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능엄경」으로 사대부를 교화함/ 장문정공(張文定公)
두기공(杜祁公)과 장문정공(張文定公)이 모두 벼슬에서 물러나 수양(睢陽) 땅에 살면서 서로 정답게 마을을 오갔는데, 주승사(朱承事)는 약방을 차려 생계를 꾸리며 이 두 노인들과 사귀었다. 두기공은 성품이 곧아서 일찌기 잡학(雜學)을 배우지 않고 장안도(張安道 : 文定公)가 불교에 가까이하는 것을 항시 비웃었으며 손님을 대하면 반드시 이 일을 조롱하였지만, 장문정공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주승사가 한가한 틈에 문정공에게 말하였다.
“두기공이 천하의 위인(偉人)이기는 하나 불교를 모르는 것이 애석합니다. 공께서는 힘이 있으시면서도 어찌하여 그에게 발심(發心)을 권하지 않습니까?”
“자네가 나보다 그 노인과 인연이 더 깊으니 나는 자네를 도울 뿐이네.”
이렇게 하여 주승사는 황공해 하며 물러간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두기공이 맥이 끊어질 듯 하여 주승사를 부르자, 주승사는 심부름 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먼저 가서 상공(相公)에게, ‘「수능엄경」을 읽어 보셨습니까?’라고만 여쭈어라.”
그러자 심부름꾼은 그의 말대로 두기공에게 전하였다. 두기공은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주승사가 도착하자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인사하였다. 이어서 그를 앉으라고 한 다음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그대가 세상사에 막힘없고 사리를 아는 사람이라 여겨왔었는데 뜻밖에도 요사이에 보니, 그대 또한 똑같이 못난 사람이로군! 「능엄경」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글이기에 그렇게 탐착하는가. 성인의 깊은 말씀치고 공자 맹자보다도 더 훌륭한 말이 없는데 이것을 버리고 그것을 택한다는 것은 큰 잘못일세.”
“상공께서는 이 경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공맹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로는 오히려 공맹보다 더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수능엄경」첫 권을 내놓으면서 말하였다.
“상공께서도 한번 읽어보시지요.”
두기공은 주승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지 못하여 책을 집어 들고 말없이 책장을 뒤적이다가 자기도 모르게 끝까지 다 읽고 갑자기 일어서며 매우 놀라 감탄하였다.
“세상 어디에 이런 책이 있었단 말인가!”
사람을 보내 나머지 부분을 모두 가져오게 하여 다 읽어 본 후 주승사의 손을 붙잡고 고마워하였다.
“그대가 참으로 나의 선지식일세. 안도(문정공)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왜 진작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곧장 가마를 준비케 하여 문정공을 찾아가 그 일을 말하자, 문정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어떤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생각지 않게 찾았을 때 찾은 것만을 기뻐할 일이지, 일찍 찾았느냐 늦게 찾았느냐를 따질 것은 없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대와 주군(朱君)의 인연이 더 깊기에 그를 보낸 것이다. 부처님일지라도 사람을 교화하는 데에는 반드시 동사섭(同事攝)하는 자의 힘을 빌어 법을 전하셨을 것이다.”
두기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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