어서, 요달함이 없는 모양도, 요달하지 않음이 없는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법을 얻은 사람은 곧 얻으나, 얻은 사람이라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한 사람이라도 또한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법을 예로부터 몇 사람이나 알 수 있었겠느냐?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하에 자기를 잊은 사람이 몇이더냐?'고 하였다. 지금 한 기틀 · 한 경계 · 한 경전 · 한 가르침 · 한 세대 · 한 시기 · 한 이름 · 한 글자를 6근의 문 앞에서 알 수 있다면, 꼭두각시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한 이름 · 한 모양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온 시방세계를 다 찾는다 해도 이런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노라. 그와 버금갈 만한 사람이 둘

도 없으므로 조사의 자리를 이으며, 또한 부처님의 종자라고 일컫나니, 순수하여 전혀 잡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왕이 부처를 이룰 때에 왕자도 역시 따라서 출가한다'고 했는데, 이 뜻을 알기가 매우 어렵느니라. 다만 너희에게 아무 것도 찾지 말도록 할 뿐이니, 찾으면 곧 잃어버린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산 위에서 한 번 소리를 질러 메아리가 울리면 곧장 산 아래로 달려 가지만 끝내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거기서 또 한 번 소리를 지르자 산 위에서 메아리가 울리면, 그는 다시 산 위로 달려 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천생만겁을 소리를 찾고 메아리를 좇는 사람일 뿐이어서 허망하게 생사에 유랑하는 자이니라. 만약 소리가 없으면 메아리도 생기지 않는다. 열반이란 들음도 앎도 없고 소리도 없어서 자취도 발자욱도 모두 끊긴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겨우 조사의 방 근처에 인접한 것이라 하겠다."

 

夫學道者는 先須屛却雜學諸緣하고 決定不著하며 聞甚深法호대 恰似淸風屆耳하야 瞥然而過하야 更不追尋이니 是爲甚深入如來禪하야 離生禪想이니라 從上祖師가 唯傳一心이요 更無二法하야 指心是佛이라 頓超等妙二覺之表하야 決定不流至第二念이니 始似入我宗門이니라 如斯之法을 汝取次人이 到這裏하야 擬作魔生學고 所以道호대 擬心時에는 被擬心魔縛하며 非擬心時에는 又被非擬心魔縛하고 非非擬心時에는 又被非非擬心魔縛하니 魔非外來요 出自心이니 唯有無神通菩薩이 足跡을 不可尋이니라 若以一切時中에 心有常見하면 卽是常見外道요 若觀一切法空하야 作空見者하면 卽是斷見外道니 所以로 三界唯心이요 萬法唯識은 此猶是對外道邪見人說이요 若說法身以爲極果하면 此對三賢十聖人言이니라 故로 佛斷二愚니 一者는 微細所知愚요 二者는 極微細所知愚라 佛旣如是어니 更說什麼等妙二覺來리요 所以로 一切人은 但欲向明하며 不欲向闇하며 但欲求悟하고 不受煩惱無明하야 便道호대 佛是覺이요 衆生是妄이라하니 若作如是見解하면 百劫千生토록 輪廻六道하야 更無斷絶이니 何以故오 爲謗諸佛本源自性故니라 他分明向你道호대 佛且不明이요 衆生且不闇이니라 法無明闇故며 佛且不彊이요 衆生且不弱이니 法無彊弱故며 佛且不智요 衆生且不愚니 法無愚智故니라 是你出頭하야 總道解禪하야 開著口하면 便病發하야 不說本하고 祇說末하며 不說迷하고 祇說悟하며 不說體하고 祇說用하야 總無你話論處니라 他一切法이 且本不有하여 今亦不無하야 緣起不有하며 緣滅不無니라 本亦不有니 本非本故요 心亦不心이니 心非心故요 相亦非相이니 相非相故라 所以道無法無本心하야사 始解心心法이니 法卽非法이요 非法卽法이며 無法無非法이니 故是心心法이니라 忽然瞥起一念하야 了知如幻如化하면 卽流入過去佛이니 過去佛은 且不有요 未來佛은 且不無니 又且不喚作未來佛이요 現在念念不住하니 不喚作現在佛이니라 佛若起時에 卽不擬他是覺是迷며 是善是惡하야 輒不得執滯他斷絶他니 如一念瞥起하면 千重關鎖鎖不得이요 萬丈繩索索他不住니라 旣若如是어니 爭合便擬滅他止他리요 分明向你道하노니 爾焰識이 你作麼生擬斷他하야 喩如陽焰이리요 你道近하면 十方世界求不可得이요 始道遠하며 看時에 祇在目前하야 你擬趁他에 他又轉遠去하며 你始避他에 他又來逐你하야 取又不得하며 捨又不得이니라 旣若如此면 故知一切法性이 自爾하야 卽不用愁他慮他하야 如言前念是凡이며 後念是聖하야 如手翻覆一般하니 此是三乘敎之極也니라 據我禪宗中하면 前念且不是凡이요 後念且不是聖이며 前念不是佛이요 後念不是衆生이니 所以一切色이 是佛色이요 一切聲이 是佛聲이니라 舉著一理하면 一切理皆然하야 見一事에 見一切事하며 見一心에 見一切心하며 見一道에 見一切道하야 一切處無不是道며 見一塵에 十方世界山河大地皆然하며 見一適水에 卽見十方世界一切性水하며 又見一切法에 卽見一切心이니라 一切法本空하야 心卽不無하니 不無卽妙有요 有亦不有하야 不有卽有니 卽眞空妙有니라 旣若如是하면 十方世界不出我之一心하며 一切微塵國土不出我之一念하니 若然하면 說什麼內之與外리요 如蜜性甜하야 一切蜜皆然하니 不可道這箇蜜甜하고 餘低苦也니 何處有與麼事리요 所以道虗空이 無內外하니 法性도 自爾며 虛空이 無中間하니 法性도 自爾이 故衆生卽佛이요 佛卽衆生이라 衆生與佛이 元同一體며 生死涅槃과 有爲無爲가 元同一體며 世間出世間과 乃至六道四生과 山河大地와 有性無性이 亦同一體니라 言同者는 名相이 亦空하야 有亦空無亦空하야 盡恒沙世界가 元是一空이니 旣若如此어니 何處有佛度衆生이며 何處有衆生受佛度리요 何故如此오 萬法之性이 自爾故니 若作自然見하면 卽落自然外道요 若作無我無我所見하면 墮在三賢十聖位中하나니 你如今에 云何將一尺一寸하야 便擬量度虛空가 他分明向汝道호대 法法이 不相到니 法自寂故로 當處自住하며 當處自眞이니라 以身空故로 名法空이요 以心空故로 名性空이며 身心이 總空故로 名法性空하며 乃至千途異說이 皆不離之本心이니라 如今에 說菩提涅槃과 眞如佛性과 二乘菩薩者는 皆指葉爲黃金하는 拳掌之說이니 若也展手之時에는 一切大衆에 若天若人이 皆見掌中에 都無一物이라 所以道호대 <本來無一物어어니 何處有塵埃리요>하니라 本旣無物하야 三際가 本無所有하니 故學道人은 單刀直入하야 須見這箇意하야사 始得다 故達摩大師從西天來至此土하야 經多少國土하야 祇覓得可大師一人하야 密傳心印하야 印你本心이니라 以心印法하며 以法印心하야 心旣如此하며 法亦如此하야 同眞際等法性하니 法性空中에 誰是授記人이며 誰是成佛人이며 誰是得法人고 他分明向你道호대 菩提者는 不可以身得이니 身無相故며 不可以心得이니 心無相故며 不可以性得이니 性卽便是本源自性天眞佛故니라 不可以佛更得佛이며 不可以無相更得無相이며 不可以空更得空이며 不可以道更得道니 本無所得하야 無得亦不可得이니 所以道호대 無一法可得이요 祇敎你了取本心이니라 當下了時에 不得了相하야 無了無不了相이라도 亦不可得이니 如此之法을 得者卽得하나 得者도 不自覺知하며 不得者도 亦不自覺知니 如此之法을 從上巳來로 有幾人이 得知리요 所以道호대 <天下에 忘己者有幾人고>하니라 如今에 於一機一境과 一經一敎와 一世一時와 一名一字를 六根門前에 領得하면 與機關木人으로 何別고 忽有一人出來하야 不於一名一相上에 作解者하면 我說此人은 盡十方世界覓這箇人하야도 不可得이니라 以無第二人故로 繼於祖位하여 亦云釋種하며 無雜純一이니 故言 <王若成佛時에 王子亦隨出家라>하니 此意大難知니라 祇敎你莫覓이니 覓便失却하야 知癡人이 山上叫一聲에 響從谷出하면 便走下山趁하야 及尋覓不得하며 又叫一聲에 出上響又應하면 亦走上山上趁하야 如是千生萬劫을 祇是尋聲逐響人이라 虛生浪死漢이니 汝若無聲卽無響이니라 涅槃者는 無聞無知無聲하야 絶迹絶踪하니 若得如是하면 稍與祖師隣房也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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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래선 : 여기서 말하는 여래선은 조사선과의 우열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조사선이 곧 여래선임을 뜻한다. 「선문정로」의 무생법인편 참조.

* 취차(取次) : 경솔하다, 경망스럽다는 뜻.

 * 상견(常見) : 영원불멸의 실체가 있다고 고집하는 잘못된 견해로서, 단견(斷見)의 반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