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으라
송담스님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니 긴밀하게 화두를 잡고 한바탕 공부를 지어라. 한바탕 추위가 뼈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찌름을 얻을 것이냐. 매화는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매화꽃이 피어야 그 향기가 진동을 해서 사람의 코를 치는 것입니다. 날씨가 너무 푹한 뒤에 매화꽃이 핀 매화는 별로 향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야 그러헌 뒤끝에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 되가지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무량겁으로 꽉 맥혔던 중생의 업장이 무너지면서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도 그럭저럭 오늘도 그럭저럭 허고 싶은 말 다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자고 싶은 거 다 먹고, 그렁저렁 지내가지고 대도를 성취한 예는 일찍이 한 분도 없는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세등선원 그 밖에 해인사라던지 통도사라던지 범어사 동화사 각 방 선방에서 수좌스님들이 정진을 열심히 하고, 남스님네 못지 않게 비구니스님들이 더 이를 악물고 정진을 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세등선원에서도 원장스님인 세등스님이 세등선원을 창건을 해서 잘 유지해나가 영원히 이 선방이 선방으로서 많은 도인을 출생시킬 수 있는 그러헌 도량을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다가, 너무 신경을 쓰고 과로가 북쳐서 혈압이 오르고 건강히 극도로 악화가 되어가지고 결국은 쓰러졌습니다.
그동안 잘 치료를 하고, 또 사부대중이 정말 마음으로 정성스런 마음으로 부처님께 축원을 하시고, 이런 여러가지로 해서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머지 않아서 회복이 될 가망이 있어서 불행한 가운데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원장스님도 안 계신 그러헌 처지에서 본방 대중들이 스님 뜻을 받을어서 단합을 해가지고 외호를 철저히 잘하고, 또 방부를 들인 선방스님들은 거기에서 감동이 되가지고 밭을 맨다, 모를 심는다, 울력을 한다, 가사불사를 한다 이런 어려운 일을 자발적으로 일심 협력을 해서 극복하면서 더운 여름에 가행정진들을 해서 드디어 오늘 해제를 맞이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정진을 해가지고 도업을 성취하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못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것 뿐이지, 조금도 속효심을 내거나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낼 필요가 없어. 빨리 깨닫고 싶어한다고 조급한 마음을 낸다고 해서 빨리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야. 다못 여법하게,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히 열심히 공부한 것 뿐인 것입니다.
다맛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할 뿐이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더 더듬을 것이 없어. "다못 아지 못할 줄 알면 이것이 바로 견성이다".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이렇게 古조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단진범정(但盡凡情)이요 별무성해(別無聖解)다. "다못 범부의 정만 다할 뿐이요,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육조(六祖)스님 앞에 남악회양(南岳懷讓)선사가 찾아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육조스님이 이렇게 물으시는데 남악회양은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꽉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바를 몰랐습니다.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근본으로 부터 오면서 소소영영(昭昭靈靈)해 부득생(不得生) 부득멸(不得滅)이라. 일찌기 난 바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어. 명부득(名不得), 상부득(相不得)이여.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붙일 수도 없어. 이것이 무슨 물건이야?"
그 물음에 대해서 남악회양 선사는 꽈악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몸둘 바를 모르고 물러나와서 8년 동안을 꽉 맥힌 상태에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붙일 수 없는데 소소영영하다 그 말이여. "대관절 이놈이 뭣인고?"
꽉 맥힌 의심의 상태에서 8년만에 툭 깨쳤습니다. 육조스님을 찾아와서, "설사 일물(一物)이라도 즉부증(卽不證)입니다.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육조스님이 "還可修證否(환가수증부), 도리어 닦아 증할 것이 있느냐 없느냐?" "수증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염(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할 것이 없지는 않지만, 오염은 얻을 수 없습니다."
"여시여시(如是如是)다.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이렇게 해서 인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에게 육조스님께서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종본이래로 소소영영해서 부증생 부득멸이요, 명부득 상부득이니 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물었는데, "신회의 불성(佛性)이요, 제불(諸佛)의 본원(本源)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육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이름을 붙여서도 안되고 뭐라고 모양도 그릴 수가 없다고 했거늘 어찌 이름을 붙이느냐? 니가 장차 노력을 해가지고 일가를 이룬다 해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못되겠구나." 이론으로 따지는 학자밖에는 못되겠구나.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악회양 선사는 육조스님의 물음에 대해서 알수 없는 의심에 맥혀가지고 8년만에 확철대오를 해서 육조스님의 정통법을 이어받았거늘, 하택신회 선사는 영리해서 너무 영리해 빠져서 "신회의 불성이요, 제불의 본원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래가지고 학자는 되었지만 육조스님의 정법을 이어받았다고는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활구선, 조사선은 이러한 것입니다. 1,700화두가 있지만 그 공안을 이론적으로 따져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설사 어떠한 결론을 얻었다 해도 그것은 종래 중생의 사량이요,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깨달음은 이론으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학자나 강원에서 경을 배운 사람은 까딱하면 공안을 자기의 알음알이로 따져서 알아맞출려고 하는 그러한 경향이 종종 있는 것을 봅니다.
활구참선은 그러헌 것이 아냐. 깨달을려고 할진댄 그러헌 식의 참선을 해서는 아니돼. 금방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하는 법에 대해서 고담(古潭)화상의 법어를 간곡한 말씀으로 설법을 해주셨습니다. 이 공부는 누가 허라고 해서 하고, 허지 말라고 해서 안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공부는 철저한 신심, 신심이 돈발한 사람은 이 몸뚱이가 무상(無常)한 줄을 깊이 깨닫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무상한 줄 아는 사람은 시간이 아까운 줄 알고, 시간이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은 쓸데없는 인연에 얽매여가지고 자꾸 뒤로 미루고, 이 일만 어떻게 해놓고 공부하리라 이런 법이 없어. 한 묶음의 실을 잘드는 칼로 싹 썰어버리듯이 일체 인연을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인연을 끊지 못하고 그 인연에 얽매여가지고 징징징 밤낮 뒤로 미루고 뒤로 미루고 하다가 그 아까운 시간만을 흘려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육조스님은 독신으로 외아들로써 나무를 해다가 팔아가지고 근근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그렇게 지내는 형편에서도, 그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산을 찾아가서 오조스님의 법을 이어받았고, 동산양개(洞山良介)화상도 그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해가지고 대도를 성취를 했고, 과거의 모든 도인들이 애정을 끊지 않고서 도업을 성취한 분이 없었습니다.
도를 성취할려면 탐진치 삼독의 뿌리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애정과 세속의 모든 반연을 용감하게 매정하게 끊어버리고, 오직 이 생사문제 죽을 '사(死)'자 한 자를 이마빡에 쓰고서 정진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일부러 묵언을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할 말이 필요없고, 일부러 짓지 아니해도 저절로 모든 인연은 끊어지는 것이며, 저절로 묵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앉았을 때에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도 이뭣고, 밭에 가서도 이뭣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세속에 계신 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에 계신 분은 위로는 부모가 계시고,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과 딸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다 버리고 도만 닦을 수가 있느냐. 내가 과거에 지어놓은 업으로 만난 인연이요, 내가 지은 빚으로 인해서 금생에 아내로서, 부모로서 그 빚을 갚지 않고서는 그러한 형편에 놓여있습니다. 그러헌 일이 많아서 공부를 못한다고 보다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발심을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일이 바빠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연, 저런 인연으로 일마다 속이 상하고 속을 썩기 때문에 그러헌 탐신, 진심, 치심으로 인해서 공부를 못하지, 일이 많아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 제자에 빈두로(賓頭盧)라고 하는 바라문이 있었습니다. 그이는 아들은 없고 딸만 7형제를 나았어. 그런데 그 아내는 생긴 것은 이 세상에서 그렇게 보기싫게 생긴 여자는 없는 그런 추악한 아내였습니다. 그런디다 눈은 살조개 까놓은 것처럼 벌개가지고 도대체 볼 수가 없는데다가 성질은 고약해가지고 솜씨가 있나, 자태가 있나 절구통에다가 치마 입혀놓은 것 같이 생겨가지고 성질은 천하에 고약해가지고 신경질 내고 바가지나 긁고. 그런 아내 속에서 딸 7형제를 나았는데, 이 딸이라 하는 것이 그러헌 엄마 속에서 나온 것이라 별로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다 여의어 치웠습니다.
그런데 7명의 사위라 하는 것이 천하 불학무식하고 못된 것들한테 딸을 주었습니다. 그래가지고 1년 열두 달, 딸 칠형제와 사위 일곱놈들이 번걸아 가면서 와서 무엇을 뜯어갑니다. 별로 살림도 넉넉치도 못한데 번갈아 가면서 가져가는 통에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럭저럭 농사를 지어서 가을이 되었는데 이 소가 있어야 그걸 모두 거둬 들이기도 하고 다시 곡식을 갈기도 하고 그러는데 소가 없어서 남의 소 한마리를 간신히 얻어다가 추수를 했어. 추수를 하고 다시 보리를 심고 일을 하고서 그 소를 가을이 다 끝난 다음에 소 임자 집에다 갔다 주었습니다.
주인이 있으면 주인한테 "소를 잘 써서 고맙습니다"하고 입으로라도 사례를 하고 정식으로 인계를 하고 왔으면 했을텐데 주인이 보고 있기 때문에 그냥 그 소를 문앞에다 갔다 놓고 그냥 왔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그 소를 안에다 묶어매리라 하고 그냥 왔는데, 주인은 그 사람이 소를 끌고 와서 집앞에다 그냥 시원찮게 묶은동 만동 하고 갔기 때문에 다시 그 소를 갔다 쓸려고 그러나보다 하고 안에다 묶어매지 아니한 체 놔뒀습니다.
그런데 그 이틑날 보니까 그 소가 없어져서 그 사람이 다사 가져갔는가 보다 했는데, 몇일이 지내고 겨울이 닥쳐와도 소를 가져오지 않아서 "왜 소를 다 썼으면 가져오지 가져오지 않느냐?"고 독촉을 하러 갔습니다. "소 그 때 갔다주었는데 무슨 소를 또 가져오라 그러냐?" "아니 당신이 나한테 말을 하지 않았잖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보고 있는데 놓고 왔기 때문에 나는 갚았다." "말을 안했기 때문에 당신이 도로 가져간줄 알았다." 이래가지고 큰 싸움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그 소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이러저리 찾으러 다녀서 해가 넘어가도록 찾으러 다녀도 소는 발견할 수가 없고.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산골짜기를 가니까 부처님이 어느 나무 밑에서 선정에 들어가지고 계시거든. 가만히 그 옆에 가서 참선을 하고 계신 부처님 모습을 보고 있을라니까, "나도 저렇게 출가해가지고 중이 되어서 도를 닦았으면 그 고약한 아내한테 시달릴 것도 없고, 사위들한테 딸년들한테 다 그렇게 볶일 필요도 없고, 남의 소를 빌려다가 농사지을 필요도 없고, 소 임자한테 이렇게 시달릴 필요도 없고. 나도 차라리 기집이고 뭣이고 다 내동댕이쳐버리고 중이나 될까."
이런 생각을 머금으면서 부처님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부처님이 선정에서 나오셔가지고, "오냐. 니가 발심만 한다면 도 닦는 것 보담 더 좋은 것이 없느니라." "저 같은 기집이 있고 해도 출가할 수가 있습니까?" "발심만 한다면야 그런 인연을 끊을 수만 있다면 왜 안되겠느냐." "그러면 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그래가지고 머리를 깍고 계를 설해서 중을 만들었는데, 머지 않아서 툭 깨쳐서 나한과를 증득을 했어. 아란(阿蘭)존자가 그것을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참 방편과 설법을 잘하셔서 저런 죄많은 중생을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도업을 성취하시게 하시니 대관절 저 빈두로가 과거에 어떠헌 숙연이 있어서 저렇게 출가해가지고 머지 않아서 대도를 성취했습니까?"
저 빈두로는 금생 뿐만 아니라 무량겁을 두고 나와 인연이 깊어서 나의 은혜를 받아온 처지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대단히 지혜가 높고 덕이 높아서 정치를 잘하고 모든 사람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을 내림으로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서로 믿고 화평하게 살 수 있었다. 그때 단니기라고 하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역시 가난뱅이로서 악한 기집을 만나가지고 고생고생을 하다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소를 빌렸다가 도망을 갔는데 그 소 임자가 임금님한테 재판을 걸었다.
재판을 하러 가는 도중에 너무너무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어느 주막집에 들어가서 술 한잔씩 먹고 요기를 하고 가자" 그래가지고 술 한잔을 먹는데, 그 평상에 이불 같은 것이 있었는데 거기 풀썩 앉아서 술을 먹은 것이, 아 글쎄 이불 속의 애기를 갔다가 뉘어서 덮어놨는데 그걸 모르고 너무너무 피곤한 탓으로 펄썩 주저앉은 것이 애기가 가슴의 뼈가 연하디 연해놔서 아주 개떡처럼 깨져버렸다 그 말이여.
그래서 주막집 주모가 남의 애기를 갔다가 무도하게 그렇게 펄쩍 주저 앉아서 애기를 죽였다고 애기를 내놓으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소 임자와 주모가 같이 이런 나쁜 놈은 임금님한테 가서 재판을 받아가지고 아주 사형을 하던지 엄벌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그 사람을 끌고 갑니다. 가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강을 어디로 건너면 좋을지 몰라서 마침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 "어디로 건너면 좋겠소?"하고 묻는데, 그 배 타고 있는 사람이 목수인데, 입에다 끌을 물고서 다른 짐을 지고서 이리 하고 있는데, "저리 가라"고 하다가 끌이 퐁 빠져버렸단 말이여. 그러니 저 사람 때문에 내 끌을 물에다 잃어버렸다.
아무리 끌을 찾아봐도 알 수가 없고 그래서 또 목수도 같이 따라서 재판을 받으러 갑니다. 얼마만큼 가니까 '이 사람들한테 끌려서 임금님한테 끌려가서 재판을 받아봤자 죄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남의 소 물어줘야 하고, 남의 자식을 뭉개셔 죽였으니 자식을 물어줘야 하고, 목수 끌을 없앴으니 목수 끌을 차려줘야 하고. 가봤자 나는 사형감 밖에 안되니 도망쳐야겠다'하고 마침 담이 있어서 담을 넘어서 훌떡 뛰어서 도망간 것이, 아 담 밑에 어떤 사람이 누워서 일을 하고 있다가 이놈이 덮썩 뛰어서 한 바람에 모가지가 부러져서 죽어버렸다 그 말이여.
그래가지고 뭐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할 수 없이 끌려가지고 임금님 앞에 끌려갔습니다. 그 임금님은 단정왕(端正王)이라 하는 임금인데, 여러분은 옛날에 솔로몬 왕이 있어가지고 애기 하나를 놓고 서로 자기 애기라고 싸우는 재판을 받아서 그렇다면 그 애기를 서로 줄다리기를 해가지고 뺏은 사람이 임자다.
그러니 둘이 줄다리기를 해라. 두 여자가 달라들어서 그 애기를 잡아당기는데 한 사람은 사정없이 애기 팔이고 다리고 막 잡아댕겨서 뺏어갈라 그러고, 한 사람은 애기가 다칠까봐서 그냥 애기를 잡으면서 줄줄줄 끌려가기만 하고. "그만, 이 애기는 이쪽 사람이 임자다." "어째서 내가 뺏었는디 뺏은 사람이 임자라 해놓고, 임금님은 그렇게 불공평하게 재판을 하십니까?" "니가 낳은 자식 같으면 그렇게 사정없이 잡아당길 수 있어? 나쁜년 같으니." 이러헌 명판을 한 것이 전해내려옵니다만, 그래서 그 재판을 하는데 이 소 건에 대해서 재판을 합니다.
"왜 소를 다 쓰고 가지고 갔으면 입으로 니가 '이 소를 잘 썼으니 감사합니다. 여기 소 가져왔습니다. 잘 매십시오' 이렇게 니가 한마디 했으면 될텐데 너는 왜 그 말을 안했으니 너도 죄가 있고. 네가 눈으로 그 소를 분명히 봤으면 뭣하라는 눈이냐? 니가 그 소를 봤으면 니가 그 소를 맬이지 말 안했다고 소를 안갔다 매! 두 놈들이 다 죄가 있어. 너는 입으로 말 안한 죄가 있으니 니 혀를 끊어야겠고, 너는 눈으로 보고도 갔다 매지 않았으니 니 눈을 파버려야겠다."
그러니까 "소 찾을려다가 제 눈구녕을 파서는 안되겠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소는 제가 찾던지 만회를 할테니 눈구녁 파는 것만은 용서를 해주십시오." 이래가지고 소 건에 대해서는 끝났습니다. 애기를 뭉개서 죽인 건에 대해서 재판을 했습니다. 다른 애기를 어디서 갖다가 준다해도 싫다, 돈으로 물어준다 해도 싫다, 기어이 자기 자식만 물어내라 합니다.
그러니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거 큰일이다 이 말씀이여. 그러면 좋은 수가 있다. "저 단니기란 사람을 영감으로 얻어라 그래가지고 그 애를 하나 밸 때까지 영감을 데리고 살면 애를 밸 것이 아니냐? 그러면 단니기하고 살면서 낳았기 때문에 단니기가 정말 애기를 하나 물어준 것이 되고, 또 니 뱃속으로 낳았으니 니 자식이 아니냐. 그러니 단니기한테 잠깐 시집을 가서 살아라!" 그렇게 판결을 내렸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런 고약한 놈한테, 가난뱅이한테 시집을 가봤자 별 재미도 없을 것이고 별 볼 것도 없고... 애기를 갔다가 성인들이 애기를 하루에 수십 명, 수백 명씩 왔다갔다 하는데 그런 평상에다 애기를 덮어놓았으니 그걸 까딱없이...
애기를 놔둔 사람도 잘못이고, 뭐가 있나 들쳐보고 앉아야 할텐데 그냥 앉은 놈 둘 다 죄가 있으니, 천상 자기 자식을 찾고 그 자식을 물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러니 단니기란 고약하게 생긴 놈한테 시집을 갈 수밖에는 없다고 판결한 그 단정왕의 판결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끌을 잃어버린 사람, 담 밑에 앉았다가 모가지 부러진 사람 전부가 다 적절한 판결을 내려줬습니다. 단니기란 사람은 그 단정왕의 명판으로 인해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결국은 금생에 그렇게 또 소 한마리를 잃어버린 그런 인연으로 해서 부처님 도 닦고 계신 현장을 만나가지고 출가해서 나한과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 단정왕이라고 한 임금이 오늘날 석가여래 부처님이시고, 그때 그 단니기란 바라문이 빈두로 존자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속에 살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이웃간에 또는 동지간에 또는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입으로 다투고 재산으로 다투고, 그러헌 참 심지어는 웬수가 되기도 하고 법정까지 나가서 재판도 하게도 되고 죽을 때에도 그 원한을 풀지 못하고 죽어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까 부처님의 전신이신 단정왕처럼 자기를 지혜스럽게 스스로를 잘 판정을 한다면 구태여 재판을 하지 아니해도 될 것이고, 웬수를 맺지 아니해도 될 줄 생각합니다.
말을 안해도 자기 손으로 갖다가 외양간에 맸으면 소를 잊어버리지 안했을 것이고, 일단 잘못해서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내가 갔다 묶어 맬 것을 내가 좀 등한히 해가지고 그 소를 잊어버렸구나. 그 사람하고 둘이 합심을 해서 소를 찾을지언정 서로 싸우고 재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소를 갖다 썼으면 주인한테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외양간에다 자기 손으로 갔다 묶었으면 소를 잃어버리지 아니할텐데 왜 문앞에다 시원찮게 놔두고 잃어버리게 두었으냐. 그것이 자기의 허물이란 것을 느끼고서 일로써 갚든지, 돈으로써 갚든지 할 일이지. 그것을 당신이 보고도 안 묶어맸으니 난 그 소를 갔다 준 것이라고 싸울 일이 아니여. 세속에 살면서 모든 허물을 자기에서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지, 허물을 꼭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고 자기는 꼭 따질려고 하거든. 거기에서 웬수가 생기고, 재판이 일어나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속에 살면서 그렇지 않아도 정신 쓸 일이 많고 할 일이 많거늘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지 아니하고 남에게서 찾고, 남에게 허물을 뒤집어 씌울려고 한다면 동지간에도 웬수가 될 수밖에는 없고, 이웃간에도 웬수 아닌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 동네 인심이 나쁘다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봤자, 그런 마음보를 가지고 이사 가봤자 가는 곳마다 원결을 맺게 될 것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별명을 받게 될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까마귀란 놈이 옛날에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까악 까악' 울기만 하면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하고 모두 재수 없다고 욕을 하고 미워한단 말이야. 그래서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서 자기 딴에는 좋아서 '까악 까악'하면 보는 사람마다 돌팔매질을 하고 사람 또 누가 죽을라나 재수 없이 까마귀가 운다 이러거든. 그래서 하루는 신령님을 찾아가서 호소를 했어. "어째서 나는 가는 곳마다 욕을 하고 돌팔매질을 받고 그럽니까?
어째서 사람들이 그렇게 인심이 나쁩니까? 어디를 가야 내가 환영을 받고 귀염을 받는 곳이 있겠습니까? 그곳을 좀 가르켜 주십시오." "니가 그런 기분 나쁜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면 너는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도 미움받기 마련이다. 그러니 너는 그 울음소리를 그칠지니라. 울음만 그치고 만다면 너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신령님이 가르켜 주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에게서 자기의 허물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누가 나를 억울하게 욕을 한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디 저 사람이 나를 욕을 하고 죽일라 그런다 이럽니다. 원인 없이 잘못 없이 나를 남이 욕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중생은 항상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지혜있는 사람은 항상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서 허물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은 나날이 지혜로와지고, 살아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귀염을 받고, 환영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되고, 허물을 남에게서 찾고 항시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미움을 받고, 가는 곳마다 마음이 편할 날이 없어. 내게서 나의 허물을 찾는 건 출가인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야. 출가인도 항시 허물을 자기에게서 찾고, 허물만 자기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온갖 행복도 자기에서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참선법이야.
어리석은 사람은 밖에서 재산을 찾고, 밖에서 권리를 찾고, 밖에서 안락을 찾습니다. 밖에서 찾는 즐거운 행복이라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봤자 오욕락을 벗어나지를 못해. 밖에서 얻어진 행복은 언젠가는 내 몸으로부터 떠나고 마는 것이고, 밖에서 얻은 행복은 우선은 나를 잠시 기쁘게 해줄런지는 모르지만은 언젠가는 그것으로 인해서 큰 재앙을 받게 되는 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밖에서 얻은 오욕락의 행복은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루복(有漏福)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죄를 짓고, 얻어진 그 유루복을 누리느라고 죄를 짓고, 그 복이 없어질 때 없어지지 않게 하려고 갖은 수단을 부리다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기 되기 때문에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삼생(三生)의 원수니라.
세속에서는 유루복을 여의고 살 수가 없습니다. 고기가 물을 여의고 살지 못하듯이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를 아주 여의고는 살 수가 없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만 집착을 해가지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고 붙잡고 늘어진 사람은 종내 갈 곳은 삼악도 밖에 없어. 그러헌 속에서도 무상한 줄 알고, 정법을 신하며, 육바라밀을 닦으면서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을 해야만 유루복 속에서 무위진리를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세속의 오욕락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출가한 부모와 형제와 정든 고향과 일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출가인으로써야 무엇에 얽매여 가지고 도를 못닦을 것이냐! 잘 먹기를 바랄 것인가, 잘 입기를 바랄 것인가, 무슨 명예와 권리와 재산을 바랄 것이 있느냐 그 말이여.
선방에 가면 밥도 있고 방도 있고, 부처님께서 100세가 정명(定命)이신데,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신 것은 20년간 당신이 받아자실 복을 말세의 우리 제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복이 없는 사람도 머리를 깍고 먹물옷을 입고 살기만 하면 먹고 입을 것은 절대로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 "흉년이 들어서 세 고을 원님이 굶어죽게 되어야, 눈먼 중 저녁 걱정한다" 이런 속담이 있어. 절대로 출가한 부처님 제자는 아무리 못나고 아무리 박복하다 하더라도 굶어죽거나 얼어죽는 법 없어. 하물며 계율을 지키면서 철저히 도 닦는 담에야 먹고 입을 것은 산과 같고 바다와 같아. 가는 곳마다 먹고 입을 것은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입을 것이 걱정이 없다면 무엇이 걱정이야! 살아서 상투가 있냐, 죽어서 무덤이 있느냐. 비오면 신발에 비 들이치나, 어쩌나 그것 하나 걱정 밖에는 우리는 없는 사람이여.
이렇게 종단이 분규가 끊일 날이 없고 시끄럽지만, 그 스님네는 그 스님네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바로잡으며 잘해나갈 것인가 그런 염려가 너무 지극한 탓으로 서로 의견상 차질이 있어서 그러한 분규가 있거니, 언젠가는 서로 공통점을 찾아서 화합을 하게 되면 정말 좋은 종단이 되어가려니 그것을 바래고 기도하는 뜻으로라도 우리는 열심히 정진할 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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