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차를 마셔라
스님께서 하루는 상당하니 한 스님이 나오자 마자 절을 하였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합장하며 “몸조심하여라!” 하고 작별인사를 하셨다.
또 하루는 한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질문 하나 해 보아라.”
“무엇이 선(禪)입니까?”
“오늘은 날이 흐리니 대답하지 않겠다.”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느 방면에서 왔느냐?”
“온 방면이 없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등을 돌리니 그 스님이 좌구를가지고 따라 돌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구나. 방면이 없음이여!”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3천리 밖에서 만나거든 농담하지 말라.”
“그런 적이 없습니다.”
“버들개지를 잡아라, 버들개지를 잡아라!”
풍간(豊干)스님이 오대산 아래 이르러 한 노인을 보고 말하였다.
“문수보살이 아니십니까?”
“문수보살이 아니십니까?”
풍간스님이 절을 하였는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한 스님이 이것을 이야기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풍간이 외짝눈[一雙眼]은 갖추었다.”
그리고서 스님은 문원으로 하여금 노인이 되고 자신은 풍간이 되어서 말씀하셨다.
“문수보살이 아니십니까?”
문원이 말하였다.
“어찌 두 문수가 있겠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보살님, 문수보살님!”
스님께서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다.
“스님들은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를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차를 마시게.”
원주(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왔던 사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스님께서“원주야!” 하고 부르니 원주가“예!” 하고 대답하자 “차를 마셔라” 하셨다.
스님께서 운거(雲居)에 이르자 운거스님이 말하였다.
“연만하신 분이 어찌 머물 곳도 못 찾으십니까?”
“어느 곳에 머물면 되겠소.”
“앞 쪽에 옛 절터가 있습니다.”
“그럼 스님이나 머물도록 하시오.”
스님께서 또 수유(茱萸)에 이르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연만하신 분이 어찌 머물 곳도 못 찾으십니까?.”
“어느 곳에 머물면 되겠소.”
“연만하신 분이 머물 곳도 모르는군.”
" 30년을 말 타던 주제에 오늘은 도리어 나귀한테 차이다니."
스님께서 또 수유스님의 방장실에 가서 위아래로 훑어보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평지에서 헛디뎌 넘어지면 어찌합니까?”
“그저 마음이 거친 탓이오.”
스님께서 하루는 주장자를 들고 수유산의 법당에 올라 동서로 왔다갔다하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물을 찾습니다.”
“나의 이 곳에는 물이란 한 방울도 없는데, 무얼 찾는단 말이오?”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벽에다 세워놓고 바로 내려와버렸다.
오대산 가는 길에 한 노파가 있었는데, 언제나 스님을 떠보려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오대산 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똑바로 가십시오.”
그 스님이 가자마자 노파가 말하였다.
“또 저렇게 가는군.”
스님께서 이를 듣고 바로 가서 물었다.
“오대산 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똑바로 가십시오.”
스님께서 가자마자 노파가 말하였다.
“또 저렇게 가는군.”
스님께서 돌아와 대중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씀하셨다.
“그 할멈이 내게 간파당했다.”
스님께서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불을 집어 보이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이것을 불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내가 이미 말해버렸다.”
스님께서는 불을 집어 올리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서주(舒州)로 가면 투자(投子 : 819~914)스님이란 분이 있다. 가서 절하고 묻도록 하라. 인연이 맞으면 다시 올 것 없고, 맞지 않거든 다시 오너라.”
그 스님이 바로 떠나서 투자스님의 처소에 이르자마자, 투자스님이 물었다.
“근래 어디서 떠나왔는가?”
“조주를 떠나서 특별히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조주 노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그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모두 말하자 투자스님은 선상을 내려와 너댓 걸음을 걷더니 다시 앉으며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돌아가 조주스님께 이야기해 드려라.”
그 스님이 다시 돌아와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큰 차이는 없다.”
동산(洞山 : 807~869)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장혜(掌鞋)에서 왔습니다.”
“스스로 푸느냐, 남에게 의지하느냐?”
“남에게 의지합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던가?”
그 스님이 아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허락하신다면 어기지 않겠습니다.”
보화(普化)스님이 생채를 먹고 있는데 임제(臨濟 : ?~867)스님이 보고 말하였다.
“보화는 꼭 한 마리 나귀 같구나.”
보화스님이 나귀 울음소리를 내자 임제스님은 곧 그만두었는데 보화스님이 말하였다.
“꼬마 임제가 그저 외짝눈은 갖추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다만 본분의 먹이풀[本分草料]을 주어라.”
보수(保壽)스님이 호정교(胡釘鉸 : 釘鉸는 땜장이)에게 물었다.
“정교 아닌가?”
“그렇습니다.”
“허공도 땜질할 수 있는가?”
“조각난 허공을 가져오십시오.”
보수스님이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뒤에 말 많은 스승이 너에게 설명해 줄 것이다.”
호정교가 뒤에 이를 스님께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았느냐?”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방 터진 틈도 못 때우면서 그에게 허공을 조각내라는 거냐?”
호정교는 거기서 알아차렸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 이 한 방 터진 틈을 때워 보아라!”
스님께서 길을 가던 중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조주의 동쪽 절, 서쪽에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스님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느‘서(西)’자를 써야 할지 말해 보아라.”
그러자 한 스님은 “동서의 서(西)자입니다.” 하였고 다른 한 스님은 “의지하여 쉰다는 서(栖)자입니다.” 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두 사람은 모두 소금과 쇠를 감정하는 관리는 되겠다.”
스님께서 시랑(侍郞)과 함께 정원을 거니는데 토끼가 달아나는 것을 본 시랑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대선지식이신데, 토끼가 보고는 무엇 때문에 달아납니까?”
“제가 살생을 좋아한 탓이지요.”
스님께서 언젠가는 한 스님이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렇게 쓸어낸다고 깨끗해지느냐?”
“쓸면 쓸수록 많아집니다.”
“어찌 먼지를 털어버린 자가 없겠느냐?”
“먼지를 털어버린 자가 누구입니까?”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운거스님에게 가서 물어 봐라.”
그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가서 물었다.
“누가 먼지를 털어버린 자입니까?”
운거스님은 “이 눈먼 놈아!” 하였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느냐?”
“칠팔년 됩니다.”
“노승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내가 한 마리 나귀가 된다면 어떻게 보겠느냐?”
“법계에 들어가서 보겠습니다.”
“나는 이 중이 이 한 가지는 갖춘 줄 알았더니 숱하게 공밥만 퍼먹었구나.”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어찌 ‘꼴[草料] 속에서 봅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느냐.”
스님께서 채두(菜頭 : 나물반찬을 맡은 소임)에게 물었다.
“오늘은 생채를 먹느냐, 익힌 것을 먹느냐?”
채두가 채소 한 줄기를 들어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많다.”
어느 속인 행자가 절에 와서 향을 사루는데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는 저기서 향을 사루며 예불하고, 나는 또 너와 여기서 이야기한다. 바로 이런 때 남[生]이 어느 쪽에 있느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느 쪽입니까?”
“그렇다면 저 쪽에 있지.”
“그렇다면 이미 먼저입니다.”
스님께서는 웃었다.
스님께서 문원사미와 입씨름을 하였는데, 이기면 안되고 이긴쪽이 호떡을 내기로 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한 마리 나귀다.”
“저는 나귀 새끼입니다.”
“나는 나귀 똥이다.”
“저는 똥 속의 벌레입니다.”
“너는 그 속에서 무얼 하느냐?”
“저는 그 속에서 여름을 지냅니다.”
스님께서는 “호떡을 가져 오너라!” 하셨다.
스님께서 진부(鎭府)의 내전(內殿)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깃대에 깃발 한 조각이 없어진 것을 보고 한 스님이 물었다.
“깃발 한 조각은 하늘로 날아갔습니까, 땅으로 들어갔습니까?”
“하늘로 올라가지도 않고, 땅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갔습니까?”
“떨어졌다.”
스님께서 앉아 계시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자마자 스님께서는 “몸조심하거라” 하였다. 그 스님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려 하는데 스님께서는 “또 그러는군” 하셨다.
스님께서 한번은 처마 앞에 서서 제비가 지저귀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이 제비의 재잘거림이 사람을 부르는 말 같구나.”
한 스님이 말하였다.
“그 말이 달콤하십니까?”
“아름다운 곡조인 듯 들리는가 하더니, 다시 바람에 실려 다른 곡조에 섞이는구나!”
한 스님이 하직인사를 하러 가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겠느냐?”
“민(閩) 땅으로 가겠습니다.”
“민 땅에는 큰 전쟁이 있으니 피해야 할 것이다.”
“어디로 피합니까?”
“그럼 됐다.”
한 스님이 올라가 법을 물으려는데 스님께서 머리에다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물러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내가 대답치 않았다고 말해서는 안되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누구하고 짝을 했느냐?”
“물소하고 짝을 했습니다.”
“훌륭한 스님이 무엇 때문에 짐승하고 짝을 하는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짐승이다.”
“어찌 긍정할 수 있겠습니까?”
“긍정치 않는 건 그렇다치고, 나에게 그 짝을 돌려다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승당 안에 조사가 있느냐?”
“있습니다.”
“불러 와서 내 발이나 씻게 하여라.”
승당의 두 스님이 서로 미루며 제1좌를 맡으려 하지 않자 소임자가 스님께 아뢰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둘을 모두 제2좌로 삼아라.”
“제1좌는 누가 합니까?”
“향을 올려라.”
“향을 올렸습니다.”
“계향, 정향……”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떠나 왔느냐?”
“서울에서 떠나 왔습니다.”
“동관(潼關 : 낙양과 장안 사이의 요새지)을 지나왔느냐?”
“지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소금 암거래하는 놈을 붙잡았다.”
한번은 죽은 스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죽은 사람 하나를 무수한 사람들이 보내는구나” 하시고는 다시 “수많은 죽은 자들이 산 사람 하나를 보내는구나" 하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살았습니까, 몸이 살았습니까?”
“몸과 마음 모두 다 살아 있지 않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죽은 놈이다.”
한 스님이 고양이를 보고 물었다.
“저는 고양이라고 부릅니다만, 스님께서는 무어라고 부르십니까?”
“고양이라고 부르는 건 너다.”
진주(鎭州)의 대왕이 스님을 뵈러 오자 시자가 와서 “대왕이 오십니다” 하고 알리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만복하소서!”
“아직 오시지 않았고 방금 절 문 아래 도착하셨습니다.”
“대왕이 또 오시느냐?”
변소[東司] 위에서 문원(文遠)을 부르자 문원이 “예!” 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변소에서는 너에게 불법을 말할 수 없다.”
한번은 불전(佛殿)을 지나다가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예!” 하자 스님께서 “훌륭한 불전의 공덕이다” 하셨는데 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스님께서 임제에 이르러 막 발을 씻는데 임제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마침 발을 씻고 있었소.”
임제스님이 가까이 와서 귀를 기울여 듣는 시늉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알았으면 아는 것이요, 몰랐거든 다시 입을 놀리지 않는 것이 어떻겠소?”
임제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가버리자 스님께서는 “30년 동안 행각하다가 오늘은 남을 위해 잘못 주석(註釋)을 내렸구나” 하셨다.
스님께서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갔을 때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보자 말씀하셨다.
“오래도록 한산과 습득의 소문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다만 두 마리 물소밖에는 안 보이는구나.”
한산과 습득이 소가 싸우는 시늉을 하니 스님께서“저런, 저런!”하셨다.
한산과 습득은 이를 악물고 서로 바라보았다. 스님께서는 바로 숭당으로 돌아왔는데, 두 사람이 찾아와 묻기를 “아까의 인연은 어떻습니까?” 하자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스님께 물었다.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오백 존자께 예배하고 왔네.”
“오백 마리 물소들이야, 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오백 마리 물소들이라 하는가?”
한산이 “아이고, 아이고!”하 자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스님께서 행각할 때 두 암주를 만났는데, 한 사람은 갈래머리를 땋아올린 동자 모습이었다. 스님께서 문안인사를 하였으나 두 사람은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튿날 이른 새벽 갈래머리 땋아올린 동자가 밥 한 솥을 가지고 와서 땅에 내려놓더니
세 몫으로 나누었다. 암주는 자리를 들고 가까이 가서 앉고 갈래머리 동자도 자리를 가지고 가까이 가서 마주 앉았으나 역시 스님은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스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자리를 가지고 가까이 가서 앉았는데, 갈래머리 동자가 스님을
노려보니 암주가 말하였다.
“일찍 깨웠다고 말하지 마시오. 또 밤길 가는 사람이 있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이 행자를 가르치지 않소?”
“그는 마을 집 아이요.”
“하마트면 그냥 놓칠 뻔했군.”
그러자 갈래머리 동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암주를 노려보면서 말하였다.
“많이 지껄여서 무얼 하오?”
갈래머리 동자는 이때 산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스님께서 경을 보고 있는데 문원사미가 들어오자 경을 비스듬히 보여 주었다. 사미가 그냥 나가버리니 스님께서 뒤따라가서 붙들고 말씀하셨다.
“어서 말해라, 어서 말해!”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니 스님께서는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한번은 사미동행(沙彌童行)이 찾아뵈러 오자 스님께서는 시자더러 “저 애를 보내라”고 일렀다.
시자가 행자한테 “스님께서 가라고 하신다” 하니 행자가 곧 작별인사를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미동행은 문 안에 들어왔으나 시자는 문 밖에 있구나.”
스님께서 행각할 때, 큰스님 한 분이 사는 절에 이르러 문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말씀하셨다.
“있느냐, 있느냐?”
큰스님이 주먹을 치켜올리자 스님께서 “물이 얕아서 배를 대기가 어렵구나” 하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또 한 절에 이르러 큰스님을 보고 “있느냐, 있느냐?” 하였는데 그도 주먹을 치켜올렸다. 스님께서는 “놓아주고 빼앗으며 갖고 쥐기를 능숙하게 하는구나.” 하고 절을 하며 나와버렸다.
스님께서 하루는 염주를 집어들고 신라(新羅)에서 온 장로에게 물었다.
“거기에도 이것이 있소?”
“있습니다.”
“이것과 얼마나 닮았소?”
“그것과 닮지 않았습니다.”
“있다 하면서 어째서 닮지 않았다는 거요?”
장로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신라는 신라, 큰 당나라는 큰 당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스님께서 손가락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도 모르느냐.”
스님께서 행각할 때 대자 환중(大慈寰中 : 780~862)스님에게 물었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體]을 삼습니까?”
대자스님이 말하였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나왔다. 다음날 스님께서 마당을 쓰는데 대자스님이 보고는 물었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스님께서 빗자루를 놓고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가버리자, 대자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갔다.
스님께서 백장(百丈 : 720~814)스님께 갔는데 백장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남전(南泉)에서 왔습니다.”
“ 남전은 무슨 법문으로 학인들을 가르치던가?”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도 우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백장스님이 꾸짖자 스님께서 놀라는 얼굴을 하니 백장스님이 말씀하셨다.
“좋구나. 정말 우뚝하도다.”
스님께서는 춤을 추면서 나갔다.
스님께서 투자(投子)스님의 처소에 가서 마주 앉아 공양을 할 때였다. 투자스님이 시루떡을 스님께 먹으라고 주니 스님께서는 “먹지 않겠소” 하고는 이내 떡을 내려 놓으셨다. 투자스님이 사미를 시켜서 스님께 떡을 주니 스님께서 떡을 받아들고 사미한테 3배 하니 투자스님은 잠자코 있었다.
어느 스님이 스님의 진영(眞影)을 그려 바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나를 닮았으면 나를 때려 죽일 것이요, 닮지 않았다면 당잘 불살라 버려라.”
스님께서 문원과 길을 가다가 한 조각의 땅을 가리키면서 “여기에다 검문소를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 하니 문원이 얼른 가서 그 곳에 서면서 “신분증[公驗]을 가져 오시오” 하였다.
스님께서 대뜸 따귀를 한 대 때리자 문원이 말하였다.
“신분증은 틀림없다. 지나 가시오.”
스님께서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서 떠나 왔느냐?”
“오대산에서 떠나 왔습니다.”
“문수보살은 보았느냐?”
그 스님이 손을 펴 보이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손을 펴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문수보살을 보기란 어렵다.”
“그저 조바심이 나 죽을 지경입니다.”
“구름 속의 기러기도 못보면서 어찌 사막 변방의 추위를 알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이렇게 멀리서 와서 귀의하오니 스님께서는 한 번 가르쳐 주십시오.”
“손빈(孫臏)의 문하에서는 무엇 때문에 거북을 잘라 점을 쳤느냐?”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영화를 누리는가 하였더니, 두 다리가 잘렸군.”
스님께서 수좌(首座)와 함께 돌다리를 둘러보다가 수좌에게 물었다.
“이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응(李膺)이 만들었습니다.”
“만들 때 어느 곳부터 손을 댔는가?”
수좌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평소에 돌다리 돌다리 하면서도 손댄 곳을 물으면 모르는군.”
한 신라원(新羅阮)의 주지가 스님을 공양에 청하니 스님께서 앞에 이르러 물었다.
“여기가 무슨 절인가?”
“신라원입니다.”
“그대와 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운거산에서 왔습니다.”
“운거스님은 무슨 말씀으로 가르치더냐?”
“어떤 스님이 묻기를 ‘영양이 뿔을 나무에 걸었을 때는 어떻습니까?’하자, 운거스님이 대답하시기를 ‘육육은 삼십육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운거사형이 아직도 계시는구나.”
이번에는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높으신 뜻은 어떻습니까?”
“구구는 팔십일이다.”
한 노파가 날이 저물어서 절에 들어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얼 하려는가?”
“재워 주십시오.”
“여기가 어디라고……”
노파는 “하하!” 크게 웃고 가버렸다.
스님께서 밖에 나갔을 때 한 노파가 바구니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디 가는가?”
“조주의 죽순을 훔치러 갑니다.”
“갑자기 조주를 만나면 어쩔려고?”
노파는 다가와서 스님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스님께서 한번은 원주가 생반(生飯)을 놓아주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까마귀들이 보고는 모두 날아가버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까마귀들이 너를 보고는 왜 날아가버리느냐?”
“제가 두려운 게지요.”
스님께서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서 대신 말씀하셨다.
“제게 살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조주는 어디다 두었느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불전을 지나다가 한 스님이 예불드리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대 때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예불하는 건 좋은 일 아닙니까?”
“좋은 일도 없느니만 못하다.”
스님께서 한번은 동관(潼關)을 찾아갔는데 동관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동관이 있음을 아시오?”
“있음을 압니다.”
“신분증이 있는 이는 지나갈 수 있지만 없는 이는 지나갈 수 없소.”
“갑자기 어가(御駕)가 올 때는 어찌하겠소?”
“역시 점검하고 보내지요.”
“그대는 모반을 일으키겠구려.”
스님께서 보수사에 갔는데 보수(寶壽)스님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 스님께서 좌구를 펴는데 보수스님이 일어서자 스님께서는 그냥 나와버렸다.
스님께서 남전스님 회하에 있을 때 남전스님께서 물소 한 마리를 끌고 승당으로 들어와 빙빙 잡아 돌았다. 수좌가 이에 소 등을 세 번 두드리자 남전스님께서는 그만두고 가버렸다. 스님께서 뒤에 풀 한 묶음을 수좌 앞에 갖다놓자 수좌는 대꾸가 없었다.
한 거사가 스님을 뵙고 찬탄하기를 “스님은 옛 부처님이십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그대는 새 여래일세”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열반입니까?”
“나는 귀가 멀었다.”
그 스님이 다시 묻자 스님께서는 “나는 귀머거리가 아니다” 하고는 게송을 읊었다.
임운등등 대도를 밟은 자
열반의 문을 마주하였어라
그저 앉아서 가없는 법을 생각하니
내년 봄도 또 봄일세
騰騰大道者 對面涅槃門
但坐念無際 來年春又春
한 스님이 물었다.
“나고 죽는 두 길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스님께서 이에 게송을 읊었다.
도인이 나고 죽음을 물으나
나고 죽음을 어찌 논하랴
사라쌍수 아래 한 연못에
밝은 달은 천지를 비춘다 하나
그것은 말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요
정혼을 희롱함이다.
저 나고 죽음을 알고자 하는가
미친 사람 꿈속의 봄을 이야기함이로다.
道人問生死 生死若爲論
雙林一池水 朗月耀乾坤
喚他句上識 此是弄精魂
欲會箇生死 顚人說夢春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난을 당했을 때 불꽃 속에 몸을 숨기신다는데, 스님께서는 난을 만나면 어디에 몸을 숨기십니까?”
스님께서는 이에 게송을 읊었다.
그는 부처님에게 난이 있다고 말하나
나는 그에게 난이 있다고 하리라
다만 내가 난을 피하는 것을 보라
어디에 따라올 수 있는가
이는 있고 없음을 말함도 아니요
오고 감이 또한 오고감이 아니다
내 그대를 위해 재난의 법을 말하니
맞딱뜨려서 알도록 하라.
渠設佛有難 我設渠有災
但看我避難 何處有相隨
有無不是設 去來非去來
爲你設難法 對面識得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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