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록
上
설봉어록을 판각하게 된 유래[刻雪峯語錄緣起]
나는 20년 전, 꿈에서 어느 쓸쓸한 절에 갔다가 설봉조사께서 그 절 위에 가부좌로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오체투지하여 절을 올렸다. 스님은 나를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수기(授記)내리시기를, “부모를 존경하듯 스승과 어른을 존경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마음 속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봄에 여집생(余集生)대거사가 민(閩) 땅에 들어갔다가 조사의 뜨락이 시들어 감을 깊이 슬퍼하고 힘써 정돈하고자 고항(古航)선사를 초청하여 그 일을 도맡아보게 하였다. 나는 당시 소검진(邵劍津)과 함께 지팡이를 짚고 따라들어갔는데, 그 안에 있는 아름다운 상[像]과 절 문과 법당을 보니 마치 전에 내가 꿈속에서 본 것같이 황홀하였다. 그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일은 천고의 시간을 넘어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환히 알게 되었고, 떠돌아다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였다. 게다가 외람되게도 내가 스님의 부촉을 받았으니 끊임없이 법유(法乳)를 주신 지극한 은혜는 갚기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바다가 뽕밭이 되는 허깨비 같은 변화 속에 가르침의 자취가 점점 사라져 가니 그것을 늘 탄식할 뿐이었다.
이에 스님이 남긴 말씀을 찾고자 하였으나 조금 있는 것조차 겨우 좀이 먹다가 남은, 보잘것없는 한두 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영탑(靈塔)을 모시고 있는 초진(超塵)스님이 나의 초당을 지나다가 책 한 질을 꺼내 보였다. 너무 기뻐서 세수하고 향을 사른 다음 읽어 보고는 차마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다만 착간(錯簡)된 곳이 많아서 안타까웠다. 도로 이 책을 들고 송암(松菴)에 들어가 청림(靑林), 조원(曹源) 두 분 스님과 함께 옛 본을 찾아 자세하게 고증하여 바로잡기로 하였는데, 한 달 만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때 마침 석우(石雨 : 1593 ~ 1648)대사가 석장을 날리며 서선사(西禪寺)로 들어왔는데 만나자마자 왜 이 책을 판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바로 그 날로 이 책을 판에 새기라고 맡겼다.
기이하구나, 대사의 물음이여! 나도 모르게 서로 바라보며 웃고는 이어서 생각해 보았다. 스님께서 7백년 전에 하신 말씀을 내가 7백년 뒤에 판각하게 되다니……. 유리궁전 안에서 손 잡고 함께 걸으니, 어디든 내 몸 아닌 곳이 없고 언제든 말씀 없는 때가 없어 스님께서 엄연히 계시는 것이다.
만약에 “굵은 자갈이 다 깎여지고 수양버들 가지가 하늘을 보고 거꾸로 날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처님이 다시 온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나와 꿈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숭정(崇楨) 기묘년(1639) 여름 민중(閩中)의 득산(得山)거사
임홍연(林弘衍)이 향을 사르고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