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옹록懶翁錄

발문

쪽빛마루 2015. 7. 8. 06:43

발문

 

 

 이상은 왕사 보제존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일상의 행동을 한마디, 한 구절 모두 그 시자가 모아 「나옹화상 어록」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제자 유곡(幽谷) · 굉각(宏覺) 등이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세상에 간행하려고 내게 그 서문을 청하였다.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서문이란 유래를 쓰는 것인데, 그 유래를 모르고 서문을 쓰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오. 장님이 길을 인도하거나 귀머거리가 곡조를 고른다면 그것이 될 일이겠는가. 나는 그것이 안 되는 일인 줄 알 뿐 아니라, 더구나 백담암(白淡庵)의 서문에서 남김없이 말했는데 거기 덧붙일 것이 무엇 있는가."

 그랬더니 그들은 "그렇다면 발문(跋文)을 써 주시오" 하면서 재삼 간청하므로 부득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넓은 그릇과 맑은 뜻을 엿볼 수 없거늘, 어떻게 그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듣건대, 부처는 깨달음[覺]을 말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깨우치며 자비로써 교화한다 하니 그것은 우리 유교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닫게 하고 인서(仁恕)로 교(敎)를 삼는 것이니, 그것이 같은가 다른가.

 우리 군자[先儒]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는데, 탕탕하여 아무도 그것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유불(儒佛)이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서로 비방하는 것이 그름을 안다.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요,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만 극치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 서로 맞서 비방할 뿐이요, 중니(仲尼)와 모니(牟尼)는 오직 한 덩어리의 화기(和氣)인 것이다.

 이제 이 어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믿을 수 있으니, 언제나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닦아 임금을 축수하고 나라를 복되게 함으로써 규범을 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임금은 이 분을 존경하여 스승으로 삼았으니 이 어록을 간행하여 세상을 깨우침이 마땅할 것이다.

 

정사년(1377) 첫여름 하순(下旬) 어느 날에 단성보리 익찬공신 중대광계림군 이달충(端誠輔理翊贊功臣重大匡雞林呼李達衷)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삼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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