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하(下)] 감변(勘辨) 89~105.

쪽빛마루 2015. 5. 25. 06:35

89.

 스님께서 경전을 보는 한 스님에게 물었다.

 “제목 첫 글자가 무엇이냐?”

 스님이 경전을 들어 보이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있다.”

 “스님께도 있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지요?”

 “그렇다 해도 어찌하겠느냐?”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자기가 싼 똥은 냄새를 못 맡는 법이다.”

 대신하여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하더니 다시 “덕산(德山)스님의 주장자, 자호(紫胡)스님의 개”* 하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의 이 질문은 지나치게 영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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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흙덩이를 쫓고 사자는 던진 사람에게 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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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고산(鼓山)의 한 스님이 오랫동안 숭수사(崇壽寺)에 있다가 갑자기 영중(嶺中)으로 돌아가 보복(保福)스님의 처소를 찾아가 뵈었다. 보복스님은 찾아오는 것을 알고서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 누더기를 뒤짚어쓰고 앉았다. 그 스님이 “스님께서는 땀을 내십니까?” 하고 물었으나 대꾸하지 않았다.

 어떤 스님이 이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현성공안(見成公案)에 자재하지 못했구나.”

 대신 말씀하셨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군요.”

 다시 말씀하셨다.

 “좀도둑이 낭패를 당했구나.”

 

9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슨 경전을 보느냐?”

 “주(呪)를 합니다.”

 “이런 말은 주인이 없다.”

 “스님께서는 착각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알아서 나가거라.”

 대신 말씀하셨다.

 “당장 나가십시오.”

 

92.

 한 스님에게 물었다.

 “나에겐 칼끝과 뼈를 드러내지 않을 구절이 있는데 어떻게 갖겠소?”

 그 장로(長老)가 말씀하셨다.

 “받았습니다[收].”

 “그렇다면 반마디만 해보시오.”

 대신하여 “스님의 자비를 깊이 알았습니다” 하더니 다시 “말장난이다” 하고는 또 말씀하셨다.

 “하마터면 별것 아닐 뻔 하였군요.”

 

93.

 장경(藏經)을 보수하는 자리에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장경이냐?”

 스님이 “녜”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장경의 다리[脚]다. 나에게 장경을 다오.”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어찌 장경을 보수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하셨다.

 “옥(玉)이로다.”

 

94.

 새로 온 사람에게 물었다.

 “어디서 여름결제를 지냈느냐?”

 “운개사(雲蓋寺)에서 지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느냐?”

 “70명이었습니다.”

 “너는 왜 그 축에 끼지 않았느냐?”

 대신 말씀하셨다.

 “새로 온 처지라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오래 머물면 진심(嗔心)이 나겠지.”

 

95.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임주(郴州)에서요.”

 “너는 무엇 때문에 쫓겨났느냐?”

 대신 말씀하셨다.

 “노반(魯般 : 魯나라의 유명한 장인) 문하에서 큰 도끼를 휘둘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9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사도(査渡)에서 옵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일산을 쓰지 않았느냐?”

 “스님께서는 저를 모호하게 하지 마십시오.”

 “새우는 뛰어봤자 말통[斗]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신 말씀하셨다.

 “새로 오자마자 스님께서 해주신 겹겹 장엄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얼굴을 드러내라.”

 

97.

 한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가이없는 세계에 나와 남이 털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다’ 하였는데, 신라와 일본이 여기랑 어떤가?”

 “다르지 않습니다.”

 “지옥에나 빠져라.”

 대신 말씀하셨다.

 “지옥이라는 견해를 지어서는 안되지요.”

 다시 말씀하셨다.

 “어떻게 옥(玉)을 찾아서 돌아오겠느냐?”

 

98.

 한 스님에게 물었다.

 “객이 주인상(相)이로구나.”

 “너는 나를 바보로 만들진 못한다.”

 그 스님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내가 너를 바보로 만드는 것은 그래도 괜찮겠지만 네가 나를 바보로 만들면 안된다.”

 대신하여 “사건은 저혼자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하더니 다시 “스님도 아무 까닭없군요” 하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제가 어느 곳에서 말[馬]을 내리지 않아야 합니까?”

 

99.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행각하면서 있음[有]을 안다고 하는데, 삼천대천세계를 가져와 내 눈썹 위에 붙여다오.”

 그 스님이 “녜”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전당(錢塘 : 땅이름, 절강성 부근)은 무엇 때문에 3천리나 떨어졌느냐?”

 “어찌 남의 일에 참견하겠습니까?”

 “이 사기꾼놈아.”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은 세력을 믿고 사람을 속이는군요.”

 다시 말씀하셨다.

 “항상 그런 편이다.”

 

100.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화탑에서 왔습니다.”

 “조사를 보았느냐?”

 “남화교(南華橋)가 끊겼던걸요.”

 “남악의 돌다리는 어떠하더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 배우는 부류로군.”

 대신 말씀하셨다.

 “당장 나가겠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올라오십시오.”

 

101.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열반당*에서 옵니다.”

 “죽은 중도 밥을 먹더냐?”

 “먹지 않았습니다.”

 “산 사람은 밥을 먹더냐?”

 대꾸가 없자 대신하여 “한 국자, 두 국자” 하더니 다시 “그에게 호떡을 하나라도 덜 주지는 못하겠구나” 하고 다시 말씀하셨다.

 “대답 잘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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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반두 : 열반당(涅槃堂 : 연수당)에서 사무보고 간병하는 직책을 맡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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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계율을 강의했다더니 그런가?”

 “그렇습니다.”

 “율초(律鈔)에서 말하기를, ‘대소승(大小乘)이 다를 것 없다’ 하였다는데 무엇이 다름 없는 것인가?”

 대꾸가 없자 대신 말하였다.

 “영수(靈樹 : 운문스님이 머물던 곳)에 한마디 던지십시오.”

 

10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법신도 밥을 먹느냐?”

 “제방의 큰스님들이 그렇다 하지 않던걸요. 법신은 모습이 없는데 어떻게 먹겠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꿈엔들 법신을 보겠느냐?”

 “그렇다 하지 않는 점은 어째서입니까?”

 “자신을 모르는구나.”

 다시 말씀하셨다.

 “법신은 밥을 먹는다.”

 또 대신 말씀하셨다.

 “납승의 콧구멍으로는 그래도 똥오줌을 눈다 했더니….”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뻔하다. 백천 명 가운데 한 사람도 이 경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떠한가?”

 대신 말씀하셨다.

 “쯧쯧, 이 처음만 있고 끝은 없는 놈아.”

 

10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3장(三藏)의 성스러운 가르침과 고금의 노화상들을 무엇을 의지하여 반조하겠느냐?”
 “높게도 하고, 낮게도 합니다.”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

 대신 말하였다.

 “그렇게 어수선할 수야 있겠습니까?”

 

105.

 종(鍾)을 만들어 가지고 산으로 돌아와 의식을 끝내고 스님께 종치기를 청하였다.

 스님께서도 치고 대중들도 쳤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종을 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공양하시라고 스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스님은 긍정하지 않고 대신 말씀하셨다.

 “비유가 막힌 것 같다.”

 또 말씀하셨다.

 “괴롭고 쓰라림을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