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스님께서 설봉(雪峯)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嶺)으로 들어가렵니다."
"그대는 비원령(飛猿嶺)을 지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올 때에는 어찌하겠는가?"
"역시 그리로 와야 됩니다."
"누군가 비원령을 거치지 않고 거기에 이르는 이가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사람은 가고 옴이 없습니다."
"그대는 그 사람을 아는가?"
"모릅니다."
"알지도 못한다면 어찌 가고 옴이 없는 줄을 아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을 못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저 모르기 때문에, 가고 옴이 없는 것입니다."
14.
스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을 체득해야 그래도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말할 자격입니까?"
"이야기를 할 때엔 그대는 듣지 못한다."
"스님께서는 들으십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들을 것이다."
15.
스님께서 어느 때 말씀하셨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만리 밖에 가서 서야 한다."
한 스님이 이를 석상(石霜)스님에게 가서 말하니, 석상스님이 말했다.
"문 밖에 나서면 어디나 풀밭이다."
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씀하셨다.
"당(唐)나라 안에 그런 이가 몇이나 있을까?"
16.
염관(鹽官)스님 회상에 어떤 스님은 불법이 있는 줄은 알면서도 소임을 맡아 일하느라 수행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귀신 사자[鬼使]가 와서 잡아가려 하니, 그가 말하되, "내가 소임을 보느라고 수행을 못했으니, 7일만 기한을 주시오" 하였다. 사자가 대답하되 "내가 가서 염라대왕께 사뢰어 허락하시면 7일 후에 다시 오고, 허락치 않으시면 곧 되돌아 올 것이다" 하였다. 7일 뒤에 사자가 다시 와서 찾으니 찾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이 일을 이야기하시니 한 스님이 물었다.
"그가 왔을 때엔 어떻게 대꾸해야 됩니까?"
"벌써 그에게 들켰다."
17.
한 스님이 조계(曹溪)에서 왔는데 스님이 물었다.
"육조께서 황매산(黃梅山)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셨다는데 사실이던가?"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황매산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가지도 않았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불법은 어디서 생겼을까?"
"스님께서는 불법을 남에게 주십니까?"
"얻기는 얻었으나 매우 저돌(抵突)하는 사람이로군."
그리고는 대신 말했다.
"언제적인들 잃었던 적이 있던가?"
초경(招慶)스님이 대신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18.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백 가지 대답을 해도 한 물음도 없다' 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맑은 하늘에 밝은 달이로다."
다시 물었다.
"지금은 '백 가지를 물어도 한 대답도 없다'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구나."
19.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 산에 사십니까?"
"진흙소(泥牛)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껏 소식이 없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백 천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닦을 것 없는 사문 한분에게 공양하는 것이 낫다는데, 백 천 부처님께서는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허물은 없고, 그저 공덕을 쌓는 편에서 한 말이다."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보림(保任)이 있어야 옳은 줄을 모르는구나."
21.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의 길[鳥道]*을 걸으라'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새의 길입니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곳이다."
"어떤 것이 '걷는 것'[行]입니까?"
"발 밑에 실오리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본래 사람[本來人]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거꾸로 생각하느냐?”
"제가 언제 거꾸로 생각했습니까?"
"거꾸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하인을 상전으로 잘못 아느냐?"
"무엇이 본래 사람입니까?"
"새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22.
한 스님이 물었다.
"6국(六國)이 편치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하에게 공이 없다."
"신하에게 공이 있을 때엔 어떻습니까?"
"나라가 평안하다."
"평안해진 뒤엔 어떻습니까?"
"군신(君臣)의 도가 합한다."
"신하가 죽은 뒤엔 어찌 됩니까?"
"임금이 있는 줄 모른다."
23.
한 스님이 물었다.
"선지식이 세상에 나오시면 학인은 의지할 곳이 있겠지만 열반에 드신 뒤엔 어찌해야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허공의 불꽃바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끝없이 망령되이 일어나는데야 어찌하겠습니까?"
"태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24.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몇 사람에게나 스님의 불법을 인정받으셨습니까?"
"한 사람도 인정해 주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 인정해 주지 않습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25.
스님께서 운거(雲居)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형상[色]을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아직 말상대가 안되는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형상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한다."
"그렇게 형상을 볼 때에는 어떠십니까?"
"마치 한 덩어리 무쇠토막과 같다."
2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스님이 자기 이름 양개(良价)를 부르니 그 스님은 대답을 못했다.
이에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저는 빠져나갈 길이 없겠습니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스님께 꽉 잡히고 맙니다."
27.
스님께서 태장로(太長老)에게 물었다.
"이런 것이 있다.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늘 움직이면서 칠흙같이 검다.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허물은 움직이고 작용하는데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혀를 차며 내쫒았다.
이에 석문(石門)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나서서 물었다.
"어째서 찾을 수 없습니까?"
"칠흙같이 검기 때문이다."
28.
설봉(雪峯)스님이 장작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물었다.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
"온누리 사람이 다 덤벼도 들지 못합니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으랴?"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거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들어도 들리지 않는 줄을 알 것입니다."
소산(踈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그저 거기에 도달할 뿐이지 어찌 든다고 들어질 것인가?"
------------------------------
* 「조동록」p.73각주 참조
'선림고경총서 > 조동록曹洞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2. 대기 43~58. (0) | 2015.05.03 |
---|---|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2. 대기 29~42. (0) | 2015.05.03 |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2. 대기 1~12. (0) | 2015.05.03 |
[동산록/ 조당집(祖堂集)] 1. 행록 (0) | 2015.05.03 |
[동산록/ 오가어록(五家語錄)] 4. 천화 (0) | 2015.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