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永嘉)스님의 선과 달마스님의 선은 동일합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영가(永嘉: 665∼713)스님은 '마음을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하는 참선을 하도록 해야지, 잡다한 생각에 혼미하게 머무는 것은 참선하는 이들의 큰병이다'라고 말씀했읍니다. 영가스님의 이 말씀은 달마스님이 전한 선(禪)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가집 (永嘉集)」에서 10편(十篇)의 대지 (大指)로써 점수(漸修)하여 깨닫는다는 말들은, 거의가 지관법문(止觀法門)의 방법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처음은 사념(思念)을 쉬어 6진(六塵)을 쉬는 것이며, 다음은 대상〔境〕과 인식작용〔智〕을 모두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로 모아놓은 관심십문(觀心十門)은 아주 현묘(玄妙)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깊이 통달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달마스님은 사람들에게 오직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취하게 했을 뿐입니다. 마음이 밝아지기만 하면, 마치 주인이 자기 집에 돌아와 마음대로 활동하듯이, 복잡히게 여러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자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은 것은 모두 적절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마스님이 제자 신광(神光)스님을 가르칠 때에, '밖으로는 모든 반연을 끊고, 안으로는 마음의 헐떡임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올바른 방법을 찾은 것이니라'라고 했을 뿐, 그 밖에 다른 말을 하셨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읍니다. 정말로 진실하게 마음속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점수(漸修})하여 수행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소리는, 달마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선〔直指之禪〕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이런 과오를 어찌 영가스님만이 범했겠습니까! 천태스님의 3관(三觀)과 현수스님의 화엄 4법계관(華嚴四法界觀)도 이 마음의 이치률 언어적인 이론으로써 자세하게 풀어놓았읍니다. 비록 과거의 부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시더라도, 이 두 스님들보다 마음의 법을 이론적으로 자세히 밝혀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마스님과 다른 점은 대체로 언어적인 이론을 사용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즉「원각경(圓覺經)」에서 3관(三觀)으로써 서로 분류하여 25륜(二十五輪)」을 심은 경우와 같고, 「능엄경(楞嚴經)」에서 18계(十八界)와 7대성증(七大性證)으로써 25원통(二十五圓通)을 삼은 경우와 같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어찌 이 두 경전에만 나왔겠읍니까! 다른 경전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경전에서 늘어놓은, 닦아서 증득하는 방법〔修證法門〕을 다 섭렵했다 하더라도, 달마스님의 바로 가리키는 선〔直指之禪〕과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편 복잡하게 언어적인 이론을 늘어놓으면,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달마스님의 선과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른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에 대해서 같다는 생각도 할 수 없거늘, 어찌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읍니까! 당신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총지(總持) 자체는 문자가 아니나, 문자로써 총지를 밝혀낸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읍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총지 자체는 문자가 아니라는 입장이, 비로 달마스님외 바로 가리키는 선〔直指之禪〕입니다. 반면에 문자를 이용하여 총지를 밝힌다는 입장이 여러 교종의 이론들인 것입니다. 또한 달마스님의 가르침이 교종과 다른 이유는,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주관적인 자기집착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최후로 대가섭(大迦葉))에게만 유일하게 전해주신 심법(心法)을 달마스님이 그대로 계승하신것 입니다. 그러나 대가섭에게 유일하게 전해주신 가르침은 물론 대가섭만이 소유한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함께 소유한 신령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자비심을 내어 중생들을 제도하실 때에, 듣는 사람들의 근기에 알맞게 하신 것입니다. 이른바 대소(大小), 편원(偏圓), 동이(同異), 현밀(顯密)의 방편을 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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