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33. 말후일구(末後一句)법문 / 도솔 종열(兜率從悅)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42

33. 말후일구(末後一句)법문 / 도솔 종열(兜率從悅)선사

 

 석상사(石霜寺)의 청소(淸素)시자는 민현(閩縣) 고전(古田) 모암(毛巖)에서 태어났다. 노년에 상서(湘西)지방의 녹원사(鹿苑寺)에 은둔하여 한가로운 생활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당시 도솔 열(兜率從悅)선사가 아직 세상에 나가지 않고 그의 옆방에 거처하였다. 어느 사람이 생여지(生荔支)라는 과일을 보시하자 열선사가 청소스님에게

 “이는 노스님 고향에서 나는 과일이니 같이 먹읍시다” 하였다. 소선사는 슬픔에 젖어 “스승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이 과일을 보지 못했소.” 하였다.

 열선사는 이 말을 이어서 “스승이 누구십니까?” 하니 자명(慈明)선사라고 하였다.
 열선사는 한가한 시간에 슬며시 그의 계보를 물어 보았다. 소선사도 이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어느 분을 뵈었소?”
 “진정 문(眞淨克文)스님을 뵈었습니다.”
 “문스님은 또 누구를 만났소?”
 “남(南)선사입니다.”
 “남편두(南匾頭 : 납짝머리 혜남스님)가 석상사(石霜寺)에서 오래 머물지도 않았는데 그의 도가 이처럼 성하였구나!”

 이말에 열선사는 더욱 놀랐다. 그리고는 향을 가지고 와서 가르침을 청하니 소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복이 없고 인연이 적은 사람이니 어떻게 남의 스승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의 견해를 한 번 말해 보아라!”
 열선사가 자기 생각을 모두 털어 놓으니 소선사가 말했다.
 “그것으로 부처 경계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마구니 경계에는 들어갈 수 없다. 마지막 한마디[末後一句]라야 굳게 닫힌 관문에 이를 수 있다 하신 옛 분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열선사가 대답하려는 찰라에 또 불쑥 물었다.
 "무위(無爲)를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열선사가 또다시 대답을 하려는데 소선사가 갑자기 크게 웃으니 이에 열선사는 환하게 터득하였다.

 한번은 이 이야기를 무진거사 장공에게 한 적이 있었다. 숭령(崇寧) 연간 황제의 3주기 제사 때, 적음(寂音)존자가 협주(峽州) 선계사(善谿寺)에서 무진거사를 찾아오니 무진거사가 말하였다.

 “지난날 귀종사(歸宗寺)에서 진정(眞淨)노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도솔스님이 말한 ‘마지막 한마디…’를 언급하였습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정스님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이는 피를 토하고 죽을 까까머리의 얼빠진 소리니 믿을 게 없다’고 욕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성을 내기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만 진정스님이 이 이야기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대는 오로지 도솔스님이 입으로 전한 ‘마지막 한마디’ 만 알았지, 진정스님의 참다운 약이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는데야 어찌합니까?”
 이말에 무진거사는 깜짝 놀라, 진정스님에게 “과연 이러한 뜻이 있었습니까?” 하니 적음선사가 천천히 말했다. “의심이 나거든 별도로 참구해 보시오?”

 이 말 끝에 무진거사는 갑자기 진정스님의 활용처를 볼 수 있었다. 곧장 집에 소장해오던 진정스님의 영정을 가지고 나와 펴놓고 예배한 후 그 위에 찬(讚)을 적어 적음선사에게 주었다.

 

운암(雲庵)선사의 종지는
용(用)과 조(照)를 잘 써서
싸늘한 얼굴 매서운 눈초리에
신비한 광채 번득거린다

누가 그의 뜻을 전할꼬
오직 닮은 사람이라면
앞에는 종열(從悅)선사, 뒤에는 혜홍(慧洪)선사
그리고 도융(道融)과 승조(僧肇) 같은 분.

 

雲庵綱宗  能用能照

冷面嚴眸  神光獨耀

 

耀傳其旨  覿露唯肖

前悅後洪  如融如肇

 

 그 뒤에 찬을 써서 앙산(仰山)에다가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적음선사도 게송 두 수를 지어 종열선사의 시자 지선(智宣) 스님에게 전해 주었다.

 

소(素)선사 떠나신 후 맑은 명성 남아
‘마지막 한마디’ 황석공의 소서(素書)같아라
영웅이 죽은 후에 아는 사람 없다가
장량(張良)의 두 눈이 매섭게 뚫어봤네.

素公死後閑名在  末後句如黃石書

殺盡英雄人不見  子房兩眼似愁胡

 

‘무위’ 두 글자를 무어라 말할꼬
입을 벌리면 도리어 병이 깊어지는 것을
예전에 선(宣)시자에게 물어보라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리.

無爲兩子如何說  開口知君病轉深

試問舊時宣侍者  不言不語笑吟吟

 

 아! 열선사는 소(素)선사에게 법을 묻고 그의 자취를 잊을 수 없어 드디어는 무진거사를 그 속으로 빠지도록 하였다. 적음선사가 진정스님의 독약을 밝혀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무진거사의 불치병을 고칠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큰스님이 학인을 위하는 데에는 각기 다른 은혜가 있으니 쉽사리 그 단서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