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위앙록潙仰錄

[앙산록/ 조당집(祖堂集)] 2. 상당 · 감변 1~13.

쪽빛마루 2015. 4. 28. 08:24

2. 상당 · 감변

 

1.

 스님께서 날마다 상당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각자 자기 광채를 돌이켜 살필지언정 내 말을 기억하려 들지 말라. 나는 끝없는 옛부터 밝음을 등지고 어둠을 향해 허망을 쫓는 뿌리가 깊어서 단박 없애기 어렵게 된 그대들이 가엾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방편을 베풀어서 티끌수같이 많은 겁동안 쌓인 그대들의 굵은 알음알이를 뽑아주려 하니, 마치 단풍잎으로 우는 아기를 달래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백 가지 재물과 금 · 보화를 한 자리에 섞어 놓고 찾아온 사람의 정도에 맞추어 팔 듯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석두(石頭)는 금방(金房)이지만 여기 나는 잡화상이다. 찾아온 이가 잡화를 찾으면 잡화를 주고, 금을 찾으면 금을 준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잡화상은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스님의 금방입니까?”

 “활촉을 물고 입을 열려는 이는 나귀해(12간지에 없는 해)가 되도록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2.

 또 말했다.

 “찾으면 있고, 바꾸려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선(禪)의 종지를 이야기하면 내 주변에 한 사람도 동무가 되어주는 이가 없다. 어찌 5백 대중, 7백 대중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이것저것 지껄이면 제각기 앞을 다투어 나서서 알았다고 들고 나오니, 마치 빈주먹을 쥐고 어린 아이를 속이는 것 같아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다.

 내 이제 분명히 말해주겠다. 부처되는 일에 마음을 두려 하지 말고, 오직 자기 앞의 진리를 여실히 닦아라. 3명(三明)과 6통(六通)을 바라지 말지니, 이는 불보살의 지말적인 일이다. 지금에라도 마음을 알고, 근본을 통달하려 해야 한다.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말을 걱정하지 않으면 뒷날 저절로 완전해 지리라. 만일 근본을 얻지 못했으면 아무리 마음[情]을 내서 배웠다 해도 끝내 얻지 못할 것이다.

 그대들은 듣지도 못했는가. 위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생각이 다하여 항상된 참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면 이치와 현실이 다르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여여한 부처다’ 하셨다. 몸조심하라.”

 

3.

 “법신도 설법을 할 줄 압니까?”

 “나는 말할 수 없다. 딴 사람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께서 퇴침을 밀어냈다.

 나중에 한 스님이 위산에서 이 일을 이야기하니, 위산스님이 말했다.

 “혜적이가 칼날 위의 일[劍刀上事 : 활구]을 활용했구나!”

 어떤 사람이 설봉(雪峯)스님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스님이 말했다.

 “위산스님이 등뒤에서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마주 대했을 때엔 어찌합니까?”

 복선(福先)스님은 대신 손으로 때리는 시늉을 했고, 보은(報恩)스님은 대신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하였다.

 

4.

 스님께서 대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곁에 있던 스님이 말했다.

 “말을 하면 문수(文殊)요, 침묵하면 유마(維摩)입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말했다.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을 때엔 바로 그대가 아니겠는가?”

 그 스님이 잠자코 있자 스님께서 다그쳐 물었다.

 “어째서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신통을 나타내기는 어렵지 않으나 스님께서 교(敎)에 말려들까 걱정입니다.”

 “그대의 근본을 살펴보건대 교 밖의 안목은 없구나.”

 

5.

 스님께서 한 관리[俗官]에게 물었다.

 “직위가 무엇이오?”

 “아추(衙推 : 시비를 가리는 관직)입니다.”

 스님께서 주장자를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도 따져낼 수 있겠소?”

 관리가 대답이 없으니, 스님께서 대신 말했다.

 “그것이라면 다음으로 미룹시다.”

 흥화(興化)스님이 대신 말했다.

 “스님께서 일을 만드시는군요.”

 

6.

 스님께서 상좌(上座)에게 물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으니, 정작 이럴 때는 어찌하겠는가?”

 “그러할 때는 바로 제가 생명을 놔버릴 경우입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는가?”

 “그럴 때엔 스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나를 붙들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구나!”

 

7.

 스님께서 누더기를 빠는데 탐원(耽源)스님이 물었다.

 “이럴 땐 어떤가?”

 “뚜렷해서 둘다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또 말했다.

 “이럴 땐 저는 그를 생각치  않습니다.”

 또 말했다.

 “이럴 땐 어디서 그를 보겠습니까?”

 

8.

 스님께서 경잠(景岑)상좌가 뜰에서 볕을 쪼이는 것을 보자, 그 곁으로 지나가면서 말했다.

 “사람마다 모두 그런 일이 있는데 다만 말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마치 그대에게 말해 달라고 한 것같이 되었구나.”

 “무엇이라고 해야 합니까?”

 이에 경잠스님이 스님의 멱살을 잡아 쓰러뜨리고 한번 짓밟으니, 스님이 쓰러졌다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숙(師叔)님의 동작[用]이 마치 호랑이[大蟲] 같으십니다.”

 

9.

 스님께서 동평(東平)에서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모시고 섰으니, 스님께서 경을 덮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알겠는가?”

 “저는 경을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대도 다음에 차차 알게 될 것이다.”

 

10.

 스님께 위조상공(韋曺相公)이 왔기에 인사를 나누니, 상공이 물었다.

 “절에 몇 사람이나 살고 있습니까?”

 “5백명입니다.”

 “경을 열심히 읽습니까?”

 “조계의 종지는 경 읽는 일에 애를 쓰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거두지 않고, 포섭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1.

 상공이 위산에 가서 게송을 청하니 위산스님이 대답했다.

 “마주보면서 주려 해도 아주 둔한 사람인데 하물며 종이나 먹으로 표현하겠는가.”

 그가 다시 스님께 와서 게송을 청하니, 스님께서 종이에다 원상(圓相)을 하나 그리고, 그 원상 안에다 ‘아무는 삼가 답한다’라고 썼다. 그 왼쪽가에는 ‘생각해서 알면 둘째 차원에 떨어진다’라고 쓰고, 오른쪽가에는 ‘생각치 않고 알면 세째 차원에 떨어진다’고 써서 봉하여 상공에게 주었다.

 

12.

 어떤 이가 물었다.

 “활을 당긴 듯한 둥근달이 화살촉을 씹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화살촉을 씹고 입을 열려면 나귀해가 되도록 알지 못한다.”

 이때, 남전(南泉)스님이 몸을 기울여 우뚝 서거늘 스님께서 이 일을 물으니, 남전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화살촉을 씹고 입을 열려 한다면 ‘손해보고 이익보면 됐지 말로 설명할 여지가 어디 있으랴’ 한 국사의 말씀을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수(淨修)스님이 말했다.

 “앙산의 화살촉 씹는 화두(話頭)는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단, 후학을 위해 지적해 줄 뿐이니 말을 하면 이것을 해 칠 뿐이다.”

 석문(石門)스님이 이 일을 한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알았을까, 몰랐을까?”

 대답이 없으니, 석문스님이 대신 말했다.

 “알지 못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어찌해야 알겠습니까?”

 

13.

 쌍봉(雙峯)스님이 위산을 떠나 앙산에 이르니, 스님께서 물었다.

 “사형께서는 요즘은 어떠신가요?”

 “내 경지는 아무 법(法)도 생각에 잡힐 것이 없습니다.”

 “당신의 경지는 아직 마음이다 경계다 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나의 경지는 마음이다 경계다 하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다치고 그대의 경지는 어떻소?”

 “아무 법도 생각에 잡힐 것이 없는 줄 아는 그것이야 없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위산스님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스님이 말했다.

 “혜적의 이 한마디가 천하 사람들을 홀리게 될 것이다.”

 순덕(順德)스님이 이 일을 송했다.

 

쌍봉의 현자 원래 변변찮아서

앙산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도다

그대를 이끌어 결박을 풀게 한다니

종도(宗徒)들의 여러 말을 무찔렀도다

한 소경이 여러 소경을 이끈다 하니

옛말이 오늘에도 틀림없음을 아는가.

雙峯賢自麁  非是仰山屈

批汝解繩抽  把當宗徒設

一盲引衆盲  會古在今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