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 기
1.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스님 회상에 온 뒤로 지금까지, 몸 빼낼 길[出身處]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으니, 스님께서는 몸 빼낼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어떤 길을 걸었던가?"
"여기서는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몸 빼낼 길을 찾지 못했구나!"
2.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고서 땅을 가리고 말을 듣고서 사람을 안다' 했는데 지금 말하고 있으니 스님께서 가려 주십시오."
"가릴 수 없다."
"어째서 가리지 못하십니까?"
"내 솜씨가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魯祖)스님이* 벽을 향해 앉았던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귀를 막았다.
4.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없을 때엔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기에는 나타날 수 없다."
"어디에서 나타나야 합니까?"
"어젯밤 삼경에 돈 세 닢을 잃었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나오기 전엔 어떻습니까?"
"지난날 나도 그랬다."
"나온 뒤엔 어떻습니까?"
"그래도 나에 비한다면 석달 쯤은 밥을 더 먹어야겠구나."
6.
"옛사람이 벽을 향해 앉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두 그루의 고운 계수나무가 시들어가는구나."
7.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원각(圓覺)을 말하면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각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치 어떤 사람이 객지에서 집안 일을 이야기하는 격이다."
"어떤 것이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는 것입니까?"
"분명히 도중(途中)에 있구나."
"길을 걷지 않고도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할 길이 있으면 원각이 아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자리도 유전(流轉)합니까?"
"역시 유전한다."
"어떻게 유전합니까?"
"또렷또렷하지 않아야 한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아봅니까?"
"알아보지 못한다."
"어째서 알아보지 못합니까?"
"같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눈썹이 눈은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뚜렷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그것을 의심한다."
"스님께선 어찌하여 의심하십니까?"
"내가 만일 의심치 않는다면 뚜렷한 것이기 때문이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빠져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다."
"벗어나고자 합니까?"
"벗어나려 하나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날 때엔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칼[鐵枷] 쓴 자가 맞이한다."
1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중천에 떴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밑의 첨지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끌어올려 주십시오."
"달 떨어진 뒤에 만나자."
11.
한 스님이 물었다.
"매우 희박할 땐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들릴락말락[希夷]하지 않느니라."
"무얼 하십니까?"
"재채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코를 흘려야겠습니다."
"재채기하지 않는데 무슨 코를 흘리겠느냐."
12.
한 스님이 물었다.
"소 한 마리가 물을 마시니 말 다섯 마리가 울지 못했는데 어떻습니까?"
"조산(曹山)에 효도가 가득하다."
13.
한 스님이 물었다.
"형상(相)에서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형상 그대로가 진실이다."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찻종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도성 안에서 칼[劍]을 휘두르는 이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닥치는대로 다 죽인다."
"갑자기 전생[本生]의 부모를 만나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을 가리겠는가?"
"자기 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를 어쩌겠는가?"
"어째서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15.
한 거사[俗士]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있다' 했는데 티끌세상에 사는 저에게도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손을 펴서 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하나 · 둘 · 셋 · 넷 · 다섯 꽉 찼구나."
16.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 쓰러진 이가 땅을 딛지 않고 일어나는 법은 없다' 하였는데 무엇이 땅입니까?"
"한 자[尺], 두 자."
"무엇이 쓰러지는 것입니까?"
"긍정하는 그것이다."
"무엇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일어났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知解)를 갖추어야 대중의 물음에 잘 대답하겠습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다면 묻기는 무엇을 묻겠습니까?"
"칼과 도끼로 쪼개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물음에 대답했을 때에도 긍정치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사람입니까?"
"나 조산이다."
18.
한 스님이 물었다.
"환(幻)의 근본이 어찌 진실입니까?"
"환의 근본은 원래 진실이다."
"환인데 어떻게 나타납니까?"
"환 그대로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환을 떠나 있지 않았겠습니다."
"환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해야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는 자이다."
"그것은 스님께서나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木石)과 같을 수는 없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입니까?"
"듣지 못했는가?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하였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알지 못하는데 삵과 암소는 알고 있다' 하였는데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어째서 알지 못합니까?"
"부처님들은 비슷하기 때문이며 조사들은 인가[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삵과 암소는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삵과 암소라는 사실이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어째서 비슷하거나 인가에 집착합니까?"
"사람들이 막힘이 없으면 이 가운데서 묘하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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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보운(魯祖寶雲)스님은 학인이 와서 법을 물으면 언제나 벽을 보고 앉아서 아무 대꾸도 안하는 것으로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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