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 물은 물

102. 백일법문

쪽빛마루 2010. 1. 27. 11:26

102. '백일법문'



1967년 해인총림 방장에 취임한 성철 스님은 그해 겨울 동안거(冬安居.겨울 한철 외부 출입을 않고 수행정진하는 것) 를 맞아 1백일에 걸친 대법문의 사자후(獅子吼) 를 토해냈다.

성철 스님은 백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두시간 정도씩 불교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성철 스님의 불교철학.선사상을 총정리한 '백일법문(白日法門) '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당시 해인사 큰절의 큰방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60평이나 되는 넓은 방에 꽉 찬 옥수수알처럼 겹겹히 줄을 지어 앉아야 했다. 선방에서 수행하던 수좌 60여명, 교리를 배우는 강원의 학생 스님 70여명,그밖에 절살림을 돌보는 일을 맡은 여러 스님들까지 모두 빼곡히 모였다.

법문의 명성이 입으로 입으로 알려지면서 인근 다른 사찰의 스님들까지 몰려와 큰절은 물론 해인사 부속 암자들에까지 스님들로 가득해 잠 잘 방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모두 3백여 스님들이 운집,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법회로 불교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철 스님이 경북 문경 김용사에서 처음으로 설법의 말문을 연 적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규모나 비중이 백일법문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에 취임하자마자 백일간에 걸친 긴 법문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큰스님이 법문의 첫머리에서 스스로 밝힌 이유.

"예수교는 성경, 유교는 사서삼경, 회교는 코란이면 됩니다. 근본경전이 간단합니다. 그런데 불교는 통칭 팔만대장경이라 하니 누가 들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으니 무슨 말씀인지 알기 힘들고, 설사 좀 안다고 해도 간단하게 뭐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철 스님은 이렇게 불교경전이 복잡하고 어려운 까닭에 "머리 깎은 스님이나 부처를 믿는 신도들이나 부처님 말씀을 너무 모른다"며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불교가 뭘 가르치는 건지 모르고 무슨 발전이 있겠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공부한 것들을 압축, 우선 급한대로 최소한 꼭 알아야 할 것만 골라 간략히 설명하고자 했다.

설법의 중심 교리는 '선(禪) 과 교(敎) 는 중도(中道) 사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성철 스님의 사상을 가장 잘 정리한 '백일법문'의 가르침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부처님의 윤회설은 방편이 아니고 정설이니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업(業) 에 따라 생사(生死) 를 되풀이한다는 '윤회(輪廻) '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기에 굳게 믿어야한다는 것이다.

둘째, 불교가 과학적인 종교라는 점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불교의 가르침이 정확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이 자주 예를 든 과학적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E=mc2의 공식이다. 이 물리학적 연구성과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또 질량이 에너지로,에너지가 질량으로 바뀌면서도 부증불감(不增不減.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 하는 관계가 곧 불교에서 말하는 '법계(法界.법의 세계) '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사상(中道思想) 에 있다는 점이다.선과 악, 질량과 에너지가 하나로 통하듯 모든 모순이 융화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 스스로 원시경전에서부터 아함경.삼론종.천태종.화엄종.유식과 중관,그리고 선어록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섭렵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성철 스님이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불교의 핵심사상을 압축해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스님들은 물론, 최근 재가불자에 이르기까지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늘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오가는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유가 있기 때문이다.

노자와 장자에서 공자와 맹자, 그리고 이들 동양사상을 설명한 석학들의 얘기서부터 서양 물리학과 수학에 이르기까지 인용이 매우 다양하며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인용들이 전부 불교경전의 가르침과 적절히 연결돼 궁극적으로는 불교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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