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당법어(上堂法語)
1.
상당하여 대중들이 오랫동안 서 있으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들이여! 종을 치고 북을 두드리며 여기 올라와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무슨 괴롭고 억울한 일이라도 있는가? 부끄러운 줄은 알고 있는가? 아니면 무슨 죄라도 지었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깨달은 자가 있다면 나와 보아라.
나는 사정이 부득이해서 그대들에게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말을 하긴 하나 그대들이 이 문을 들어서자마자 이미 흥정은 끝난 것이다. 이렇게 알아듣는 것이 좋을 것이며, 이것이 마음의 힘을 덜어 주는 일이니, 내 입에까지 오지 말게 하여라. 알겠느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씀하셨다.
“3세(三世)모든 부처도 설할 수 없고 12분교(十二分敎)로도 설명할 수 없는데, 지금 콧물이나 침을 받아먹는 놈들이 어떻게 알수 있겠느냐? 내가 평소 그대들에게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면 내 앞으로 가까이 와서 그 대답만 찾고 있으니 그래가지고서야 당나귀해(12간지에 없는 해)가 된들 알수 있겠느냐. 지금 내가 마지못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미 그대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일이다. 다시 한번 그대들에게 말해 주겠다. 그대들이 문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흥정은 끝났다. 알겠느냐!
이것도 역시 내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이렇게 힘을 덜어야 할 곳에서 당장 짐을 덜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발걸음을 앞으로만 내딛여 그저 말 속에서 찾을 줄만 아는구나. 내가 분명히 말해주겠다. 하늘 땅이 모조리 해탈문인데, 도대체 그 안에 들어가려고는 하지 않고 오직 뒷구석에 남아 어지럽게 날뛸 줄만 아는 꼴이구나. 그러다가 누구라도 만나면 ‘어느 것이 <나>요?’라고 묻고 있으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러한 일은 정작 그대들 스스로가 굴욕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큰 강물 옆에서 목말라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고 밥통 속에서 배고파 하는 사람이 항하수 모래알처럼 많으니 쉽게 생각할 있이 아니다.
여러 스님들이여! 정말로 깨달아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였는가. 그렇다면 깨달아 들어가는 길에 곧장 들어가야지 헛되게 세월만 보내서는 안된다. 또한 옆짚 사기꾼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일은 누가 맡아야 할 일인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좋겠다.
보리 달마스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以心傳心]’, ‘문자를 쓰지 않는다[不立文字]’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우선 무엇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가닥만 어지럽혀 놓고 그만두어서는 안된다. 자기의 일도 밝히지 못한 사람이 어디 가서 허다한 망상을 녹여 줄 수 있다는 말이냐?
당장에 그대들의 몸을 편안히 할 곳이 없으면 범인도 보고 성인도 보며, 남자와 여자, 스님네와 속인, 높은 것과 낮은 것, 훌륭한 것과 못난것 등을 보게 된다. 이것은 멀쩡한 땅에다 모래를 덮느라 시끌법석대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아직까지 잠깐 한 생각이라도 마음 빛을 돌이켜보지 못하고 영겁 세월토록 생사에 떠다니며 쉬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각자 노력들 하여라.
2.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첫 마음[初心]과 뒷 마음[後心]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무엇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냐?”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네 스스로 모르는 게지 나는 아무 죄도 없다.”
“다시 비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괴롭구나, 괴로워! 이렇게도 구제하기가 어려운데야 어쩌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진리와 세속, 두 가지 도리[眞俗二諦]입니까?”
“진리니 세속이니 하는 두 가지 도리는 그만두고 그대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면서 무슨 두 가지 도리, 세 가지 도리를 묻고 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입니까?”
“부처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지 말아라!”
“무엇이 부처님을 함부로 들먹이지 않는 일입니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줄이나 알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요즘에 총림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몸을 부수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납승의 눈을 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님께서 이어 말씀하였다.
“여러 스님들이여!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가? 이 일은 여러분 각자의 일이어서 조금도 모자라는 것이 없으며, 그 위를 덮어 씌울 한 치 풀도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것을 모르고 앞만 보고 가면서 오직 남의 말만 들으려 하는가. 그렇게 해 가지고는 영겁토록 논해 봤자 아무 관계 없는 것이다. 이는 여러분 자신의 일인데 어째서 알지 못하는가?
남의 집안일이라면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은 옆집에 앉아 나의 눈물과 침이나 받아먹는 꼴이다. 이렇게 마음[意識] 속에서 알음알이를 짓다가 어떤 사람이 불쑥 자기 집안일을 물어오면 엇비슷한 말로 대답하고, 그러다가 눈 밝은 사람에게 한번에 깨지고는 그곳에서 도망갈 수도 없게 된다. 이렇듯 까맣고 질펀한 칠통 같은 신세가 된 것은 이제까지의 행각에서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롭고 굴욕스러운 일은 그 처음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너희들과 닮은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띠끌 겁 전부터 내려온 그대들의 일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여기에서 실오라기 하나 머리털 하나만큼이라도 자리를 옮기려 한다면 곧 목숨을 잃는 자가 될 것이다. 만약에 한 글자라도 받아 지닌다면 그 사람은 영겁토록 여우의 혼령에 지나지 않는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내가 이 개구리 같은 입을 벌려 지껄이기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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