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설봉록雪峰錄

8. '24경시'의 운을 따름 1~8.

쪽빛마루 2016. 7. 20. 11:25

8. '24경시'의 운을 따름

    [次韻二十四景詩]

 

1. 설봉산(雪峰山)

 

눈송이 엉겨 맺힌 하얀 부용꽃

서산 너머 흐르는 구름이 엷어지다 다시 짙어지는데

삼복 여름 들어서면 약간 더운 듯하다가

가을이 반쯤 가면 곧 겨울이라네

 

은덩이처럼 쌓인 눈은 천겹 가파른 산에 뒤섞이고

깎아세운 듯한 옥돌바위는 백길 소나무에 기댔구나

우화대(雨花臺) 위에서 몇번이나 바라보았던가

불빛 일렁이는 누각에 서리같이 맑은 종소리를.

六華凝結素芙蓉  隔崦流雲淡復濃

夏入伏中微覺暑  時移秋半便如冬

銀堆錯落千重崱  玉砌槎牙百丈松

幾度雨花臺上望  光搖樓閣起霜鍾

 

2. 보소대(寶所臺)

 

경요대(瓊瑤臺) 옆에 선 빛나고 아름다운 정자가

높이 구름과 노을에 기대 멀리 푸르름을 보내네

비취새가 살기에 보배나무 많이 섰고

진주꽃 꽂아서 금병에 모여 있네

 

벼랑 앞의 오리는 침향(沈香) 연기 토해내고

자주빛 대나무 가지 집모서리 방울 때리는데

옥난간에 차례로 기대가며 불자를 휘두를 때

공중을 날아가는 황금빛 학은 신선의 영혼을 싣고 가네.

瓊瑤臺畔彩華亭  高倚雲霞遠送靑

翡翠雀栖多寶樹  珍珠花揷稡金瓶

沈香煙吐屛前鴨  紫竹枝鼓榭角鈴

倚徧玉欄揮梵麈  半空黃鶴載仙靈

 

3. 남전장(藍田庄)

 

반듯반듯한 남전 설봉산에 에워싸이고

그윽한 분 옥을 심어 옥돌 많이 모였다네

길가에 떨어진 매화는 향기 잘 흩어지지 않고

날아갈 듯한 바위틈의 샘물줄기 저절로 방아되었네

 

산마을 아가씨는 구름 뚫고 한가로이 푸르름 줍고

산에 사는 스님들 빗속에서 농사일을 보는구나

붉은 산 푸른 물, 아지랑이 속에 마을은 먼데

9리에 뻗은 깊은 솔밭, 푸르름 그 몇겹이런가.

井井藍田繞雪峰  幽人種玉玉多鍾

徑邊梅落香難散  岩罅泉飛水自春

山女穿雲閑拾翠  山僧帶雨看耕農

丹山碧水煙村遠  九里松深翠幾重

 

4. 고목암(枯木菴)

 

속 빈 고목나무 궁궐같이 널찍한데

노승은 여기 앉아 공(空)을 이야기하네

그 뿌리 지축에 서려 동해바다까지 통하였고

그림자 대나무 발에 떨어져 붉은 난간에 비치네

 

패랭이는 구름 끝에서 늦푸르름을 흔들고

산에 나는 차잎은 눈 온 뒤의 봄꽃같이 붉어 보이니

여기 이곳에서 영고성쇠를 묻지 말아라

그 모든 것은 아득한 허깨비의 변화 속에 있나니.

古木中虛廣若宮  老僧於此坐談空

根蟠地軸通滄海  影落湘簾暎綉櫳

石竹雲邊搖晩翠  山茶雪後觀春紅

對玆休問榮枯事  都在冥冥幻化中

 

5. 삼구당(三毬堂)

 

사자좌와 사슴꼬리 불자(拂子)에 묘한 방편 가이없어

그 이름 5백년을 중국과 변방에 퍼졌네

떼굴떼굴 구르는 공 세 개 그릇같이 일정한 모양 없고

하나의 참된 기운 둥근 하늘과 합해졌네

 

돌고 돌아 짝수는 홀수에 복귀하고

인간세계에 왕래하다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니

백천명 대중 속에 누가 그 뜻 알았는가

현사스님 미소지으며 법당 앞에 서 있구나.

牀猊麈尾妙無邊  名播華夷五百年

三箇趯丸非定器  一團眞氣合乾圓

循環偶數原奇數  來往人間忽上天

千百衆中誰會得  玄沙微笑立堂前

 

6. 일통산(一洞山)

 

천하에 이름 떨친 제일가는 산에

산속에 골짜기 있어 인간세계와는 다르니

경지(璚芝) 요초(瑤草) 향기 자욱한 그 밖은

서기어린 노을과 구름 아득히 보이는 가운데다

 

우연히 금색 연꽃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보이는데

갑자기 흰 학이 하늘에서 돌아오누나

천태산의 유씨와 원씨는 참으로 우습구나

골짜기를 나가서 선녀를 생각했을 때는 귀밑머리 이미 반백이 되었네

天下名傳第一山  山中有洞異人寰

璚芝瑤草芳菲外  瑞靄祥雲縹緲間

偶見金蓮從地湧  倏看白鶴自天還

天台劉阮應堪笑  出洞懷仙鬢已斑

 

7. 반산정(半山亭)

 

우뚝한 정자 파란 구름 끝에 걸쳐 지었으니

그림같은 기둥과 조각한 대들보, 옥으로 깐 섬돌과 난간은

기세 산천을 덮을 만큼 스스로 크고

맑은 기운 풍월에 남겨 굳이 넓을 필요없구나

 

개울 건너 붉은 그림자는 저녁 햇살 흘려내고

자리에 드는 푸른 그늘은 새벽의 서늘함을 보내오네

우습구나, 그 옛날 회계산 난정 모임에서

구비도는 물 위에 술잔 띄우며 마음껏 서성거렸네.

巍亭結架碧雲端  畫棟雕梁玉砌闌

勢槪山川能自大  淸留風月不須寬

隔溪紅影流殘照  入座靑陰送曉寒

堪笑會稽蘭渚會  流觴曲水恣盤桓

 

8. 화성정(化城亭)

 

지팡이에 몸 기대 천천히 높은 누각에 오르니

눈 가득한 연기 노을은 비단 쌓아 올린 듯하구나

비취색 대밭에 바람 흔드니 밝은 달빛 부서지고

푸른 산에 비 지나니 흰 구름 열리도다

 

왕손으로 몸을 나타내 성 안에 머물러 있는데

불자(佛子)는 다겁생의 밖에서 왔네

이것이 부처님께서 방편을 쓰신 곳이라

하늘꽃 법비 속에 함께 노니네.

扶筇閑步上高臺  滿目煙霞錦作堆

翠竹風搖明月碎  靑山雨過白雲開

王孫顯化城中住  佛子從多劫外來

可是導師方便處  天華法雨共徘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