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인천보감人天寶鑑

48. 법화경을 외우다가 깨침 / 증오 지(證悟智)법사

쪽빛마루 2015. 7. 20. 09:49

48. 법화경을 외우다가 깨침 / 증오 지(證悟智)법사


증오 지(證悟智)법사는 태주임씨(台州林氏) 자손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책을 읽으면 한눈에 외웠으며 의술이나 점복에 관한 책까지도 모두 통달하였다. 하루는 경을 강설하는 곳에 갔다가 「관무량수경」 설법을 듣게 되었다. 귀를 기울여 한참을 잠자코 듣고 있더니 감탄하기를 "해 떨어지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지금 이 경을 듣고 있으니 마치 집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은 듯하구나" 하고는 머리를 깎고 불조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따르겠다고 서원하였다.

 백련사(百蓮寺) 선(僊)법사에게 귀의하여 '완전한 도리와 변하는 도리[具變之道]'

에 대해 물으니 선법사가 등롱(燈籠)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성품을 여의고 아님도 끊어져[離性絶非] 본래 그 자체는 비고 고요하니 이것이 '완전한 이치'요, 4성 6범이 보는 경계가 다르니 여기에 '변하는 도리'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지법사는 깨닫지 못했다.

 그 후에 땅을 쓸면서 「법화경」을 외우다가 "법은 항상하여 성품이 없으니 부처종자가 이로부터 일어남을 알지니라[知法常無性佛種從綠起]" 한 구절에서 깨달아 마음이 활짝 트였다. 선법사가 보고는 '기쁘다! 큰 일을 마쳤구나. 법화지관(法華止觀)은 이것이 핵심인데 그대가 이것을 깨달아냈으니 깊고도 묘한 경계에 들어갔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마음이 훤히 트이고 자유로와서 사람들에게 자주 이 법문을 하였다.

 법사는 닷새마다 한번씩 잠을 잘 뿐 나머지는 요체에 푹 젖어 지내면서 오직 공부가 잘 되지 않을까만을 걱정하였다. 한번 동산(東山)에 자리잡고는 24년 동안 그곳에 있었는데 동산, 서산 두 산의 학인들이 와서 논변해보았으나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다.

 법사는 늘 후학들이 명상(名相)의 굴레 속에 갇히고 책 속에 달라붙어 심지어는 한 종파의 경전만을 받아들여 문자학을 일삼으면서 다른 종파는 업신여겨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음을 근심하였다. 그리하여 문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면서 격려하였다. "우리 부처님께서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정진이다' 하신 말씀을 어째서 생각지 않느냐. 이 한 구절에 깨달음의 기연이 있는데 어째서 직접 맞닥뜨려보지 않느냐?"

 그 후 왕명으로 상축사(上竺寺)에 주지하게 되었는데 당시 재상이었던 진공(秦公)이 묻기를 "지(止)와 관(觀)은 같은 법입니까, 다른 법입니까?" 하니 법사가 대답하였다.

 "같은 법입니다. 이것을 물에 비유하면 조용하고 맑은 것은 지(止)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비춰볼 수 있는 것은 관(觀)인데 물은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또한 군대와 같아서 부득이할 때만 쓰는 것이니 어둡고 산란한 중생들의 중병을 '지관'이란 약으로 그 심성을 고쳐내서 온전한 바탕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법계에는 고요함[寂然]을 지(止)라 하고, 고요하면서 항상 비춤[照]을 관(觀)이라 합니다. 그러니 오로지 지(止)할 바를 고집한다면 어디서 관(觀)할 바를 찾겠습니까? 마치 공께서 허리띠를 드리우고 홀을 단정히 들고서 묘당에 앉아 있을 때, 군대를 움직이지 않아도 천하를 흥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공은 "법사가 아니었던들 어떻게 불법의 묘한 도리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하며 기뻐하였다. 「탑명(塔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