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돈점(頓漸) 논쟁
성철 스님의 사상을 짧게 말하자면 돈오돈수(頓悟頓修) 라 할 수 있다.
'돈오'란 단박에 깨닳는 다는 말이고, '돈수'는 단박에 닦는다는 말이다. 다소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큰스님의 핵심적인 사상이기에 간단히나마 소개한다.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1년 출간한 『선문정로』다. 큰스님은 이 책에서 돈오돈수를 '올바른 깨달음의 방편'이라고 주장하면서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단박에 깨닫고 점진적으로 수행함) 사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돈오점수를 신봉하는 사람에 대해 "이단사설(異端邪說) 에 현혹된 자들"이라고까지 비판했다.
바로 한국불교사에 있어서 '돈점(頓漸) 논쟁'의 시작이다.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90년 보조사상연구원이 송광사에서 개최한 '불교사상에서의 깨달음과 닦음'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다.
이 대회에 참석한 돈오점수론자들이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다시 3년 뒤인 93년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지원하기위해 만든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학술회의를 열었다.
'선종사에서 돈오돈수 사상의 위상과 의미'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선 다시 돈오돈수에 대한 반론이 적지 않았다.
물론 성철 스님은 이미 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취임하던 해 '백일법문'에서부터 돈오돈수를 주장하며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를 비판해왔다. 여러 법문에서 드러난 성철 스님의 생각은 이렇다.
"선종(禪宗) 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直指人心) 을 근본으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참선이란 곧바로 깨쳐서 성불하는 것이지, 절대로 점차(漸次) 를 둔다든지 단계를 둔다든지 하여 시간을 끌며 삥삥 둘러서가는 공부가 아닙니다. 선종에서 말하는 돈(頓) 과는 정반대로 교가(敎家) 에서는 점(漸) 을 주장합니다. 즉 수행의 정도나 마음의 상태 등에 따라 단계적으로 나누어 시간적인 점차를 두는 것입니다."
참선을 강조하는 선(禪) 불교에서는 단박 찰나(頓) 간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것, 즉 견성성불(見性成佛) 을 주장한다.
반면에 불교경전 공부를 강조하는 교가(敎家) 에서는 찰나간에 성불한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점차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듯 시간적으로 거리를 두어 점차(漸次) 를 가지고 공부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물론 두가지 방법 모두 불교의 가르침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선불교의 전통에선 돈오돈수가 맞는 것이고, 돈오점수는 깨달음을 단박에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지 제대로 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성철 스님이 자신의 이론을 세우는데 가장 큰 힘이 된 스승은 중국 당나라의 고승 육조 혜능(慧能.638-713) 이다. 성철 스님은 중국 선불교를 개척한 고승인 혜능 스님의 가르침을 자주 인용해 돈오돈수를 강조했다.
"선종에선 오직 돈(頓) 으로서만 성불하는 길을 가르친다.육조(혜능) 대사는 '오직 돈교만을 전해 세상에 나가 삿된 견해를 부순다'(唯傳頓敎門 出世破邪宗) 고 했습니다. 단계적으로 공부길을 인도하는 것은 모두 다 방편인 동시에 삿된 종(宗) 이라는 것입니다. 삿된 종(邪宗) 이라 하지만 이것도 혹 개인의 여건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기나긴 세월 동안 헛고생할 필요가 무엇 있습니까. '깨친다'(悟) 고 하는 것은 한 번 깨칠 때 근본무명을 완전히 끊고 구경각(究竟覺.완전한 깨달음) 을 성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박에 깨친다'(頓悟) 고 하면 '단박에 닦는다'(頓修) 고 합니다. 구경각을 성취해 버렸는데 그 뒤에 어떤 점차로 닦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육조스님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즉 '돈오'하고 나면 점수는 필요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당연히 단박에 깨치는 돈오돈수의 수행에 전념해야한다는 말이 된다. 돈오점수는 능력이나 결심이 모자라는 사람을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고,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돈오돈수는 깨달음의 지름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