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참선경어參禪警語

제2장 옛 큰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평하는 글(1.~10)

쪽빛마루 2014. 12. 14. 06:43

제2장 옛 큰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평하는 글

 

 

옛 큰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평하는 글

 

 

1. 쓸데없이 마음 쓰지 않다

 

 조주(趙州 :778~897)스님이 말씀하셨다.

 "30년 동안 쓸데없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옷 입고 밥 먹는것 빼고는 모두 쓸데없이 마음을 쓰는 일일 뿐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아예 마음을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쓸데없는 마음을 쓰지 말라는 뜻일 뿐이다. 이른바 '마음을 한 곳에만 쏟으면 무엇이고 안될 일이 없다'는 뜻이다.

 

 

2. 참구에만 집중하라

 

 조주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오직 도리를 참구하는 일만을 하라. 20, 30년씩 참구해 보아도 깨닫는 바가 없다면 내 목을 잘라 가라."

 

 나는 이렇게 평한다.

 조주스님은 그까짓 죽는 일이 무엇이 그렇게 급하단 말인가? 그렇긴 하나 날이 갈수록 20년, 30년씩 다른 마음 먹지 않고 오직 외길을 지키는 사람을 찾아볼래도 정말 찾기 힘들다.

 

 

3. 가산(家産)을 타파하는 소식

 

 조주스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18세에 가산(家産)을 타파하는 소식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나는 하루 24시간의 노예로 살아왔지만 지금은 하루 24시간을 맘껏 부리며 산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가산(家産)에다가 살아나갈 계책을 세우다 보니 24시간의 노예가 되었지만, 가산을 깨어버린 자는 24시간을 부릴 수 있다. 홀연히 어떤 스님이 와서 "무엇을 가산이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 박산은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 가죽주머니를 벗어버리면(죽을 때 가서야)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4. 벙어리가 되라

 

 조주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만약 평생 총림(叢林)을 떠나지 않으면서 5년, 10년 동안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또 아무도 그대들을 불러주는 이 없이 벙어리가 된다면, 그런 다음에야 부처님도 그대를 어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 함은 마음을 번거롭게 쓰지 않는다는 뜻이니, 가사를 입고 생사문제의 큰 도리를 참구하지 않는 납자는 위와 같은 경계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사람들이다.

 

 

5. 화두를 설명하는 일은 알음알이다

 

 

 천태 덕소(天台德韶 : 890~972) 국사(國師)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화두에 대한 대답과 설명을 폭포처럼 유창하게 쏟아놓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지 전도된 알음알이일 뿐이다. 만일 그런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참선하는 일이 무엇이 어렵다고 하겠는가? 이러한 사람은 다른 납자에게 무익할 뿐 아니라 자기의 잘못를 남에게 거듭 팔어먹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지금 사람들은 겉핥기식으로만 공부하여 보통때에 오며 가며 법을 물으면서 불법(佛法)을 얘기거리로나 여기고 있으니, 이런 태도는 공부에 무익할 뿐 아니라 많은 허물을 이룬다. 지금 세상에는 쓸모없는 말들을 마음대로 지껄이고는 그것을 선(禪) 도리라 우겨대고 있으니, 앞서 소개한 국사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낯이 두꺼운 사람들이다.

 

 

 

 

6. 판단이나 암기 등은 다 알음알이에 속한다

 

 국사께서 말씀하셨다.

 "스님네들이 이제껏 공부해 온 판단이나 문답 · 암기 속에는 도리를 설명한 부분이 매우 많다. 그런데 어째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고 옛 스님들의 방편을 들으면 본래 뜻은 깨닫지도 못하고서 오직 빈틈만 많고 실속은 적다고 여기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판단이나 암기 등은 모두 알음알이[緣慮]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니 생사의 뿌리가 끊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옛사람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다.

 "오묘한 말씀이 마음을 꽉 메우면 도리어 알음알이의 소굴이 되고 만다. 참된 도는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언어형상[名相]을 통해서 파악되는 경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7. 지식의 굴레를 벗고 그 자리에서 깨치라

 

 국사께서 말씀하셨다.

 "스님들은 바로 자기 선 자리에서 문득 깨치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는 화두를 들고, 또 자기에게 의심거리가 되어 줄 만한 어떤 법문이 있으면 그 의심을 풀려고 애써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이제껏 공부랍시고 해왔던 일들이 생사(生死)의 근원이었으며, 지옥에서 살길을 꾀하는 바보 같은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옛날 어떤 스님도 '지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마치 물속에 있는 달과 같다'고 지적하셨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지식과 사고가 누군들 없겠는가마는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대전환이 있어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공부와 상응하지 못하면 수정궁(水晶宮) 속을 뚫고나왔다 하더라도 끝내 깨달음과는 관계없게 된다. 옛 큰스님은 "알음알이가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마치 기름이 국숫물에 들어간 듯 끝내 거기에서 나올 기약이 없다"고 하셨으니,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8. 무엇을 하든 다 나의 마음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소암(紹巖)스님이 말씀하셨다.

 "납자들이여, 오늘 임금께서 그대들을 초정하신 까닭은 오직 그대들의 마음 밝히는 일을 돕고자 해서이지 딴 뜻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마음을 밝혔는가?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말문을 닫고 묵언할 때, 또는 선지식을 찾아뵙거나 도반들과 토론할 때, 산수를 구경하거나 아예 보고 듣는 일들을 딱 끊었을 때,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이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모두 마귀나 도깨비가 달라붙은 것이니, 이를 두고 어찌 마음을 밝힌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말을 해도 틀리고, 침묵을 지켜도 틀리며, 경험을 통한 지식을 긍정해도 부정해도 다 틀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도(道)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납자들이여, 법통(法統)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하느니라.

 

 

9. 몸 바깥에 본래면목이 있다는 견해

 

 

 소암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망상(妄想)덩어리인 이 육신을 떠난 바깥에 또 다른 해와 달, 그리고 허공을 포함하는 하나의 우주공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본래면목이라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외도(外道)의 견해일 뿐 마음을 밝힌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평한다.

 이런 사람을 '공(空)에 치우친 외도'라고 부르니, 어떻게 '몸과 마음이 하나여서 이 몸을 떠나서는 다른 것도 있을 수 없다'는 도리를 알 수 있겠는가? 지금의 납자들은 다른 사람은 만나보지도 않고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여 공(空)만을 주장하는[偏空] 외도의 견해에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10. 집착을 버리면 망상이 없어진다

 

 스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납자들이여, 알아듣겠는가? 마음에 옳다고 긍정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또한 모든 것이 다 옳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대들이 집착하고 헤아리고 하는 한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렇게 평한다.

 앞에 거론된 옳다 아니다의 두 가지 병통은 집착에 그 원인이 있으니 내가 처방을 하리라. 오직 시비를 따지는 것과 집착이 없기만 하면 이 병은 즉시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