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공부

[스크랩] [광덕 큰스님] 사제법이란 무엇입니까?

쪽빛마루 2010. 1. 6. 12:13

 

사제법이란 무엇입니까?

 

 

 

 

자세히는 사성제 또는 사진제라고 하며 네 가지 틀림없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사성제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골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장 수승한 법이라고 하여 최승법설(最勝法設)이라 하며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처음 설법하실 때 하신 가르침입니다.

 

 

사성제의 첫째는, “미혹인 이 세간은 모두가 고다.” 하는 것이니 이것을 고성제라고 합니다.

둘째로 “ 고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끝없이 구하여 마지않는 애착과 집착이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집성제라 합니다.

셋째는 “이 애착과 집착을 완전히 없게 한 것이 고가 없는 진실한 경계이다.” 하는 것이니 이것을 멸성제라고 합니다.

넷째는 “이와 같은 고가 없는 경계로 나아가자면 팔정도(八正道)를 닦아야 한다.”하는 것이니 이것을 도성제라고 합니다.

 

 

위 사제를 고성제, 고집성제, 고멸성제, 고멸도성제라고도 하고 줄여서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라고 합니다.

사제 가운데 고와 집은 미망의 세계의 결과와 원인을 밝히고 있으며 멸과 도는 깨달음의 세계의 결과와 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사제는 우리에게 주신 부처님의 최초의 법문으로서,

 

첫째는 이 세계와 진리는 어떠한 것인가를 이 법문에서 배워야 하겠으며

둘째는 이와 같은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닦고 다른 이에게 권하여야 하겠으며

셋째는 우리 모두가 필경 이 진리를 깨달아 미혹도 고통도 없는 진리의 경계를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팔정도(八正道)란 무엇입니까?

 

 

 

 

팔정도(八正道), 팔지정도(八支正道), 팔성도분(八聖道分)이라고도 하는데 신성한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최초 설법하시면서 즐거움과 고행의 두 극단을 여읜 중도의 수행법을 말씀하셨는데 팔정도는 그 핵심입니다.

 

 

첫째는 정견(正見)인데 불교의 진리를 깨달은 올바른 견해나 사상을 말하는 것으로써 불교수행의 목적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정사유(正思惟)인데 정사(正思) 정지(正志)라고도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정어(正語)인데 바른 어업(語業) 즉 올바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정업(正業)인데 신체의 행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정명(正明)인데 바른 생활 또는 생활 방법입니다.

여섯째는 정정진(正精進)인데 정방편(正方便)이라고 하고 바른 노력을 말합니다.

일곱째는 정념(正念)인데 정견이라는 바른 목표를 항상 마음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입니다.

여덟째는 정정(正定)인데 바른 선정(禪定)의 생활을 말합니다.

 

 

이 팔정도는 중생들을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네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배 또는 뗏목으로 비유하여 팔도선(八道船) 또는 팔벌(八筏)이라고도 합니다.

 

 

 

 

 

 

 

 

연기란 무엇입니까?

 

 

 

 

이 세간에 있는 모든 존재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상입니다.

 

 

모든 존재는 형상이 있어도 형상을 유지하는 조건하에 있는 임시적인 것이며 허망한 한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조건 여하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화하고 독립적 존재성이 없으며 인연을 통하여 서로 의존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기의 사상은 불교의 근본적 세계관인데 경전이나 학파에 따라서 몇 가지 연기론이 있습니다.

12연기설, 아뢰야(阿賴耶) 연기설, 법계(法界) 연기설, 육대(六大) 연기설 등이 그것입니다.

 

 

 

 

 

 

 

 

 

삼학이란 무엇입니까?

 

 

 

 

불법을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는데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배움을 삼학이라 합니다. 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입니다.

 

 

계학은 마음의 청정을 지키고 말과 행실을 단속하여 마음의 진실을 지켜가는 행입니다.

정학은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을 배우는 것인데 마음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동요에 그 마음이 한결같음을 말합니다.

혜학은 마음의 밝은 빛을 드러내어 바르게 쓰는 지혜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그 행실에 계행이 없으면 마음이 흔들리고 거칠어져서 고요하고 맑은 본성을 보지 못하게 되며 마음이 흔들리고 맑지 못하면 지혜가 없어 옳고 그름과 선악을 분별 못하며 수행은 성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래로 삼학을 비유하기를 계를 그릇으로 말하고 계의 그릇이 완전하고 든든하여야 거기에 맑은 정의 물이 담기게 되고 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거기에 밝은 지혜의 달이 원만하게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수행은 정을 닦는 것이라느니 혹은 오직 지혜만이 소중하다느니 하여 계행이나 정수행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물로써 향을 만들 수 없듯이 계의 그릇이 허물어지고는 청정한 깨달음의 공덕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삼법인(三法印)이란 무엇입니까?

 

 

 

 

법인이란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 규범이 되는 표시라는 뜻인데 이 법인에 맞으면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는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입니다.

모든 현상적인 것은 형상이 있든 형상이 없든 마음에 있든 끊임없이 변하고 바뀐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고 성장하고 병들고 죽으며 세간 모든 물건도 생기고 한참 머물다가 허물어지며 사람의 생각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둘째는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입니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형상이 있는 것은 몇 가지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실체가 없으며 요소라 하는 것들도 그 근본은 허망하며 마음이다 생각이다 하는 우리가 의식하는 세계도 모두가 망념의 그림자일 뿐으로 그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입니다.

모든 번뇌가 쉰 자리를 열반이라 하는데 이것은 일체 대립이 없고 모순을 초월하여 고요하고 원만하고 청정하다는 것입니다.

 

 

첫째의 제행무상인은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하여 향상된 것이 없다는 가르침인데 이것은 범부들이 현상 세계에서 영원과 불멸을 구해도 결코 얻어질 수 없다는 명확한 해답입니다.

 

 

둘째의 제법무아인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는 것을 분명히 밝혀 그 사이에서 집착할 수 없고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셋째로 열반적정인은 모든 존재와 모든 현상이 공허하고 얻을 수 없는 것이나 깨달음의 진리 세계는 영원하며 원만하고 불멸인 진리 실상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위 세 가지 가르침에 어긋나는 이론은 부처님 가르침과 무관하다는 뜻이 됩니다.

 

 

 

 

 

 

 

 

 

계율이란 무엇입니까?

 

 

 

 

불자가 지켜야할 생활 규범입니다. 몸과 말로써 악한 것을 막고 잘못된 것을 멈추게 하는 청정행의 기본입니다.

계는 불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초로서 계를 지키지 아니하면 어떠한 공덕도 이룰 수 없고 설사 고행하고 정진한다 하더라도 선법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계법은 밖에서 처벌이 따르는 강제성보다 주로 자발적인 노력으로 지키게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거나 나쁜 행을 하면 나쁜 결과가 따르지만 그것은 밖에서 오는 처벌이 아니라 행위가 가져오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계는 5계, 8계, 10계, 구족계 등이 있으며 이밖에 대승 보살을 위한 보살계가 있습니다.

모든 불자들은 먼저 오계를 받고 다음에 수행 신분에 따라 그 밖의 계를 받으나 보살계는 재가 출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불자가 받는 것입니다.

계를 내용으로 보면 계가 없더라도 행위의 성질상 본래 죄악인 것을 경계한 계, 예컨대 살생이나 도둑질 같은 것을 성계(性戒)라합니다.

이에 대하여 행위가 본래 죄는 아니지만 교단의 필요상 또는 다른 죄를 유발할 것을 막기 위하여 특히 경계한 계가 있는데 예컨대 음주같은 것입니다.

이런 계를 차계(遮戒)라고 합니다. 대개 살생,도적,삿된 음행, 망어 등은 성계이며 사중계(四重戒)라고도 하여 가장 중한 계가 됩니다.

그 밖의 계는 보다 가벼운 허물이기는 하나 악을 멀리하고 청정율의를 가지며 세간의 비방을 막고 교단의 신성을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계는 비록 말과 신체적 행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으나 이것은 바로 마음의 청정과 진실과 지혜를 닦아 가는 데에 참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와 그 밖의 모든 수행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오계에서 들면,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계에는 자비심으로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이 내면의 뜻이며 도둑질하지 말라는 불투도계는 탐심을 버리고 베풀어주라는 것이 본뜻입니다.

계는 그 표현 방식이 ‘이러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본 뜻인즉 적극적으로 규범을 실천하라는 작위(作爲)가 본 내용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를 가지기를 ‘무엇무엇 하지 않는’ 소극적 부작위(不作爲)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적극적 행동계율을 배워 가야겠습니다.

 

 

모든 불자가 받는 기본계인 오계는,

1.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2.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3.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4. 망녕된 말을 하지 말라.

5. 술 마시지 말라.

이며, 구족계는 비구계 2백 50계와 비구니계 3백 48계를 말하며 보살계는 열가지 중한 계(십대대계)와 가벼운 48경구계(경구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즈음에 아난 존자가 묻기를 “부처님 멸도 후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하오리까?”하니 부처님께서는 “계로 스승을 삼으라”하신 말씀을 깊이 간직하여야 하겠습니다.

 

 

 

 

 

 

  - 불광 출판부, '생의 의문에서 해결까지'에서 발췌-

출처 : 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글쓴이 : 법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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