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下
1. 황룡사 전(前)주지 / 혜남(慧南)스님
황룡사(黃龍寺)의 전 주지가 선원의 집채들을 새로 지으면서 하나하나 총림의 체제와 규격에 맞게하니 어떤 사람이 그를 비웃었다.
"스님은 선을 모르면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선을 설법할 사람이 스스로 오게 될 것이다."
선원이 다 되자 마침내 적취사의 혜남(慧南)선사를 주지로 청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뒷날 혜남선사가 왔을 때는 황룡사 전 주지는 입적한 뒤였다.
혜남선사가 어느 날 문득 꿈을 꾸니 귀신이 나타나, 가서 탑을 지키게 해달라고 하였다. 혜남선사는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방장실에 앉아 있으려니 또다시 지난 날 밤 꿈에 나타난 귀신이 찾아와 탑을 지키고 싶다고 하였다. 혜남선사가 그 까닭을 묻자, 교대할 사람이 오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얼마후 그의 말대로 소상(塑像)을 만드는 사람이 왔다. 이에 혜남선사는 그에게 토지신 소상을 별도로 만들라 하고, 옛 토지신으로 하여금 황룡사 전 주지의 탑을 지키게 하였다.
2. 시끄러운 저자에서 앉은 채 입적하다 / 태류(太瘤)스님
태류(太瘤)는 촉(蜀)땅의 스님이다. 대중 속에 있으면서 항상 불법이 뒤섞여 다른 견해[異見]들이 일어나는 것을 개탄해 오다가, 내가 참선하여 진정한 지견을 얻게되면 구업(口業)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발원하여 마조(馬祖道一)선사의 탑에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예배를 드려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탑에서 흰 빛줄기가 뻗어나오는 감응을 얻고 깨달았다.
그후 총림에서 가는 곳마다 노스님을 시험해오다가 설두산을 지나면서, "이 늙은이는 입 속에 침이 질질 흐르고 있구나" 하였다. 설두선사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태류스님이 설두선사를 만나자 설두선사가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느냐?"
"늙은이가 생각대로 입 속에 침이 질질 흐르고 있군!"
이어 좌복을 집어 던지고 곧바로 나와 버렸다. 그곳 직세승(直歲僧 : 선원의 수리 및 중창 등 각종 공사를 맡아보는 소임)이 그를 달갑게 생각지 않아 사람을 보내 도중에서 태류스님을 때려 한쪽다리를 부러뜨려 버렸다. 태류스님은 그것이 설두 늙은이가 시켜서 한 짓일거라며 후일 반드시 그의 한쪽다리가 부러져 내게 빚을 갚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뒤에 그의 말대로 되었다. 태류스님은 그뒤 서울에 가서 저자거리에서 제멋대로 하고 다녔다. 한 벼슬아치가 자기 집으로 모셔 공양하겠다고 청하자 여러번 사양하였으나 그는 굳이 머물도록 하면서 더욱 스님을 존경하였다. 항상 시첩(侍妾)을 시켜 스님 앞에서 공양을 받들게 하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벼슬아치가 그의 방에 찾아오자 태류스님은 일부러 첩을 농락하였다. 벼슬아치는 이 일을 계기로 예우를 바꿨고 스님은 마침내 그 집에서 떠나올 수 있었다. 그후 며칠 있다가 시끄러운 저자거리에서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3. 예언대로 받은 업보 / 평(平)시자
대양사(大陽寺)의 평(平)시자는 여러해 동안 명안(明安 : 警玄, 조동종)선사의 선실에서 공부하여 그의 종지를 다 터득하고 생사문제를 자기 일로 삼았으나 동료를 모함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였다. 낭야 광조(瑯瑘廣照)선사와 공안 원감(公安圓鑑 : 浮山法遠)선사가 대중승으로 있을 때 분양(汾陽善昭 : 임제종)선사가 명안선사의 종지를 탐색해보기 위하여 두 선사를 대양사에 머물도록 하였다. 명안선사는 평시자에게 은밀히 종지를 전수하면서, 동상종(洞上宗 : 曹洞宗)을 일으켜 멀지 않아 깨달을 것이라 하였다.
두 선사는 분양선사에게 말하였다.
"평시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명안선사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평시자는 이곳이 좋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가운데 손가락과 교차시켜 세 갈래로 보여주면서, 평시자가 이곳을 떠난다 하여도 여기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명안선사는 입적하면서 '전신을 묻어도 10년은 무난할 것이며 대양사를 위하여 열심히 이바지할 것이다'라고 유언하였다. 유해를 탑에 넣을 때 문도들은 평시자가 선사에게 불리한 짓을 할까봐 두려워 하였다. 도위(都尉) 이화문(李和文 : 遵勗)이 시주한 금은 따위의 기물(器物)로 탑명을 새겼는데 과연 그것이 없어졌다.
그후 평시자가 대양사의 주지가 되었을 때, 갑자기 스승의 탑이 풍수지리에 좋지 못하니 시신을 꺼내 화장해야겠다고 하였다. 산중의 노승들이 모두 간곡히 만류했으나 평시자는 지신에게 방해되는 일이 있다며 결국 탑을 파헤쳤다. 선사의 모습은 마치 산 사람같았으며 장작불이 모두 탄 뒤에도 그대로였다. 대중은 모두 놀랐으나 평시자는 마침내 도끼로 뇌를 부수고 기름을 부어 불을 지피자 잠깐 사이에 재가 되고 말았다.
대중이 이 사실을 관아에 알렸고, 평시자는 탑안의 물건을 절취하고 은사에게 불효하였다는 죄에 걸려 환속 당하였다. 평시자는 자칭 황수재(黃秀才)라 하고 낭야선사를 찾아가니 낭야선사가 말하였다.
"예전의 평시자가 지금은 황수재가 되었구나. 내 대양사에 있을 때 네가 하는 짓을 다 보았다."
그리고는 드디어 받아들이지 않자 또다시 공안선사를 찾아갔는데 공안선사 역시 돌아보지도 않았다. 평시자는 의탁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뒷날 세갈래 갈림길 입구에서 범을 만나 잡혀 먹혔다. 그는 결국 대양선사가 손가락을 굽혀 보여준 그 예언을 면하지 못한 것이다. 슬픈 일이다.
4. 게송 천 수를 지었으나 / 태화(太和)산주
아미산(峨嵋山)의 백장로(白長老)가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고향사람인 설두스님이 지은 백여 수의 송은 문장이나 뜻이 남보다 뛰어나지 않는데도 어찌하여 부질없이 세상에 큰 명성을 얻었을까."
그리고는 드디어 게송 천수를 지어 열곱절 많게 하고 스스로 이를 엮어 문집을 만들었다. 그는 후일 자신의 명성이 설두선사를 압도하리라고 잘못 생각하고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감상해주기를 요구하였다.
당시 태화산주(太和山主)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당대에 도 있다는 큰스님을 두루 친견하고 법창 우(法昌倚遇 : 1005~1081)선사에게 법을 얻은 분이다. 그는 세상에 나와 태화사에 주지를 하면서 산주(山主)라 불릴 만큼 그 기세가 여러 선림을 압도하였고, 함부로 인가해주지 않았다. 백장로가 자기 송을 가지고 태화산주를 찾아가 귀감이 될 만한 한마디 말을 얻어서 후학들에게 신임을 받으려 하였으나 태화산주는 그 송을 보고서 침을 뱉고 말하였다.
"이 송은 마치 겨드랑이에서 노린내나는 환자가 바람머리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냄새를 맡아줄 수가 없다."
그 후로 백장로는 다시는 남에게 내보이지 않았다.
후일 황노직(黃魯直 : 정견)은 그 말을 듣고 성도(成都) 대자사(大慈寺)에 가서 큰 글씨로 벽 위에다 시 한수를 썼다.
아미산 백장로
게송 천 수를 지어 문집을 내었더니
태화산주 말씀이 걸작이라
겨드랑이 노린내나는 환자가 바람머리에 서 있는 것 같다나.
峨嵋白長老 千頌自成集
大和曾有言 鵶臭當風立
5. 나고 죽는 인연을 자기 뜻대로 하다 / 귀종 가선(歸宗可宣)선사
귀종 선(歸宗可宣)선사는 한주(漢州) 사람이다. 낭야 광조(瑯瑘廣照)선사의 법제자인데 곽공보(郭功甫 : 郭祥正)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남강(南康)태수가 무슨 일로 그를 문책하니 선선사는 사람을 보내 곽공보에게 서신을 전하면서 서신 전하는 자에게 현령에게는 보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당시 곽공보는 남창(南昌)의 태위(太尉)로 있었는데,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에게는 다하지 못한 세상 인연이 6년 더 남아있는데 오늘날 이 핍박을 견딜 수 없어 그대의 집에 의탁하여 태어나고자 하니 그대가 살펴주기를 바라오."
선선사는 마침내 열반하였다.
곽공보는 편지를 받고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날밤 그의 아내는 꿈속에서 선선사가 어렴풋이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자기도 모르게 "이 곳은 스님이 오실 곳이 아닙니다" 하고 소리쳤다. 곽공보가 그 까닭을 몰으니 아내가 꿈이야기를 하자 그는 등불을 밝히고 선선사의 서신을 내보였다. 과연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자 그의 이름을 선노(宣老)라 하였다. 겨우 돌이 되자 기억하고 묻는 것이 옛과 다름 없었다.
세 살이 되던 해 백운 단(白雲守端)스님이 그의 집 앞을 지나간 일이 있었다. 곽공보가 스님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나가 만나자 멀리서 그를 바라보고 사질(師姪)이라고 불렀다. 백운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스님과 헤어진 지 몇 해요?"
"4년이요."
"어디서 헤어졌소?"
"백련장(白蓮莊)에서요."
"무엇으로 증명하겠소?"
"아버지 어머니가 내일의 재에 스님을 초청할 것이요."
갑자기 문밖에 수레를 끌고가는 소리가 들리자 백운스님이 물었다.
"문밖에 무슨 소리요?"
선노가 수레 밀치는 시늉을 하자 다시 물었다.
"지나간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평지에 한줄의 도장이 파이지!"
그는 여섯살이 되자마자 아무런 병도 없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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