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관광

문수사 인근 명소 - 지리산 8대를 찾아서

쪽빛마루 2013. 8. 24. 05:27

<인용: 다음카페 '유유자적 등산여행' 中에서>

 

지리산 8대를 찾아서

 

※ 조선일보 조용헌(원광대 교수)살롱 - '지리산 8대'가 출처임. 

 

지리산에는 전망 좋은 8대(八臺)가 있다. 대(臺)는 높은 언덕이라서 전망이 좋은 곳을 말한

. 지리산 8대에서는 천왕봉이나 반야봉이 잘 보이는데 모두 영험한 기도터로 알려져 있다.

 8대를 모두 올라야 비로소 지리산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1.금대(金臺)-함양군 마천면 가흥에 있다.창암산 능선을 마주보는 금대산(847m) 9부 능선에 자리

잡아, 지리산 천왕봉의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며, 지리산 일대에서 제일가는 수도처로 알려져 있

다.

 

지리산 산사람들은 신라 태종 무열왕 3년(656), 행호조사에 의해 창건된 후 많은 수행자들이 정진

했던 곳이며, 특히 보조 지눌의 법맥을 이은 진각 혜심이 생사를 도외시하고 육체를 잊어버린 채

수행했다는 금대암(해인사의 말사)을 동양 제일의 명당으로 꼽았다.

 

금대를 제1수행터라 할만큼 아름다운 풍광을자랑한다. 일설에 의하면 지리산 산신인 여자. 금대가

있는 봉우리가 남자. 지리산의 여산신이 금대산의 남산신을 바라보는 형국.  그래서 금대에서 공부

하면 지리산의 여산신이 아낌없이 지원해 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2.마적대(馬跡臺)-함양군 휴천면 세동에 있다. 쌍계사에서 불일평전을 지나 국사암을 통과하면

길 오른쪽으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다. 최치원 선생이 말에다 바구니를 묶어 함양 장날

에 심부름을 보내면 필요한 물건을 담아서 다시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래의 글들은  인용한 다음카페 '유유자적 등산여행'의 내용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자료를  참고하고  현장 탐사를 통해 추측을 해 본 내용이다.

 

함양군에서 제작. 배포한 '지리산 둘레길 안내도'를 보면 휴천면 송전리 세동마을

에서 송대마을 방향으로 길을 따라 약 1.2km정도를 올라가면, 세진대 / 마적

송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다른 표시로는 '소나무 쉼터' 라고 되어있다또한,

이 주변을 '마적동'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 길은 지리산 둘레길이 처음 개통될 때 제4구간으로 금계마을 - 의중마을 - 서암

정사 - 벽송사 - 벽송사 능선 - 송대마을 - 세동마을 - 운서마을 - 구시락재 - 동강

마을로 이어지는  구간 으로 사용되었다가, 일부 여행객들의  주민들과 마찰로 코

스가 취소되고 구간이 변경됨으로써,  금계마을-의중마을-용유담-모전마을-세동

마을-운서마을-구시락재-동강으로 이어지는 길로 수정이 되었다.

 

세진대 / 마적송이 있는 곳을 8월 17일 다녀와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곳이 

'마적바위'라 하기도 하는데, 바로 '마적대' 일것으로  추측을 해본다.

 

세진대는 문수사에서는 세동마을로 내려가서, 세진대 / 마적송 (소나무 쉼터)

로 이동하면 된다.

 

(일부는 사진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블로그와 카페의 사진을 활용했다.)

 

마적사는 통일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604~661) 때 실존 인물이라는 설

이 있는 마적도사가 마적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 문수사는 신라시대 무열왕 659마적조사가 건립한 마적사의 부속 암자였

    다. 그 당시에는 마적사와  문수암자로 통하는 산길이 있었을 것이고, 가까

   운 거리였을 것이다.

   

   세동마을 입구의  안내판을 보면 문수사와 송대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시되어 있는데, 현지 주민들 이야기로는, 지금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고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하여 다니기가 어렵다고 한다. 

 

마적대(세진대)는  신기한 지리산의 보물 중 하나인  용유담의 전설속에 등장하는

마적도사의 혼이 깃든 마적도사 바위이다.  마적도사가  이 곳에서 장기를 두었

다고 하며,  예전엔 그 주변에 마적사란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함양군지에

나타나며, 현재 이 부근의 마을 이름도 마적동이다.

 

용유담의 대표적 전설인  마적도사 이야기를 살펴보자.

 

옛날 옛적 용유담 인근에 마적사를 짓고 당나귀(또는 말)를 기르던 마적도사가

있었다. 마적도사는 사찰에 식량이나 부식물이 떨어지면 쪽지를 써서 당나귀 등에

달아주었고, 이를 본 상인들은 쪽지에 적힌 대로 생필품을 실어 보냈다. 볼 일을 끝

낸 당나귀는 오도재를 넘어 용유담으로 돌아와 나귀바위에서 울었고, 그 울음소리

를 들은 마적도사는 용 아홉 마리를 시켜 다리를 놓아 당나귀가 건너오게 하였다

고.

하루는 당나귀를 장에 보내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용유담의 용들이 눈먼 용

한 마리만 제하고 서로 먼저 여의주를 얻어 등천하겠다고 얽히고 설켜 싸운 모양이

다. 무거운 짐을 이고 소리 내어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자 나귀는 그대로 지쳐 쓰러

져 죽고 만다. 이때 나귀는 죽어서 피바위가 되었는데 바로 이 바위가 나귀바위이

다.

 

뒤늦게 전후 사정을 파악한 마적도사는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장기판

을 팽개쳤는데, 그 조각 한쪽이 지금도 마적사에 남아있고  그 장기판 부서진

조각이라는 돌들이 지금도 용유담가에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또 아홉 마리 용 가운데 눈먼 용 한 마리만 남겨놓고 여덟 마리는 모두 쫓아버렸다

는 이야기다. 용유담가에는 나귀바위와 장기판이라는 바위가 있다.

 

송전리 주민들은  피묻은 이 나귀바위를 폭파하지 않고는 새 길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송전 주민들은 부득불 이 곳을 폭파하게 되었고 폭파를 실시하자 폭음과

더불어 말방울 16개가 한몫에 쏟아져 나왔다고한다. 바로 1300여년 전 신출

귀몰한 도술로서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마적도사의 애마인 당나귀의 말방

울들인 것이다.

 

신라 무열왕 기미(659년)년 마적도사는 법화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한 마적사절을

떠나던 날 배나무 한 그루를 절에 심었다. 이것이 살아있으면 내가 산 줄 알고 이것

이 죽으면 나도 죽을 줄 알아라 하면서 심었다고 한다.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추론을 해보면, 마적대(세진대)에서 마적도사가 장기를 두곤

했는데, '용유담의 전설과 같이 장기판을 팽겨쳤는데, 그 한 쪽이 지금도 마적

사에 남아 있고~' 라는 대목을 확인 시켜 줄 만한 마적동의 마적사 터로 추정

되는 곳 인근에서 바위에 붙어있는 장기판을 실제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전설이 실제 있었던 일로 느껴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문수사를 마적대로 파악하고 오신 탐방객이 있었고, 또한, 기(氣)를 연구하

시는 연세가 있으신 두 분과  50대 후반의 한 분이 같이 오셔서, 엘로드라는 수맥탐

지봉을 가지고 사찰의 이곳 저것을 탐지하기도 했는데, 문수사 전체적으로  기(氣)

가 세고 강하다고 하시면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는데,氣기 약한 곳에서 기도

를 하는 것 보다 문수사 같은 이런 절에서 기도를 해야 좋다고 하시면서, 잠을 자도

이런 곳에서 자면 아침에 피로가 풀리고 개운해진다고 하신 것 등등을 고려해서,

여러가지를 살펴볼때 마적사 터로 추정되는 곳과, 이 곳 문수사까지 직선상 

거리로는 아주 가까운 곳이므로  이 일대가 명당 터 일것으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중앙의 연두색. 연녹색을 친 부분이 지리산 자락이며, 문수사와 벽송사는

9.9km 거리에 있다.

위의 지도상 그림으로 세동(송전마을)에서 아래 방향(세진대의 우측 방향이

됨)으로 약 1.2km 거리에 문수사가 있으며, 세진대(소나무 쉼터)문수사는

직선상으로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세동마을 안내판

 

세진대와 마적송 - 마적도사가 애마가 죽은걸 알고 화가나서 장기판을 부숴버

린 '마적바위'라 한다.

 

 소나무 쉼터 안내판

 

세진대 옆의 장독바위

 

장독바위

 

 세진대('세상의 티끌을 씻어 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마적송

 

 

 

 

 

 

 소나무 군락과 정자가 있다.

 

 세진대에서 바라본 전경

 

세진대 마적송을 보호하기 위한 안내판

 

 엄천강이 보인다.

 

 용유담과 용유교 다리가 보이고, 그 뒷편 위로는 보살봉이 보인다. 

세진대에서도 보살상이 보인다.(문수사 인근 견불사의 보살상 친견소에서 보

는 것과 같다) 

 

지리산 자락이 보인다.

  

마적사로 추정되는 절 터 인근의 바위에 붙어있는 장기판 

 

마을주민의 얘기로는, 여기가 마적사의 절터라고 찾아오시는 분(스님. 탐사

가. 여행객 등)들이 많았다고 한다.

 

용유담의  전설이 실제인 것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마적사의 절터로 추정 되는 곳 - 절터 뒤로는 산 봉우리가 8개가 있고, 좌.우.

앞의 조망이 기가 막히게 뛰어난 곳이다. 가히 명당이라 할 만한 곳인것 같다.

 

 

3. 문수대(文殊臺)-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다. 노고단이나 돼지평전에서 왕시

리봉 길 남쪽 15분 거리에 위치.

 

4. 연화대(蓮花臺)-뱀사골 뒤의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골 좌측 상부)에 있다.

 

5. 묘향대(妙香臺)-구례군 산동면 반야봉 밑에 있다. 지리산 10대 암자 중 제일 높

은 1,450m에 위치, 지리산 마니아들은 이끼폭포와 연계하여 드나드는데, 쉽게 찾

아갈 수 없는 신비한 암자다.

 

구례면 산동 반야봉 밑에이곳은 "개운조사" 전설로 유명. 개운조사는 경북 상주군

개운동에서 태어남. 1790년대 근대 200~300년 동안 한국이 배출한 도인 가운데 최

고라고 함.개운조사가 남겼다는 "능엄경"에는 개운조사가 도닦던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함.

 

6. 만복대(萬福臺)-구례군 산동면에 있다. 성삼재에서 정령치 가는 길의 중간에

위치.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조망이 참으로 멋진 곳이다.

 

이곳은 "만복이 깃들어 있는곳"이라고 함

 

7. 수성대(守城臺)-남원시 인월면 중군리에 있다. 덕두산 중턱에 위치하며, 임진

왜란 때 군사요충지였다.

 

8. 청신대(淸信臺)-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상황마을에 있다. 삼봉산에 위치하며,

금대산과의 연결 산행이 가능하다.

 

 

*** 참고사항

 

-지리산 10대: 문수대, 종석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

-반야봉 7대: 문수대, 묘향대, 종석대, 만복대, 금강대, 무착대, 서산대

-천왕봉 5대: 향적대, 문창대, 영신대, 소년대, 향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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