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경어 서(參禪警語 序)
경(警)자는 깨어난다는 뜻이다. 또 어떤 사람을 놀래킨다는[驚] 뜻이라 하며,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도둑이 큰 집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자. 이때 주인이 등불을 밝혀놓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기침소리를 내면 도둑은 겁이 나서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깊은 잠에 빠지고 나면 그틈을 타서 집안에 들어와 보따리를 다 기울여 털고 달아난다. 그러므로 경계가 엄한 성에서는 밤에 딱다기를 치면서 야경을 돌고, 군대의 진중(陣中)에서는 조두(刁斗 : 밥그릇 모양의 징)를 치면서 밤경비를 한다. 그러므로 갑자기 사고가 생긴다해도 아무 근심이 없게 되니, 이는 미리부터 경비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생사(生死)라는 큰 근심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깨지 못할 꿈이다. 더구나 6근(六根)이 도둑 같은 그 생사를 도와 나날이 가보(家寶)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잘 깨달으신 선지식께서 경책해 주시는 뼈아픈 말씀이 없다면, 종신토록 꿈에 취해서 끝내 깨어날 날이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잠들었을 때 주인노릇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낮에 눈을 뜨고도 잠꼬대를 더욱 심하게 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박산 대의(博山大艤 : 1574~1630)스님께서는 자비로운 원력으로 멋들어진 노래를 지으셨는데, 그것을 가지고서 식견이 좁고 아집이 센 중생들의 업병(業病)을 두루 치료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고자 함이었다. 이런 취지에서 「선병경어(禪病警語)」 5장(章)을 발표하셨다. 이 책은 간결한 문체로 요점만을 타당하게 서술함으로써 참선하는 데서 생길 수 있는 고질적인 병통을 다 끄집어내어 철저하게 규명한 글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공부방법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가장 요긴한 것으로서, 참선하는 납자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한 권의 참신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구제한다는 면에서도 아홉 번을 불에 구워 만들었다는 신약(神藥)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에 대하여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선(禪)이란 가명(假名)일 뿐 실체(實體)가 없는데 무슨 병통이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자 한다. 참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 생각을 고집하여 잘못된 이해로 마음[心意識]이 들떠, 깨달음을 진실된 경계에서 찾지 않고 알음알이 속에서 구하려 한다. 그리하여 옛사람이 하신 말씀에 꼭 막히기도 하고, 더럽고 썩은 물속에 가라앉아 죽게 되기도 하며, 혹은 아무 일 없이 멍청한 상태로 앉아 있기도 한다. 이렇게 해가지고는 영악하게 이익을 챙기는 마음이나 어리석게 집착하는 마음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미세한 번뇌[命根]를 끊기 어렵고 생멸이 분명하게 마음속에 장애로 남게 되니, 이 모두가 다 내가 만든 병이지 선(禪)에 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심한 사람은 미치거나 마귀가 붙어서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을 업병(業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도 또한 선병(禪病)은 아니다.
그러면 선병(禪病)이란 무엇인가? 가령 죽을 힘을 들여서 여러가지 경계를 맛본다 치자.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법신(法身)의 이치에 상응하는 참된 공부를 하려 하지 않아서 진정한 깨달음으로 향하는 문턱을 직접 밝아보지 못하고 밥통 속에 앉아서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輕安]에 빠져 노닌다면, 바로 이런 편안함이 선병(禪病)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스님이 덕망 높은 선사(禪師)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큰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수없이 많은 큰 병의 근원이 청정법신이니라."
이는 마치 밤송이가시 같아서 삼키기도 토하기도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다. 훌륭하신 옛스님들께서는 진정하게 참구하여 실답게 깨닫는 과정 속에서 한바탕 병들을 치르고 오셨다. 그러므로 빈둥거리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어지럽게 쇠침을 놓아주지 않고, 오직 숨을 죽여 가며 아픔과 가려움을 알려고 하는 납자에게만 비로소 진찰해 주기를 승락하셨다. 이 때문에 병을 알면 곧 그 병을 없앨수 가 있고, 자기를 치료하고 난 다음에야 다른 사람을 고쳐줄 수가 있으니, "세 번 남의 팔꿈치를 부러뜨린 다음에야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라 하겠다.
박산(博山)스님은 오래전부터 이 도(道)를 참구(參究)하시어 지극하게 깨달으셨다. 그리하여 사리에 딱 맞는 요점만을 말씀하셨을 뿐, 억지로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스님께서 평소에 몸소 깨닫고 실제로 터득한 경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법(法)을 알아내고 설명하며 일상에 적용함에 있어서, 그 이치가 뚜렷하고 말솜씨에도 막힘이 없으셨다. 이것이 선병(禪病)을 명쾌하게 고칠수 있는 원인이었으니, 마치 진시황(秦始皇)이 궁중에서 옥경(玉鏡)을 잡고 앉아서 뭇 관료들의 마음속을 비추어보아 터럭만큼도 숨길수 없게 한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법상(法床)에 걸터앉아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며 설법하던 선사들 중에서도 박산스님만큼 뚜렷하게 설파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선병(禪病)이란 가장 설명하기 어렵고, 또 설명한다고해도 다 남김없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 병이 곧 법신(法身)의 병이기 때문이다. 법신에는 무수한 병이 생기는 것이니,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이 법신의 병을 잘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병 자체를 묘약으로 삼고, 또한 밥 먹고 차 마시는 집안일 쯤으로 여기며, 몸에 걸치는 땀내나는 저고리 정도로 생각하여 이것을 남이 모르게 잘 감추어두고 있을 따름이다.
옛사람이 "병 치료하는 여가에 놀이삼아 불사(佛事)를 한다." 하심이 바로 이 뜻이다. 다시 말해 법신에 주체가 없음을 확실히 안다면 병은 저절로 씻은 듯이 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산(洞山 : 807~869)스님께서도 "내가 볼 때는 병이 있는 것 같지 않더라"라고 하셨다. 오직 망상(妄想)과 집착(執着) 때문에 선병이 앞을 다투어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능엄경(楞嚴經)」에서 5온(五蘊)의 마장(魔障)과 그 밖에 외도(外道) 의 모든 사견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곧 이것이 바로 지금 사람들의 선병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고집스럽게 집착하면 마장이 되고, 알음알이로 헤아리면 외도라 하니, 집착과 헤아림이 없어야만 역시 병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터득한 경계에 대해 좋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참경계[善境界]라 할 수 있으며, 만일 '나는 깨달았노라'하는 생각을 내면 삿된 마군의 침입을 받는다"라고 하는 이유이다.
「법화경(法華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막히고 험난한 길 사정을 잘 아는 길잡이 하나가 있으며, 그 덕분에 여러 사람을 인도하여 보물있는 곳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산스님의 이 책이야말로 말세에 있어서 배를 매어두는 말뚝이며, 초심자에게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오늘날의 선문(禪門)에만 유익할 뿐이겠는가. 뒷날의 선문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드시 참선을 해서 공부를 완성하고 크게 깨닫는 방편을 찾고자 한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자세히 이 책을 읽어보라. 그러면 어떤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리하여 의정(疑情)을 일으키지 못하던 곳에서 의정을 일으킬 수 있고, 병의 뿌리를 뽑아낼 수없던 곳에서 뽑아낼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모래를 헤치고 보배구슬을 찾아내는 일과 같으니, 중요한 것은 스스로 보배구슬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안개 걷힌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이 남을 미혹시키지 않고, 꽉 막힌 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새 길이 되며, 의미없는 죽은 말[死句]속에 활구(活句)가 있어 마치 둥근 구슬이 쟁반 위에 굴러다니듯 어느 한마디에도 막히지 않게 된다.
그 묘한 작용이 이와 같으니 사람마다 이렇게 마음을 운용할 수 있다면 앉아 졸면서도 도를 볼 수 있고, 도를 묻느라 부지런히 돌아다니지 않아도 곧바로 크게 안락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되어 불조(佛祖)들과 똑 같은 경지가 된다.
이것으로 자신을 잘 경책할 수 있는 사람은 대중을 깨우쳐줄수 있고, 다시 이것으로 스스로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병도 고쳐줄 수 있으니, 바로 이런 사람을 살아 있는 의왕(醫王)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조사의 가르침이 퍼져 흐르게 하고 나라의 운명과 부처님의 혜명(慧命)이 아울러 굳건해져서, 스님께서 보여주신 방편과 원력의 참뜻을 저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것으로 서(序)를 삼는다.
萬歷 辛亥(西紀 1612年)
劉崇慶 和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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