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종문무고宗門武庫

종문무고 上 46~55.

쪽빛마루 2015. 9. 16. 08:19

46. 의회스님의 법문

 

 순 노부(曉舜老夫)스님이 어느 날 원통 수(圓通法秀 : 운문종)선사에게 물었다.

 "듣자니 그대가 회(天衣義懷)스님을 친견했다던데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

 "투기송(投機頌)이 있었습니다."

 

1 2 3 4 5 6 7이여

만길 봉우리 앞에 한쪽 발로 서서

검은 용의 턱밑에서 여의주를 빼앗고

한 마디로 유마힐을 간파하였노라.

一二三四五六七  萬仞峯前獨足立

奪得驪龍頷下珠  一言勘破維摩詰

 

 "좋지 않다. 다른 법문 없었는가?"

 "하루는 장로 한 분이 찾아오자 의회선사는 불자를 들어보이며 그에게 알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의회스님은 '귓밥은 두조각의 가죽이요, 치아는 한벌의 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스님은 참으로 선지식이라고 감탄하면서 그 후로 의회선사를 존경하게 되었다.

 

 

47. 강주를 그만두고 / 황벽 도천(黃蘗道泉)선사

 

 균주(筠州) 황벽 천(道泉)선사는 처음 「백법론(百法論)」을 배워 강주로서 명성이 자자하였으나 선종으로 옷을 바꿔 입고 남방으로 내려와 동산에서 진정(眞淨)스님을 친견하였다. 그가 지은 오도송(悟道頌)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 방에 창고를 몽땅 쳐부수니

일체 보화가 모두 나의 것

一鎚打透無盡藏  一切珍寶吾皆有

 

 기봉이 빨라서 아무도 그를 당할 자가 없었는데 진정스님은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애석하다. 선사(先師 : 慧南)를 미처 친견하지 못하겠구나."

 그 후 그는 법상에 올라 설법하다가 법좌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입적하니 진정화상의 말은 더욱 영험이 있었다.

 

 

48. 발밑을 보라 / 불과 극근(佛果克勤)선사

 

 삼불(三佛 : 佛鑑慧懃 · 佛眼淸遠 · 佛果克勤)스님들이 오조(五祖法演)선사의 회하에 있을 때였다. 하루는 정자 위에서 밤늦도록 이야기하다가 방장실로 돌아오니 등불은 꺼져 있었는데 오조선사가 어둠 속에서 각기 한마디씩 던져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불감(佛鑑)선사는 "오색 봉황이 하늘에서 춤춘다" 하였고, 불안(佛眼)선사는 "쇠 뱀이 옛길에 누었다" 하였고, 불과(佛果)선사는 "발밑을 보라" 하였다.

 그러자 오조선사는 "우리 종문을 망칠 놈은 극근(克勤)이다"라고 하였다.

 

 

49. 화두참구하는 법 / 회당 조심(晦堂祖心)선사

 

 초당(草堂善淸 : 1057~1142)스님이 회당(晦堂祖心)스님을 모시고 서 있는데 회당스님이 '바람과 깃발' 화두를 거론하면서 물었다. 초당스님이 "아득하여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회당스님이 말하였다.

 "너는 세간에서 고양이가 쥐잡는 모습을 보았느냐? 두 눈을 부릅떠서 깜박거리지도 않고 네 발을 땅에 버틴 채 꼼짝 않고서 집중하고 머리와 꼬리를 일직선으로 곧추세운다. 그렇게 해서 쥐를 덮치면 잡히지 않는 때가 없다. 참으로 마음에 다른 인연이나 망상이 없이 육근의 창문을 고요하게 하고서 단정히 앉아 말없이 참구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잘못이 없을 것이다."

 

 

50. 은사스님의 말씀을 받들다 / 청소(淸素)수좌

 

 청소(淸素)수좌는 민현(閩縣)사람이다. 자명(慈明 : 石霜楚圓)선사에게 13년 동안 의지하였다가 80세가 되어서야 호상(湖湘) 녹원사(鹿苑寺)에 주석하였으나 애당초 사람들과 사귀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

 종열(從悅 : 1044~1091)수좌는 처주(處州 : 虔州)사람인데 우연히 그의 이웃에서 살게 되었다. 종열수좌가 꿀에 담은 여지(荔枝)를 먹으려는 찰라에 청소수좌가 문앞을 지나가자 종열수좌는 그를 불렀다.

 "이것은 노인의 고향에서 나오는 과실이니 함께 먹읍시다."

 "스승[先師]께서 돌아가신 후 이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지 오래다."

 "스승이 누구십니까?"

 "자명선사요."

 종열수좌는 깜짝 놀라 의아해 하였으며 남은 과일을 그에게 보내 조금씩 친하게 되었다.

 그 후 청소수좌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가 친견한 사람은 누구요?"

 "동산 문(洞山克文)스님입니다."

 "극문스님은 누구를 친견하였소?"

 "남(慧南)스님입니다."

 "'납짝머리 남스님[南匾頭]'이 스승을 뵈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후손의 법도(法道)가 이렇게 성하구나!"

 종열수좌는 이 말에 더욱 그를 달리 생각하였다. 하루는 향을 가지고 찾아가서 예배를 올리려 하니 청소수좌는 그를 피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박복한 사람이라 스승께서 사람을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내게 수기를 하셨다."

 한달 남짓 지나자 종열수좌의 성의를 가상히 여겨, 평소 아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종열수좌가 자신이 깨친 바를 상세히 말하자 청소수좌는 "부처 속으로는 들어갈 수 있지만 마귀 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구나" 하고서 다시 말하였다. "마지막 한 구절이라야 비로소 굳게 닫힌 관문에 이른다."

 이처럼 닦아가기를 반년만에 청소수좌는 처음으로 그를 인가하고 주의시켰다.

 "극문(克文)이 그대에게 보여준 것은 모두 올바른 지견이었다. 내 비록 그대를 위하여 이를 점검해서 그대가 자유자재로 수용(受用)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대가 너무 일찍이 스승 곁을 떠나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할까 두렵다. 뒷날 결코 나의 법제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후일 종열수좌는 세상에 나아가 진정선사의 법을 이었는데, 그가 바로 도솔 열(兜率從悅)선사이다.

 

 

51. 대인이 나타난 모습 / 운거 선오(雲居善悟)선사

 

 운거 오(雲居善悟 : 高庵)스님이 용문사(龍門寺)에 있을 무렵 한 스님이 뱀에게 물렸다. 불안(佛眼)선사가 "이곳은 용문(龍門)인데 어찌하여 뱀에게 물렸느냐"고 물으니 선오선사가 곧바로 대답하였다. "과연 대인이 나타난 모습입니다."

 후일 이 말이 소각사(昭覺寺)에 전해지자 원오(圜悟)선사가 말하였다.

 "용문사에 이런 중이 있었단 말이냐? 동산(東山 : 오조 법연)스님의 법이 아직도 쓸쓸하지는 않구나!"

 

 

52. 배로 가나 걸어가나 매 한가지 / 초당 선청(草堂善淸)선사

 

 초당(草堂善淸)스님이 임천(臨川)에서 우연히 스님(대혜)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자창(韓子蒼)이 스님을 초청하여 그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물었다.

 "선청스님은 어떻습디까?"

 "얼마 전에 들으니 방거사[龐睛 : ?~809]가 마조(馬祖道一)대사에게 물었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不與萬法爲侶)'라는 인연에 대해 '어룡과 새우를 어디에서 찾으리[魚龍蝦蠏 向甚處著]'라고 염송을 하였소. 만일 이와 같다면 그의 명성은 헛되이 얻은 것이오."

 한자창이 이 말을 초당선사에게 알려주자 초당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그에게 전해 주시오. 비유하면 한 사람은 배로 가고, 한 사람은 육지로 갔는데 두 사람 모두 목적지에 이르렀다"고.

 스님은 이 말을 듣고 초당이 도를 얻었다고 수긍하였다.

 

 

53. 희유(希有)합니다 / 수보리(須菩提)

 

 수보리(須菩提)는 공(空)도리를 가장 잘 이해한 분으로, 그가 태어날 때 집안이 모두 비어 있었다.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시자마자 수보리는 대중 앞에 나아가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하였는데 말해 보아라. 그가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렇게 말했겠는가를.

 천친(天親)보살은 「무량게(無量偈)」를 지어 오로지 '희유'라는 두 글자만을 찬양하였고, 원오선사는 이 한 마디가 하나의 쇠말뚝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육조(六祖慧能)대사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을 듣고 그대로 깨친 것이다.

 

 

54.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듯이 / 오조(五祖)선사

 

 원오(圜悟) · 불안(佛眼) · 불감(佛鑑) 세 선사가 오조스님의 회하에 함께 있을 때였다. 어느 날은 셋이서 "노스님은 그저 무미건조하기만 해서 이따금씩 마음이니 성품이니 마저 설법하지 않으신다" 하고는 "불신(佛身)은 하는 일이 없고 어느 범위(數 : 有無, 迷悟 따위)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 것으로 법문을 청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맑은 마니주가 오색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 오색은 범위(數)이고 마니주는 불신이다."

 원오선사가 두 선사에게 말하였다.

 "스님은 대단히 설법을 잘하신다. 우리는 설법할 때 매우 힘이 들지만 스님은 한두 마디로 끝내 버리니 분명 그는 한 마리의 늙은 호랑이다."

 오조스님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만일 마음이니 성품이니를 설법하면 구업짓는 것이라 하고 다시 말씀하였다.

 "고양이는 피를 핥는 공덕이 있고 범은 주검을 일으켜 세우는 공덕이 있다. 선이란 이른 바 밭갈이 하는 자의 소를 빼앗고 굶주린 자의 밥을 훔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모두 진흙덩이를 가지고 노는 놈들이다."

 

 

55. 똥물이나 퍼 부어라 / 대혜(大慧)선사

 

 스님(대혜)께서 어느 날 조거제(趙巨濟)에게 말하였다.

 "노스님(원오선사)께서 갑자기 떠나면 다른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선(禪)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그가 이 화두[轉語]는 이렇게 깨닫고, 저 화두는 저렇게 깨닫고, 하면 뜨거운 똥물이나 퍼 부어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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